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4일-자, 이제 말레이시아로

홈 > 여행기/사진 > 여행기
여행기

9월 14일-자, 이제 말레이시아로

필리핀 3 924
3283703_520x392.jpg"
꼬 피피를 떠나는 뱃전에서 바라본 풍경


3283704_520x392.jpg"
썽태우를 타고 하교 중인 끄라비의 학생들


3283705_392x520.jpg"
끄라비 시내의 재미있게 생긴 신호등


3283706_520x392.jpg"
끄라비 시내


3283707_520x392.jpg"
10밧(300원)짜리 국수

3283708_520x392.jpg"
끄라비 포구

3283709_520x392.jpg"
야시장, 얌운센을 파는 노점

3283710_520x392.jpg"
야시장

3283711_520x392.jpg"
야시장



9월 14일-자, 이제 말레이시아로


같은 여행지도 사람에 따라서 다르게 보인다. 꼬 피피에서 만난 두 여행자(K, 청년)도 각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여행할 것이다. 그들의 눈에는 꼬 피피가 어떻게 보였을까. 환상과 낭만의 섬으로? 아니면 쓰레기와 바가지의 섬으로? 그들은 한국으로 돌아가서 꼬 피피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꼬 피피에 대해서 뭐라고 이야기할까. 일상으로 돌아가서 얼마나 자주 이 섬과 이 섬에서 만났던 사람들에 대한 기억을 떠올릴까. 앞으로 남은 생에서 그들은 한번이라도 이곳을 다시 찾게 될까.
나는 이곳을 떠나면 꼬 피피에 대해서 어떤 색깔의 그리움을 가지게 될까. 여행지는 여행지마다 나름대로의 색깔로 기억된다. 좋았던 여행지는 분홍색이나 초록색으로, 나빴던 여행지는 고동색이나 회색으로 기억되겠지. 아무리 나빴던 여행지도 각자의 색깔을 가지고 있다. 세월이 수없이 흘러 이제는 더 이상 씩씩하게 두 발로 돌아다닐 수 없을 만큼 늙고 병든 몸이 되었을 때, 여행자는 자신의 추억 속에 남아 있는 형형색색의 여행지를 추억하면서 아름다웠던 생을 반추하겠지. 그때 과연 꼬 피피는 어떤 색깔로 내 가슴 속에서 빛을 발할까?
처음에는 허접했던 숙소지만 막상 떠나려니 아쉽다. 그동안 정이 들었던 모양이다. 앞으로는 우리처럼 너에 대해서 투덜거리는 손님보다 만족하는 손님을만 만나거라.
체크아웃을 하고 배낭을 메고 시장통으로 가서 현지음식을 진열해놓고 파는 식당으로 들어간다. 음식 이름이 뭔지도 모른다. 미리 만들어 놓은 음식들 중 먹음직스러운 것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적당히 담아서 준다. 음... 꽤 맛이 있다. 매일 여기 와서 먹을 걸. 떠나려니 맛있는 식당을 알게 된다.
식당을 나와 과일 가게에서 배에서 먹을 망고스틴을 산다. 1킬로그램에 40밧. 그리고 도시락으로 샌드위치도 2개 준비한다. 오늘 말레이시아 국경과 가까운 도시인 쑹아이 꼴록까지 갈 예정이다. 차 시간에 여유가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먹을 것을 미리 준비한다. 낯선 곳에 여행 와서 정신없이 돌아다니다 보면 먹을 때를 놓치는 일이 다반사이다. 타지에서 배고픔만큼 서러움 것도 없다.
배 출발시간이 남아 물안경을 고치기 위해서 다이빙 샾으로 간다. 내게는 물안경이 2개 있다. 하나는 오래 전에 한국에서 산 것이고, 다른 하나는 3년 전 꼬 피피에서 스노클링을 하다가 바다 밑바닥(수심 약 10미터)에 떨어져 있는 걸 발견하고 건진 것이다. 바다에서 건진 놈은 상태도 괜찮아서 그동안 유용하게 썼다. 그런데 고리 하나가 낡아서 교체를 해야 했다. 말레이시아에서도 스노클링을 즐길 예정이므로 미리 고쳐두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다이빙 샾에서 고리를 교체하니 튼튼해졌다. 에라, 떡본 김에 제사지낸다고 반대쪽 고리도 갈기도 한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언제 망가질지 모르는 일이다. 덕분에 뜻밖의 지출이 160밧이나 발생했다. 이제 이 물안경을 볼 때마다 꼬 피피가 더욱 생각나겠지.
끄라비 행 배삯은 1인당 200밧이다. 에누리는 없다. 배는 낡았지만 견딜만하다. 배가 출발하자 나는 갑판 위로 올라갔다. 점점 작아지는 꼬 피피를 바라보고 있으니 만감이 교차한다. 떠나는 곳에 대한 아쉬움과 새로운 곳에 대한 기대감이 전신으로 뱀처럼 스치고 지나간다. 한참이나 먼 바다를 바라보다 객실로 들어온다.
원래 일정은 꼬 피피를 떠나 끄라비나 꼬 잠에서 2박을 하는 것이었다. 끄라비는 지난 겨울에 묵었던 똔싸이 해변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꼬 잠은 역시 지난 겨울에 꼬 리페에서 만난 독일 커플이 적극 추천하는 섬이어서 염두에 두었다.
그러나 두 군대 모두 포기하고 말레이시아로 곧장 가기로 정했다. 꼬 피피, 끄라비, 꼬 잠 등이 위치한 태국 남부 서해는 우리나라 계절로 겨울이 제 철이다. 따라서 9월에는 아직 바다의 상태가 만족스럽지 못하기 때문에 나중에, 그것이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암튼 겨울철에, 방문하는 게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더불어 일정을 변경한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이제 태국에 대해서 약간씩 질려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어느덧 계획했던 여행기간의 반이 지났는데, 뭔가 새로운 활력이 필요했다. 그것은 바로 말레이시아였다!
몇 개월 사이에 끄라비 부두가 교외로 이전을 했다, 지난 겨울에는 시내에서 걸어가도 충분한 거리에 있었는데, 이제는 썽태우를 타고 이동을 해야 했다. 시외버스터미널까지 1인당 50밧이란다. 인상을 찌푸리자 요금이 점점 내려가더니, 30밧에서는 더 이상 내려가지 않는다.
끄라비 시내로 가는 영국 청년 3명과 함께 탄다. 꼬 피피에서 밤마다 파티를 꽤 즐겼는지 얼굴에 피곤이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다. 그중 한 명이 나더러 어디 가냐고 묻는다. 말레샤 쁘렌띠안 섬으로 간다니까 자기들도 그곳으로 갈 예정이란다. 그러면서 가는 방법을 묻는다. 내가 콩글리쉬로 요란을 떨며 설명을 해줬더니, 질렸는지 더 이상 말을 걸지 않는다. 야호, 성공이다.
부두에서 시외버스터미널까지는 상당한 거리다. 세 청년을 시내에 내려놓고도 한참을 더 간다. 헌데 운전사가 터미널로 가지 않고 한 여행사 앞에 차를 세운다. 여행사에서 한 아줌마가 나오더니 어디 가냐고 묻는다. 쑹아이 꼴록 간다니까, 거기 가는 시외버스는 없다, 여행자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는 거다. 쳇, 또 시작이군.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거짓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대는 사람들. 그리고 그 거짓말이 탄로 나도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오히려 불쾌하다는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태국이 싫어진다.
아줌마와 운전사를 무시하고 터미널 안으로 들어간다. 밤 10시에 출발하는 버스가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시간에 터미널은 문을 닫기 때문에 터미널에서 100미터쯤 떨어진 거리에서 버스를 타야 한다는 거다.
한참을 설명하던 매표원 아줌마는 과연 이 외국인이 그 시간에 그 장소에서 버스를 제대로 탈 수 있는지 무척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결국 이렇게 못을 박는다.
“버스 놓쳐도 환불은 안 해줘.”
선택의 여지가 없다. 버스비 864밧을 날리지 않으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버스를 타야 한다. 아직 날이 환할 때 매표원 아줌마가 설명해준 장소를 확인해두기 위해 배낭을 메고 땡볕 아래를 한참이나 걷는다.
마침 버스가 정차하는 부근에 편의점이 있다. 들어가서 물어보니 그 앞이 밤 버스가 정차하는 자리가 맞단다. 내친 김에 미소를 띠며 사정한 끝에 배낭을 맡기는데 성공했다.
이제 위치도 확인했고 몸도 홀가분해졌으니, 버스 출발시간까지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그런데 버스 출발시간까지는 무려 8시간이나 남았다. 그때까지 뭘 하지?
터미널 근처는 별다른 시설이 없다. 썽태우(1인당 10밧)를 타고 끄라비 시내로 들어와 인터넷 까페로 간다. 그러나 너무 느려서 도저히 할 수가 없다. 끄라비의 유일한 백화점에 가서 1층부터 3층까지 아주 천천히 구경을 한다. 그래도 아직 시간이 많이 남는다. 거리를 배회하는데, 현지인들이 우글우글한 노점식당이 눈에 띤다. 비빔국수를 파는 집이다. 1그릇에 10밧. 가격도 저렴하지만 맛이 너무 좋아서 2그릇씩 먹는다.
배를 두드리며 강변으로 간다. 벤취에 앉아 노을을 감상하는데, 이런, 모기가 너무 많다. 모기 등쌀에 견디다 못해 금세 일어선다. 문득 터미널 근처에 야시장이 서던 게 기억이 난다. 이미 썽태우는 끊긴 시각이라 오토바이 택시를 타고 터미널로 향한다. 시원한 밤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차선을 무시한 채 지그재그로 밤거리를 질주하는 오토바이 택시는 스릴만점이다.
터미널 옆 야시장은 현지인들로 대성황이다. 온갖 음식을 파는 코너를 필두로 옷, 신발, 기념품을 파는 코너, 빙고게임을 하는 코너에 악극을 공연하는 가설무대까지, 6~70년대 우리나라 시골 야시장과 똑같은 풍경이다. 옛 추억을 되새김질 시키는 풍경에 매료되어, 유일한 외국인의 출현에 놀란 현지인들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정신없이 야시장 구석구석을 돌아다닌다. 그렇게 추억의 타임머신을 타고 즐기고 있는 동안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버렸다. 이제 버스를 타러 가야 한다.
아쉬움이 많이 남지만 어쩔 수 없다. 내 추억의 한 자락을 끄라비 시외버스터미널 옆 야시장에 묻어 놓고 발길을 돌린다. 잠시 후, 정시보다 약간 늦게 쑹아이 꼴록 행 밤 버스가 도착했다.
3 Comments
곰돌이 2004.12.09 19:12  
  필리핀님 가신길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 같습니다. 특히 인상을 썻더니, 썽태우 가격이 30밧까지 내려갔다는 말을 보고 다른 사람도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궁금해집니다.  필리핀님 처럼 온화(?)한 인상을 가진분만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으힛]]
뽀르테 2004.12.09 20:48  
  늘 필리핀님의 글을 보며 좋아해 왔는데 이번에 깜짝 놀랐습니다^^.
그 첫번째가 기혼이시라는 것...근데도 여행은 무지많이 할 수 있다는 것...이번엔 동반이시라는 것.
두번째는 글이 참 섬세해서 외모가 두꺼운 안경쓴 약간의 샌님같은 호리호리한 체격의 소유자이실 걸로 생각했는데 사진에 올라온 요가 자세의 모습은 근육질로 가득찬^^...

이제 쌍둥이도 생기고 전 여행갈 날이 더 멀어지는 느낌입니다. 대신 여행 느낌 잊지 말고 계속 올려 주세요^^
필리핀 2004.12.10 14:38  
  곰돌이님, 말이 안 통하니까 인상 쓴 거에요.
생긴 거하고는 상관없어요.[[으힛]]

뽀르테님, 저도 학창시절에는 호리호리했어요.
먹고 사는 게 뭔지 세파에 찌들다보니
스트레스 받아서 부었답니다.[[우울]]
포토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