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태국,캄보디아 배낭여행 18일- 왓포,왓프락케오,두싯동물원
3. 2일째(1월 8일) 왓포-왓프락케오-동물원(태국의 왕궁, 불교)
밤엔 시끄러워 여러 번 깼지만 그런 대로 잘 잤다. 워낙 피곤했으니, 무슨 모터 돌아가는 소리인지 바로 방 옆에 있어서 한밤중이라 마치 버스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이젠 본격적인 시내 관광이다. 아침 일찍 짜오프라야강 프라아팃 13번 정류장에서 교통수단인 배를 탔다. 왓포와 왓프락케오가 있는 궁전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왓포와 그들의 궁전은 너무나 놀랍다. 하늘을 찌르는 탑, 안내서를 받고 한바퀴 따라 돌았지만 내력을 잘 몰라서 답답했지만 대충 영어로 된 팜플렛을 보고 짐작하였다. 한글 가이드북은 찾기 힘들다. 영어,프랑스어 일본어 베트남어까지 다 있는데 태국의 단골 손님 한국인을 위한 책자는 왜 없는 걸까? 이러한 의문은 앙코르왓에서도 태국의 거의 모든 관광지에서도 변함이 없었다. 이유가 무엇일까? 그들이 결코 우리를 무시해서가 아니었다. 한국인들은 책을 사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인들은 대체로 단체관광객이다. 가이드가 너무나 자세히 설명을 잘 해주니 무슨 책자가 필요하겠는가? 배낭여행을 하는 사람은 한국에서 대체로 책자를 구해가니까 더욱 살 일이 없고... 준비가 부족한 이도 저도 아닌 나는 책을 구하고 싶어도 한국어 책이 없고 가져간 책은 너무 설명이 없어서 내내 답답하기만 했다.
왓포는 열반을 뜻하는 말이라고 한다. 여기에는 실내에 40여 미터 되는 엄청난 크기의 열반을 의미하는 와불이 있다. 방콕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이고 가장 커다란 사원이라고 한다. 왓프락께는 자그마한 에메랄드 불상이 유명하다고 알려져 있어서 처음부터 관심을 가지고 찾아가 보았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조심스럽게 또는 경건하게 합장을 하거나 절을 하고 있었다. 앞 쪽 상당한 높이에 자그마한 불상에(60센티라고 한다) 황금으로 된 옷이 입혀져 모셔져 있다. 3,7,11월 계절이 바뀔 때마다 국왕이 손수 옷을 갈아 입힌다고 한다. 이 불상은 원래 스리랑카에서 만들어졌는데 언젠가 태국북부로 건너오게 되었고 치앙라이, 치앙마이 등을 옮겨 다니다. 18세기 말 라오스를 정벌한 뒤 전리품으로 가져와 지금의 짜그리 왕조가 들어서면서 현재의 위치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고 한다.(헬로 타일랜드 144쪽)
왕궁 중에서 라마 4세부터 8세까지 생활하였고, 나중에 라마 8세가 비명의 죽음을 당했다는 박정희 대통령이 묵기도 했다는 보로마비만 전은 출입이 금지되어 아쉬웠다. 국왕 즉위식이나 탄신일 행사 등이 열린다는 프라마하 몬티안, 짜그리 왕조 100주년 기념 건축물인 짜그리 전, 라마 1세가 도읍을 옮기고 만든 왕궁 내에서 가장 오랜 궁전 두씻 전, 왓프락깨오 박물관 등을 관람하였다.
궁궐 관람용 티켓은 이곳과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는 또 다른 궁전인 비만맥궁전까지 구경할 수 있는 표가 함께 붙어 있다. 그래서 택시를 탔는데 50밧이면 될 거리를 200밧 달라고 해서 150밧에 흥정을 했다. 바가지요금인데 내가 어리숙한 것을 안 그 늙수룸한 기사는 내게 맛사지를 권유한다. 2,000밧이면 해피해피를 계속 외치면서 따라 붙는다. 기분이 상해서 궁전을 대충 관람하고 구경이고 뭐고 거리를 걷다 동물원을 찾았다.
동물원 앞에서 적당한 먹거리를 먹고 동물원으로 들어갔다. 원내 열차를 타고 멀리까지 들어갔다가 코끼리 우리를 지나고 원숭이 모듬으로 갔다. 원숭이는 언제고 우리 인간이 숨어서 할 수 있는 모습들을 적나라하게 대신 보여주고 있다. 태국의 원숭이도 마찬가지이다. 토요일이라서인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태국의 서민들을 보려면 동물원으로 가라.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오붓하게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보면 지난 날들이 자꾸만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앞으로는 나도 우리 아이들과 이렇게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싶어서일까. 아니면 서럽게 살고 있는 이들에 대한 동정 때문일까. 오늘 따라 먼저 하늘 나라로 간 내 동생과의 어린 시절이 이렇게 떠오르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택시를 타고 집으로 왔다.
엊저녁 내내 시도하다 실패한 전화를 했다. 인터넷과 전화를 관리하는 아가씨, 아버지가 중국계인데 한문을 읽을 줄도 모른다고 했다. 아버지는 중국인이지만 나는 태국인이라는 말을 힘주어 강조한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현실에 충실한 모습, 우리 아이들도 저럴 것인데 너무 내 잣대로 보지는 말자. 무엇을 저리 열심히 하고 있을까. 볼 때마다 너무나 진지하게 컴퓨터를 보고 연구하고 있어서 궁금했는데 살짝 보았더니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오목 비슷한 놀이를 하고 있다. 야, 그래 그 지루한 시간을 무엇을 하며 지내겠니?
밤엔 시끄러워 여러 번 깼지만 그런 대로 잘 잤다. 워낙 피곤했으니, 무슨 모터 돌아가는 소리인지 바로 방 옆에 있어서 한밤중이라 마치 버스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이젠 본격적인 시내 관광이다. 아침 일찍 짜오프라야강 프라아팃 13번 정류장에서 교통수단인 배를 탔다. 왓포와 왓프락케오가 있는 궁전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왓포와 그들의 궁전은 너무나 놀랍다. 하늘을 찌르는 탑, 안내서를 받고 한바퀴 따라 돌았지만 내력을 잘 몰라서 답답했지만 대충 영어로 된 팜플렛을 보고 짐작하였다. 한글 가이드북은 찾기 힘들다. 영어,프랑스어 일본어 베트남어까지 다 있는데 태국의 단골 손님 한국인을 위한 책자는 왜 없는 걸까? 이러한 의문은 앙코르왓에서도 태국의 거의 모든 관광지에서도 변함이 없었다. 이유가 무엇일까? 그들이 결코 우리를 무시해서가 아니었다. 한국인들은 책을 사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인들은 대체로 단체관광객이다. 가이드가 너무나 자세히 설명을 잘 해주니 무슨 책자가 필요하겠는가? 배낭여행을 하는 사람은 한국에서 대체로 책자를 구해가니까 더욱 살 일이 없고... 준비가 부족한 이도 저도 아닌 나는 책을 구하고 싶어도 한국어 책이 없고 가져간 책은 너무 설명이 없어서 내내 답답하기만 했다.
왓포는 열반을 뜻하는 말이라고 한다. 여기에는 실내에 40여 미터 되는 엄청난 크기의 열반을 의미하는 와불이 있다. 방콕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이고 가장 커다란 사원이라고 한다. 왓프락께는 자그마한 에메랄드 불상이 유명하다고 알려져 있어서 처음부터 관심을 가지고 찾아가 보았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조심스럽게 또는 경건하게 합장을 하거나 절을 하고 있었다. 앞 쪽 상당한 높이에 자그마한 불상에(60센티라고 한다) 황금으로 된 옷이 입혀져 모셔져 있다. 3,7,11월 계절이 바뀔 때마다 국왕이 손수 옷을 갈아 입힌다고 한다. 이 불상은 원래 스리랑카에서 만들어졌는데 언젠가 태국북부로 건너오게 되었고 치앙라이, 치앙마이 등을 옮겨 다니다. 18세기 말 라오스를 정벌한 뒤 전리품으로 가져와 지금의 짜그리 왕조가 들어서면서 현재의 위치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고 한다.(헬로 타일랜드 144쪽)
왕궁 중에서 라마 4세부터 8세까지 생활하였고, 나중에 라마 8세가 비명의 죽음을 당했다는 박정희 대통령이 묵기도 했다는 보로마비만 전은 출입이 금지되어 아쉬웠다. 국왕 즉위식이나 탄신일 행사 등이 열린다는 프라마하 몬티안, 짜그리 왕조 100주년 기념 건축물인 짜그리 전, 라마 1세가 도읍을 옮기고 만든 왕궁 내에서 가장 오랜 궁전 두씻 전, 왓프락깨오 박물관 등을 관람하였다.
궁궐 관람용 티켓은 이곳과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는 또 다른 궁전인 비만맥궁전까지 구경할 수 있는 표가 함께 붙어 있다. 그래서 택시를 탔는데 50밧이면 될 거리를 200밧 달라고 해서 150밧에 흥정을 했다. 바가지요금인데 내가 어리숙한 것을 안 그 늙수룸한 기사는 내게 맛사지를 권유한다. 2,000밧이면 해피해피를 계속 외치면서 따라 붙는다. 기분이 상해서 궁전을 대충 관람하고 구경이고 뭐고 거리를 걷다 동물원을 찾았다.
동물원 앞에서 적당한 먹거리를 먹고 동물원으로 들어갔다. 원내 열차를 타고 멀리까지 들어갔다가 코끼리 우리를 지나고 원숭이 모듬으로 갔다. 원숭이는 언제고 우리 인간이 숨어서 할 수 있는 모습들을 적나라하게 대신 보여주고 있다. 태국의 원숭이도 마찬가지이다. 토요일이라서인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태국의 서민들을 보려면 동물원으로 가라.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오붓하게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보면 지난 날들이 자꾸만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앞으로는 나도 우리 아이들과 이렇게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싶어서일까. 아니면 서럽게 살고 있는 이들에 대한 동정 때문일까. 오늘 따라 먼저 하늘 나라로 간 내 동생과의 어린 시절이 이렇게 떠오르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택시를 타고 집으로 왔다.
엊저녁 내내 시도하다 실패한 전화를 했다. 인터넷과 전화를 관리하는 아가씨, 아버지가 중국계인데 한문을 읽을 줄도 모른다고 했다. 아버지는 중국인이지만 나는 태국인이라는 말을 힘주어 강조한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현실에 충실한 모습, 우리 아이들도 저럴 것인데 너무 내 잣대로 보지는 말자. 무엇을 저리 열심히 하고 있을까. 볼 때마다 너무나 진지하게 컴퓨터를 보고 연구하고 있어서 궁금했는데 살짝 보았더니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오목 비슷한 놀이를 하고 있다. 야, 그래 그 지루한 시간을 무엇을 하며 지내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