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태국,캄보디아 배낭여행 18일- 서양 아가씨들과 잠을...
11. 10일째(1월 16일): 치앙마이 트레킹(몽족, 카렌족 방문, 서양 아가씨들과 함께 잠을...)
아침 치앙마이에 도착하니 아직 날이 어둡다. 도착하자마자 먼저 트레킹을 신청하여 떠나고 싶은데 어떤 뚝뚝 기사가 자기 집으로 안내를 해서 따라가 보았다. 우선 트레킹에 대해 물어보았다. 나는 되도록 긴 트레킹을 원했다. 된다면 5박 6일이라도 좋은데 그런 트레킹은 지금 없다고 한다. 길어야 2박 3일, 만약 내가 혼자 신청을 한다면 가이드가 안내를 해 준다고 하는데 12,000밧을 내라고 한다. 우리 돈으로 약 40만원 되는 돈이다. 너무 비싸다. 그래도 언젠가 꼭 도전해보고 싶다. 안되면 혼자라도 가보고 싶다.
그곳을 다시 나와 다른 여행사로 가 보니 아직 모두 문을 닫아 1시간이나 뒤인 8시에 문을 연다고 한다. 이곳 저곳 배낭을 메고 돌아다니니 엊저녁 시달린 데다가 어깨는 아프고 다리가 벌써 풀린다. 이래가지고 어떻게 산을 오르내리는 트레킹을 할 수 있을지, 걱정부터 앞선다. 그래도 오늘 아침에야 신청한 트레킹에 내가 참여할 수 있을까? 만약 안되면 오늘 하루는 공쳐야 하는데... 뭐 주변에 볼거리야 많겠지만 이곳에서는 트레킹만 하고 싶다. 다행이 문을 일찍 연 곳이 있어서 찾아가 보았더니 3day 2night로 오늘 가능하고 1500밧(46000원)을 내라고 한다. 이곳 사람들은 모두 단합을 했는지 트레킹에 관한 한 태국에서 나는 10밧도 값을 깎지 못했다. 이곳 고산족인 몽족과 카렌족 서너 곳을 방문하고 그들과 잠을 자고 코끼리 타기, 뗏목 타기 등을 하는 매력적인 트레킹이었다. 5박 6박은 할 수 없더라도 만족하며 신청을 했다.
배낭에 필요한 것만 남기고 나머지는 비닐 봉지에 넣어 짐을 좀 맡겼다. 근처 식당에 가서 아침을 먹고 조금 기다리니 뚝뚝이(개조한 삼륜차) 와서 나를 어디론가 싣고 간다. 거기엔 서양 여자 둘이 서성이고 있었다. 아마 트레킹이리라. 잠시 후 같이 참가할 다섯 명의 젊은이가 더 와 이번 트레킹은 모두 8명이 한 조가 되어 시장에서 장을 보아 물과 적당한 먹거리를 산 후 산으로 향했다.
두 서양 여자는 캐나다 처녀로 스물 둘, 셋쯤 되는 매력적으로 보이는 아가씨들이었다. 그리고 또 혼자 온 한 명의 캐나다 청년과, 호주에서 온 여대생, 미국에서 같이 온 두 청년과 한 아가씨. 차 안에서 간단히 자기 소개를 하는데 나이는 모두 21에서 23이었다. 나는 오버 40이라고 했다. 참 쑥스럽다. 젊은이들 틈에 끼어 그것도 대화도 매끄럽지 못한데 이들과 3일 같이 지내야 하니 저들에게 나는 얼마나 불편한 존재가 될까. 그렇더라도 차라리 되도록 저들과 같이 행동하고 호응을 잘 할 일이되 어긋나는 행동일랑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가까이서 서양여자는 첨 본다. 여행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스스럼없이 대해주고, 또 승낙해 주어서 한 팔 거의 다 문신한 캐나다 여자애의 팔과 푸른 눈을 뚜렷하게 바라보았다.
산길을 차로 꾸불거리는 길을 차로 2시간 여 올라갔을까. 산 중턱 마을에 우리를 내려 주었다. 몽족이라고 한다. 가옥의 모습은 지나치면서 보았던 농가와 별반 차이가 없어 보였다. 그러나 집 주변과 마을 골목에서 펼쳐지는 저들의 모습을 보고 나는 내가 마치 40여년 전 내가 살았던 그 정다운 고향을 다시 찾아 온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졌다. 구슬치기를 하는 마을 사람들, 주머니 던지기를 하는 처녀들, 마을 어귀에서 모닥불을 피워놓고 마을 사람 서넛이 앉아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한가로이 앉아 있는 모습, 꿀꿀거리면 집 뒤안에서 주둥이로 땅을 파고 있는 자그마한 검은 돼지들, 병아리를 데리고 다니는 어미닭과 노랗고 빨간 수탉들이 싸움질하는 장면들, 아 나는 잃어버린 그 무엇을 애타게 찾다 발견한 사람처럼 남모를 환희에 잠겨 동료들과 한참이나 멀리 떨어져버릴 때까지 그곳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질 못했다.
그들은 누구일까. 분명 먼 옛날 그들과 우리 선조들은 언젠가 같은 마을에서 살다 서로 어쩔 수 없는 이별을 하고 서로의 길을 떠나고 그 중 한쪽의 후손들은 나처럼, 그리고 저 젊은이들처럼 변해갔을 것이다. 그래서 한쪽 후손들은 나처럼 인터넷으로 하루를 지내고 비행기를 타고 다니며 이곳을 방문하는 최첨단 이기들과 함께 살고 있으며 어떤 이들은 수천 년 전부터 변함없는 그 원초적인 자연과의 삶을 아직도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다시 차를 타고 한참을 오르다 배낭을 내려 준다. 이제 본격적인 등산트레킹을 시작하는가 보다. 그리 가파르지 않은 산을 계속 오른다. 작은 폭포를 만나 세수를 하고 사진을 몇 장 찍은 후 산중의 다락 논을 지나고 우기에만 농사를 짓기 위해 사람들이 와서 사는 빈 집들을 지난다. 지금은 비어 있는 집에는 간단한 가재도구와 취사도구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호기심에 그들의 헛간 같은 곳을 문을 열고 들여다 보다 나는 깜짝 놀랐다. 장총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아니 이곳은 위험한 곳이라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혼자 다니다가 봉변을 당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겁이 덜컥 났다. 얼른 일행을 따라 한참 후엔 카렌족 마을에 도착했다. 여기는 몽족들이 사는 곳보다 더 깊은 산중이다. 여기가 하룻밤을 머물 곳이라 한다.
아까 몽족들 사는 곳과 비슷했지만 여기는 집이 몇 채 없고 사람들과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그대로 완벽한 자연과의 합일 그것이었다. 우리들 숙소는 그 집들 중에서 하나를 비워 우리 여덟 명이 잠을 자도록 했다. 저녁을 먹고 나 혼자 조용히 그들이 살고 있는 가정을 방문했다. 어두운 방안에 사람 기척은 보이는데 모두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한쪽에 밥을 하는 아궁이에 아직 붉은 불기운이 남아 그곳을 중심으로 서너 사람이 누워 담소를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내가 들어가도 그들은 누가 오는지 그들은 결코 경계하지 않았다. 말은 알아듣지 못해도 주인이 누구냐고 묻지 않고 어서 들어 오라는 말투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들의 집 벽은 대나무나 나무 판자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쉽게 밖으로 바람이 통하고 그 틈 사이로 밖을 내다볼 수도 있다. 바로 방 옆에서는 닭들이 꼬르륵 대는 소리가 들리고 고양이가 아무 소리 없이 들락거리는데, 조금 있으니 끔지막한 개가 안방으로 들어와 내 옆에 앉아 있다. 개도 사람도 고양이도 닭도 모두 하나가 되어 거리낌 없이 살아가는 그들의 삶은 너무나 아름답게 보였다.
밤하늘에 별들이 초롱거리고 멀리는 부엉이 울음소리 들리는데 그들은 밤늦도록 모닥불을 피워놓고 노래를 부르며 알아들을 수 없이 빠르게 흥겨운 이야기들을 서로 주고받았다. 맥주를 몇 잔 들이키기는 했지만 결코 그들은 술에 취하지 않았다. 나도 그들과 끝까지 시간을 같이하며 빠지지 않고 싶었다. 아리랑을 불러 주니 그렇게 신기한 듯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응 사랑노래야, 만일 헤어지면 너는 죽는다는 뜻이야.’ 모두들 웃었다.
잠자리로 돌아왔다. 방 하나에서 모두 잠을 자야 한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너무나 자연스럽게 맨, 우먼, 맨, 우먼을 반복하더니 정말로 여자 한 명, 남자 한 명 사이사이에 잠자리에 든다. 아니 저 녀석들이 처녀 총각이 사이사이에 누워 어쩌려고, 저런 무례한 놈들이.... 캄보디아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들은 나의 걱정을 비웃기하도 하듯이 자리에 누워 곧바로 잠으로 빠져드는 듯했다. 곧바로 깊은 숨소리가 들리고 밤하늘은 적막으로 잠기어 갔다. 그날 밤 청춘 남녀가 사이 사이 잠을 자고도 그들 사이엔 최소한 내가 알기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한편 그들이 놀랍기도 하고 그들이 부럽기도 했다. 내가 지난 시절에 지내왔던 청년기를 생각하며 우리 아이들은 과연 이런 경우가 있었다면 쉽게 잠이 들 수가 있을까? 서구의 아이들은 청소년 때부터 자연스레 남녀가 어울려 지내면서 격의 없이 자라고, 또 성인으로 접어들어서는 자신의 행동에 자신이 떳떳이 책임을 지는 그러한 우리 아이들보다 한 차원 높은 성숙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날 밤에 겪은 충격은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러면서 펀뜻 캄보디아에서 만났던 캐나다 녀석이 머리 속에 떠올랐다. 이틀 밤에 두 여자를 번갈아 가며 처음 만난 여자와 함께 잔 그 녀석도 어쩌면 저들과 같이 여행에 대해 인생에 대해 이야기하며 아무 일도 없이 자연스럽게 밤을 지샜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지배적으로 머리 속을 맴돌았다.
아침 치앙마이에 도착하니 아직 날이 어둡다. 도착하자마자 먼저 트레킹을 신청하여 떠나고 싶은데 어떤 뚝뚝 기사가 자기 집으로 안내를 해서 따라가 보았다. 우선 트레킹에 대해 물어보았다. 나는 되도록 긴 트레킹을 원했다. 된다면 5박 6일이라도 좋은데 그런 트레킹은 지금 없다고 한다. 길어야 2박 3일, 만약 내가 혼자 신청을 한다면 가이드가 안내를 해 준다고 하는데 12,000밧을 내라고 한다. 우리 돈으로 약 40만원 되는 돈이다. 너무 비싸다. 그래도 언젠가 꼭 도전해보고 싶다. 안되면 혼자라도 가보고 싶다.
그곳을 다시 나와 다른 여행사로 가 보니 아직 모두 문을 닫아 1시간이나 뒤인 8시에 문을 연다고 한다. 이곳 저곳 배낭을 메고 돌아다니니 엊저녁 시달린 데다가 어깨는 아프고 다리가 벌써 풀린다. 이래가지고 어떻게 산을 오르내리는 트레킹을 할 수 있을지, 걱정부터 앞선다. 그래도 오늘 아침에야 신청한 트레킹에 내가 참여할 수 있을까? 만약 안되면 오늘 하루는 공쳐야 하는데... 뭐 주변에 볼거리야 많겠지만 이곳에서는 트레킹만 하고 싶다. 다행이 문을 일찍 연 곳이 있어서 찾아가 보았더니 3day 2night로 오늘 가능하고 1500밧(46000원)을 내라고 한다. 이곳 사람들은 모두 단합을 했는지 트레킹에 관한 한 태국에서 나는 10밧도 값을 깎지 못했다. 이곳 고산족인 몽족과 카렌족 서너 곳을 방문하고 그들과 잠을 자고 코끼리 타기, 뗏목 타기 등을 하는 매력적인 트레킹이었다. 5박 6박은 할 수 없더라도 만족하며 신청을 했다.
배낭에 필요한 것만 남기고 나머지는 비닐 봉지에 넣어 짐을 좀 맡겼다. 근처 식당에 가서 아침을 먹고 조금 기다리니 뚝뚝이(개조한 삼륜차) 와서 나를 어디론가 싣고 간다. 거기엔 서양 여자 둘이 서성이고 있었다. 아마 트레킹이리라. 잠시 후 같이 참가할 다섯 명의 젊은이가 더 와 이번 트레킹은 모두 8명이 한 조가 되어 시장에서 장을 보아 물과 적당한 먹거리를 산 후 산으로 향했다.
두 서양 여자는 캐나다 처녀로 스물 둘, 셋쯤 되는 매력적으로 보이는 아가씨들이었다. 그리고 또 혼자 온 한 명의 캐나다 청년과, 호주에서 온 여대생, 미국에서 같이 온 두 청년과 한 아가씨. 차 안에서 간단히 자기 소개를 하는데 나이는 모두 21에서 23이었다. 나는 오버 40이라고 했다. 참 쑥스럽다. 젊은이들 틈에 끼어 그것도 대화도 매끄럽지 못한데 이들과 3일 같이 지내야 하니 저들에게 나는 얼마나 불편한 존재가 될까. 그렇더라도 차라리 되도록 저들과 같이 행동하고 호응을 잘 할 일이되 어긋나는 행동일랑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가까이서 서양여자는 첨 본다. 여행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스스럼없이 대해주고, 또 승낙해 주어서 한 팔 거의 다 문신한 캐나다 여자애의 팔과 푸른 눈을 뚜렷하게 바라보았다.
산길을 차로 꾸불거리는 길을 차로 2시간 여 올라갔을까. 산 중턱 마을에 우리를 내려 주었다. 몽족이라고 한다. 가옥의 모습은 지나치면서 보았던 농가와 별반 차이가 없어 보였다. 그러나 집 주변과 마을 골목에서 펼쳐지는 저들의 모습을 보고 나는 내가 마치 40여년 전 내가 살았던 그 정다운 고향을 다시 찾아 온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졌다. 구슬치기를 하는 마을 사람들, 주머니 던지기를 하는 처녀들, 마을 어귀에서 모닥불을 피워놓고 마을 사람 서넛이 앉아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한가로이 앉아 있는 모습, 꿀꿀거리면 집 뒤안에서 주둥이로 땅을 파고 있는 자그마한 검은 돼지들, 병아리를 데리고 다니는 어미닭과 노랗고 빨간 수탉들이 싸움질하는 장면들, 아 나는 잃어버린 그 무엇을 애타게 찾다 발견한 사람처럼 남모를 환희에 잠겨 동료들과 한참이나 멀리 떨어져버릴 때까지 그곳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질 못했다.
그들은 누구일까. 분명 먼 옛날 그들과 우리 선조들은 언젠가 같은 마을에서 살다 서로 어쩔 수 없는 이별을 하고 서로의 길을 떠나고 그 중 한쪽의 후손들은 나처럼, 그리고 저 젊은이들처럼 변해갔을 것이다. 그래서 한쪽 후손들은 나처럼 인터넷으로 하루를 지내고 비행기를 타고 다니며 이곳을 방문하는 최첨단 이기들과 함께 살고 있으며 어떤 이들은 수천 년 전부터 변함없는 그 원초적인 자연과의 삶을 아직도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다시 차를 타고 한참을 오르다 배낭을 내려 준다. 이제 본격적인 등산트레킹을 시작하는가 보다. 그리 가파르지 않은 산을 계속 오른다. 작은 폭포를 만나 세수를 하고 사진을 몇 장 찍은 후 산중의 다락 논을 지나고 우기에만 농사를 짓기 위해 사람들이 와서 사는 빈 집들을 지난다. 지금은 비어 있는 집에는 간단한 가재도구와 취사도구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호기심에 그들의 헛간 같은 곳을 문을 열고 들여다 보다 나는 깜짝 놀랐다. 장총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아니 이곳은 위험한 곳이라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혼자 다니다가 봉변을 당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겁이 덜컥 났다. 얼른 일행을 따라 한참 후엔 카렌족 마을에 도착했다. 여기는 몽족들이 사는 곳보다 더 깊은 산중이다. 여기가 하룻밤을 머물 곳이라 한다.
아까 몽족들 사는 곳과 비슷했지만 여기는 집이 몇 채 없고 사람들과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그대로 완벽한 자연과의 합일 그것이었다. 우리들 숙소는 그 집들 중에서 하나를 비워 우리 여덟 명이 잠을 자도록 했다. 저녁을 먹고 나 혼자 조용히 그들이 살고 있는 가정을 방문했다. 어두운 방안에 사람 기척은 보이는데 모두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한쪽에 밥을 하는 아궁이에 아직 붉은 불기운이 남아 그곳을 중심으로 서너 사람이 누워 담소를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내가 들어가도 그들은 누가 오는지 그들은 결코 경계하지 않았다. 말은 알아듣지 못해도 주인이 누구냐고 묻지 않고 어서 들어 오라는 말투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들의 집 벽은 대나무나 나무 판자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쉽게 밖으로 바람이 통하고 그 틈 사이로 밖을 내다볼 수도 있다. 바로 방 옆에서는 닭들이 꼬르륵 대는 소리가 들리고 고양이가 아무 소리 없이 들락거리는데, 조금 있으니 끔지막한 개가 안방으로 들어와 내 옆에 앉아 있다. 개도 사람도 고양이도 닭도 모두 하나가 되어 거리낌 없이 살아가는 그들의 삶은 너무나 아름답게 보였다.
밤하늘에 별들이 초롱거리고 멀리는 부엉이 울음소리 들리는데 그들은 밤늦도록 모닥불을 피워놓고 노래를 부르며 알아들을 수 없이 빠르게 흥겨운 이야기들을 서로 주고받았다. 맥주를 몇 잔 들이키기는 했지만 결코 그들은 술에 취하지 않았다. 나도 그들과 끝까지 시간을 같이하며 빠지지 않고 싶었다. 아리랑을 불러 주니 그렇게 신기한 듯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응 사랑노래야, 만일 헤어지면 너는 죽는다는 뜻이야.’ 모두들 웃었다.
잠자리로 돌아왔다. 방 하나에서 모두 잠을 자야 한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너무나 자연스럽게 맨, 우먼, 맨, 우먼을 반복하더니 정말로 여자 한 명, 남자 한 명 사이사이에 잠자리에 든다. 아니 저 녀석들이 처녀 총각이 사이사이에 누워 어쩌려고, 저런 무례한 놈들이.... 캄보디아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들은 나의 걱정을 비웃기하도 하듯이 자리에 누워 곧바로 잠으로 빠져드는 듯했다. 곧바로 깊은 숨소리가 들리고 밤하늘은 적막으로 잠기어 갔다. 그날 밤 청춘 남녀가 사이 사이 잠을 자고도 그들 사이엔 최소한 내가 알기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한편 그들이 놀랍기도 하고 그들이 부럽기도 했다. 내가 지난 시절에 지내왔던 청년기를 생각하며 우리 아이들은 과연 이런 경우가 있었다면 쉽게 잠이 들 수가 있을까? 서구의 아이들은 청소년 때부터 자연스레 남녀가 어울려 지내면서 격의 없이 자라고, 또 성인으로 접어들어서는 자신의 행동에 자신이 떳떳이 책임을 지는 그러한 우리 아이들보다 한 차원 높은 성숙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날 밤에 겪은 충격은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러면서 펀뜻 캄보디아에서 만났던 캐나다 녀석이 머리 속에 떠올랐다. 이틀 밤에 두 여자를 번갈아 가며 처음 만난 여자와 함께 잔 그 녀석도 어쩌면 저들과 같이 여행에 대해 인생에 대해 이야기하며 아무 일도 없이 자연스럽게 밤을 지샜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지배적으로 머리 속을 맴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