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켓에서의 추억 -10- 영원한 이별
나는 또 다시 푸켓행 비행기 안에서 뭉실 뭉실 떠다니는 구름을 보고 있다. 세월은 많이 흘렀다.
세월은 많이 흘렀다. 암울했던 97년 겨울에서 98년 가을까지의 시기는 나에게 인생을 새로운 각도에서 보도록 만들었던 시간이었다. 지나칠리만치 낙관주의자였던 나에게 비관론적 관점을 깨우치게 만든 시절이었다. 이상은 사라졌으며 현실은 냉혹하였다. 사랑이라는 감성은 냉혹한 현실앞에서는 단지 사치한 악세사리같아 보였다.
98년도 가을에 증시는 다시 살아나기 시작하였다. 나의 모든 재산이 사라졌지만 증권회사에는 어느정도의 자금이 있었으며 증시가 회복되자 그 자금은 빠르게 회복되었다. 나는 주식시장에 집중하였다. 시장은 급등추세에 있었으며 나는 빠른 시간안에 잃어버린 재산을 찾는 유일한 방법이 주식시장밖에 없다는 것을 확신하였고, 하루의 24시간을 주식을 생각하며 지냈다.
생존이라는 동물적 본능밖에 남아 있지 않던 그 시절에 주식시장은 의외로 나에게 큰 수익을 안겨주었다. 99년 봄이 끝나가는 5월에 나는 잃어버린 재산의 거의 절반을 회복하였다. 그리고 푸이에게서 결혼한다는 씁씁한 연락이 왔다. 나는 더욱 더 주식시장에 몰입하였다. 그 시절 나에게 모든 것을 잊어버릴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주식시장이었다.
그 해 여름에 뜻하지 않은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위수린이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여전히 한국에 근무하고 있었으며 지난 여름에는 한국이 불안하여 오지 못하였다고 했다. 그녀는 전보다 더 아름다워진 것 같았다. 나는 그녀를 통하여 홍콩계 펀드의 이사로 있던 그녀의 아버지를 소개 받았으며, 그녀의 아버지로 부터 주식과 파생에 관한 여러가지를 배우게 되었다.
그 다음해, 밀레니엄 초기에 태국 친구 종하는 마연서와 결혼하였다. 나는 위수린의 아버지와 친하게 되었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그 해 가을에 위수린과 결혼을 하였다. 세월은 끊임없이 흐른다. 세월은 일개인의 희노애락과는 상관없이 속절없이 흘러갔다.
세월은 빠르게 흐른다. 인간의 희노애락을 묻으면서 지우면서 세월은 빠르게 흐른다. 위수린과 새로운 출발을 한지 4년이 흘렀다. 나는 어느 여름날 아침에 푸켓이라는 도시가 너무나 그리웠다. 무엇이 나를 그날 아침에 문득 푸켓을 가야겠다는 생각을 불러 일으켰는지는 알 수 없다. 불현듯 푸켓이라는 도시가 생각났고 가지않고는 도저히 견딜수 없는 그 무엇에 시달렸다. 8년전에 회사를 그만두고 문득 푸켓을 가야겠다는 충동과 비슷한 것이었다. 한번 그러한 충동이 들자 나는 도저히 그 충동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나는 결국 푸켓행 비행기를 타고 말았다.
무슨 생각에서 나는 다시 푸켓을 찾는 것일까? 무엇을 확인하고 싶은 것인가? 푸켓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도 나는 계속 갈등을 하였다. 그녀를 다시 본다면 나는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아니 그녀를 다시 보아야만 하는 것인가? 나는 무엇을 아파하러 푸켓에 가는 것일까?
푸이에게 나라는 존재는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을까? 여러가지 질문에 대한 나의 답변은 간단명료하였다. 푸켓에 가야만 하고, 그리고 그녀를 보고 싶다.
" 여전히 그대로이내"
"그쪽도 그러내요" 그녀는 해맑게 씩 웃었다.
" 나 원망 많이 하지 않았어?"
" 우리 그런 얘기 이제 하지 말아요." 그녀가 내말을 가로막듯이 말했다.
" 행복하지?"
"네...."
" 푸이는 행복하게 잘 살거야. 현명하고 맑은 여자니까..."
"사업은 잘 되세요? 얼굴이 보기 좋으내요..."
" 응, 사업이야 머....예전보다 훨씬 좋아졌지....좀 들쑥 날쑥 하지만...."
" 누구랑 결혼했어요?"
"응, 누구?? 여자랑 결혼했지.."
" 푸하하하...이 장난꾸러기..여전하군요..나이가 들어도 그 순진한 소년티는 없어지지가 않내요...하하" 그녀는 재미나다는 듯이 웃었다.
"남편은 머하는 사람이야?"
"응...그냥 남자예요...좋은 사람...당신처럼...."
"하하..내가 좋은 사람인가? 나쁜 사람이지....사랑하는 여자 울리는 남자지"
"그딴 얘기하지 말아요...." 그녀의 표정이 일순 일그러졌다가 다시 돌아왔다.
"내가 바보같은 여자죠...머...바람둥이 남자를 목매고 기다렸으니...크크"
" 나..바람둥이 아닌데......"
" 한 여자의 가슴에 못을 꽉 박았으니까 그게 바람둥이지 머...딴게 바람둥인가?"
" 아직도 못이 콱 박혀 있어???"
" 에그...욕심도....이미 오래전에 다 뽑아서 바닷가에 버렸어요..."
"난 잘 안 뽑히던데...어떻게 뽑았어??"
"거짓말하지 말아요...거짓말쟁이....거짓말하니까 얼굴색 바뀌내....그 딴 얘기하지말고 우리 술이나 한잔하러 가요...나 술 먹은지 오래되서 술먹고 싶다....."
우리는 해변으로 나왔다. 언제나 해변은 그 때 그 모습대로 파도를 찰싹이며 우리를 맞이했다.
"그런데 술먹고 들어가도 괜찮아??"
"괜찮죠 그럼...당신 온다고 신랑한테 자랑했는데.....술먹고 어쩜 안들어갈지도 모른다고 협박했죠.....하하하하"
"머? 이 아가씨가 정말 큰 일 나겠내???"
" 머가 큰일나요? 우리 신랑한테 당신 얘기 하도 여러번해서 잘 알아요..."
" 머 내 얘기를 했어??"
" 그럼요...어떤 바보같은 남자를 무지하게 사랑했는데...그 남자랑 뽀뽀도 못해봤다고....그런데 뽀뽀도 안했는데...그것도 사랑인가?? 그냥 친군가??"
"정말 그 때 우리 너무했지?? 왜 뽀뽀도 안해봤을까?? "
"그거야..당신이 바보 멍충이니까 그렇지....하하하"
그녀 앞에 있으면 언제나 즐겁다. 그녀의 말을 듣는 것도 표정을 보는 것도 즐겁다. 내가 푸켓을 사랑하는 것은 푸이 때문인가? 아니면 너무나 아름다운 자연 때문인가? 둘다일것이다. 푸켓에 오면 세상 모든 것을 잊어버려서 좋다. 단지 잠시의 공간 이동이 있었을 뿐인데 서울의 복잡한 주가움직임과 뉴스는 이미 내 머리속에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우리는 그 때처럼 또 해변에 주저앉아 맥주를 마셨다. 세월은 많이 흘러갔지만 나나 푸이나 전혀 변한 것은 없다. 단지 둘 다 가정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과 예전보다는 좀 더 시간이 없다는 것뿐이다. 세월은 인간을 점점 더 구속한다. 그것은 사회적 압박과 교육이 인간을 그렇게 만들어 가는 것일 것이다. 자유를 끝없이 추구하면서도 상대방을 구속하고 스스로를 구속한다. 그것이 인간의 비극이다. 강아지는 그것이 없어 행복하다.
"그런데 왜 왔어요" 오래전에 들어본 말 같다.
"푸이가 보고 싶어서 왔지"
"거짓말....." 먼가 그녀가 다음 말을 하려다가 그만 두었다.
"나는 왜 문득 문득 푸이가 보고 싶은지 몰라...."
"거짓말....나는 절대 안보고 싶은데...." 그녀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이제는 다시는 안보고 싶어할라고 해...."나는 짐짓 심각한듯 말했다. 정말 다시는 그녀를 보고 싶어하지 말아야 할 것 같다.
"가끔씩 전화도 좀 하세요...우린 친구자나요....가끔씩은 궁금하기도해요.......무지하게 아주 가끔씩인데 하하.....이 남자는 지금 서울에서 머하고 살까 하는 생각이 들곤해요...여자들은 미련이 없다든데 난 좀 미련이 남아 있나봐요...." 일순 그녀의 표정에 그늘이 스쳐 지나갔다.
"그래...어차피 인생이라는 것은 한번 사라지면 그만인데...너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안하고 사는 것도 행복한 인생은 아닌 것 같애..."
" 참..나 따져야 하는데....나도 바보 멍충이야..."
" 멀 따져야 돼??"
" 당신한테 채였으니까...따져야 하는데...나도 바보야..." 아스라하게 과거의 아픈 기억이 생각났다.
" 다 지난 이야기지 머....그 때 그 시절...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데...그 시절에는 왜 그렇게 세상을 어려워했을까? 모든 것을 다 버리고 태국으로 올 수도 있었을텐데..."
" 그게 당신의 운명인가 봐요...그리고 당신과 나의 운명이고....운명의 여신이 질투를 한거죠 머...."
"운명의 여신???"
" 미녀 사냥꾼을 죽게한 전갈처럼.....그녀를 질투한 신처럼...아마 운명의 신이 당신과 나의 사랑을 질투했을거예요"
그녀가 하늘을 쳐다 보았다. 하늘에는 예전처럼 별들이 쏱아져 내리고 있었다. 우리는 아무 말없이 그렇게 밤하늘을 한참동안이나 쳐다 보았다. 별이 너무 아름다웠다.
어둠속에서 나타나는 그녀의 얼굴에 가끔 그늘이 스치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녀를 처음 보았던 대학생 시절과 변한 것은 없었다. 세월은 흐르고 결혼이라는 특별하게 새로운 관습에 들어갔지만 그녀나 나나 변한 것은 없었다. 여전히 푸켓 해변에 몰려오는 파도처럼..여전히 푸켓 해변을 뜨겁게 달구는 햇살처럼 우리는 변한 것이 없었다.
변한 것이라고는 파도가 바위에 상처를 내듯이 그렇게 우리의 얼굴에 상처를 낸 세월의 변화밖에 없었다....우리는 한참동안이나 지나간 과거를 즐겁게 이야기하며 해변의 밤을 즐겼다. 그리고 헤어졌다. 그녀와 헤어져 방으로 돌아오자 불현듯 그녀가 보고 싶어졌다.
세월은 흘렀고 아린상처를 가슴에 묻어둘 나이는 이미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머리카락이 얼굴에 부딪히는 찰랑거리는 소리는 여전히 나의 귓전의 어느 한구석에서 오래 오래 남아 가끔씩 나를 아프게 한다. 아직도 남아있을 해변에 흩어진 우리의 발자욱과 함께......
세월은 많이 흘렀다. 암울했던 97년 겨울에서 98년 가을까지의 시기는 나에게 인생을 새로운 각도에서 보도록 만들었던 시간이었다. 지나칠리만치 낙관주의자였던 나에게 비관론적 관점을 깨우치게 만든 시절이었다. 이상은 사라졌으며 현실은 냉혹하였다. 사랑이라는 감성은 냉혹한 현실앞에서는 단지 사치한 악세사리같아 보였다.
98년도 가을에 증시는 다시 살아나기 시작하였다. 나의 모든 재산이 사라졌지만 증권회사에는 어느정도의 자금이 있었으며 증시가 회복되자 그 자금은 빠르게 회복되었다. 나는 주식시장에 집중하였다. 시장은 급등추세에 있었으며 나는 빠른 시간안에 잃어버린 재산을 찾는 유일한 방법이 주식시장밖에 없다는 것을 확신하였고, 하루의 24시간을 주식을 생각하며 지냈다.
생존이라는 동물적 본능밖에 남아 있지 않던 그 시절에 주식시장은 의외로 나에게 큰 수익을 안겨주었다. 99년 봄이 끝나가는 5월에 나는 잃어버린 재산의 거의 절반을 회복하였다. 그리고 푸이에게서 결혼한다는 씁씁한 연락이 왔다. 나는 더욱 더 주식시장에 몰입하였다. 그 시절 나에게 모든 것을 잊어버릴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주식시장이었다.
그 해 여름에 뜻하지 않은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위수린이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여전히 한국에 근무하고 있었으며 지난 여름에는 한국이 불안하여 오지 못하였다고 했다. 그녀는 전보다 더 아름다워진 것 같았다. 나는 그녀를 통하여 홍콩계 펀드의 이사로 있던 그녀의 아버지를 소개 받았으며, 그녀의 아버지로 부터 주식과 파생에 관한 여러가지를 배우게 되었다.
그 다음해, 밀레니엄 초기에 태국 친구 종하는 마연서와 결혼하였다. 나는 위수린의 아버지와 친하게 되었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그 해 가을에 위수린과 결혼을 하였다. 세월은 끊임없이 흐른다. 세월은 일개인의 희노애락과는 상관없이 속절없이 흘러갔다.
세월은 빠르게 흐른다. 인간의 희노애락을 묻으면서 지우면서 세월은 빠르게 흐른다. 위수린과 새로운 출발을 한지 4년이 흘렀다. 나는 어느 여름날 아침에 푸켓이라는 도시가 너무나 그리웠다. 무엇이 나를 그날 아침에 문득 푸켓을 가야겠다는 생각을 불러 일으켰는지는 알 수 없다. 불현듯 푸켓이라는 도시가 생각났고 가지않고는 도저히 견딜수 없는 그 무엇에 시달렸다. 8년전에 회사를 그만두고 문득 푸켓을 가야겠다는 충동과 비슷한 것이었다. 한번 그러한 충동이 들자 나는 도저히 그 충동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나는 결국 푸켓행 비행기를 타고 말았다.
무슨 생각에서 나는 다시 푸켓을 찾는 것일까? 무엇을 확인하고 싶은 것인가? 푸켓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도 나는 계속 갈등을 하였다. 그녀를 다시 본다면 나는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아니 그녀를 다시 보아야만 하는 것인가? 나는 무엇을 아파하러 푸켓에 가는 것일까?
푸이에게 나라는 존재는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을까? 여러가지 질문에 대한 나의 답변은 간단명료하였다. 푸켓에 가야만 하고, 그리고 그녀를 보고 싶다.
" 여전히 그대로이내"
"그쪽도 그러내요" 그녀는 해맑게 씩 웃었다.
" 나 원망 많이 하지 않았어?"
" 우리 그런 얘기 이제 하지 말아요." 그녀가 내말을 가로막듯이 말했다.
" 행복하지?"
"네...."
" 푸이는 행복하게 잘 살거야. 현명하고 맑은 여자니까..."
"사업은 잘 되세요? 얼굴이 보기 좋으내요..."
" 응, 사업이야 머....예전보다 훨씬 좋아졌지....좀 들쑥 날쑥 하지만...."
" 누구랑 결혼했어요?"
"응, 누구?? 여자랑 결혼했지.."
" 푸하하하...이 장난꾸러기..여전하군요..나이가 들어도 그 순진한 소년티는 없어지지가 않내요...하하" 그녀는 재미나다는 듯이 웃었다.
"남편은 머하는 사람이야?"
"응...그냥 남자예요...좋은 사람...당신처럼...."
"하하..내가 좋은 사람인가? 나쁜 사람이지....사랑하는 여자 울리는 남자지"
"그딴 얘기하지 말아요...." 그녀의 표정이 일순 일그러졌다가 다시 돌아왔다.
"내가 바보같은 여자죠...머...바람둥이 남자를 목매고 기다렸으니...크크"
" 나..바람둥이 아닌데......"
" 한 여자의 가슴에 못을 꽉 박았으니까 그게 바람둥이지 머...딴게 바람둥인가?"
" 아직도 못이 콱 박혀 있어???"
" 에그...욕심도....이미 오래전에 다 뽑아서 바닷가에 버렸어요..."
"난 잘 안 뽑히던데...어떻게 뽑았어??"
"거짓말하지 말아요...거짓말쟁이....거짓말하니까 얼굴색 바뀌내....그 딴 얘기하지말고 우리 술이나 한잔하러 가요...나 술 먹은지 오래되서 술먹고 싶다....."
우리는 해변으로 나왔다. 언제나 해변은 그 때 그 모습대로 파도를 찰싹이며 우리를 맞이했다.
"그런데 술먹고 들어가도 괜찮아??"
"괜찮죠 그럼...당신 온다고 신랑한테 자랑했는데.....술먹고 어쩜 안들어갈지도 모른다고 협박했죠.....하하하하"
"머? 이 아가씨가 정말 큰 일 나겠내???"
" 머가 큰일나요? 우리 신랑한테 당신 얘기 하도 여러번해서 잘 알아요..."
" 머 내 얘기를 했어??"
" 그럼요...어떤 바보같은 남자를 무지하게 사랑했는데...그 남자랑 뽀뽀도 못해봤다고....그런데 뽀뽀도 안했는데...그것도 사랑인가?? 그냥 친군가??"
"정말 그 때 우리 너무했지?? 왜 뽀뽀도 안해봤을까?? "
"그거야..당신이 바보 멍충이니까 그렇지....하하하"
그녀 앞에 있으면 언제나 즐겁다. 그녀의 말을 듣는 것도 표정을 보는 것도 즐겁다. 내가 푸켓을 사랑하는 것은 푸이 때문인가? 아니면 너무나 아름다운 자연 때문인가? 둘다일것이다. 푸켓에 오면 세상 모든 것을 잊어버려서 좋다. 단지 잠시의 공간 이동이 있었을 뿐인데 서울의 복잡한 주가움직임과 뉴스는 이미 내 머리속에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우리는 그 때처럼 또 해변에 주저앉아 맥주를 마셨다. 세월은 많이 흘러갔지만 나나 푸이나 전혀 변한 것은 없다. 단지 둘 다 가정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과 예전보다는 좀 더 시간이 없다는 것뿐이다. 세월은 인간을 점점 더 구속한다. 그것은 사회적 압박과 교육이 인간을 그렇게 만들어 가는 것일 것이다. 자유를 끝없이 추구하면서도 상대방을 구속하고 스스로를 구속한다. 그것이 인간의 비극이다. 강아지는 그것이 없어 행복하다.
"그런데 왜 왔어요" 오래전에 들어본 말 같다.
"푸이가 보고 싶어서 왔지"
"거짓말....." 먼가 그녀가 다음 말을 하려다가 그만 두었다.
"나는 왜 문득 문득 푸이가 보고 싶은지 몰라...."
"거짓말....나는 절대 안보고 싶은데...." 그녀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이제는 다시는 안보고 싶어할라고 해...."나는 짐짓 심각한듯 말했다. 정말 다시는 그녀를 보고 싶어하지 말아야 할 것 같다.
"가끔씩 전화도 좀 하세요...우린 친구자나요....가끔씩은 궁금하기도해요.......무지하게 아주 가끔씩인데 하하.....이 남자는 지금 서울에서 머하고 살까 하는 생각이 들곤해요...여자들은 미련이 없다든데 난 좀 미련이 남아 있나봐요...." 일순 그녀의 표정에 그늘이 스쳐 지나갔다.
"그래...어차피 인생이라는 것은 한번 사라지면 그만인데...너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안하고 사는 것도 행복한 인생은 아닌 것 같애..."
" 참..나 따져야 하는데....나도 바보 멍충이야..."
" 멀 따져야 돼??"
" 당신한테 채였으니까...따져야 하는데...나도 바보야..." 아스라하게 과거의 아픈 기억이 생각났다.
" 다 지난 이야기지 머....그 때 그 시절...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데...그 시절에는 왜 그렇게 세상을 어려워했을까? 모든 것을 다 버리고 태국으로 올 수도 있었을텐데..."
" 그게 당신의 운명인가 봐요...그리고 당신과 나의 운명이고....운명의 여신이 질투를 한거죠 머...."
"운명의 여신???"
" 미녀 사냥꾼을 죽게한 전갈처럼.....그녀를 질투한 신처럼...아마 운명의 신이 당신과 나의 사랑을 질투했을거예요"
그녀가 하늘을 쳐다 보았다. 하늘에는 예전처럼 별들이 쏱아져 내리고 있었다. 우리는 아무 말없이 그렇게 밤하늘을 한참동안이나 쳐다 보았다. 별이 너무 아름다웠다.
어둠속에서 나타나는 그녀의 얼굴에 가끔 그늘이 스치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녀를 처음 보았던 대학생 시절과 변한 것은 없었다. 세월은 흐르고 결혼이라는 특별하게 새로운 관습에 들어갔지만 그녀나 나나 변한 것은 없었다. 여전히 푸켓 해변에 몰려오는 파도처럼..여전히 푸켓 해변을 뜨겁게 달구는 햇살처럼 우리는 변한 것이 없었다.
변한 것이라고는 파도가 바위에 상처를 내듯이 그렇게 우리의 얼굴에 상처를 낸 세월의 변화밖에 없었다....우리는 한참동안이나 지나간 과거를 즐겁게 이야기하며 해변의 밤을 즐겼다. 그리고 헤어졌다. 그녀와 헤어져 방으로 돌아오자 불현듯 그녀가 보고 싶어졌다.
세월은 흘렀고 아린상처를 가슴에 묻어둘 나이는 이미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머리카락이 얼굴에 부딪히는 찰랑거리는 소리는 여전히 나의 귓전의 어느 한구석에서 오래 오래 남아 가끔씩 나를 아프게 한다. 아직도 남아있을 해변에 흩어진 우리의 발자욱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