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평양냉면(in 씨엠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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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평양냉면(in 씨엠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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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면을 좋아한다. 고향이 부산이라 [부산밀면]이 맛있다며 부산 음식 자랑에 열을 올린 적은 있다. 하지만 고향 부산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부산밀면]보다는 냉면이 맛있는 건 어쩔 수 없다.

부산에 유명한 냉면집이 있다. 한국전쟁 당시 1.4후퇴때 눈오는 흥남부두에서 떠나온 분이 부산까지 내려와 남포동에 자리잡은 [원산면옥]. 이집은 평양식 물냉면 보다는 함흥식 비빔냉면이 맛있다. 비빔냉면의 메밀 사리 맛은 정말 일품이다. 여름엔 줄을 서서 먹어야했다. 그런데 할머니가 은퇴를 하시자 냉면 맛이 예전 같지 않아졌다. 그래서 지방유력언론 [부산일보]에서 할머니 돌아오시라고 난리치는 부산 시민들의 뜻을 받들어 기사까지 냈다. 돌아오시라고. 그래서인지 다시 돌아오셨고 직접 요리는 안하시더라도 감독은 하셨고 맛이 돌아왔다. 하지만 시간이 더 흘렀고 이제는 할머니가 계시지 않는다고 들었다.

서울에도 냉면집이 많다. 그중 내가 자주 가는 곳은 을지로의 [우래옥]이다. 여기는 물냉면집이다. 첨 이집 냉면을 먹는 이들은 대부분 실망한다. 맛이 수수하기 때문이다. 화려한 고명과 진한 육수, 자극적인 양념장 이런 것과는 인연이 없는 냉면이다. 면발도 툭툭 쉽게 끊어진다. 하지만 몇번 먹다보면 담백하고 시원한 우래옥 특유의 냉면 맛을 느낄 수 있다. 짧은 내 생각에는 남도의 진하고 화려한 음식맛이 북으로 갈수록 점점 정갈하고 담백해지는 것 같다. 남도의 김치는 빨갛고 진하지만 북으로 갈수록 그 색깔과 맛이 점점 연해지는 것처럼.

앙코르왓으로 여행을 가기로 했다. 앙코르왓을 본다는 기대도 컸지만 [평양냉면]에 갈 수 있다는 기쁨도 무지 컸다. 낙화유수님의 여행기를 보면서 그리고 다른 여행자들의 글을 보면서 [평양냉면]은 나의 여행목표가 되었다. 좋아하는 냉면을 먹을 수 있다는 기대와 더불어 북쪽 사람을 만난다는 설레임, 특히나 젊고 곱디고운 북녀를 볼 수 있다는 그런. 내게 캄보디아 앙코르왓 여행은 여행 그자체, 캄보디아의 앙코르왓 유적, 냉면, 북쪽 사람, 아름다운 북녀가 기다리는 여행이었다.

새벽 3시 30분 모칫에서 아란행 첫차를 타고 앙코왓으로 출발, 점심 때 씨엠리업에 도착했다. 나의 선동으로 일행 5명이 모두 평양냉면으로 직행. 평양냉면을 주문했다.

저기서 내가 주문한 냉면이 오는 것이 보인다. 황색 빛깔의 쇠로 만든 대접에 고명이 고봉으로 얹어져 있다. 육수 색깔은 짙고 양념장 색깔은 새빨갛다. 국물엔 깨가 뿌려져 있다. 모두 일제히 디카를 꺼내 사진을 찍는다. 접대원 언니의 표정이 무심, 남쪽 여행자들은 요즘 다 이러니깐 별다른 모습도 아닐 거다. 플레시 터뜨리는 것으로 고수레를 마치고 드뎌 먹기 시작. 우선 고명과 양념장을 풀기전 국물부터 한모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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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먹고 상을 치우러 온 언니에게 따지듯 물었다.
"평양 옥류관 냉면보다 여기가 맛이 없죠"
머뭇하다 대답한다
"네..."
"왜 맛이 없어요?"
"물맛이 다름다. 냉면은 물맛인데 평양에 비해 여기 캄보디아는 물이...."
"그래도 옥류관은 담백한 맛이라던데여"
"네. 저희도 그랬었는데 여기는 주로 이남분들이 오시기때문에 입맛에 맞추어드리다보니"

슬펐다.
묘향산 기슭의 고운 산골 소녀를 데려다 탱크탑에 미니스커트를 입혀 사람들앞에 내놓은 것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양냉면]의 냉면에는 화학 조미료는 없는 것 같았다. 면발도 남쪽식의 질긴 면발이 아닌 툭툭 쉽게 끊어지며 메밀 특유의 향과 감칠맛이 느껴졌다. 하지만 육수는 진한데다 깨를 뿌려 담백한 맛이 전혀 없었다. 면위에 고명을 높게 쌓아 외견상은 화려해 보이나 실제 먹으면 육수와 면, 지단, 편육 등이 함께 어우러지지 않았다. 평양의 담백한 맛도 남쪽의 자극적이고 시원한 맛도 아닌 어정쩡한 맛이 되어버렸다. 함께 먹었던 다른 분들도 모두 맛이 없다라고 했다.

왠지 [평양냉면]의 냉면이 처연해보였다. 굶주림, 탈북, 핵위기 등등 북한이 처한 어려운 상황이랑 오버랩되었기 때문인지 화려한 외양의 냉면이 처연한 슬픔을 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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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평양냉면]의 냉면 말고는 모두 맛있습니다. 특히 김치된장찌게(3불)는 강춥니다. 국물맛이 끝내줍니다. 아마 서울에서 김치된장찌게를 판다면 바로 떼돈 벌 수 있을 겁니다. 같이 간 모든 분이 강추. 그리고 녹두전, 감자전, 보신탕, 비빔밥 등등도 맛있습니다. 북쪽 음식 특유의 담백한 맛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밑반찬으로 나오는 백김치도 맛있습니다. 다만 냉면만 --.
11 Comments
entendu 2004.09.09 19:08  
  이론... 제가 갔을때만 해도 북한음식점이 없었는데..흑흑.. 개인적으로 앙코르 왓이나 톰보다 아란에서 처음 대했던 캄보디아의 가난이 너무나 무서울 정도로 처연했었던 기억이.. 참. 각설하고 냉면 좋아하시면 오장동 냉면골목 추천합니다. 저희 아버님도 황해도 해주 분이신데 다른곳 냉면은 본척 안하셔도 오장동 냉면 제일로 치시던걸요. 추천해요.
한마디 2004.09.09 21:22  
  "아름다운 북녀가 기다리는 여행".........[[열이펄펄]]
꽁님~ 명님 혼내줘여~~~!!!!!
한마디 2004.09.09 21:23  
  여행기 계속 올려 주세여~~
명님~~
낙화유수 2004.09.09 22:56  
  후후.....처음에는 맛이 맹맹한게 맛이 별로 없을수도 있지만 자꾸 먹다보면 또 감칠맛이 납니다.
그나저나 은하, 은주, 혜심이, 봄순양은 아직 그대로 있는지 꽤나 궁금하네요.
혹 이 낙화유수 안부는 물어보지 않던가요.......
2004.09.09 23:52  
  entendu님~
저도 오장동 냉면 좋아합니다. 비빔냉면은 오장동 냉면이 정말 맛있습니다.

낙화유수님~
혜심언니랑 새별언니는 잘있습니다. 그리고 호랑이 그림 사가신분 잘아냐고 물어볼래다가 참았습니다. 담에 가면 낙화유수님의 명성을 전해들어야겠습니다.

그럼~
스따꽁 2004.09.10 09:23  
  이쁘다는 말보다는 곱다는 말이 더 어울리는 북녀.. 저도 좋아합니다~ ^^
근데 나도 처연한 냉면 한번 먹어보고 싶어라....
2004.09.10 12:08  
  작년에 갔을땐..쟁반에 담아주던데..........
나니 2004.09.12 13:06  
  쟁반냉면이라...쟁반에 ^^...근데 전 좀 황당하던데요. 쟁반냉면하구 김치된장찌게 시켰더니..처음에 준 땅콩,튀김,샐러드...빼고 딱 냉면,찌게,밥...만 주더군요, 반찬 줄거라 생각 했다가.....[[고양눈물]]
샤론 2004.09.12 17:16  
  지단솜씨가 보통이 아니네요 엄청 얇은것이 ..
치앙마이 2004.09.14 15:09  
  고저~~~평야냉면은 평양에 가서 드시라요~~~
시엡리업 정말 맛 없이요~~~
소자 2004.09.16 18:04  
  그냥 북녀들이 하는곳이라 특이해서 간거죠..
정말 가격에 놀랐습니다.. -_- 너무 비싸죠..
맛도 걍 그렇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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