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벙이부부 배낭(3.적응, 야간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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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벙이부부 배낭(3.적응, 야간비행)

꺼벙이 2 1022
3. 적응, 야간비행

□ 3/28, 방콕 시내투어 : 유람선 - BTS- 캄티앙의 집(월요일 휴관) - 농카이 야간버스

〈적응, 비지땀〉
부스럭 거리며 물을 뒤 집어 쓰는 소리에 잠이 깼다.
옅은 호박 빛 커튼사이로 맹렬한 아침 해가 내려와 있다. 잠을 푹 자서 그런지 몸이 개운하다.
숙소를 나서니 온몸에 금방 물기가 배어 나온다. 이 더위에 적응하려면 하루면 족하겠지.
더위에 견디려면 많이 먹어야 한다. 야채샐러드와 여러 메뉴를 조합해서 든든히 속을 차린다. 더위를 겁내는 아내는 오히려 자신만만한 것이 의외다.

홍익에서 저녁 7시에 출발하는 농카이행 버스를 예약하고 짐을 맡겼다.

오후 7시까지는 시내투어를 하기로 했다. 수상버스를 타고 ‘차이나타운’을 거쳐 시내중심과 캄티엥의 집까지 천천히 돌아보기로 하다. 그러나 아침더위는 만만치 않다.
‘챠오강’ 선착장으로 가기위해 걷기 시작한 것이 방향을 잘 못 잡아 1시간 이상을 허둥대고 나니 손수건이 다 젖었다. 책을 뒤적이며 방향을 다시 잡아도 영 신통치 않다. 아내는 그 와중에도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며 잘도 견딘다.
bangra.JPG 선착장 찾아 가는 길에서 (웬 할미꽃?)

간신히 선착장을 찾아 유람선을 탔다. 햇빛도 가려지고 바람도 불어오니 정말 살 것 같다.
“여보, 다음이 ‘차이나타운’ 이라는 것 같은데”.
아내는 차이나타운에 다 왔다고 성화다. 다시 내려서 걸을 생각을 하니 도저히 용기가 안 난다.
마지막 종점 ‘싸판탁신’ 역에서 내렸다. 시멘트 벤치에 앉아 시원한 강바람을 쏘이며 사람구경을 한다.
무거운 눈 커플이 짓누른다. 배는 연실 들어와 무표정한 사람들을 내려놓고 또 싣고 떠난다.
울렁이는 강물과 들고나는 배를 바라보다 둘은 이내 오수에 빠졌다.

사람 사는 모습들을 보려던 차이나타운은 멀어졌다. 다시 BTS역으로 향한다.
매표소에선 티켓대신 동전을 교환해준다. 종점인 ‘싸판탁신’ 역에서 출발, ‘씨암’역 환승해 ‘아쏙’ 역까지 간다. 차체는 광고 시트지가 전면 도배되어 밖에서는 실내가 전혀 안 보인다. 실내는 아담하고 비교적 깨끗하다. 버스에 비하면 요금이 비싼 것이 이해가 간다.

타임스퀘어에서 더위를 식히고 다시 ‘캄티앙’ 하우스를 찾아 나섰다. 땀은 줄줄이 흐른다.
아내는 양산을 쓰고 잘 따라오더니 이내 지쳐간다. 그래도 더위에 적응해야 한다.
물어물어 대로변의 ‘캄티앙’을 찾았다. 그러나 손수건을 다 적셔가며 찾아간 우리의 목표는 굳게 문이 닫혀있다. 아, 야속한 월요 휴관이여. 준비 없는 발길은 정말 무겁기만 하다.

늘어진 중년부부는 으리으리한 은행건물 계단에 털썩 주저앉았다. 넘어진 김에 쉬어가자.
‘먼 이국땅 노상에서 땀에 젖은 빵을 먹어본 적이 있는가’ 추억이기에는 몸의 리스크가 너무 지나친 적응 이였다.

택시를 타고 숙소로 향하다. 기억에 남아있는 ‘만남’ 씨푸드가 그리워 찾아갔다.

“작년보다 더 통통해 지셨네요.”
“여보슈, 통통? ” 아내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것도 여성에게, 반갑다는 인사말 치고는 무심코 던진 말이 너무 무지막지하게 들린 것은 아닌지.(정중히 사과드립니다.)

그런 저런 연유인지 몰라도 그날 우리가 먹은 새우요리(쿵 톳 팟 프릭)는 걸죽한 소스에 야채, 카레향, 야문 새우 살이 조화된 맛의 진국임에도 불구하고 입천장을 찔리는 사고를 당했다.
날카로운 새우의 꼬리가 입안에서 퍼드득 살아 움직였다나.
말에 가시가 있다는 말은 그런 경우에 해당하는 말인지 모르겠다.

자칭 야외 라운지인 베란다에는 큰 날개를 달은 휀이 팽팽 돌아가며 열심히 바람을 끌어 모아 주니 그나마 다행이다. 창 너머로 보이는 물 빠진 운하에서는 까만 피부에 긴머리 남정네들이 그물을 던지고 있다. 시큼한 냄새가 올라오는 탁한 물에서 잠수도 하고, 타고 가야 할 배를 밀기도 한다. 우리의 눈에는 잠시 즐거움일지 몰라도 남정네들에게는 일상이려니.
다만 그물에 걸린 고기가 밥상에 아니 올라오기를 바랄뿐이다.

〈야간 비행〉
농카이행 VIP 버스는 30분이 지나서야 픽업이 왔다.
골목골목을 드나들며 남산만한 배낭을 들쳐맨 사람들을 굴비 엮듯이 모아서 여행사 건물 입구, 바닥에 대기시킨다. 아내는 비슷한 얼굴, 비슷한 말소리가 들리는지 여기저기 기웃거린다. 그러나 들리는 소리는 ‘쇠귀에 경 읽는 소리’뿐이다.
그나마 소리도 차츰 줄어간다. 지루한 기다림이 두 시간이 지났다. 둘러보아도 우리만한 짠빱의 배낭은 없는 것 같다.

코리안타임은 축에도 못 끼는 이들의 시간개념을 내 진즉 알고 있었지만 조금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 땅이 크니까. 더위를 먹어 조금 늦을 수도 있겠지.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
2시간이 지난 뒤에야 일행은 버스로 향한다. 그게 다는 아니다. 오히려 시작일 뿐이었다.

좁은 좌석에서는 롱다리가 절대불리하다는 것은 아내가 잘 알고 있다. 물론 내 키는 서양인들의 롱에 비하면 보잘 것 없다. 아내는 작은 덩치를 잽싸게 움직여 맨 앞자리를 선점한다. 장시간 이동과 수면, 두 마리 도끼를 잡는 데는 제격이라는 판단에서였다.

버스는 출발했다.
우리는 느긋하게 시트를 젖히고 까실까실하고 현란한 색상의 담요를 길게 늘였다. 잠은 오는지 가는지 오락가락 버스 안을 맴돈다. 시간은 어드메쯤 갔는지 모르겠다.
에어컨 바람은 발밑에서 솔솔 피어올라오는 것이 초겨울 홑바지 틈으로 파고드는 것 같다. 긴 바지를 덧입어 본다. 아내는 좌석에 푹 파 뭍혀 잘 잔다.

버스는 낮은 언덕과 곧게 벋은 길을 잘도 달린다. 늦게 출발한 2시간을 만회하려는 모양이다.
갓길로 운행하는 것은 그나마 예사다.
울컹, 몸의 움직임에 놀라 깨어보면 여지없이 큰 화물차의 뒤꽁무니를 들이받을 듯이 밀착해 있다. 멀리서부터 앞서가는 차를 향해 서치라이트 비추듯이 하이 빔을 올리면 모든 차량은 얌전하게 피양해 준다. 촘촘히 들어선 화물차의 행렬을 맹렬히 추격하는 운전자의 비행(?)솜씨는 가히 일품이다.

맨 앞자리에 앉아 두 눈으로 빤히 보이는 실시간 전투장면을 보는 내 약한 심장이 어찌 잠을 이룰 수 있으랴.
제대로 휴게소에 정차한 것은 한 번 뿐이다.
그러나 버스는 비몽사몽간에 느낀 도로변 정차 횟수만도 3번이 넘는다.
까만 피부에 기름으로 범벅이 된 세 명의 기사는 수시로 엔진룸을 열고 정비에 열중이다. 시간은 더욱 지체되고, 그럴수록 더 고속으로 날아가는 비행(飛行)버스에서의 밤은 하얗게 새어간다.

“ 방콕에서 비엔티엔으로 향하는 태국 모 여행사 버스가 과속으로 달리다 국경부분 고속도로상에서 트럭과 추돌했다고 합니다. 이 사고로 차안에 타고 있던 한국인 중년부부가.......”

TV 뉴스에 나오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내 인생 먼 이국땅 고속도로 상에서 쫑나는 것은 아닌지.

“여보, 일어나봐, 우리 보험 뭐뭐 들었지?”
-꺼벙한 세상-
2 Comments
겨울남 2005.04.11 23:22  
  글 정말 잘 쓰시는거 같아요.....
읽으면서 미소가 지어지는 따뜻한 글 감사합니다.
근데 정말 건강하신거 같아요....어느정도 연세가 있으신거 같은데 12시간 야간 비행을 무사히 마치시다니.
대단하십니다!!!
겨울남 2005.04.11 23:22  
  추가로 사진도 많이 올려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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