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태국,캄보디아 배낭여행 18일- 호기심과 불안감의 방콕
2. 여행 1일째(1월 7일) : 인천-방콕-카오산로드 (호기심과 불안감의 방콕)
새벽 2시 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1시부터 서둘러야 한다. 11시쯤 잠들었는데 12시 반 정도 되니 잠이 깨었다. 두 시간도 채 잠을 자지 못한 것이다. 그만큼 긴장하고 또 기대를 하고 있다는 것이리라. 준비물을 마지막 점검했다. 내가 최소한으로 버틸 수 있는 필수품만 남기고 망설여지던 것들은 모두 가방 밖으로 내었다. 정리를 하고 나니 학생용 가방보다 약간 큰 작은 가방이 하나로 정말 간단히 마무리 되었다. 가장 중요한 것부터 본 준비물을 적어보면 여권, 비행기표, 비시카드 1장, 핸드폰, 카메라(디지털, 충전기포함), 슬리퍼, 선글라스, 칼(면도칼인데 출국 직전 빼앗김), 모자, 슬리퍼, 선글라스, 속옷 1벌, 양말 2켤레, 반바지 2장(결국 1장만 입음), 반팔 2장, 아이들에게 줄 선물(샤프연필 500원짜리 8자루, 지우개 300원짜리 8개), 비상용품으로 고추장, 멸치, 약간의 쌀(이들은 결국 풀지도 않고 다시 가져옴), 작은 손가방, 빨간 두건, 손수건, 면수건, 비닐(비를 대비해서 가로 세로 약 1미터), 치약, 칫솔, 면도기(1회용), 손시계, 여행안내서 2권, 면장갑, 20여 장의 잡다한 프린트물(앙코르, 태국에 관한), 볼펜 2개, 정말 이게 전부였다. 한쪽 어깨로도 가볍게 멜 수 있는 정도의 무게였다. 야, 이것으로 18일을 버틸 수 있을까?(정말 여행 내내 나는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필수품이니까 이 중에서 하나라도 잊어버리면 많은 불편을 겪어야 한다. 실제 도중에 볼펜을 잃어버리니 다시 사기까지 그렇게 답답할 수가 없었다. 결국 모자를 잊어버렸고, 팬티도 도중에 빨랫줄에 널어놓은 것을 누가 잘못 걷어가 버리는 통에 10여 일 정도를 내내 한 장으로 매일 빨면서 버텨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고, 슬리퍼는 끈이 끊어져 다시 사야 했다. 그리고 어떤 것도 생활하는데 필요 때문에 더 사지는 않았다. 오히려 두건이나 반팔 1장, 반바지 1장, 비닐 등은 가져가지 않아도 될 것들이었다.
공항까지는 우선 비행기를 타기까지 입고 간 옷을 다시 벗어 가방에 넣어야 하니까 가방은 어느 정도 여유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겨울옷보다는 여행지에서 입을 여름옷을 입자. 그래야 짐을 줄일 수 있다. 그래서 윗옷도 반팔을 속에 입고, 바지는 아예 여름바지를 두 겹을 껴입고 출발했다.
태국, 나는 태국을 잘 모른다. 그저 한국 사람들이 제일 먼저 찾는 외국여행 1번지, 대부분이 다녀왔던 곳을 나는 아직 가보지 못했고, 주로 유흥지에 관한 얘기를 많이 들었던 터라 그밖의 유적이나 역사적인 면에 대한 지식은 전무했다. 이번 여행을 위해서 책을 한두 권 사서 읽어보면서 차츰 태국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었고, 태국에 대해 또는 동남아에 대해 내가 너무도 모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으로 부끄러운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오히려 우리보다 거대하고 장구한 역사를 간직한 태국, 지금껏 한번도 주권을 빼앗기지 않은 자부심의 나라 태국, 전 국민 90% 이상이 불교를 믿고 있는 순박한 국민성을 지닌 나라... 진작에 가보고 느껴보았어야 했을 것을 이번 기회에 가게 된 것을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항에서부터 이젠 혼자이니 내가 다 알아서 해야 한다. 그런데 자신이 통 없다. 조심스럽게 물어가며 여유 있는 척하면서 수속 절차를 밟았다. 50만원을 달러와 태국 바트로 환전을 하고 한국 돈 20만원 정도 호주머니에 갖고 있는데 혹시나 하는 걱정 때문에 20만원을 더 찾았다.(여행 중 20만원을 남기고 모두 사용했으니 결국 70만원 정도를 쓴 셈이다.) 물론 갈 때 올 때 버스비 등 기타 경비를모두 포함한 액수이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이들 중에는 더 절약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고, 잘 몰라 낭비한 부분도 있었다.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 나와 같은 여행을 한다면 60만원 정도면 충분하리라는 생각을 했다.
떠나면서 마지막, 태국이 아직 지진으로 혼란스럽다고 하니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서 여행자보험에 가입하기로 했다. 사망 최고 3억원짜리 보험 8만 5천원에 최고액으로 가입했다.(모든 보험이 그렇지만 결국 그냥 공짜로 큰 돈을 날려버린 것이다.) 혹시 저 녀석들이 사고가 나도 연락을 안해 줄지 모르니 집으로 전화해 주어야지.
모든 절차를 마치고 탑승 게이트에서 한 시간 여를 이런 저런 생각으로 보내고 비행기에 올랐다. 날씨는 쾌청하고 더없이 하늘은 맑고 푸르른데 저쪽 서울 쪽으로는 검은 매연이 짓누르고 있는 것을 뚜렷이 볼 수 있었다. 사람은 적응력이 대단한 종족인가 보다. 저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을 보면..
여행 전반의 도움을 주었던 옛 동료에게 전화를 했다. 태국 안전하다고 말하며 걱정말고 다녀오라고 한다. 그래 여행 내내 단 한번도 걱정할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우리보다 더 친절하고 늘 순순하고 온화한 눈빛으로 나를 맞이해 주었다. 위험은 어디에고 있다. 우리나라라고 온전히 안전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교통사고의 위험을 빼고는 태국, 캄보디아 역시 안전했다. 교통사고의 확률 역시 우리보다는 훨씬 확률의 정도가 낮긴 하지만... 내 생각하기에 나처럼 보통 이상의 적응력을 갖추고 나 정도의 주도면밀한 사고를 갖추었다고 자부하던 내가 이까짓 것 뭐가 두렵다고 스스로 안심시키며 마음을 안정시켰다.
이번 지진으로 광주 사람들은 무슨 태국이냐며 다들 놀라고 말도 꺼내기 힘든 정도인데 TG659 태국행 비행기는 거의 대부분이 한국인인 듯 하고 빈자리는 눈에 띄지 않는다. 모두 서울 사람들인가? 태국은 아직도 인기가 전혀 식을 줄 모르는 최고의 관광지이라고 한다. 그리고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저들 나라에 가 주는 것이 그들을 도와 주는 것이라고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중국에 있는 아내와 통화를 마지막으로 핸드폰을 껐다.
여섯시간 비행은 생각보다 길었다. 유난히 좁게 느껴진 비행기 좌석, 더구나 엊저녁 잠을 설치는 통에 몸도 나르지근하여 잠이 올만도 한데 낮잠도 잘 들지 않는다. 기내에서의 식사는 와인도 주고 점심식사로 김치와 고추장까지 반찬이 있는 비프 스테이크까지 잘 먹었다. 한 스튜어디스가 한국인과 구분이 안될 정도로 비슷하여 허락을 받고 한 장 찍어보았다.
비행기는 망망대해 위를 달리더니 어느 덧 아무것도 분간할 수 없는 높이로 고도를 높이었다. 지금쯤 대만을 지나고 베트남에 가까워지고 있는듯한데 도대체 이놈의 괴물은 어느 정도의 빠르기로 달리고 있는지 가늠 대상이 없으니 알 길이 없다. 그저 멀리 있는 구름떼가 조금씩 밀려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가기는 갈테지. 아니 엄청난 속도일 텐데, 날씨는 계속 쾌청하다. 창밖의 구름은 그렇게도 하얗게 하얗게 펼쳐져 있다. 맨 먼저 가방을 메고 차오프라야 강을 찾아가련다. 그리고 새벽시장이 열린다는 수상시장을 찾아가 수상가옥을 구경하리라. 배를 타고 여행을 다니리라. 내가 늘 태국하면 떠올렸던 장면들이 꿈만 같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이젠 정말 전화조차도 힘들게 지내야 하는 혼자만의 생활을 한다는 생각을 하니 긴장도 되었다. 오후 3시쯤 차츰 육지가 보인다. 방콕에 다 왔는데 공항이 바쁘다며 30분 정도를 100킬로 상공에서 맴돌고 있다. 비행기 안은 술렁거리고 가끔 어지럽게 기체가 좌우로 흔들거리는데 별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멀리 보이는 야산들이 우리나라와 별 차이가 없다. 열대기후와 야자수가 밀림을 이루며 뒤덮이고 푸른색의 대지가 맞이하리라는 기대는 사라지고 만 것이다. 왜일까 어디에다 열대우림을 숨겨 두었을까. 여기는 비가 적게 오는 지역이라서일까. 아스라이 지평선이 그 위에 떠 있는 구름과 하늘이 맞닿아 있는 관계로 마치 수평선처럼 보인다. 왜 비행기는 관제탑에서 부르지 않는지.
드디어 비행기는 안전착륙을 하고 출국 심사대를 지나 공항을 나와 카오산로드 행 버스를 탔다. 100밧트 약 3,000원으로 1시간 가량 버스를 타고 내린 외국인의 거리, 카오산 로드는 수많은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아무리 지도를 보고 또 보아도 방향을 잡을 길이 없어 적당한 음식점으로 들어가 주스를 한 잔 마시면서 숙소를 생각해야 했다. 아무리 상황이 다급해도 한국인 사는 곳은 가지 말아야지, 그리고 되도록 한국인을 피해야겠다. 그리고 또 하나 결코 감정에 치우치지 말자. 헛된 돈을 낭비하지 말자.
오후 5시 정도부터 대강의 위치를 파악하느라 돌아다니다 9시쯤 마지막으로 도착한 숙소에는 원하는 방이 남아있지 않아 560밧에 이틀 밤을 묵기로 했다.(되도록 하룻밤씩 계약하는 것이 좋은데...) 난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한 GUEST HOUSE(neu merry게스트하우스)란 곳을 찾아 방을 정하고 방으로 와 프로펠러 선풍기를 돌려 봤더니 너무 요란하다. 난 원래 에어컨이나 선풍기를 싫어하니까. 창문이 잠기지 않는다고 방을 바꿔 달랬더니 별 잔소리를 다 늘어놓는다. 내일은 방을 바꾸어주기로 했다. ‘자식들 영어는 그래도 다 알아듣네,(실은 모두들 나보다 잘하는데...) 돈 벌려고.’ 속옷을 빨아 널고, 여권과 비행기표와 돈, 그리고 카드를 넣은 복대를 베개 밑에 넣고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