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1일-드디어 내가 꼬 피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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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1일-드디어 내가 꼬 피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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쑤랏타니의 여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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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 피피 행 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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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싸, 폼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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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 피피의 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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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밧짜리 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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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 포인트에서 바라본 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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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킹 레스토랑의 해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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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킹 모자를 쓴 명물 주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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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전통방식으로 새기는 문신


9월 11일-드디어 내가 꼬 피피에...


꼬 피피 행 밤 버스 옆자리에 나이가 50쯤 되어 보이는 서양인이 앉았다. 어느 나라 출신이냐니까 미국인이란다. 태국에서 미국인을 만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미국인들은 해외여행을 잘 하지 않는다. 자기 나라를 둘러보는 데만도 평생이 걸린다는 이유 때문이란다. 게다가 요즘은 미국을 철천지원수로 생각하는 나라가 많아져서 해외여행 기피증이 더욱 심해졌다.
그런데 이 친구는 뭐가 그리 좋은지 연신 히죽거리고 있다. 미국인은 쉽게 친해지고 쉽게 잊어버린다. 처음 만난 사이라도 10여 분만에 연락처를 교환하고 다음에 우리나라에 오면 꼭 연락하라는 말까지 덧붙인다. 그러나 다음날 만나면 통성명부터 다시 해야 한다.
암튼 이 친구는 비쩍 마른 몸매에 골초인지 온몸에 담배 냄새가 배여 있다. 어디 가냐니까 꼬 팡안 간단다.(카오산에서 출발하는 여행자버스는 남부로 가는 사람들을 한 버스에 태운 후, 쑤랏타니에서 행선지별로 갈아 태운다. 꼬 팡안은 태국 남부 동해안에 있는 섬으로 히피적 분위기로 유명하다. 매달 보름달이 뜰 때마다 해변에서 열리는 풀문파티는 세계적인 축제로 1만 여명의 사람들이 몰려들곤 한다.) 얼마나 있을 거냐니까 3개월 있을 거란다. 엥? 꼬 팡안에 3개월씩이나?
그렇게 오랫동안 뭐할 거냐니까 킥복싱을 배울 거란다. 킥복싱 레슨비와 숙박비를 포함해서 1달에 미화 500불씩 지불한단다. 꼬 팡안에서 3개월 배운 후 치앙마이에 가서 다시 5개월을 배울 거란다. 대단한 아저씨다.
예전에 치앙마이에서 킥복싱 선수 한 명을 만난 적이 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가 꺼터이(트랜스젠더)였다는 것이다. 킥복싱을 하는 트랜스젠더!
미국인과 제법 친해지고 있는데 태국인 차장이 다가온다. 그리고 나보고 버스를 바꿔 타라고 한다. 엥? 무슨 이유인지 따져 묻고 싶었지만 지금 자리가 맨 뒷자리라서 약간 불편하던 차라 순순히 따르기로 한다.
갈아탄 버스는 이전 버스보다 훨씬 깨끗하고 자리도 중간쯤이라 편하다. 마침 옆자리에 한국인이 앉아 있다. 나이는 나보다 몇 살 위로 보이는데 알록달록한 무늬의 바지에 목걸이까지 하는 등 한 눈에 보기에도 영락없는 ‘자유인’ 차림이다. 일상의 회전목마에서 불현듯 하차하여 다른 놀이기구를 찾아 삶의 놀이터를 서성이는 영혼의 자유인! 시간의 보헤미안! 세월의 베가본드!
K씨는 동남아를 6개월째 여행 중이라고 한다. 이제 꼬 피피를 마지막으로 추석 전에 한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란다.
K씨는 친한 친구가 암으로 급사하는 바람에 인생이 허망해져서 하던 사업을 정리하고 무작정 여행을 떠나왔단다. 짜식, 이제 돈도 좀 모으고 가족들과 알콩달콩 살 나이인데... 하면서 말끝을 흐리는 K씨의 눈가로 물기가 번진다.
인간의 삶은 아무리 길게 잡아도 100년 남짓이다. 그 세월을 살면 누구나 죽음을 맞아야 한다. 대통령도 피해갈 수 없는 게 죽음이다. 과연 나는 언제 어디서 어떠한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인가. 그것은 외롭고 고통스런 죽음일까, 아니면 평화롭고 여한이 없는 죽음일까.
새벽 4시, 버스가 쑤랏타니에 도착하자 K씨와 헤어지게 되었다. 행선지는 같았지만 티켓을 구입한 여행사가 달라서 서로 다른 버스를 타고 가야 했다. 꼬 피피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작별을 했다.
여행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그 기다림 자체를 여행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즐길 줄 알아야 여행이 즐거워진다. 오후 7시에 방콕을 출발한 여행자버스는 다음날 오후 3시에 꼬 피피에 도착했다. 20시간의 여정! 그러나 정작 차를 타고 이동한 시간은 14시간 정도이다. 나머지는 버스와 보트를 갈아타기 위해서 여행사에서 기다린 시간이다.
꼬 피피에 도착하여 숙소를 구하기 위해서 30분 정도 쏘다닌 끝에 힌콤 해변에 적당한 게스트하우스를 발견했다. 선풍기룸인데 하룻밤에 300밧. 요금이 저렴하고 위치도 좋아서 만족스럽다.
체크 인을 하고 뷰 포인트에 가기 위해서 곧장 숙소를 나섰다. 뷰 포인트는 약 20분 정도 올라야 하는 자그마한 산으로 꼬 피피의 전경을 감상하기에 좋은 곳이다.
뷰 포인트에 오르니 서녘 하늘로 막 노을이 번지기 시작하고 있다. 그 아래 눈부신 백사장과 푸른 바다에 기암절벽이 솟아 있는 모습은 마치 신화 속에 나오는 신들이 사는 나라의 풍경인 듯 하다.
한참을 넋을 놓고 일몰을 감상하고 있는데 주위가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길에 별다른 조명시설이 없으므로 손전등을 준비하지 못한 사람은 너무 어두워지기 전에 내려가야 한다.
내려오다가 한국인 청년 한 명을 만난다. 그는 길을 잘못 들어서 헤매다가 이제야 올라오는 길이란다. 그는 노을 감상은 내일로 미루고(어차피 노을을 보기엔 늦은 시점이기도 했다), 오늘은 우리와 어울려 저녁을 먹으러 가기로 한다.
그동안 꼬 피피의 거리는 많이 변했다. 한참을 헤맨 끝에 겨우 바이킹 레스토랑을 발견했다. 바이킹은 꼬 피피의 명소 중 한 곳이다. 3년 전만 해도 규모가 작았는데 그동안 돈을 꽤 벌었는지 크게 확장을 했다.
바이킹의 별미는 장작나무구이 통닭이다. 손님이 선택한 해물을 야채와 함께 볶아주는 해산물 요리도 푸짐하고 맛있다. 그러나 바이킹의 명물은 뭐니뭐니해도 주인장이다. 뿔 달린 바이킹 모자를 쓰고 괴상한 닭울음소리를 내며 손님들을 끌어 모으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부푼 배를 두드리며 산책을 하다가 딱 내 취향인 술집을 발견했다. 툭 바베큐. 아파치 바 옆에 있는 그 집은 각종 튀김을 파는 곳인데 해변에 돗자리를 몇 개 깔고 그 위에 상을 펴놓았다. 마치 한강변의 야외 술집 같은 분위기다. 그중 한 자리를 차지하고 맥주와 닭튀김 몇 개를 시켰다. 음... 튀김 맛이 썩 괜찮다. 쏨땀(생 파파야 샐러드)도 하나 시킨다.
눈앞에는 온갖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등 뒤에서는 철썩철썩 해변에 와서 부서지는 파도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오고, 하늘 위에는 금세라도 황금 물이 뚝뚝 떨어져 내릴 것처럼 초롱초롱한 별들이 무수히 매달려 있었다.

6 Comments
ankor 2004.11.18 11:45  
  세번째 사진은 너무 폼을 많이 잡으신듯 하지만 그래도 너무 부럽읍니다.
필리핀 2004.11.18 12:41  
  헐~ 폼을 잡은 게 아니라 찍사가 구도를 그렇게 잡아서리...[[으힛]]
재석아빠 2004.11.18 14:01  
  바이킹은 전에 하던 자리가 새로 지으면서 주인이
보증금및월세를 무리하게 올려서 이사 갔어요~
작년에 바이킹 찾아가는데 헤멧습니다..
많은 외국인 손님들도 물어물어 찾아 오더라구요~
오랬만에 바이킹 아저씨보니 반갑네요~~
cntjdgml 2004.11.18 14:35  
  오랫동안 여행일기 기다렸어요~^^
그런데 몇일전부터 한꺼번에 몇개씩 올라와서 너무니 재미있게 읽고 있어요..
필리핀 2004.11.19 12:25  
  아... 바이킹에 그렇게 슬픈 사연이...[[우울]]
바이킹의 음식맛과 친절한 주인장은 최고이지요.
그동안 게을러서 여행기 자주 못썼습니다.
근데 이 게으름증은 고쳐지지 않고...
이제 딱 반 썼는데 올해 내로 끝낼 수 있을지...[[기도]]
메롱이 2004.11.19 12:36  
  간만에 읽은 여행일기 재미있네요.~~
[[원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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