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다시 길을 떠나며
마흔이라는 나이가 까마득하게 느껴지던 적이 있다. 내게도 과연 그 나이가 닥쳐올 것인지 실감이 나지 않을 때가 있었다. 그 무렵 40대 나이의 사람들을 볼 때마다 세상을 다 산 자의 그늘 같은 게 느껴졌다. 그것은 내게 꿈의 나이였다.
그런데 어느덧 나도 마흔의 나이를 가볍게 넘어서고야 말았다. 정말 눈깜짝할 사이에 지나온 세월이었다. 마흔이 코 앞에 다가오면서, 그 나이를 의식하게 되면서부터, 마흔이 되면 뭔가 다른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하고 막연하게 생각하곤 했다. 인간의 평균 수명을 거칠게나마 여든 정도로 잡고, 내가 그 나이까지 산다고 넉넉하게 가정한다면, 딱 절반인 마흔의 나이는 일종의 터닝 포인트인 셈이다.
하지만 생각만 그럴 뿐, 하기 싫은 숙제를 마주한 아이처럼, 인생의 터닝 포인트에 대한 계획과 준비는 이 핑계 저 핑계로 자꾸 미루기만 했다. 그런데 이제는 더이상 그 숙제를 미룰 수가 없는 나이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이제 나의 숙제들을 하나씩 마무리해야 했다.
낯선 땅,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 어깨를 잡아 당기는 배낭, 마흔을 넘기면 이 모든 게 운명처럼 느껴진다.
첫번째 숙제: 완전한 자유인으로 살기. 몇 푼의 봉급에 얽매여 출퇴근시간을 지켜야 하는 삶은 과감히 때려 치우기. 요즘 유행하는 사오정, 오륙도를 들먹이지 않아도, 이제 그 어느 직장도 정년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더 늦기 전에 명퇴의 공포로부터 해방되어 진정한 노동의 자유와 즐거움을 느끼고 싶다.
두번째 숙제: 1년에 한 번씩, 한 달 정도는 여행을 하기. 우물 안 개구리로 사는 것만큼 비참한 운명은 없다.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씩은 내가 모르는 세상 저 너머의 공기를 호흡하고 싶다. 이것은 첫번째 숙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세번째 숙제: 지금까지 하던 일과는 전혀 다른 일을 하기. 나는 평생 한 가지 일, 그것도 한 직장에서 몸담다 은퇴한 사람을 보면 존경스럽다.(조롱이 아니다. 정말 존경스럽다. 나는 절대로 그렇게 못하니까.) 하지만 나는 그런 그릇이 못된다. 아마 타고난 방랑끼 덕분인 것 같다. 암튼 지난 20여 년 동안 해오던 일을 접고 전혀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싶은데, 그게 그리 쉽지는 않았다. 3가지 숙제 중 가장 어려운 게 바로 이것이었다. 결국 일은 바꾸지는 못했지만, 일하는 형태(월급쟁이에서 프리랜서로)는 바꾸는 것으로 스스로 와 타협을 보았다.
오랫동안 미루어 오던 몇 가지 숙제를 마치자마자 나는 새 출발을 자축하기 위한 기념여행을 떠날 여장을 꾸리기 시작했다.(갖은 구실을 붙여서 틈만 나면 여행을 떠나려는 건 나의 오랜 고질병이다.)
지난 7월 초에 태국 남부의 해변을 다녀왔으니, 2개월만에 다시 떠나는 여행이었지만, 그동안 몇 년의 세월이 지난 것처럼 멀게 여겨졌다. 출발 날짜는 9월 4일, 타이항공 방콕행 홍콩 경유편을 예약했다.
나는 타이항공으로 방콕을 갈 때마다 항상 홍콩 경유편을 이용한다. 요금이 직항보다 몇 만원 저렴하고, 기내식도 2번이나 주는데(직항은 한번 준다), 도착시간은 2시간밖에 늦지 않는다. 방콕에 2시간 일찍 도착한다고 해서 환영 꽃다발을 걸어주는 것도 아니므로 돈도 아끼고 밥도 2번이나 먹을 수 있는 홍콩 경유편은 금상첨화이다.
항상 항공권을 구입하던 T항공에 문의하니 좌석 확보가 어렵고 요금도 비싸다. 그동안 좌석 확보가 용이하고 요금도 저렴해서 T항공을 애용했었는데... 결국 태국 여행정보 전문 사이트 태사랑thailove.net에 올라 있는 여행사에서 항공권을 구입했다. 태사랑 게시판에는 이 여행사에 대한 불만의 글이 몇 개 올라와 있었지만, 결론적으로 나는 아무런 문제없이 여행을 마쳤다.
공항버스에 빈 자리가 없어서 엔진 위에 앉아서 가는 서양 여행자. 실내 백미러에 찍사의 모습까지 찍혔다.
예상 일정은 다음과 같았다.
9월 4일: 한국 출발-방콕 도착, 카오산 로드로 이동
5일: 카오산 로드 체류
6일: 방콕 출발-캄보디아 씨엠리업 도착
7일: 앙코르 유적 관광
8일: 앙코르 유적 관광
9일: 씨엠리업 출발-방콕 도착
10일: 밤 버스로 꼬 피피 행
11일: 꼬 피피 도착, 뷰 포인트 방문
12일: 스노클링 투어
13일: 꼬 피피 출발-꼬 잠 또는 꼬 란타 도착
14일: 꼬 잠 또는 꼬 란타 체류
15일: 꼬 잠 또는 꼬 란타 출발-밤 버스로 쑹아이꼴록 행
16일: 쑹아이꼴록 도착-말레이시아 쁘렌티안 섬 도착
17일: 쁘렌티안 섬 체류
18일: 쁘렌티안 섬 체류
19일: 쁘렌티안 섬 출발-코타바루 도착
20일: 코타바루 출발-정글열차로 이동하여 제란툿 도착
21일: 제란툿 출발-타만 네가라 도착
22일: 타만 네가라 정글 트레킹
23일: 타만 네가라 정글 트래킹
24일: 타만 네가라 출발-KL 도착
25일: KL 체류
26일: KL 출발-에어 아시아로 이동하여 방콕 도착, 방콕 출발-밤 비행기로 한국 행
27일: 한국 도착
몇 번이나 고친 끝에 확정한 일정이었지만, 현지에 가서 다시 변경이 되었다. 항상 여행 일정 짜는 게 가장 어렵다. 그리고 그 일정대로 여행하기란 더욱 어렵다. 첫 목적지만 정하고 바람처럼 구름처럼 아무런 제약없이 떠돌아 다닐 수 있는 날은 언제나 올까.
3주 남짓한 기간 동안 태국, 캄보디아, 말레이시아 3개국을 종횡무진하는 일정이어서, KL-방콕 구간은 최근 화제인 초저가항공 에어아시아를 이용하기로 했다. KL-방콕 구간을 육로로 이동하면 이틀 정도 걸리고 교통비만 5만원 정도 든다. 그런데 에어아시아는 2시간 정도만 걸리고 요금도 3만원 정도밖에 하지 않는다. 단, 저렴한 좌석은 한정이 되어 있으므로 이 요금의 좌석을 이용하려면 적어도 한달 전에는 항공권을 구입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에어아시아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중간에 일정이 변경되어서 방콕으로 일찍 갈 수도 있었는데, 항공권 스케쥴을 변경할 수 없어서(저렴한 항공권은 제약이 많다) KL에 4일이나 있었던 게 옥의 티였다. 그러한 사태를 방지하려면 KL-방콕이 아니라, 방콕-KL을 에어아시아로 이동하는 게 나았겠지만, 아무래도 여행 초반보다는 여행 막바지에 편안한 이동수단을 선택하는 게 좋은 것 같다.
방콕 돈무앙 공항. 이곳에 도착하면 고향에 돌아온 것처럼 포근함을 느낀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경비는 현금으로 미화 1,000불을 준비했다. 그동안의 여행에서는 주로 여행자수표를 이용하고 현금은 거의 이용 안 했었는데, 달러 현금이 편리한 캄보디아를 고려한 선택이었다.
27일 오후에 대구로 출발하는 열차표도 예매해두었다. 오전에 한국에 도착해서 옷만 갈아입은 후 영등포역으로 가야 한다.
여느때처럼 출발 전날에는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 불면의 증세는 여행 기간 내내 나를 괴롭힌 징크스였다. 선배 소설가 한 분이 인체에 무해한 수면제를 소개해주었지만, 미처 준비하지 못했다. 어쩔 수 없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아니, 활은 시위를 떠났다가 적절한 표현인가?
돈무앙 공항 제1청사 밖에 있는 공항버스 승차장.
그런데 어느덧 나도 마흔의 나이를 가볍게 넘어서고야 말았다. 정말 눈깜짝할 사이에 지나온 세월이었다. 마흔이 코 앞에 다가오면서, 그 나이를 의식하게 되면서부터, 마흔이 되면 뭔가 다른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하고 막연하게 생각하곤 했다. 인간의 평균 수명을 거칠게나마 여든 정도로 잡고, 내가 그 나이까지 산다고 넉넉하게 가정한다면, 딱 절반인 마흔의 나이는 일종의 터닝 포인트인 셈이다.
하지만 생각만 그럴 뿐, 하기 싫은 숙제를 마주한 아이처럼, 인생의 터닝 포인트에 대한 계획과 준비는 이 핑계 저 핑계로 자꾸 미루기만 했다. 그런데 이제는 더이상 그 숙제를 미룰 수가 없는 나이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이제 나의 숙제들을 하나씩 마무리해야 했다.
낯선 땅,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 어깨를 잡아 당기는 배낭, 마흔을 넘기면 이 모든 게 운명처럼 느껴진다.
첫번째 숙제: 완전한 자유인으로 살기. 몇 푼의 봉급에 얽매여 출퇴근시간을 지켜야 하는 삶은 과감히 때려 치우기. 요즘 유행하는 사오정, 오륙도를 들먹이지 않아도, 이제 그 어느 직장도 정년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더 늦기 전에 명퇴의 공포로부터 해방되어 진정한 노동의 자유와 즐거움을 느끼고 싶다.
두번째 숙제: 1년에 한 번씩, 한 달 정도는 여행을 하기. 우물 안 개구리로 사는 것만큼 비참한 운명은 없다.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씩은 내가 모르는 세상 저 너머의 공기를 호흡하고 싶다. 이것은 첫번째 숙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세번째 숙제: 지금까지 하던 일과는 전혀 다른 일을 하기. 나는 평생 한 가지 일, 그것도 한 직장에서 몸담다 은퇴한 사람을 보면 존경스럽다.(조롱이 아니다. 정말 존경스럽다. 나는 절대로 그렇게 못하니까.) 하지만 나는 그런 그릇이 못된다. 아마 타고난 방랑끼 덕분인 것 같다. 암튼 지난 20여 년 동안 해오던 일을 접고 전혀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싶은데, 그게 그리 쉽지는 않았다. 3가지 숙제 중 가장 어려운 게 바로 이것이었다. 결국 일은 바꾸지는 못했지만, 일하는 형태(월급쟁이에서 프리랜서로)는 바꾸는 것으로 스스로 와 타협을 보았다.
오랫동안 미루어 오던 몇 가지 숙제를 마치자마자 나는 새 출발을 자축하기 위한 기념여행을 떠날 여장을 꾸리기 시작했다.(갖은 구실을 붙여서 틈만 나면 여행을 떠나려는 건 나의 오랜 고질병이다.)
지난 7월 초에 태국 남부의 해변을 다녀왔으니, 2개월만에 다시 떠나는 여행이었지만, 그동안 몇 년의 세월이 지난 것처럼 멀게 여겨졌다. 출발 날짜는 9월 4일, 타이항공 방콕행 홍콩 경유편을 예약했다.
나는 타이항공으로 방콕을 갈 때마다 항상 홍콩 경유편을 이용한다. 요금이 직항보다 몇 만원 저렴하고, 기내식도 2번이나 주는데(직항은 한번 준다), 도착시간은 2시간밖에 늦지 않는다. 방콕에 2시간 일찍 도착한다고 해서 환영 꽃다발을 걸어주는 것도 아니므로 돈도 아끼고 밥도 2번이나 먹을 수 있는 홍콩 경유편은 금상첨화이다.
항상 항공권을 구입하던 T항공에 문의하니 좌석 확보가 어렵고 요금도 비싸다. 그동안 좌석 확보가 용이하고 요금도 저렴해서 T항공을 애용했었는데... 결국 태국 여행정보 전문 사이트 태사랑thailove.net에 올라 있는 여행사에서 항공권을 구입했다. 태사랑 게시판에는 이 여행사에 대한 불만의 글이 몇 개 올라와 있었지만, 결론적으로 나는 아무런 문제없이 여행을 마쳤다.
공항버스에 빈 자리가 없어서 엔진 위에 앉아서 가는 서양 여행자. 실내 백미러에 찍사의 모습까지 찍혔다.
예상 일정은 다음과 같았다.
9월 4일: 한국 출발-방콕 도착, 카오산 로드로 이동
5일: 카오산 로드 체류
6일: 방콕 출발-캄보디아 씨엠리업 도착
7일: 앙코르 유적 관광
8일: 앙코르 유적 관광
9일: 씨엠리업 출발-방콕 도착
10일: 밤 버스로 꼬 피피 행
11일: 꼬 피피 도착, 뷰 포인트 방문
12일: 스노클링 투어
13일: 꼬 피피 출발-꼬 잠 또는 꼬 란타 도착
14일: 꼬 잠 또는 꼬 란타 체류
15일: 꼬 잠 또는 꼬 란타 출발-밤 버스로 쑹아이꼴록 행
16일: 쑹아이꼴록 도착-말레이시아 쁘렌티안 섬 도착
17일: 쁘렌티안 섬 체류
18일: 쁘렌티안 섬 체류
19일: 쁘렌티안 섬 출발-코타바루 도착
20일: 코타바루 출발-정글열차로 이동하여 제란툿 도착
21일: 제란툿 출발-타만 네가라 도착
22일: 타만 네가라 정글 트레킹
23일: 타만 네가라 정글 트래킹
24일: 타만 네가라 출발-KL 도착
25일: KL 체류
26일: KL 출발-에어 아시아로 이동하여 방콕 도착, 방콕 출발-밤 비행기로 한국 행
27일: 한국 도착
몇 번이나 고친 끝에 확정한 일정이었지만, 현지에 가서 다시 변경이 되었다. 항상 여행 일정 짜는 게 가장 어렵다. 그리고 그 일정대로 여행하기란 더욱 어렵다. 첫 목적지만 정하고 바람처럼 구름처럼 아무런 제약없이 떠돌아 다닐 수 있는 날은 언제나 올까.
3주 남짓한 기간 동안 태국, 캄보디아, 말레이시아 3개국을 종횡무진하는 일정이어서, KL-방콕 구간은 최근 화제인 초저가항공 에어아시아를 이용하기로 했다. KL-방콕 구간을 육로로 이동하면 이틀 정도 걸리고 교통비만 5만원 정도 든다. 그런데 에어아시아는 2시간 정도만 걸리고 요금도 3만원 정도밖에 하지 않는다. 단, 저렴한 좌석은 한정이 되어 있으므로 이 요금의 좌석을 이용하려면 적어도 한달 전에는 항공권을 구입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에어아시아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중간에 일정이 변경되어서 방콕으로 일찍 갈 수도 있었는데, 항공권 스케쥴을 변경할 수 없어서(저렴한 항공권은 제약이 많다) KL에 4일이나 있었던 게 옥의 티였다. 그러한 사태를 방지하려면 KL-방콕이 아니라, 방콕-KL을 에어아시아로 이동하는 게 나았겠지만, 아무래도 여행 초반보다는 여행 막바지에 편안한 이동수단을 선택하는 게 좋은 것 같다.
방콕 돈무앙 공항. 이곳에 도착하면 고향에 돌아온 것처럼 포근함을 느낀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경비는 현금으로 미화 1,000불을 준비했다. 그동안의 여행에서는 주로 여행자수표를 이용하고 현금은 거의 이용 안 했었는데, 달러 현금이 편리한 캄보디아를 고려한 선택이었다.
27일 오후에 대구로 출발하는 열차표도 예매해두었다. 오전에 한국에 도착해서 옷만 갈아입은 후 영등포역으로 가야 한다.
여느때처럼 출발 전날에는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 불면의 증세는 여행 기간 내내 나를 괴롭힌 징크스였다. 선배 소설가 한 분이 인체에 무해한 수면제를 소개해주었지만, 미처 준비하지 못했다. 어쩔 수 없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아니, 활은 시위를 떠났다가 적절한 표현인가?
돈무앙 공항 제1청사 밖에 있는 공항버스 승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