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켓에서의 추억 - 8 - 사랑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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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켓에서의 추억 - 8 - 사랑 4

트라이크 9 1393
다음날은 새벽같이 일어났다. 푸이가 푸켓에서 가장 좋은 곳에 간다고 자신있게 말한 투어에 나서기로 한 날이었다. 피피라는 곳인데 푸켓에서 동쪽에 있는 섬이다.  배를 타고 한참을 가야 한단다.

 

사실 푸켓에 몇일 머물렀지만 투어는 특별한 것이 없었다. 패키지 여행을 왔다면 여러가지 다양한 관광을 하였겠지만 나는 단체로 몰려다니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억지로 끌려다니는 기분이 들었고 여행이라는 것은 가벼운 마음으로 즐겁게 쉬는 것인데 의무감에서 시간에 맞추어 다니는 것이 싫었다. 쉬러 왔는데  또 다시 먼가의 스케쥴에 맞추는 것은 오히려 스트레스가 쌓이는 일이다.

 

 오리발과 물안경을 하고 바다속을 들여다 보는 스노클링이 제일 기억에 남았다. 산호바다이고 물속이 그리 깊지 않아서 먹이를 뿌리면 열대어들이 손에 잡힐듯이 몰려왔다. 나는  햇살이 비쳐들어 훤히 들여다 보이는 바닷속 풍경에 매료되었다. 산호숲과 그 사이를 오가는 열대어들, 그리고 망망대해에 떠있는 자유로움들. 

 

나는 수영이 익숙하지 않아 구명조끼를 착용했으므로 잠수를 할 수는 없었다. 푸이는 섬소녀답게 수영을 잘했다. 그녀는 익숙하게 잠수하여 산호숲 바닥까지 내려갔다가는 올라왔다.  수영복을 입고 바다속을 오가는 그녀의 모습은 그 어떤 열대어보다도 아름다운 모습이었으며 일면 육감적인 느낌도 들었다.

 

 그녀는 상자처럼 물위에 떠 있는 나에게 다가와서는 발을 잡아당기기도 하였고 조개껍질을 쥐어주기도 하였다. 그녀가 장난을 칠 때마다 가끔씩 짠물을 먹었는데 동해안보다 훨씬 농도 짙은 짠물이었다.

 

피피섬은 푸켓만은 못하였지만 관광지로 잘 가꾸어진 섬이었다.  기암절벽과 에머랄드빛 바다, 먹고 싶은 정도로 곱고 흰 산호해변, 수영하기에 적합한 잔잔한 파도, 야자수 정글과 그 사이의 방갈로들. 흔히 영화에서 보는 남태평양의 파라다이스를 연상케하는 풍경들이었다.

 

 

 

 

" 이 섬 너무 멋있다" 멋진 밀짚모자를 쓴 푸이를 보며 내가 말했다.

 

" 응, 멋있지?? 정말 멋있어... 여기 어디선가에서 영화도 찍었다고 하든데...디까프리오 알아?  그 잘생긴 남자 말이야...그 남자가 여기서 영화를 찍어서 이 섬이 더 유명해졌다고 하더라....."

 

"아쉽다...하루보고 그냥 가기엔 너무 아깝다....우리도 영화같은 장면 하나 만들어야 하는데... "

 

" 크...여기 온 사람들은 다들  돌아가기를 싫어한데...경치가 너무 아름다워서....5일정도는 머물러야  피피섬의 진수를 다 구경할 수 있다고들 해..."

 

"그래.... 그럴 것 같다....떠나기가 싫으내....하루밤 자고 갔으면 좋겠다...." 내가 말했다.

 

" 그래?  그럼 하루 밤 자고 와라......"

 

" 그럴래?? 우리 하루 밤 자고 갈까??"

 

" 응?  머??  우리?? 나랑같이 있자구??  이 남자 끈적 끈적한 구석이 있내.......좀 엉큼한 구석도  있는 것 같구......" 그녀가 묘한 웃음을 입가에 띄우며 말했다.

 

"크크...왜 안되냐??"

 

"안 될거야 없지...방 두개를 빌릴려면 좀 아까워서 그렇지..그리고 지금 방 예약이 가능한지도 모르고.....그냥 포기해.....글쿠.....그 눈가에 비치는 이상한 생각도 좀 지우고... 눈이 벌써 좀 이상하자나...웃는 모습도 다르고....얼굴에 다 비친다...비쳐....거기는 항상 소년과 같은 웃음이 포인트인데... 이상한 잡 생각하면 얼굴이 벌써 달라져....크크"

 

"머가 달라지냐?? 내 얼굴이 내 얼굴이지......" 

 

 

 

 

정오를 갓지난 뜨거운 태양이 파삭 파삭한 모래밭에, 흰칠하게 시원한 야자수 잎에, 그리고 그녀의 잘 익은 어깨선에 내리비치고 있었다. 나는 현란한 남태평양의 풍치에 취해가고 있었다.  희디 흰 백사장 위에서 야자수를 배경으로 하여 밀짚모자를 쓰고  씩 웃는 그녀의 사진 한 컷은 남국의 진수 그것이었다.   

 

 

섭섭하게 돌아오는 길에 그녀는 피곤한지 내 어께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 15인승 버스에서 우리는 처음으로 둘만의 작은 공간을 가졌다.  그것은 공간의 차단으로 인해 더욱 가까워진 듯한 둘이었다. 어둑 어둑할 쯤에 파통에 돌아왔다.

 

 

 

"오늘은 일찍 들어가...피곤할텐데.... "

 

"아냐, 안 피곤해...."

 

"거진말...피곤해 보이는데....근데.....언제갈거야??"

 

"어디를??"

 

"한국에 말이야...언제 갈 건데?"

 

"언제 갈까?"

 

"내일 가..."

 

" 머 내일??"  수박쥬스가 바삭하는 소리를 냈다.

 

"어차피 갈거자나..그니까.. 내일 가....오래 있으면 있을수록 착한 여자 마음만 멍들자나....어차피 가면 또 연락 안할거자나..."

 

" 왜 연락을 안해? 이제 매일 전화해야지..."

 

"피...거진말......"그녀의 모습이 귀엽다.

 

"정말 한국에 전화 한번 해야겠다.  퇴사하기 전에 벌려 논 사업같은 것이 있는데...후배 놈이 목 빼고 기다리겠다...."

 

" 먼 사업인데??"

 

" 먼 사업?? 응.....그런게 있어....사업해야지...회사에서 나왔으니까....몇가지 조사중인데...캄보디아 투자건도 있고...이것 저것 구상 단계야...."

 

"캄보디아?? 캄보디아에 머하게??  기왕이면 태국에다가 하지....왜 캄보디아야?? 거기는 태국보다 훨씬 어려운 나라인데..."

 

"응....좀 못사는 나라에서 될만한 사업이야.....농지 개간해서 작물을 심는건데....가능성은 있어 보여...태국은 좀 인건비가 비싸자나...."

 

" 나 이번에도 가서 연락안하고 그러면 한국에 거기 찾으러 간다....히히"

 

"하하..그래 찾으러 와...그러면 나야 좋지....크크"

 

 

 

식사를 하고 일찍 룸으로 돌아왔다. 피곤하기도 했지만 후배한테 전화를 한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배님, 어떻게 된 겁니까? 아 이거 천하태평이시내..이 후배는 선배님만 믿고 잘 다니던 회사 그만둔건데...이러시면 저 열받습니다...."후배가 반갑다는 표정으로 너스레를 떨었다.

 

" 머 좀 되가는 거냐??"

 

" 아 그럼 일사천리죠....캄보디아 건은 여기서 투자하겠다는 사람들이 꽤 있내요....개간만 잘 되면 판로는 확보되어 있으니까....관심을 많이 보이내요.....양쪽 관청에서도 호의적이구.."

 

" 그래? 정말이냐? 잘 되어 간다니까...좋으내..."

 

"좋긴 머가 좋아요? 형님이 있어야 먼 결정을 내리죠...정말 너무 하십니다.....푸켓이 무지 좋은 모양입니다??"

 

"응? 여기? 좋지....좋아.....천국이지..."

 

"아..형님 지금 약 올리시는 겁니까? 전 지금 땀 빨빨 흘리면서 돌아다니고 있는데.....언제 오실겁니까?"

 

" 언제??  글쎄 언제갈까??"

 

"내일이라도 당장 오세요...아니 오셔야 합니다....그래야 일이 진척이 돼죠....여기 사람들도 형님이 어디갔냐고...다들 찾고 난립니다...."

 

"그래...빨리 갈께...비행기표 나오는데로 바로 갈께..."

 

 

 

 

"어제 한국에 전화했는데....벌려 놓은 사업이 내가 없어서 난리인가 봐" 아침 댓바람에 내가 전화를 했다.

 

"그래? 잘돼가는 모양이지?"

 

"응..후배 이야기로는 썩 괜찮은 반응인가봐...나보고 빨리 안 온다고 난리내..."

 

" 그래?....언제 갈건데...." 그녀의 목소리가 금방 가라앉았다....

 

"글쎄...언제 갈까?"

 

"오늘 가.....당장 가.....나 이제 거기 만나기 싫어졌어..."

 

 

 

 

그녀는 마치 헤어지러 나온 사람처럼 표정이 어두웠다. 그녀의 어두운 표정을 보니 나도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 하늘에는 구름이 낀 듯 어두웠다. 그 많던 별들은 전부 어디로 간 것일까?

 

저녁을 먹고 산책을 나섰다. 날씨가 흐려서인지 해변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우울한 기분을 알아채렸는지 파도소리마저 험상굿다. 뜨겁던 산호해변은 어느새 식어버려서 남국의 냄새를 더 이상 풍기지 않았다.

 

 

 

"비가 올 것 같으내..." 그녀가 하늘을 보며 말했다.

 

"비가 올 것 같애?"

 

"응...한줄기 쏟아질 것 같은데??"

 

"이크 우산도 없어서 꼼짝없이 쫄딱 맞게 생겼내..."

 

" 머...비 좀 맞지.....머...." 그녀가 체념하듯이 말했다.

 

 

 

말이 끝나자마자 후두둑 몇줄기 내리더니 곧 장대비로 바뀌었다. 그녀는 태연하게 비를 맞았다. 그녀의 긴 머리카락이 얼굴에 붙어 물기를 뚝뚝 떨구었다.

 

 

 

"괜찮아?"

 

"응 시원하다.. 그렇지 않아도 거기 간다고 해서 마음이 착찹했는데...비 맞으니까 한결 마음이 개운해지내..."

 

" 너 비 맞는 모습보니까....어릴 때 읽은 글 생각이 난다"

 

"먼데??"

 

" 교과서 국어책에 나온 이야기인데....우리나라 과수원에는 원두막이라는게 있걸랑....비도 피하고....잠도 한숨자고 머 그러는 곳이야.....그런데 어느 날 장대비가 오는 날에 원두막에서 참외를 깍아 먹고 있는데....그 장대비속에 홀연히 어느 여승이 걸어오는 거야......그래서 그 여승에게 잠시 비를 피하라고 했는데...그 여승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운거야.....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나누고는 헤어졌는데.....그 여승의 모습이 너무 선명하게 이사람의 뇌리에 남은거쥐....."

 

"그래서??"

 

"그래서...다음에 그 여승을 수소문해서 찾아갔었는데.....그 여승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 아픈 사연이 있었던 거쥐....."

 

"결국 헤어지는 이야기구나??"

 

"응....그렇게 되나??"

 

 

 

 

그녀가 갑자기 뒤로 돌아섰다......

 

"어 왜그래??" 걱정하듯이 내가 물었다.

 

"헤어지는거쥐? 다시는 안 올거쥐?"  그녀는 털푸덕  주저 앉아 울기 시작했다.

 

" 나 한국에 가지 말까? 가지말라면 안 갈께..."

 

"어떻게 안 가?"  그녀는 빗물과 눈물이 범벅이 되어 울먹였다. 그녀는 그렇게 앉아서 한참동안이나 흐느꼈다. 우렁차게 내리는 장대비는 하늘과 땅과 그 사이에 있는 두 사람을 비 그 자체로 만들었다. 그 장대비에서는 어느 것 하나 비가 아닌 것은 없었다.

 

 

 

 

"비 그쳤나봐?"

 

그녀가 해맑은 웃음을 보였다. 마치 비가 그치고 반짝이는 태양처럼 울음을 그친  그녀의 미소는 해맑아 보였다.

 

" 나 이제 안 울거야...이제 다 울었어....거기 갈 때도 안울거야...오늘 다 울었어...."

 

 

 

 

공항에 나오지 않겠다던 그녀는 선물을 가지고 나타났다. 웃으면서 한참을 재잘거리던 그녀는 출발 시간이 다가오자 가끔씩 뒤로 돌아서서 한참 있곤 하였다. 자신의  마지막 모습이 우는 얼굴이 되어 남겨지는 것이 싫어서라고 하였다. 그리고 내가 떠나면서 손흔드는 모습이 나의 마지막 모습이 되는 것이 싫다면서 포옹을 하고는 먼저 돌아서서 총총 사라져갔다. 

 

 

 
9 Comments
트라이크 2004.06.10 10:59  
  제가 타고있는 것이 트라이크입니다......트라이크 매니아거든요...크크크
귀여운몸 2004.06.10 11:36  
  아 이제 드디어 한국으로..위수린과 마수연의 사진은 언제쯤 볼 수 있을 지..
근데 궁금한 거는 푸이와의 대화는 영어로 하셨는 지,아님 태국어로?
상쾌한아침 2004.06.10 11:52  
  정말 멋지시군요. 한편의 감동적인 소설을 읽는 듯한 기분입니다.
봄길 2004.06.10 12:50  
  소설 아녜요....
소설이라도 참 내용이 좋아요. 깊기도 하고 편하기도 하고 그리고 재미있기도 하고.
엉, 그럼 최상이네. 소설가로 한 번 나가 보심이 어떨는지.
트라이크 2004.06.10 18:35  
  감사합니다..하하... 이거 과대망상 걸릴지도 몰겠내요....하하하.....함 참고로 하겠슴다....중학교 때 글 써보고 요즘 취미삼아 함 써보려고 하고 있습니다...다른 글들 쓰면 올려보겠슴다...
트라이크 2004.06.10 20:25  
  태국어로...영어로...너무 어려운 질문입니다....귀여운 몸님.......
summer 2004.06.10 20:54  
  이게 끝은 아니죠?
qing 2004.06.11 02:13  
  hm..
트라이크 2004.06.11 14:21  
  사진은 있는데....맘에 안 드실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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