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켓에서의 추억 -7 - 사랑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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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켓에서의 추억 -7 - 사랑 3

트라이크 12 1923
세월이 많이 흘러 오래된 잡지의 표지처럼 너덜 너덜해진 일면 통속적이기도 한 그 때의 이야기는,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오늘 밤같은 날에 특히 아련한 아픔으로 다가오곤 한다. 그 때 그 시절에 나는 왜 내가 하고 싶은 그 모든 것을 하지 못하고 후회의 날들을 보내는 것일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따라서 사회와 집단의 압박에서 벗어나기는 싶지가 않다. 관념과 제도는 교육을 통하여 인간의 인생을 지배하려고 한다. 그러나, 때론 인간은 동물적 본능과 감정에  충실할 때가 가장 인간적이다. 그것이 어쩌면 인간의 본질인지도 모른다.  본능과 감정이라는 것이 결국 인간의 진실에 가장 가까운 그 어떤 것은 아닐까?

 

세월은 흘러가는 것이고 언제나 우리는 미래를 위해서 산다. 그러나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가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아직은 살아온 날보다 살아야 할 날은 더 많은 시점이지만 만약 살아야 할 날이 많지 않은 시점이 된다면 그때도 우리에게 미래는 아직도 소중한 것일까? 

 

결국 인생이란 다가올 미래도 아니며 흔적만을 남기고 지나간 과거도 아니며 현재의 이 시점이 인생 그 자체는 아닌가?  현재라는 시간속에서만 인생은 존재하는 것은 아닌가? 나는 당시에 내가 그녀에게 하지 못했던 말들, 용기가 없었던 여러가지 일들이 내내 아쉬웠했다. 보들레르의 악의 꽃이라는 책에 나오는 실존이란 결국 현재의 시간속에 존재하는 인간에 관한 이야기는 아닌가?

 

 

 

" 전화 해 볼까?"

 

" 응? 무슨 전화?"  아직도 알콜 끼가 뇌 세포를 흐리하게 만드는 아침에 내가 무성의하게 대답했다.

 

"위수린 말이야......야 너는 머 그렇게 정열이 없냐?? "

 

" 응? 정열? 나 정열 있어....."  목이 말랐다. 어제 꽤 많이 마신 것 같은데 그래도 상당히 컨디션은 좋았다. 엔돌핀의 과다분비인가?  아니면 푸켓의 공기가 맑기 때문인가?

 

" 야...내가 어제 전화한다고 그랬어....전화 기다리고 있을거야..."

 

" 그랬어? 그러면 전화해야지.. "

 

" 자식 성의없기는.....전화해야지???"  종하가 다짐을 하듯이 말했다.

 

" 시간이 너무 늦어서....어디가고 없는 거 아냐??..."

 

" 글쎄 그럴지도 모르지..너무 늦게 일어났다...우리..."  정말 너무 늦었다. 시간은 11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 전화 안 받는다.....어떻하지???"

 

"멀 어떻하냐?...나중에 또 해보면 되지....씻고 일단 머 좀 먹으러 가자....."    별로 시장기는 없었지만 습관처럼 나가야할 것 같았다.

 

 

 

 

"맥도날드나 갈까??  빵 한조각에 커피 한잔 어때??"

 

"시원한 해장국이 제격인데...여기 해장국 파는데는 없겠지??"

 

"이럴줄 알았으면 방콕에서 컵라면이나 몇개 챙겨오는건데...." 친구가 머리를 긁적였다.

 

 

 

밖에 나오자 햇살이 눈부셨다. 호텔입구에서  맥도날드는 그리 멀지 않았다. 노란색의 M자의 익숙한 간판은 어디에서건 우리를 편안하게 한다. 그 가격과 평범한 맛으로...

 

 

 

" 야! 저기 봐라....위수린이다....."

 

" 어디??"

 

" 저기 위수린이자나...."

 

" 어 정말 위수린이 하고 마연서내...."

 

 

그녀들도 맥도날드에서 빵을 사가지고 나오는 중이었다.

 

 

" 안녕하세요??  늦게 일어나셨나 봅니다..."

 

" 예 안녕하셔요....저희도 늦게 일어나서....빵이나 먹으려고 사가는 중입니다"

 

"기왕이면 여기서 먹고 가시지요..."

 

"그럴까요?"

 

 

 

맥도날드에서 나오는 그녀들을 데리고 다시 들어갔다.

 

 

 

"어제 참 재미 있었습니다....고맙습니다.....우리들이 폐를 너무 끼친것 같아서..."

 

"아이고 아닙니다...저희들이야말로 미인분들과 함께 지낸 것만으로도 영광이죠..." 친구의 입담은 역시 최고다.

 

" 저희 오늘 밤에 싱가폴로 돌아갑니다"

 

" 헉 ?? 그러셔요?? 안타깝다...." 친구가 입맛을 쩍 다셨다....

 

" 저 작년에 한국에 갔었어요....사실 아버지가 한국에 근무하시거든요...그래서 여행삼아 작년 여름에 한국에 갔었습니다"

 

위수린의 갑작스러운 말에 우리는 잠시 멍하게 그녀을 바라 보았다.

 

"내년에 또 갈지도 모르겠어요...어머니가 가자고 할 것 같아요....제주도 좋던데요??"

 

"그래요?? 제주도 별로인데....푸켓에 비하면..."

 

"푸켓은,,,,,푸켓 나름대로 정취가 있고 제주도도 제주도 나름대로의 정취가 있죠...내년에 저 서울가면 연락해도 되요? 한국에 아는 친구가 아무도 없어서 심심하거든요......"

 

" 아..그럼요..." 하고 대답을 하더니 친구가 갑자기 내 얼굴을 쳐다 보았다.

 

"위수린씨 한국에 온다면 저도 그때 시간을 내서 한국에 휴가를 가야지요....." 종수가 재치있게 받아 넘겼다.

 

"어제 저녁이 마지막 밤이었는데 두분이 잘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오늘 싱가폴로 돌아가려니까 웬지 아쉽내요..." 그녀의 얼굴에서 쓸쓸한 표정이 지나갔다.

 

"그 어제 저녁에 내린 장대비가 인연을 만들어 준 것 같습니다....한국에 오시면 꼭 먼저 연락을 주십시오...제가 시간을 내서 한국의 명소를 안내하겠습니다...한국은 꽤 역사가 오래된 나라거든요..." 내가 좀 정중한 투로 말했다.

 

 

서로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우리는 방으로 돌아왔다. 전날 밤의 즐겁던 모습들이 다시 생각났다. 그녀의 정이 뚝뚝 묻어나는 눈길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어둠속에서 청초하게 빛나던 위수린의 모습이 자꾸 떠올라 나는 순간 당황스러웠다.

 

방에 들어오자 친구는 담배를 깊게 들여 마시면서 무엇인가 깊은 생각을 하는 모양이다.

 

 

 

 

" 야! 먼 생각을 그리 깊이 하냐?"

 

" 마연서도 꽤 이쁜 얼굴이지? 성격도 괜찮은 것 같고?"

 

"응, 그녀도 괜찮은 여자 같더라...왜?...위수린이는 어떻하고..."

 

"자식...몰라서 묻냐?? 속 아프게...위수린이는 니 얼굴만 쳐다보는데...내가 대쉬해서 되겠냐??"

 

" 아냐...임마...나 위수린이 한테 관심 없어...." 웬지 친구에게 죄를 짓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 아냐....사랑이라는 것은 일방적이면 결국 파토나게 돼있어.....내가 한국에서 쓰라린 경험했자나...." 친구는 예전에 헤어진 동기생각을 하는 모양이다.

 

 

친구는 주말을 빌어 푸켓에 왔으므로 일요일이라 방콕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그 친구는 공항 대합실에서 내가 단정하듯이 말했다.

 

 

"내년에 위수린이 한국 간다고 할 때 나도 한국 간다....그리고 마연서랑 같이 오라고 할께...너 위수린이 붙잡아...괜찮은 친구같다.... 나는 마연서로 방향을 돌리기로 했다....나 방콕에서 마연서한테 전화할거다.....위수린이는 니가 책임을 지든지...잊어버리든지 해..."

 

 

피서지에 오면 누구나 마음이 열리기 마련이다. 그것은 일상의 생활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진 상황 때문이며, 그러한 상황이 되면 인간은 누구나가 이성의 저 밑에 꾹꾹 눌러있는 감성을 꺼내기 마련이다. 피서지에서 그 감성은 무럭 무럭 연기처럼 피어나 인간을 지배하게 되고  특별한 인연을 만든다.

 

우리는 1년의 일상생활을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1년중에 단 몇일 있었던 휴가의 기억은 두고 두고 가슴에 새기어서 다 달아 없어질 때까지 꺼내보곤 한다. 그녀들과의 특별한 기억은 이 친구와 내가 오랫동안 친한 친구가된 계기가 되었다.

 

 

 

 

" 내 친구 지금 갔어.....머하냐?...미안하다...너무 늦게 전화해서...."

 

" 나 화났어....너무 오래 기다리니까....나가기 싫내.....갑자기....모든게 귀찮아져..."

 

" 왜그래? 미안해....친구 지금 막 갔어...여기 공항이니까...파통까지 한시간 반이면 갈꺼야...."

 

" 나 아직도 보고 싶은 거쥐??"

 

" 아이 그럼...얼마나 보고 싶었는데..." 그렇게 말하면서 한편으로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어릴적에 어떤 사람이 쓴 글이 생각났다. 그는 거기서 완전한 사랑을 위해서는 두 사람이 사회에서 완전 격리되어야 한다고 썼다. 직장도 다니지말고, 가족도 만나지 말고, 음식도 먹지말고 오로지 두 사람만을 위한 사랑만을 하여야  그것이 완전한 사랑이란다. 그의 절규에 가까운 처절한 외침은 일면 이해가 가는 측면은 있었지만 그러나 용인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한 생각을 받아들이기에 나는 다소 현실적인 사람이었다.

 

   

 

그녀는 기다림으로 찌들은 얼굴을 하고 나타났다. 위수린이 아름다운 사람이라면 푸이는 귀여운 여인이다.  남자들은 아름다운 사람보다는 귀여운 여인에 더욱 끌린다. 그것은 리차드기어와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영화 "귀여운 여인"이 남자들의 가슴에 깊이 남아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오늘은 머할까?" 다소 서먹하게 내가 말했다.

 

나를 빤히 쳐다보던 그녀가 말했다.

 

" 나 그냥 돌아갈까봐....."

 

"왜??"

 

"먼가 좀 바뀐 것 가토.....하루사이에 먼가 다른 분위기가 나는 것 가토...."

 

"야아는 머가 바뀌어......그냥 그대로구만....술이 좀 덜 깨서 글치...." 그렇게 대답하면서 나는 가슴이 좀 짜르르 아픈 구석이 있었다.

 

"아니야....바람결에 풍기는 그대의 향기도 어제의 향기가 아니고....햇빛에 반짝이는 얼굴도 어제의 얼굴이 아니야....봐봐 반짝이는 눈 빛도 사라졌지....흐미해졌어..." 그녀는 어느 책의 대사를 외듯이 그렇게 말하였다.

 

" 다시 한번 봐봐....눈 반짝이지???" 나는 우스광스러운 표정을 만들면서 눈을 크게 떳다...

 

"하하하하.....괴물같내......그 얼굴은 진짜다...."

 

"저녁 먹으러 갈까?"

 

" 머 먹으러 갈건데??? 우리 그 호텔 옆에 레스토랑에 갈까? 반타이 호텔 옆의 레스토랑...."

 

"아니야...거기 가지말자...거기 맛 없데....." 나는 어제 위수린이와 같이 저녁 식사를 한 그 레스토랑에는 가기가 싫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가서는 안될 것 같았다.

 

"거기 괜찮은데........"그녀가 아쉬운 듯이 말했다.

 

 

 

어느 새 위수린의 모습은 내게서 사라졌다. 그녀의 반짝이는 눈 빛도 청초한 얼굴도 더 이상 떠오르지 않았다. 우리는 시내에서 식사를 하고 쇼핑을 하러 갔다. 그녀는 아직도 학생시절의 앳된 모습이 간간이 남아 있었다. 가끔씩 익살스럽게 웃는 입사이로 드러나는 가지런한 이빨도 그런 느낌을 내게 주었다. 문득 그녀도 젓니를 다 갈고 어른이 된 걸까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우리 그 때처럼 맥주 사가지고 해변에 나갈까?"

 

"그래....난 그 때,  맥주 사가지고 해변에서 한없이 걸으면서 마시던 그 때가 너무 생각나더라"

 

 

 

우리는 편의점에서 하이네켄을 사가지고 아직도 사람들이 붐비는 해변으로 나갔다. 그날 온더락에서 처럼 그렇게 어둡지는 않았고 사람들도 많았지만 밀려와 부서지는 파도소리는 언제나 나의 기분을 날아갈 듯이 유쾌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백사장을 한없이 걸었다. 돌아갈 자리를 생각할 필요도 없었고 그럴 이유도 없었다. 우리는 그 이전에 우리가 어디에 살았었고 무엇을 했던 사람들인가를 까맣게 잊어버렸다. 단지 깜깜한 어둠속에 점점 사라져가는 우리들의 색깔이 좋았으며, 너무나 넓고 진한 어둠의 색깔에 동화되었고 그 위에 무수히 반짝이는 별들이 좋았다. 파도를 밝으며 걸을 때마다 밀려와서는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와 그 부서진 파도속에 드러나는 여인의 하얀속살같은  바다의 속살이 좋았다.

 

 

우리는 그 때처럼 파도를 밟으며 끝없이 걸었고 걷다가는 주저앉아 맥주를 마셨다. 별 이야기를 했으며 끝없는 바다의 끝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였다. 우리는 우리의 이야기들을 끝없는 모래사장에 뿌리고 지나갔지만 우리의 이야기는 모래알의 수보다도 더욱 많았다. 우리는 훨씬 이전부터, 어쩌면 지구의 역사가 생긴이래로 거기 바닷가에 살았던 사람들 같았고, 그리고 그 이후에도 지구의 마지막날까지 그 백사장에 그대로 남아 있을 듯한 사람들 같았다. 그렇게 푸켓의 밤은 깊어갔으며 우리의 사랑도 깊어만 갔다.   
12 Comments
summer 2004.06.07 15:09  
  잘 읽었습니다
qing 2004.06.07 19:55  
  사진 좀 올려 보시면 좋겠어요. 푸이, 위수린, 마연서 3명이요.

아마 모두 궁금해 하시지 않을까요. ^^ 
summer 2004.06.08 07:36  
  사진이 있으면 이글의 마지막에 올려주세요. 그래야 읽는 즐거움이 더할듯 하네요
트라이크 2004.06.08 08:46  
  사진을....올려도 될까요?? 마지막에 위수린과 마연서 사진만.......올릴 예정입니다...
나니 2004.06.08 11:18  
  올려 주시면 감사...궁금하네요..물론 님의 푸이는...혼자 간직 하시고...^^
트라이크 2004.06.08 11:30  
  그런데......................
qing 2004.06.08 13:34  
  그런데 라니요?
트라이크 2004.06.08 14:17  
  하하...다음에 말씀드리겠습니다.....
qing 2004.06.08 17:22  
  넵 꼭이요. ^ ^
racing 2004.06.10 02:24  
  글이 무지 재미있네요..
빨리 다음 편 올려주세요///
몬테크리스토 2004.06.14 13:10  
  글을 읽다보면 아름다운 바람둥이 같으세요...ㅋㅋㅋ
그래서 쩜 부럽네여..^^
트라이크 2004.06.14 21:41  
  하하...바람둥이...저도 바람둥이가 부럽습니다...그립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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