푸켓에서의 추억 -2- 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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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켓에서의 추억 -2- 재회

트라이크 3 1300
푸켓 해변에서의 기억이 거의 다 지워져가는 어느 여름날 나는 또 다시 푸켓을 찾게 되었다.



지금도 정확하게 내가 왜 푸켓을 다시 가고 싶어했는지 당시의 감정상태를 기억하기 어렵다. 너무 짧았던 여행이었으므로 딱히 사랑이라고 할 것도 없었으며, 처음 푸켓에 있었던 그 날이후 3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으므로 설사 깊은 사랑에 빠졌었다고 하더라도 그 감정의 상당부분은 이미 나의 가슴에서 떠나고 없었을 것이다.아마 직장을 그만두고 무척이나 자유로워진 상태에서 문득 그녀의 얼굴이 떠 올랐을 것이고 단지 한번 다시 만나고 싶다는 그런 느낌 정도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어떤 얼굴로 변해 있을까? 나를 기억하고는 있을까 하는 막연함, 언제든지 반가운 얼굴로 다가올 것 같은 친근함등이 나를 푸켓으로 자연스럽게 이끌어 간 것이 아닐까? 직장을 그만두고 자유로워진 시간에 나는 내가 하고 싶었던 그 모든 것을 하고 싶었고, 마치 장난처럼 미지의 세계에 나를 내던지고 싶은 욕망같은 종류였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직장을 그만둔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그러나, 직장생활 5년여동안 내내 직장을 벗어날 생각을 하였었고, 정작 그 결정의 날이 내일로 다가왔을 때 나는 매우 흥분된 상태가 되었다. 고정된 틀에서 떠나 보다 넓고 자유로운 세계에서 인생을 꾸려가고 싶어 했으며,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내 인생을 투자하고 싶었다. 내 인생을 왜 남을 위해서 일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을 끝없이 던지던 때였으므로 그 결정은 도전과 이에따른 흥분을 만들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나는 앞날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것은 없었다.



아직 미혼이었고 나의 결정에 반대하는 사람이 원래 없었으며, 무엇을 하더라도 즐겁게 사는 성품이었으므로 스스로 잘할 것이라는 마취 상태에 있었고, 주변 사람들 또한 나를 그렇게 인식하였고 마취시켰다. 삶에 대한 두려움같은 건 없었던 아름다운 젊음의 한 시절이었다.



지금도 그 당시 직장을 그만둔 것은 참으로 잘한 일이라 생각하지만 그러나 그 당시에 왜 하필이면 푸켓이라는 곳에 내가 이끌렸으며, 홀린듯 태국으로 날아갔는지 내내 후회하게 되었다. 살면서 실수인줄 알면서도 실수를 반복하는 나의 습성, 인간의 습성을 그 때 나는 또 다시 반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실수인줄 알면서도 실수를 하는 것처럼 비참한 인생은 없다.



방콕이라는 나라는 비행기로 가기에도 지루할 정도로 먼나라였다. 계획도 없이 약속도 없이 가는 여행이었지만 푸이라는 한 여인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설레임, 여러가지 즐거운 망상들을 하는 즐거운 시간들이었다. 그녀는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일까?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까? 만날수는 있을 것인가? 주소도 전화번호도 없이 무작정 태국이라는 이국 땅으로 떠나는 나의 무모한 행동에 미래는 어떤 모습으로 또 다시 다가올 것인가?



주소나 연락처도 없었지만 당시 그녀가 아르바이트를 하였던 여행사와 방콕대학이라는 작은 끈은 남아 있었다.



먼저 그녀가 잠시 일했던 여행사를 찾았다. 그러나 그 어느 곳에서도 그녀의 흔적은 없었다. 다소 어눌한 나의 영어로는 그녀의 어떤 흔적도 추적할 수는 없었다. 방콕대학으로 갔다. 그녀는 이미 졸업하고 없었지만 그녀가 공부했던 과를 알고 있었으므로 주소와 연락처를 바로 알 수 있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다이얼을 돌렸다. 나는 Pui (푸이, 혹은 부이의 중간 발음) 를 어렵게 발음해서 그녀 집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녀는 현재 집에 없다는 말 같았다. 숙소를 정하고 저녁에 다시 전화를 하기로 하였다. 그녀가 있는 집을 확인한 순간에 나는 또 다시 희열에 잠겼다. 가능성이 낮은 그 어떤 것을 시도하고 그것이 현실에서 성공할 때 느끼는 행복이었다. 나의 동키호테적인 발상과 시도가 유감없이 발휘되었던 사건이었다.





전화속의 목소리는 예전의 그 목소리 그대로였다. 약간 떨리는 듯하면서도 나지막하고 조용조용한, 그러면서도 반옥타브 높은 끌리는 듯한 목소리. 나는 그녀에게 내가 누구인지를 이해시키는데 한참이 걸리지는 않았다. 3년전에.....방콕에서 푸이가 아르바이트 할 때의.....그 코리아의 어떤 남자.....같이 푸켓해변에서 술마신 것 기억하느냐.....놀러 왔다....여기 방콕인데 푸켓에 가도 되겠냐???



전화지만 그녀의 놀라는 모습이 그대로 묻어 나왔다. "어떻게 방콕에 왔냐는...회사일 때문에?...아 그냥 쉬러 오셨군요... " 저 졸업하고요......학교에서 일해요......."



그녀는 어제 만난 사람처럼 금방 반가운 얼굴로 변했고,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머리카락을 찰랑거리며 수화기에 쏱아냈다....그리고 다음날 나는 푸켓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뭉실 뭉실 떠 오르는 구름송이들을 바로 보고 있엇다. 잠시후에 있을 공항에서의 재회 장면들을 상상하고 혼자 미소를 짓고 있었다.



시골처럼 조용하고 작은 공항에 도착한지 한시간이 지났다. 그러나 그녀의 반가운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사실 얼굴 기억도 가물가물해서 정확하지 않았고, 아마 그녀 또한 그럴 것이다. 집으로 전화를 해야하나...점점 대합실에 사람들은 없어져 갔고, 더 이상 확인할 얼굴도 없는 시점에서 나는 전화기를 다시 들었다. 무슨 일일까??



전화를 받는 사람은 없었다. 시간은 흘러갔고 어느덧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 기대는 걱정으로 바뀌었고, 결국 나는 대합실을 나와 숙소를 찾아야 했다. 더 이상 대합실에 있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 공항에서 약 1시간을 달려 푸켓의 중심부인 Pootong 지역으로 달려와 숙소를 잡았다. 배도 고팠다.



그 전 출장에서 머물던 호텔은 홀리데이인 호텔이었는데 당시 그 기분으로는 다시 그 호텔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택시기사에게 Pootong 중심부에 괜찮은 호텔을 물었고, 나는 Ban-Thai 호텔에 자리를 잡았다.



Pootong은 3년전보다 더욱 흥청거렸다. 수많은 인종들이 뒤섞여 있었으며 피서지답게 매우 자유로운 복장은 처음 방문객들을 설레게 만들기에 충분하였다. 깔깔거리며 거리를 오가는 많은 사람들에 뒤섞여 있었지만 나는 그리 즐겁지 않았다. 여러 생각이 뒤엉켜 배는 고팠지만 입맛을 별로 없었고 술생각만 간절했다. 그리고 그날밤 나는 받지 않는 전화기와 술을 사이에 두고 씨름하며 그 날 밤을 보냈다.



독한 술을 혼자 들이킨 탓인지 머리가 찌근 찌근 아파오는 통증을 느끼며 잠에서 깨어났다. 햇살이 창문을 가득메우고 있었다. 창문을 열었다. 파란물의 풀장이 바로 눈 앞에 나타났다. 몇 사람이 풀에서 물장난을 치고 있었다. 어제의 기억을 잊어버리기라도 하듯 나는 깊게 호흡을 들이키며 물속에 뛰어 들었다.



호텔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방으로 돌아왔다. 어떻게 할 것인가? 이리저리 궁리를 해봐도 뽀쪽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왜 공항에 나타나지 않은 것일까? 왜 전화는 받지 않는 것일까?
3 Comments
트라이크 2004.05.23 21:54  
  그런데...여기 쪽지 쓸 수 있는 겁니까? 쪽지가 온 것 같은데 열어볼 수가 없내요........
재즈아프리카 2004.05.24 15:43  
  쓰시는 글 계속해서 볼수 있겠죠...?? 기대 많이 됩니다..어릴적 연애소설을 처음 보던것 처럼~~~
사랑 2004.05.24 16:18  
  흥미진진한 전개와 소설가적인 문체...
거기에다가 '사랑'이야기....
빨리 다음편 올려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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