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성★ 3. 카오산에서의 나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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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성★ 3. 카오산에서의 나날들

★혜성★ 12 1849
2004년 7월 24일

둘째날이 밝았다.

첫날 밤엔 긴장한 탓인지 한시간마다 잠에서 깼다.
5시가 되자 그냥 일어나버렸다.

혼자 멍하니 앉아 있다 8시반쯤 아픈 다리를 이끌고 밖으로 나갔다.
집에 전화를 했다.

"여보세요. 엄마"
“응, 잘 도착했제? 재밌나?”(제 고향이 부산입니다ㅎㅎ)
“당연하지. 너무 재밌어요.”
“그래~ 몸 조심하고 잘 놀다 온나~.”
“네~ 연락안오면 잘 있는줄 알고 걱정하지 마세요~”

겨우 밝은 목소리로 짧은 통화를 마쳤다.
떠나기 전에도 걱정 엄청 하셨는데 정말 더 이상 걱정을 끼쳐드리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도저히 사실대로 말씀드릴 순 없었다.
그리고 사실대로 말씀드린다면 당장 한국으로 돌아오라고 하실게 분명하기 때문에 더더욱 숨길 수 밖에 없었다. (우리 어머니랑 아시는 분 입단속 잘 하시길, 아직도 모르십니다;;)
통화를 끝내고 착찹한 마음으로 숙소에 돌아오는 길에 약국에 들러 연고도 하나사고 마실물도 사서 들어왔다.

갑자기 혼자 남겨진 기분에 누군가가 그리웠다.
럭키하우스 체크아웃을 하고 어떻게 해야할지 카오산을 방황하고 있을 때 어떤 한국분이 보였다.
그분께 용기를 내서 말을 걸었다.
“저기 한국분이시죠?”
“네.”
“어디 찾으세요?”(그 분이 두리번 거리는 것처럼 보였거든요;;)
“아 친구를 만나기로 했거든요.”
“네.. ”
“어디 찾으시는데요?”

사실,, 내가 찾는 곳은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머릿속에 홍익인간(한국인 게스트하우스)이 떠올랐다.
그래 한국인들 만나러 가는거야!!

“어... 홍익인간이요.”
“그러세요? 따라오세요.”

난 무작정 그 분을 따라갔다.
홍익인간에 도착해보니 온통 한국사람에 한글이었다.
아.. 반가워라.

여행 떠나기 전에는 절대 한국인 게스트하우스에 가지 않으려고 다짐했었다.
외국에 나가서는 한국과 다른 무언가를 느끼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발도 다치고 힘도 빠지고 이 와중에 그리운건 역시 고국이었다.

아저씨께 방이 있냐고 여쭤보니 다행히 하나가 있다고 하셨다.
잠시 휴식을 취하곤 럭키하우스에 짐을 찾으러 갔다.

다시 짐을 메고 돌아오는 길은 너무 힘들었다.
사실 오전에 카오산 방황을 조금 심하게 했는지 발도 더욱 아파오고 배낭은 너무 무거웠다.
날씨는 너무 더워서 땀은 비오듯 흘렀다.

내가 정말 여기서 뭐하자고 이런 고생을 하고 있는거야.........

가기 전에 말렸던 수많은 사람들이 떠오르며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밀려왔다.
하지만 곧 이성을 찾고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이렇게 돌아갈 순 없지!
그러면 난 앞으로 어떤 여행도 제대로 할 수 없을거야.

너무 더운 날씨에 먹은것도 없어서 현기증이 났지만 이를 악물고 홍익인간으로 향했다.


그렇게 홍익인간에 도착해 체크인을 하고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다.

그렇게 몇시간이 지나자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니 태국에 도착한 후 한번도 밥을 먹지 않았다.
어제는 정신이 없어서 못먹고 오늘은 힘빠져서 못먹고;;

혼자 여행하는데 체력이라도 챙겨야지 하는 생각에 밥 한끼 먹기 위해 다시 밖으로 나갔다.



입맛은 없었지만 억지로 볶음밥을 먹고 다시 홍익인간으로 돌아오는 길에 무에타이 도장을 지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무에타이 도장의 훈련생 중 한명으로 보이는 청년이 발은 괜찮냐며 말을 건다.
난 괜찮다며 그냥 가려는 순간 갑자기 옆에 청년들까지 거들며 나의 발에 관심을 보인다.
난 타이 청년들 조심하라는 말을 너무 많이 들어서 경계를 늦추지 않으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너 아까부터 발 붕대감고 여기 계속 왔다갔다 거리는거 봤어. 왜 다친거야?”
“어제 뚝뚝 사고 났어.”
다들 너무 놀라며 괜찮나며 아우성댄다.

난 “좀 아프긴한데 어제보단 괜찮아.”

이렇게 시작된 그들과의 대화.
생각보다 순박하고 괜찮은 녀셕들이었다.
한국에 한번 가봤는데 너무 아름답고 좋은 나라라며 또 가고 싶다는 둥, 어디를 여행 했냐는등의 이야기를 할때는 분위기 괜찮았는데 점차 분위기가 이상느끼해진다.

청년들 중 영어도 제일 잘하고 내 옆에 앉았던 녀석이 갑자기 내 손목을 잡으며
“내일 혹시 시간있어?”
난 당황하며 손을 잡아뺐다.
“왜?”
“나 무에타이 경기하는데 보러와.”

“글쎄.. 언제하는데?.”
“내일 오후에.”(몇시라고 말해줬는데 까먹었어요;;)
 “어.... 미안한데 사실 내일 나 다른데 갈 것 같아;;”
“어디?”
“응... 깐짜나부리.”
“그래?.. 몇시에 가는데?”
“아침에”
 “그럼, 어쩔 수 없지, 깐짜나부리 갔다오면 꼭 놀러와.”
“그래.. 나 이만 가봐야겠다, 친구랑 약속이있어서, 안녕”

그렇게 황급히 거기를 벗어나 홍익인간으로 돌아왔다.
생각해보면 나쁜 뜻이 있어서 그런건 아닌데 내가 좀 오버한 듯 하기도 하다.
그래도 그땐 여행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고 사고로 인해 너무 예민해져 있던 때라 조금만 이상한 낌새가 보이면 겁부터 났었기 때문에 그렇게 했던 것 같다.
어쨌든 그 다음날부터 그 애들 마주치는게 영 껄끄러워 아픈 발을 이끌고 동대문 길로 돌아서 다녀야만했다;;


둘째날부터 27일까지 그러니까 5일동안 다친 발 때문에 주로 카오산에만 있었다.
홍익인간 아주머니께서 알려주신 병원에도 갔다오고 좋은 언니들을 만난 덕택에 여기저기 방콕 구경도 하긴 했지만 주로 카오산에 처박혀 있었던 덕에 카오산 지리는 아주 통달하게 되었다.

그 기간동안은 아픈 발 때문에 천천히 걸을 수밖에 없게 되면서 이 전에 보지 못했던 많은 새로운 것들을 보게 되었다.
그러면서 그동안 내가 주위의 것들 바라볼 틈도 없이 바쁘게만, 그저 앞만 보며 달려왔다는 사실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면서 놓쳐버린 것들이 얼마나 많을까
이렇게 조금 천천히 걸으면 볼 수 있는게 얼마나 많은데..

며칠동안은 먼 곳까지 나가지를 못했기 때문에 카오산의 노천카페에 몇 시간이고 앉아서(눈치가 좀 보였지만;;) 카오산 로드를 멍하니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곤 했다.
남들이 보기에는 여행와서 무슨 시간낭비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그 시간들이 나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여행자들의 모습 속에서 이전에 알지 못했던 내 모습을 보게 되었고, 그 모습들을 통해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에 대한 깊은 생각까지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시간들이 있었기에 이후의 시간들이 더욱 알차고 재미있게 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수많은 생각을 글로 옮기기엔 제 글 실력이 딸려서;; 독백은 여기까지로 줄이구요~
다음 글부터는 진짜 여행이 이어집니다. 기대해 주세용.

12 Comments
★혜성★ 2004.07.26 10:23  
  너무 길어서 죄송해요;; 쓰다보니;;
날다.. 2004.07.26 10:44  
  아뇨 잼있는데...기대 만땅하고 있습니다...^^
음식도 2004.07.26 11:23  
  오래씹어야 제맛을 알듯이 ...
발 다친것이 님을 다시돌아볼수 있는 기회가 돤듯....
정봉 2004.07.26 12:50  
  재밌네요~~그 이스라엘 남자는 언제 또 등장하나~~^^
♡무소유♡ 2004.07.26 15:36  
  증말루 용감하시네요.. 저같음 으앙ㅇㅇㅇ울러버리고 
한국으로 돌아왔을 텐데... 혜성님께 박수를 (짝짝짝)
★혜성★ 2004.07.26 16:44  
  용감하긴요;; 제가 얼마나 어리버리한지 저랑 여행 같이 하셨던 분들은 다 아실거예요 ㅋ 그리구 이스라엘 친구는 조만간 등장할거예요ㅎㅎ 다들 재밌게 읽어주시니 너무 감사해요
이히~♬ 2004.07.26 18:11  
  저도 사실 이스라엘 친구가 궁금하다는...ㅋㅋ 그나저나 다치신 발은 다 나았는지요..!!
띵땡똥 2004.07.27 05:14  
  근데 영어 잘하시나바여;
태국형미녀ㅋ 2004.07.28 11:13  
  정말 여행이 힘들수록 재미 있잖아요,. 정말 제가 태국 갔을때는 한국대학생들 때문에 민망했는데 .. 온갖소란은 다피워서..ㅋㅋ
권민경 2004.07.28 15:57  
  님 여행기 재미있어요^^ 발 다치신건 괜찮으신가요??
★혜성★ 2004.07.29 15:18  
  지금은 걷는건 아무 지장없는데 그냥 조금 불편해서 침맞으러 다니고 있어요.생각보다 오래가네요~ 좀있음 낫겠죠.
아유타와 2004.08.01 22:47  
  우히히히.. [어쨌든 그 다음날부터 그 애들 마주치는게 영 껄끄러워 아픈 발을 이끌고 동대문 길로 돌아서 다녀야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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