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태국,캄보디아 배낭여행 18일- 도난당한 비행기 좌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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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태국,캄보디아 배낭여행 18일- 도난당한 비행기 좌석

앵무산 곰 1 1317
18. 17일째(1월 23일): 다시 한국으로

  아침에 어제 빌린 자전거를 타고 콰이강의 다리를 다시 찾았다. 이른 아침에 나와 보니 지금껏 보지 못했던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주황색 도포를 걸친 승려들이 보시를 다니는 장면이었다. 서넛 되는 승려들이 군데군데 모여서 지나가면 음식을 적당히 마련해 두었다가 한 주걱씩 떠 주는 것이었다. 어떤 곳에서는 반찬이나 다른 과일도 준비해서 건네주는 것을 보았다. 음식을 받은 젊은 스님들은 그 대가로 음식을 준 여자들에게 무언가 경을 외어 주었다. 경을 외는 스님 앞에 두 손을 모으고 무릎을 꿇고 앉은 아낙네들의 모습이 너무도 진지해 보였다. 이제 일을 모두 마친 듯 돌아가는 승려의 양손 가득 먹거리를 치켜들고 가는 맨발의 승려들의 만족스런 표정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엊저녁 막 방으로 들어오는데 ‘내일 이거 꼭 다른 방으로 바꿔주세요를 영어로 뭐라고 하나?’ 세 아가씨가 주인을 앞에 두고 한국말로 자기들끼리 뭐라고 수근거려서 한국말을 참 오랜만에 들어 본 터라 내가 ‘그냥 오늘밤만 계약하고 무조건 내일 아침 바꿔주라 그래요.’ 하니까 놀라면서 나를 바라본다. 저녁에 맥주 한 잔씩을 따라 주면서 여행의 이런 저런 얘기를 해 주었다. 아침에 돌아오니 그 중 장씨 성을 가진 고향 근처(광양)의 한 아가씨가 정원을 거닐고 있어서 조금 이야기를 나누다 방으로 들어와 짐을 싼다. 이젠 정말 떠난다. 짐을 싸고 엊저녁 잠깐 본 한국 아가씨들과 헤어지며 인사를 하였다. 그리고 엊저녁 마신 맥주 2병 100밧, 겟하우스 120밧을 더 내고 경관은 좋았으나 주인과 일하는 아이들의 불친절한, 그래서 별 유쾌하지 않았던 퐁펜겟하우스를 떠나 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다시 버스를 타고 방콕으로 간다. 다시 차창에 펼쳐지는 태국의 대 자연. 정말 태국에선 18일 동안 저들이 싸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아니 화내는 모습조차 보지 못했다. 그 바탕은 무엇인가? 바로 살아숨쉬는 자연과 함께 어우러져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다시 했다. 이러한 모습이 영원토록 변치 않는 거대한 나라 태국이었으면 하는 바람이었고 우리도 이러한 풍토를 만들어 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방콕에 도착하니 12시쯤 되었다. 남부터미널 근처에서 점심을 시켜 먹었다. 이젠 비행기만 타면 되는데, 그래도 카오산 거리를 다시 가보고 싶다. 미터택시를 타 보니 80밧도 못되는데 100밧을 부르는 택시를 안타기 잘했다. 카오산 거리에 내리니 지진으로 인한 실종자들 명단이 붙은 거리에 아직도 사람들이 서성거린다. 다시 한번 그들의 살아생전에 찍은 활짝 웃는 모습과 오붓한 가족 사진 등을 보니 또 다시 눈시울이 시리다. 가로세로 1미터도 넘는 모금함에는 돈이 1미터 정도 수북히 쌓여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 둘도 없는 짠돌이가 되어 버린 나도 100밧을 넣어 주었다. 이게 얼마나 도움이 되랴만......
 
  짜오프라야 강 배를 타고 무작정 오른다. 시간이 아직도 4시간 정도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아래로 차이나타운 정도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위쪽으로 오른다. 종점인가보다. Northabur, 내려서 안쪽으로 들어가 노점상에서 점심을 시켜 먹었다. 국수에 쌀밥에 게묻힘을 먹고 나니 53밧트라고 해서 50밧에 해 주라고 하니 웃으며 받았다. 잠시 거리를 걷다 다시 배를 탄다는 게 건너편으로 가는 배를 잘못 탔다가 다시 갈아타고 내려간다. 옆에 우락부락한 여학생이 타서 내가 쓰고 있는 글을 유심히 쳐다보더니 저쪽으로 가 앉는다. 세상에 누구든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가 이유 없이 다른 곳으로 떠나버리는 것을 기분 좋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옆 사람이 제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더라도...
  태국인의 모습은 천차만별이다. 대부분의 전통 태국인은 까무잡잡한 얼굴에 약간 큰 입 그리고 두툼한 입술, 쌍거풀에 큰 눈이 그 특징이지만, 때로 꼭 한국인처럼 하얀 얼굴에 길쭉한 모습도 있고, 전혀 다른 인도 풍의 모습 등 정말 다양한 면을 보이고 있다.
  이젠 버스 타고 공항으로 간다. 그리고 비행기만 타면 모든 여정은 끝이 난다. 6시간, 내일 아침 인천에서 고향 가는 버스를 타면 집에 가서 편히 잠잘 수 있다. 무사히 이루어지겠지. 그렇게도 떠나기 힘들었던 여행, 배낭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오게 된 것이다. 내 인생의 처음이고 어쩌면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를 의미깊은 여행이었다. 어디서 다시 이런 경험을 할 것인가. 내가 다시 저들과 만나게 될 때 50이 넘을지 60이 될지, 누가 날 쳐다보아 줄 것인가, 내 젊음이 가기 전에 해야 할 일이 끝이 없는데. 내가 이와같은 혼자만의 긴 여행에 투자할 시간은 과연 얼마나 주어질는지. 카오산이여 안녕. 내가 다시 여기에 온다고 해도 혼자서 이곳에 오기는 아마 쉽지 않을 것이다.
  8시 경 공항에 왔다. 수속은 시작되고 무사히 비행기를 타면 된다. 비행기표를 가지고 정해진 자리에 표를 내밀면서 설마 내게 무슨 일이 있겠냐 싶었는데, 이게 무슨 불길한 일인가. 몇 번 컴퓨터로 확인을 하고 갸웃거리더니 일을 보던 남자 직원이 ‘왜 어제 비행기 시각을 바꾸어서 부킹을 했느냐고 묻는다?’ 쉽게 말하면 내 표는 어제 가야 할 비행기표였다는 것이다. 아무 영문도 모르는 나는 순간 덜컹 했다. ‘나는 이 비행기표를 여행사에서 산 이래 한번도 남의 손에 넘긴 적도 없고 이 복대 안에다 담고 다녔는데 무슨 소리냐’고 또박또박 심혈을 다해서 또박또박 사실을 전달했다. 그러니 무슨 소견라고 적어 주면서 다른 창구로 가보라고 번호를 알려 준다. 소견서를 가지고 가보니 그곳에서도 부킹이 안된다는 것이다. 정말 한국에 못가나? 겁이 덜컹 났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러나 비행기표 시각이 어긋날 경우 최악의 경우는 비행기를 늦추어서 가면 된다. 하루 정도 더 머물든지 다음 비행기가 가능하면 그 때 가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놀라지 않아도 될 것을...... 아니나 다를까 11:30에서 조금 늦어진 11:50분 비행기를 타면 어떻겠느냐고 내게 묻는다. 감지덕지할 뿐이지 무슨 여부가 있겠나. 조금 여유를 찾은 나는 윈도우를 반복했다. 비행기 창쪽으로 표를 달라고 했다. 나중 생각해 보니 이 늦은 야밤에 창이면 어떻고 복도쪽이면 어떠랴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타보니 창 쪽이 낫다. 윈도우 쪽인데도 갈수록 비행기는 답답함이 더해간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뜻이겠지.


1 Comments
방고리 2005.02.22 12:12  
  그래도 종착역은 카오산이군요 멀리 투어하고 카오산에 도착하면 마치 고향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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