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을 넘어 미얀마로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골든트라이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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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을 넘어 미얀마로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골든트라이앵글

베낭 맨 가족 0 845
♣ 국경을 넘어서 (2005년 2월 1일 화요일  맑음)
CHIANGMAI - Hot spring(온천) - CHIANGMAI - CHIANGRAI:White Temple (왓롱풋)- Mae Sai(태국 국경마을) - ThaKhilek(타킬렉:미얀마 국경마을) - Golden Triangle- Chiang Saen : Wat Phra That Chedi Luang - CHIANGRAI - Mae Suay:한국선교원- CHIANGMAI

  빨리 일어나는 새가 먹이를 발견한다던가?  바쁘다, 바빠.  태국 국경을 통과하는 날이니 서둘러야한다.  6시에 기상 - 7시 25분 호텔 출발.
  가이드겸 기사는 영어 닉네임이 에(기사본인의 발음표기 Air)란다.  태국인으로는 드물게 덩치도 좋고 인상도 푸근하며 성실해 보여서 안심이 된다.  사실, 이런 점들이 걸려서 나 홀로 자유여행을 많이 하지 않던가?  오늘의 예감이 좋다.  웬지 특별한 추억이 될 것 같은 마음이다.
  그러나 남편과 나의 으르렁거리는 듯한 대화가 오간다.  성격이 급해서 설명하기보다는 알아서 알아듣기를 원하는 남편의 스타일 때문에 평소에도 자주 이런 광경이 벌어진다.  최대한 부드럽게 신랑에게 제의한다.  특히 한국 사람이 강한 악센트로 얘기하면 싸우는 줄 아니까 최소한 오늘 만이라도 말을 부드럽게 표정도 부드럽게 해 달라고.

  1992년 배낭여행 자유화가 선언된 지 얼마 안 되어서 방콕으로 첫 번째 배낭여행을 했었다.  그 때 전해들은 말 중에 한국인들이 태국에 와서 제일 먼저 한 일은 부동산 투기로 방콕의 땅값을 엄청나게 올려 떼돈을 벌었음에도 손에 쥐고만 있지 베풀려고 하질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인은 욕심쟁이 놀부 같은 모습으로 각인되어 있다는 것이다. 
  한국텔레비전에서 방콕의‘잠롱 시장(님)’을 소개하면서 소시민을 위하는 청렴한 사람이라고 했었다.  그 때문에 태국에 대한 나의 이미지는 너무나 좋았었다.  현지에서 만난 태국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예외적으로 공항에서 내가 탔던 택시 기사는 바니 게스트하우스는 찾아주지도 않고 모르겠다면서 생면부지의 깜깜한 길에 날 내려두고 돈만 챙기고 가버렸으며 돈만 밝히는 불친절한 게스트하우스 아줌마도 있었고 시설은 전쟁 후의 난리통속 같은데 돈만 밝히는 스쿠루지 같은 아줌마도 있었다.
  그럼에도 내게 태국은 항상 웃음과 여유로 다가온다.  그들의 얼굴에 녹아있는 웃음과 부드러운 음성으로 대화하는 목소리들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앞자리의 에도 표정관리하기가 힘들어 보인다.  웃지 않으면 화난 것 같은 표정의 한국인들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웃고 살자.  자기야, 화나더라도 억지로 웃어. 
  연신 하품을 내뱉는 아이들은 거의 반수면상태다.  푹 자라고 다독여놓고 나니 졸음이 밀려든다.  에의 옆에 앉은 남편도 주유소에서 주유를 한 후 몇 마디 나누더니 잠에 빠져들고...

  깨우는 소리에 눈을 뜨니 고속도로 휴게소 같다.  그런데 민예품 상점과 관광버스들이 많네.  Khoon Jae National Park 지나서 위치한 Hot spring이란다.
  8시 30분이니 치앙마이에서 1시간가량 걸린다.  우리의 온천을 생각했더니 피식 웃음이 나오네.  진흙이 썩는 것 같은 냄새가 나고 실제로 온천 속에 진흙이 많아 그걸 퍼내고 있다.  콸콸 끓는 건 아니고 김이 오르는 정도.  철책을 두른 온천이 두 개, 돌로 둘레를 쌓은 작은 온천이 1개 있고 둔덕을 내려가면 냇물이 흐른다.  냇물과 온천이 섞여서 김이 오르는데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한 아들 녀석 손가락을 넣더니 낮은 비명을 울린다.  그걸 보던 계란 파는 동네 아줌마들 웃음을 억누른다.
  둔덕 너머의 마을 풍경이 볼 만하다.  한가하게 소가 풀을 뜯고 있고 논두렁을 지나면 푸르른 산이 마을 뒤를 받치고 있다.  서양인들은 시큰둥한지 눈길 한 번 주고 가는 그곳에서 우리는 30분이나 있었다. 
  이유는 있었지.  메추리알은 5분을 계란은 10분을 익히란다.  그러니 익힐 수 밖에... 앙증맞게 만든 나무 바구니에 줄을 매달아 막대기로 온천수에 내려놓고 기다리는데 아이들은 정말 즐거워했다.  거의 완숙에 가까운데도 부드럽고 퍽퍽하지 않고 고소하다. 따로 장을 주는데 그냥 먹었다, 너무 맛있어서.
  한 가지 더 맛있는 것을 발견 - 단소 크기정도의 대나무속에 찹쌀을 넣고 찐 카우라암인데 북부지역에서 주로 먹는단다.  코코넛에 하루 동안 불린 쌀에 소금을 간하고 쪄내었다는데 은은한 대나무 향까지 더해져 한 끼 식사로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우리나라에서 비싼(대추,잣,인삼을 넣어 1인분1만원) 대나무통 밥보다 훨씬 쫀득거리는데 고급식당에서라면 꽤 비싸게 팔수도 있을 것 같다.  껍질도 잘 벗겨져 편리성까지 더하니 금상첨화.  식으면 떡 같아서 더 맛있고 먹기도 편했다.  이 때부터 우리는 먹자 여행을 시작한다.

  북부로 갈수록 한결 여유로운 풍경들이 펼쳐진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지나면 다시 또 멀리 산이 보이는 완만한 평야와 논에서 모내기를 하는 농부들,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소와(물소 종류로 Cow라고 부른다고 가이드가 말한다.)  Longan(람야이:용안) 농장들이 이어진다.

  Mae Suay에서 세 번째 먹거리 발견 - 화장실이 급했던 에가 길거리 과일가게(?)앞에 섰다.  화장실 정말 특이하다.  그래도 우리나라 노점상들보다 서비스 정신이 좋다.  산길에 위치한 터로 과일가게 뒤의 양철로 막아놓은 곳이 화장실이다.  그런데 다들 소변만 보는 건가?  모두들 화장실을 다녀오고 나니 식욕이 발동한다. 
  태국어로 풋싸(Poodza)라고 부르는 과일이 신기하다.  유치원생 아이들의 주먹만한데 설명서를 보니 녹색이고 맛은 사과 맛이 나는  타이 애플이라고 부른단다.  그런데 속은 딱딱한 자두모양의 씨가 들어있다.  약간 단맛이 나는 상큼한  더위에 지쳤을 때 좋은 것 같다.
  그 옆에 숯불에 구운 노랗게 옥수수(가우 풋)도 놓칠 수 없어.  우리나라에서 찌거나 구워 파는 것은 껍질이 입속에 남을 정도인데 이것은 약간 덜 구운 듯 한데 단맛이 강하고 부드러워서 정말 신선함을 느끼는 오묘한 옥수수다.  맛있어요.  주위에 치앙라이에 가는 사람이 있으면 꼭 숯불에 구운 것만 사먹으라고 강요할거다.  싱싱한 걸로.
 
  치앙라이에 들어서자마자  CHIANGRAI:White Temple(왓롱풋)에 도착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마무리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백색사원이다.  10시 30분 정도인데도 작열하는 태양아래서 너무나 아름다웠다.  하얀색의 반짝반짝 빛나는 크리스탈이 더해진 것 같다고 할까?(실은 유리로 장식했대)  지금은 무료지만 곧 입장료를 받을지도 모르지.  기념품점에서 엽서를 사려고 했더니 너무 비싸서 포기했으니까.  그런데도 태국인들은 셔츠, 액자, 기념품들을 많이 사더라구.  우리와는 다른 불경심을 가졌으니 이해가 된다.  예쁜 사진을 남기고 메사이로 향했다. 

  드디어 12시경(치앙마이에서 4시간 30분-원래 3시간이면 오는데 우리가 먹는데 정신 팔려 서리)에 Mae Sai(국경마을) Wang Tong Hotel에 도착했네. 
  누군가 이곳에 온다면 뜯어 말릴거다.  여기에서 절대 뷔페 먹지 말라고.  들어가서 보니까 전부 패키지로 온 여행객들이 천지인데  음식에서 머리카락 나오고 세상에서 비싼 돈(어른100밧, 아이50밧) 주고 먹어 본 중에 제일 먹기 싫다.  바로 옆 다리 건너 미얀마 아이들에게는 미안하지만.  한국아줌마의 식단은 컵라면, 김, 멸치볶음 - 위대한 대한민국의 식단에 얼굴을 찌푸리는 종업원들. 하긴 그게 뭐 어쨌다고.  나만 맛있으면 되지?  단 3~4일도 못 견디나? 
 
  화려한 색깔의 젤리를 왕창 가져온 우리 아이들 울상이다.  싫어하는 음식보다 좋아하는 음식이 더 많은 우리 아이 둘 - 밥알 하나 남기면 10년 동안 소가 된다고 믿는 아이들인지라 어찌하지를 못하네.  결국은 시식을 한 내가 결단을 내린다. 
    “ 으~윽 이게 정녕 젤리란 말이냐?”
  무심심하고 입안에서  이상하게 텁텁.  요주의하며  음식을 고른다.  그나마 국수를 양념해서 먹으니 제일 낫네.  털털하게 생긴 우리의 가이드는 우리의 선심에(식사 대접하는 건 대한민국사람들의 순수함의 발로인데 에가 마음에서 감동했나보다) 마음이 무거워서 밥을 (배가 부르다며 자리를 떴다)  못 먹나 했더니 순전히 오해였으니.  태국인도 맛없는 밥은 한국인도 맛없다.  진리다.
  그곳에 우리와 같은 비행기를 탔던 분들 다 모였네.  같은 여행사의 패키지 여행자들도 보이길래 눈을 맞추며 웃어주려 애를 쓰는데 눈치를 못 챘나?  어깨만 스치며 지나쳤다.  이제부터 같은 코스를 도니 미얀마의 고산족 마을에서도 또 만났다.

  여기서 엄청난 실수를 했다.  가이드보다는 기사인(사장님) 에가 미얀마에서는 사진을 찍을 수 없다네.  이상하다?  언제 그렇게 됐지?  그럼, 어쩔 수 없지.  미얀마에 들어가서 속이 탔다.  하지만 마음속에 담아두었으니 더 오래 남겠지.  독일 브란덴부르크 문에서도 필름이 없어 사진 한 장이 없는데 그래서인지 독일을 생각하면 그것만 떠오르니까.  지금도 미얀마를 생각하면 눈 앞에 슬라이드처럼 이어지는 게 똑같은 거겠지.
  카메라 2개를 차에 얌전히 모셔두고 수속을 시작합니다.  이곳에 간만에 온 우리의 기사 왔다갔다 정신이 없습니다.  자신의 여권을 복사하고 외국인인 우리의 태국 측 수수료를 자신이 냅니다.  통과하려던 순간 다시 복사하는 곳으로 달려갑니다.  우리 아이들의 여권을 복사합니다.  태국측 담당자가 우리 아이들을 에의 아이들로 둔갑을 시킨 겁니다. 
  우와~! 신난다~~!!  그래서 신랑과 나만 ONLY $5을 미얀마측에 내고 입국합니다.

  Thakhilek(타킬렉:미얀마) 과 Mae Sai는 다리로 연결되어 있고 다리 아래 메콩강 줄기가 동네 냇가처럼 태국과 미얀마를 가르고 있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수많은 실업자들이 다리난간에 기대있고 나이보다 발육이 더딘 언니가 인형처럼 작은 아이를 얇은 천 조각에 의지해 업고(?) 있다.  마치 방글라데시에 다시 온 듯 착각이 든다.  우리 아이들은 엄청난 충격을 먹은듯하다.  에 아저씨를 쫓아가느라 정신이 없는 것이.  그나마 뚝뚝 기사들이 위대해 보인다.  살려고 하는 의지가 보이니 말이다. 1시간에 100밧씩 2대를 빌렸다.

    먼저 하얀 코끼리가 지키고 있는 사원에 갔다.
 ‘이름은~ 몰라요~.  입장료도 없어요~.
(장윤정의 어머나 버전으로 혼자서 불러본다) 우리 아이들은 좋아하더군, 하얀 코끼리라고.
  이번에는 양곤에 있는 쉐다곤을 그대로 copy한  쉐다곤사원에 도착(그렇게 부르던데 맞나?).  신발을 벗고 신발장에 넣는데 눈에 띄는 글씨 2밧-에가 기도하라고 꽃을 사준다: 꽃파는 아이, 아줌마가 너무너무 끈질겨 안하고는 못함).  그들이 하라는 대로 생일인지, 그날에 맞는 곳인지는 모르나 12개의 제단들이 빙 둘러있다.  아마도 생일이 맞나?  그날에 맞는 곳이라고 영어로 설명하던데 그럼, 에는 왜 옆에서 기도를 했지?  영원히 풀리지 않는 의문이다.  어쨌건 꽃을 바치고 촛불 밝힌 신상에 인사를 하고 신상에 물을 붓고 입구 쪽에 있는 북을 3번 치는 것으로 의식이 끝났다. 
  허나, 이게 끝이 아니니.  작은 대나무새장에 새를 잡아넣었는데 사서 방생하란다.  우리 딸 끈질기게 사달라고 한다.  12살 정도의 남자아이가 끈질기게 우리 딸 뒤를 따른다.  하지만, 난 이런 걸 싫어한다.  억지로 가두었다 풀어주라니?  그새는 날아가도  다른 새가 또 그곳에 갇힐 것이니 돈 몇 푼을 그 아이 손에 쥐어준 들 무슨 소용 있으랴.  잘됐다,  사진도 못 찍으니 엽서나 사가리라.  으~ 비싸다.  50밧에. 절대로 에누리가 없다.
  대체로 패키지들은 이곳에 오지 않는다.  어디로 가느냐?  골프장과 세트로 마련해 놓은 Rigina마을(골프장, 민속촌, 민속촌 옆 카지노)로 간다.  말이 민속촌이지.  나무 울타리가 둘러 처진 안쪽은 언덕위로 양쪽에 Akha(아카,라후,리수 종족은 우리와 사촌격으로 비슷한 풍습들이 많다고 한다)와 Padoung Village(빠동 long neck)족이 사는  집들이 5~6채 정도 있고 가운데 계단을 오르면 가장 높은 곳에 정자가 있다. 
  그곳에서 고용되어 팁으로 살아가는(아마도) 고산족들이 춤을 춘다.  패키지 팀과 함께 입장해서 춤을 추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아카족은 아주 도도하나 일부러 그런 건지 허리띠에 지폐를 꽂고 있어서 씁쓸한 마음이 더했다 . 
  기다란 목 때문에 몸의 불균형을 이루는  빠동족은 너무나 단순한 동작을 반복하며 너무 여려보였다.  맨 앞에서 5살 정도의 너무나 예쁜 아이가 노래와 춤을 따라하는데 눈물이 나려고 한다. 똑바로 쳐다보기가 미안했다.  가이드의 말로는 그 아이가 마지막 세대라니 얼마나 다행인가?  아이는 쇠목걸이를 하지 않아도 되는 거겠지.  하지만 그뒤에 이어진 말은 충격적이다.  목 때문에 제대로 음식물을 삼키지 못하고 영양상태가 좋지 않아 단명 한단다.   
  춤이 끝나자 의례적인 웃음으로 관광객과 사진을 찎는다.  그들은 팁이 있어야 살겠지.  하지만...  이럴 때는 카메라가 없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다만, 그 예쁜 아이에게 아무것도 줄 것이 없어 미안했다. 

  다시 Tha Khee Lehg으로 돌아왔다.  이제 다리를 다시 건너 태국으로 들어가야 한다.  다시는 올 수 없겠지?  혹시 알아?  예의 그 암울한 눈빛들을 피하면서 걸어오는데 정말 너무나 작은 아이가 동생을 업고 있다.  우리 아이들에게 돈을 주고 오라고 했다. 
  더럽다고 피하거나 하지는 않으니 아이들은 정말 순수하다.  이번에는 온몸이 흙빛으로 보이는 아이가 있다.  이번에도 돈을 주고 오라했다.  그러나 그 아이들의 얼굴은 무표정 그 자체다.  그 어떤 감정의 변화도 없다. 
  그러나 이곳에도 천진한 아이들의 모습이 있다.  바로 다리 아래에서 팬티만 입고 진흙빛의 강에서 깔깔대며 수영을 하는 아이들이다.  눈을 마주치니 부끄러워 물로 뛰어들고 만다.  서양인들도 그 아이들이 신기한지 캠코더를 들이대고 있다.  얼마나 관광객들에게 가이드북에서 걸인들에게 돈을 주지 말라고 세뇌를 시켰는지 모두들 부러 눈을 마주치지도 않고 무신경하게 지나친다.  아주 작은 돈일지라도 그들에겐 졸아붙어 있는 위장에 무언가라도 공급할 수 있지 않을까?  고산족보다 이 아이들이 더 애처로워 보여서인가?
 
  국경에서 사진 한 장을 못 찍었으므로 재촉하는 에를 세워두고 국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30분 거리의 Golden Triangle로 간다.  메남콩(메콩강)이 왼쪽으로 뱀과 같은 모습을 보이며  점점 넓어진 듯 싶자 상가들이 있다.  오른쪽 언덕에 있는 사원으로 간다.  바로 메남콩의 삼각주의 모습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전망대도 있었다.  많은 패키지들은 보트를 타는 곳에 사람들을 내려주는데 개인적으로 간 우리는 행운이다.
  “야? 신기하다, 아빠.  삼각형이예요.”
  “그래, 엄마 아빠도 신기하다.”
  “근데 마약과의 전쟁이 뭐예요?”
  “우리가 어제 봤던 양귀비에 대해 이야기 해줬지?  이 곳은 그 꽃을 많이 재배해서 비싼 값을 받고 파는 곳이야.  그런데 그것들이 사람들을 병들게 한단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아니 머릿속까지 뒤죽박죽 만들어서 사람을 난폭하게도 하고 바보처럼 만들어 버리게도 하는 거야.  그러면 어떻게 될 것 같아?”
  “이상할 것 같아.  그걸 먹으면 그렇게 되면 안 먹어야지.”
  “맞아, 바로 그래서 그걸 없애기 위해 싸우는 거야.  그래서 전쟁이라고
  부르는 거고.”
 
  바로 이래서 세계의 곳곳을 다니면 작은 감동들이 밀려드는 것이다.  책에서 봤으나 내 눈으로 확인한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이던가?
  그러나 우리의 공주는 벌써 다른 곳에 한눈이 팔렸다.  어찌 그 아저씨는 그리 솜씨가 좋단 말이더냐?  나도 갖고 싶다.  그런데 너무 비싸다.  정말 비싸다.  깍아주지도 않는다.  Never.  그게 무엇이냐?  허면 - 나무로 새를 깎고 색을 칠해서 꼬리가 바람에 돌아가는 바람개비 모빌 - 이라는 것이다.  울 듯 말듯 화가 난 공주님을 에가 달래서 보트를 타러 간다.
  언덕길을 내려와 보트선착장으로 갔다.  우리가 간 곳은 태국인들이 라오스 쇼핑을 다녀 오며 손에 손에 술과 담배를 들고 함빡 웃고 있다, 면세지역이란다.  50인승 정도의 배가 한 척 들어오는데 선장 쯤 되는 남자와 에가 잘 알고 있는 듯 손을 들어 반갑게 인사한다.  실~망~~~. 
  저렇게 배가 크면 스피드가 없잖아!  아니야!  6인승 작은 보트를 타고 구명조끼를 입고 탈거란다.  나와 딸아이가 몸무게가 가벼우니 앞에 타고 아들과 남편이 뒤에 그리고 배의 꼬리부분에 선장이(?) 탔다.  정말 물 색깔이 흙빛이다.  삼각주를 향해 앞으로 나아간다.
  “야! 신난다.”  원래 물을 싫어하는 나도 신이 났다.  삼각주를 지나니 왼쪽에 호텔처럼 보이는 호화로운 건물이 있다.  그곳이 미얀마가 외화를 벌어들이는 카지노와 호텔이란다.  그 앞에서 배를 멈추고 있는데 중국 깃발을 단 어선이 지나간다.  배가 낡았고 선원들의 차림새도 빛바랜 70년대 흑백사진처럼 우중충하다.  배를 멈추고 있으니 내 눈이 착각을 일으킨다. 
공주가 “엄마 섬이 움직여”란다. 
              “나도 그래”
  물을 바라보니 이 배가 뒤집히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감이 서서히 밀려드는데 고맙게도 배가 우회전을 하고 돌아갈 준비를 한다.  또 신나게 달렸다.  그래봤자 5분.
 
  라오스 땅 앞은 준설선과 작은 배가 움직일까?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낡아서 부서질 듯한 모습으로 라오스국기도 처량하게 정박하고 있다.  다시 또 5분간 우리배가 멈춘다. 
  왼쪽 라오스 땅에 방갈로같은 억세 지붕의 정자가 몇 채 모여 있는 쇼핑센터가 보였다.  그곳에 다녀오는 코스도 있는데 우리는 거절했다.  입장료가 20밧이란다. 

  20여분을 타고 선착장으로 오는데 입이 댓발은 나올듯한 우리 신랑 - 한 2시간은 타야 재미있는데... 보트에서 내려 사무실로 올라가니 물수건을 한 장씩 준다.  아마도 오염을 막기 위한 것이리라.  그곳에도 바람개비 새들이 춤을 추는데 단합을 했나?  절대로 못 깎아준단다.  에이구~

  3시 48분 출발 - 4시 3분 Chiang Saen :Wat Phra That Chedi Luang도착. 
  마치 아유타야에 있던 사원을 보는 듯하다.  조금 더 고혹적이라 할까? 
탑을 둘러서 노란 황금 옷을 입혀놓았는데 우리 공주는 탑도 옷을 입었다고 신기해한다.  불상이 모셔진 곳은 제단을 제외하곤 벽도 없이 기둥만 서 있다.  그래서인지 새들이 많이 날아드나 보다.  천정에 실로 만들어진 듯한 그물들이 쳐져있다.
  아니 이럴수가?  뭐라구?  내가 이렇게 흥분하는 이유는 제단으로 올라가는 옆 계단에 No Enter Women.  기독교도 불교도 이슬람교도 또 어떤 교가 있을꼬?  어쨌든, 모든 종교에서 남녀차별이 분명히 존재하는구나. 

  부지런히 CHIANGRAI로 가야한다.  치앙라이 경찰서를 찾아간다.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로터스게스트하우스를 찾아갈 것이다.  한국에서 가져온 아이들옷을 선교사님께 전해달라고 맡기려 한다.  태사랑에서 고산족 아이들에게 필요하다고 해서 가리고 가려서 가져왔는데 꼭 전하고 가야한다.  그게 아니면 CHIANGRAI는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경찰서 앞길로 들어서서 ymca가 있고 여기까지는 순풍에 돛단듯한데...
  남편:“아니, 또 전화번호가 없단 말이야?”
  나 :“그래도 약도는 있잖아, 다시 한 번 잘 찾아보자.  저기 ymca에 가서
        물어보자”
  남편:“모른대.  다시 한 번 돌아보자.”
  에 :“여기가 내 와이프(에의 부인) 고향이다.  골목길을 다시 돌아보자. 
        저기 아저씨~, 저기 아줌마~, 저기 할머니~, 저기~. 저기~~~”
  남편:“안되겠다.  이러다 너무 늦겠다.  그냥 가자.”
  남편:“저기 여행자센터에 가보자.”
  모두:“그냥 가자.”
  에 :“Mae Suay 한국선교원에 들르자.”
 
  치앙라이 로터리에서 신호에 걸렸다.  앞 지프트럭에 앉은 아이들이 우리를 보더니 수줍어하며 뭐라고 떠들어댄다.  우리 아이들의 모습이 신기했나보다.  왜냐하면 모두들 패키지로 지나쳐 가버리니 볼 수가 없고 이곳에서 머무는 외국인들도 모두 학생이거나 일반인들이 아니던가?  사진을 찍으니 수줍어하면서도 웃어준다.  오랫동안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맹라이 왕도 우릴 배웅하고 있군(King Mengrai Mounment).

  우와~~~!!!  에가 엄청 배가 고팠는지 볶음밥을 허겁지겁 맛있게 먹고 있다.  Mae Suay의 노천식당.  길가에 몇 개의 식당들이 쭉 늘어서 있는데 처갓집을 오가면서 자주 들르는지 우리를 데리고 들어간다.  오늘 우리의 먹자 여행의 화려한 마무리다.
 ✶치앙마이 위쪽에서만 먹을 수 있는 짭짤 매콤한 순대 
  싸이오와 - 1접시
 ✶한국에서 체인점을 열고 싶게 맛있는 숯불에 구운 닭고기 
  카이(까이) 양  - 1접시
 ✶대나무 잎에 싸서 찐 삼각형 사각형돼지고기 찜 
  루탕(딴) - 2개
 ✶돼지껍질이 쫄깃한 돼지고기 구이 
  모양- 1접시
 ✶개운한 맛이 일품인 야채 볶음밥
    카오팟 - 대1접시, 소3접시
너무나 맛있게 먹는 우리가 예뻤나?  마지막에 추가로 시킨 볶음밥은 커다란 접시에 듬뿍 담아주었다.  옆에서 부지런히 투명하고 맛은 밍밍한 팜플릿(팜나무Palm tree 종려나무 열매로 팜유의 원료)을 깎는 유쾌한 아주머니들과 에의 수다를 들으니 아련하게 어린시절의 어떤 여름 날 밤이 떠오른다.  식탁 밑에서 맛있는 음식을 기다리는 느긋하고 조용한 고양이까지 내 추억의 한 부분이었던 듯 자연스럽다.  맛있는 태국의 껌을 씹으며 돌아오는 길이 행복하다. 

  오전에 Mae Suay를 지나치다 건너편에 한국 선교원 간판을 봤었다.  에가 알고 있으니 걱정 말라며 그곳에 들르잔다.  깜빡 잠이 들었다.  깜깜한 대문을 들어서니 오른쪽으로는 예배당과 작은 건물이 있고 왼쪽으로 불이 켜진 건물과 그 건물을 엇갈려 뒤쪽에 가정집인 듯한 건물이 불이 켜져 있다.  앞에 있는 건물에 가보니 숙소인 듯한데 아무도 없다. 
  뒤쪽 건물로 달려간다.  성경 공부중인 듯 낭랑한 목소리가 울려나온다.  젊은 태국의 청년과 아가씨들이 앉아서 공부에 열중하고 있다.  문턱에 앉아 있는 청년을 작은 소리로 부른다.  까올리를 찾으니 가녀린 어린 듯한 아가씨가 나온다.  이곳에서 봉사를 하고 있나보다.  너무나 작은 걸로 생색내기가 싫어 조용히 전해주고 돌아오는데 너무 고마워하는 아가씨의 눈빛이 자꾸 뒤돌아보게 한다. 
  그러면서 후회가 밀려온다.  신랑이 뭐라고 하더라도 한 박스는 가져왔어야 하는데... 챙겼다가 다시 꺼내놓고 온 물건들이 아깝다.  목적을 달성하게 해 준 에에게 진심어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래도 맘씨 좋은 에는 부끄러운 듯 웃고만 있다.
  우리가족은 무신론자다.  바꿔말하면 모든 종교의 좋은 면은 모두 인정한다.  그랬기에 태사랑의 좋은 생각에 공감을 한다.  그래서 더욱 아쉽다.  더 가져왔어야해..... 

  어둡고 구불구불한 산길을 오랜 시간 운전한 에가 휴게소에 도착하니 많이 지쳐 보인다.  음료수와 아이스크림을 사서 먹고 또 다시 고속도로를 달린다. 
  드디어 호텔에 도착하니 9시 36분이다.  거의 12시간을 운전을 했으니 대단한 체력의 소유자인 에다. “당신은 슈퍼맨이에요.” 그 말에 웃음을 터뜨린다. 
  오늘 우리가 지불한 돈은 에가 미얀마에서 쓴 돈과 주유비다.  녹색지대 사장님은 팁은 개인적판단에 맡긴다며 꼭 줄 필요는 없다고 하셨지만 진정 고마운 마음에 있으면 더 주고 싶을 정도이다.  헌데 남은 돈이 얼마 없어서 팁을 많이 주지 못했다.  60밧만. 
  에의 얼굴은 웃고 있는데 눈에는 서운함이 살짝 비쳐간다.  거듭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에는 우리가 떠나기 전에 다시 전화할 기회가 생기면 전화하라며 환한 미소를 남기고 멀어져간다.

  그런데 남편과 에 - 두남자가 뭔가 씌였나?  방으로 돌아와 씼으려고 하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엥? 누가 전화를?” 바쁘게 나가는 남편.  이유인즉 주유비를 계산하지 않은 것이다.  이 야밤에 어딜 가서 환전을 하겠는가?  결국 24시 환전시스템을 갖춘 고 수수료로 악명 높은(?) 호텔을 이용했다.  환전 수수료 무려 300밧.  꺼억!!  숨넘어간다.
  에의 그 서운한 눈빛이 맘에 걸렸던 신랑은 주유비도 생각해서 더 주고 팁도 100밧을 더 주고 왔단다.  “잘했어, 자기야.  안 그래도 그렇게 보냈던 게 영 마음에 걸렸는데 차라리 잘 됐다.”

  녹색지대 게시판에 자기를 칭찬하는 글을 에는 읽어보았을까? 
한글을 모르니 읽었을 리가 없겠지.  아이들도 에 아저씨랑 같이 했던 시간들이 정말 즐거웠다고 한다.  다시 가면 정말 만나고 싶단다.

  사랑하는 얘들아!  우리도 그런 사람이 되자.  좋은 꿈 꿔,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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