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과 함께 하는 북경여행기(1)
- 프롤로그 -
누군가 내게 ‘왜 사느냐?’고 묻는다면 난 이렇게 대답할 것 같다. ‘여행을 하기 위해서’라고. 실제로 난 늘 [여행]을 꿈꾸며 산다.
그 ‘낯설음’과 ‘설레임’을.
내가 존경하는 [오마이뉴스]의 김남희 기자님은 이런 글을 남긴 적이 있다.
“길은 위대한 학교였으며,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스승이었다. 세상에 나온 모든 목숨이 귀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누구에게나 배울 점이 있음을, 나누며 사는 삶이 가치 있는 삶이며 사람들은 누구나 소통을 꿈꾼다는 것을 길은 내게 가르쳐 주었다.”
지금도 이 분은 스스로 ‘이렇게 죽을 수도, 또는 이렇게 살 수도 없다’고 말한 서른네살의 나이에 방 빼고, 적금 깨서 배낭을 꾸렸다. 그리고 인생의 전반인 마흔까지는 유목민으로 살겠다며 낯선 길 위를 헤매고 있다.
앞에서 말했듯이 난 늘 여행을 꿈꾼다. 하지만 동시에 늘 현실과 부대끼며 산다. 나에겐 출근해야 할 학교가 있고, 가르쳐야 할 학생들이 있으며, 보살펴야 할 딸과 어머니가 있고, 함께 꿈을 나눠야 할 아내가 있다.
결혼하고 아이가 없었던 때는 아내와 의기투합하여 라오스, 캄보디아, 태국 이런 나라들을 헤매고 다니는 것도 가능했는데, 최근 3년 동안은 ‘임신-출산-육아’에 이어 지금은 둘째까지 들어선지라 해마다 근신의 날들을 보내며 살았다.
답답함.
잠시나마 꿈을 접어야 하는 이런 답답한 상황에서 한줄기 빛과 같은 존재가 있었다면 그것은 [해양소년단]이었다. 작년에 지금의 학교로 부임하면서 전임자가 내던지는 바람에 엉겁결에 떠맡았는데, 항상 ‘부담스러움’이란 마음의 짐을 안고 가야 하는 문제가 있긴 해도, 학생들을 끌고 강으로 바다로 다니면서 배타고 노젓는 생활은 나에겐 그 자체가 삶의 활력이었다.
올해는 세계화의 추세에 발맞추려는지 연맹에서는 여름방학을 맞이하여 [중국문화역사탐방]이란 거창한 이름의 행사를 준비하였기에 평소에도 그랬던 것처럼 부리나케 희망자들을 끌어 모아 보니 모두 24명이었다. 그리고 결국 이들과 함께 참여하였다.
- 출발 -
2005년 8월21일 일요일 아침 5시40분 기상. 일요일 아침에, 그것도 방학 중의 일요일 아침에 이렇게 일찍 일어난 것이 얼마만인가? “내일 지구가 망한다 해도 난 오늘 두 그릇의 저녁식사를 한다.”는 평소의 신념에 따라 아내가 준비한 아침을 먹는데 너무 새벽이라 그런지 입맛이 하나도 없다. 그래도 그릇을 말끔히 비우고는 아내가 운전해 주는 차를 타고 학교로 달려갔다. 7시15분 도착.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학생들 중 몇몇은 엄마와 함께 벌써 나와 있다. ‘그래도 오늘은 다행히 지각을 안 하는구나.’ 오늘처럼 학부모님들도 다 나오시는 날 그래도 명색이 선생님인 ‘내가 지각을 하면 이게 무슨 망신일까’ 싶어서 나름대로는 엄청 서둘렀는데 그 보람이 있다.
조금 있으니까 엄마 손을 잡은 학생들이 속속 집결하고, 곧이어 의정부에서 역시 이번 행사에 참가하는 학생들과 선생님을 태운 관광버스가 들어 왔다. 먼 길 떠나는 자녀들을 바라보는 학부모님들을 뒤로 하고, 버스는 인천공항을 향해 출발한다. 7시40분.
- 비행기 연착 -
휴일 아침의 시원하게 뚫린 도로를 달려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시각은 9시10분. 우리들을 기다리는 한국해양소년단 경기북부연맹의 부사무국장님과 여행사 관계자를 만나서 이번 여행에 필요한 사항들을 전달받고, 이어서 학생들과 더불어 CHECK-IN. 49번 GATE로 이동하는 것까지 시간도 여유롭고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그러나... 잠시 후 우리 앞의 스크린에 이런 글이 나타난다.
"CZ686 is delayed..."
하늘은 쾌청하여 곧 가을이 올 것 같은 모습인데 연착이라니… ‘참! 살다보니 별일이 다 있구나’하고 있는데, 순간적으로 떠 오른 생각은 ‘고장’. ‘지금 얘네가 뭔가를 고치고 있구나.’ 갑자기 항공기와 관련된 각종 사고들이 떠오르면서 왠지 모르게 불안해진다.
아무튼 일은 벌어진 것이니 어쩔 수 없고, 학생들을 이해시키고 남은 시간을 때우는 것이 문제였다. 더러는 면세점에 들어가서 아이쇼핑도 하고, 또 더러는 텔레비전 앞에 앉아서 가수들 춤추는 것을 보고 있지만, 그렇더라도 무려 1시간30분이나 연착하는 비행기를 기다린다는 것은 고역이다.
시간이 갈수록 학생들이 지쳐가는 모습은 역력하고 이러다가는 중국에 도착하기도 전에 지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난 공연히 공항 내를 배회하며 사진이나 찍고, 흡연실이나 들락거리고 하다가 담배 한 보루와 음료수 하나를 샀다. 수정과 캔 하나가 1,500원. 엄청난 가격에 기겁하며 다른 메뉴를 보니 김치우동이 6,000원이다. 여기서는 우동 속에 금가루를 넣는가보다.
- 기내 -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으려니 이윽고 비행기가 온다. 중국남방항공의 CZ686기. 설레는 마음으로 탑승. 그러나 자리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니 비행기가 참으로 작다. 게다가 냉방이 안 되는 것인지 아니면 약한 건지는 모르겠는데 암튼 내부가 답답하고 찜통이다. 시설도 참 열악해서 명색이 국제선임에도 다른 비행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스크린조차도 없어서 비상탈출교육을 할 때는 방송에 따라 승무원들이 나와서 시범을 보인다.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모습이다. 지난번에 보니 제주도 가는 비행기에서도 저런 모습은 사라졌던데…
아까부터 연착 때문에 마음이 불안했는데 그래도 비행기는 무사히 이륙한다. 이어서 기내식 등장. 짜잔~! 출발 전부터 그러니까 학교에서 오리엔테이션을 할 때부터 학생들이 내심 큰 기대를 가졌던 것은 바로 기내식이다. 비행기 안에서 공짜로(사실은 공짜가 아니라 비행기 삯에 다 포함되어 있는 건데도 아이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밥을 먹는다는 사실 자체를 매우 신기해했다. 메뉴는 뭘까? 어떤 맛일까? 등등.
앞에서 승무원이 밥을 나눠주는 걸 보며 학생들 중 몇몇은 내게 “돈을 내야 하느냐?”고 묻는다. (전에 다 설명한건데도 또 이렇게 묻는 것을 보면 역시 애들은 애들이다)
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야! 여기서 밥 먹을 사람은 나한테 만원씩 내라!!”
이러자 많은 애들은 키득거리며 웃지만 더러는 어리둥절해 한다. ‘뭐야, 약속이랑 다르잖아? 이걸 먹어야 돼? 말아야 돼.’ 뭐 이런 고민을 하는 모양이다.
“선생님! 너무 비싸요."
“그래? 그럼 넌 5천원만 내.”
“선생님! 전 한국 돈이 없어요.”
“그래? 그럼 넌 외상으로 해 줄께.”
하지만 막상 앞에 놓인 기내식을 보자 말이 안 나온다. 빵 조각 2개, 요구르트 1개, 햄 1쪽, 메추리알 1개… 우리 학생들은 꼭두새벽에 일어나서 설레는 마음에 또는 급한 마음에 태반이 아침을 걸렀다. 게다가 연착되는 바람에 지금은 오후 2시가 넘은 시각이다. 아무리 비행시간이 짧아도 그렇지 이건 너무한 것 같다.
정말로 ‘간에 기별도 안 오는’ 식사를 하고 나니 비행기는 어느덧 대련의 상공을 날고 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대련은 거대한 공업지대이다. 가끔씩 눈에 들어오는 집들은 수십채가 꼭 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 이채롭다. ‘저런 곳에 살면서도 자기 집을 잘 찾을 수 있을까?’하는 걱정 아닌 걱정을 해 본다.
- 길을 잃다 -
인천에서 북경까지는 직항편이 하루에도 몇 대씩 날아다니는데 이렇게 대련을 들러서 불편하게 가는 까닭은 정확히 모른다. 처음에 일정표를 봤을 때는 ‘돈을 아끼려고 이러나?’라고도 생각했는데, 가만 보면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지금은 ‘여행사에서 비행기표를 확보하는데 실패한 모양’이라고 짐작할 뿐이다.
아무튼 이제부터는 중국이다. 나는 맨 뒤에 서서 학생들이 입국심사대를 지나는 모습을 약간은 긴장까지 해 가면서 지켜보았다. 그리고 맨 뒤에 나오면서 건강증명서와 입국신고서를 내고 세관을 향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 발생.
카트에 가득 짐을 실은 중국놈이 내 앞을 가로막으며 새치기를 시도한다. 나는 순간 멈칫. 녀석도 순간 멈칫. 내가 다시 앞으로 나서자, 녀석도 카트를 들이밀며 또 새치기 시도. 그 광경을 보던 세관원이 녀석에게 뭐라고 뭐라고 싫은 소리를 하니까 녀석은 슬며시 뒤로 빠진다. 이미 불쾌해진 내가 세관신고서를 제출하는데, 세관원이 하는 말.
“이름을 써야지요. 이름을!”
서명란을 비워둔 것이다. 내가 좀 기가 죽어서 괴발개발 이름을 써서 냈더니 이번엔 잔소리까지 보탠다.
“이름은 안 쓰면 누가 누군지 어떻게 아나!”
‘한국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드나들면 이 사람이 이렇게 우리말을 잘할까?’
그런데 밖으로 나와 보니 우리 일행이 안 보인다. 참 나 황당해서. 주위를 둘러보니 제복을 입은 녀석이 하나 서 있다.
“Can you help me? I lost my friends. I'm going to …"
근데 말하면서 이 녀석 얼굴을 보니 하나도 못 알아듣는 표정이다. ‘내가 너한테 묻느니 혼자 해결을 하지’
짐을 끌고 이정표를 보며 국내선 갈아타는 곳을 향해 걷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이거 만일 학생이 이렇게 됐으면… 특히 저 문(출구)을 열고 밖으로 나가버리기라도 하면…’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등짝에 찬물을 끼얹은 듯 모골이 송연해진다. (엄마들이 자녀를 외국에 보낼 때는 여행사 가이드나 해양소년단 연맹을 믿고 보내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도교사인 ‘나’를 믿고 보낸 것이다.)
‘가이드 이 자식. 만나기만 해 봐라!’
겨우 겨우 찾아간 국내선 타는 곳. 하지만 우리 일행은 없다. ‘괜히 이런데 있으면 나를 찾는 사람이 힘들어지구나.’ 싶어서 다시 처음의 내가 일행들을 놓친 위치로 이동. 짐을 끌고 터벅터벅 걷는데 공항 여직원이 내게 뛰어온다. 흐흐. 그럼 그렇지.
학생들은 모두 이미 비행기에 오른 상태였다. 난 가이드에게로 가서 말했다. 무슨 일을 이렇게 하느냐고. 만일 내가 아니라 학생이었으면 어떻게 할 뻔 했냐고. 이미 벌어진 일 때문이 아니라 나중을 위해서 싫은 소리는 필요했다.
물론 잘못은 내가 했다는 것은 나도 안다. 하지만 우리 일행 중에 가이드가 있는 이유는, 또 우리가 직접 가지 않고 여행사를 통하는 이유는 안전한 여행을 위한 책임을 져 달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 대가로 보수를 받는 것이다.
북경으로 향하는 비행기는 CZ6121편. 그러나 아까와 다를 바가 없다. 안 그래도 부아가 치미는데 안은 또 왜 이렇게 찜통인지. 승무원을 불러서 에어컨이 고장 났느냐고 물어보니 돌아오는 대답은 “It's broken"이다. 미안하단 말 한마디 없이 대답한번 간단해서 좋다.
- 드디어 북경 -
정말로 긴 여행 끝에 드디어 북경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4시25분. 너무나 배가 고파서 거의 모든 의욕을 상실한 까닭에 제일 먼저 식당으로 향했다. 사천반점. 2층으로 오르는 계단을 보니 그동안 이곳을 다녀간 면면이 정말 화려하다. 등 소평, 주 은래, 양 상곤, 왕 진. 등… 사실 우리로서는 자장면과 짬뽕 말고는 중국요리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지만, 워낙 허기가 져서 그런지 대부분의 음식이 꿀맛이다. 특히 내가 앉은 테이블에는 모두 남학생들만 있어서 모두 굶다가 온 사람들처럼 먹어대는 통에(사실 굶다가 왔음) 맛있는 음식들은 대부분 동이 났다. 게다가 음식을 돌려가며 먹는 스타일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랬는지 밥 먹는 게 무슨 전쟁하는 것 같다.
- 왕부정거리 -
알고 보니 우리가 밥을 먹은 사천반점은 [왕부정거리]에 있었다. 따라서 5분 정도 걸었더니 신동안백화점 앞 4거리가 나온다. 백화점 앞 광장에 집결한 우리들은 우리를 인솔하고 있는 조 명걸 가이드님으로부터 왕부정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듣고, 학생들을 6개조로 편성한 후 돌아보기로 했다. 내가 담당한 학생들은 4조. 모두 8명이다.
학생들과 함께 차가 다니지 않는 길로 나섰는데, 주변의 웅장한 건물들과 호쾌하게 뚫린 넓은 도로를 보니 가슴이 탁 트이는 느낌이 든다. 흡사 서울의 명동처럼 길가 양옆으로 많은 상점들이 늘어서 있고, 거리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는 모습에 마치 해방구에라도 온 듯한 착각에 빠졌다.
우리는 연신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감탄하고 또 여기저기서 플래쉬를 터뜨리며 길을 따라 내려가는데, 오른쪽으로 눈을 돌리자 솟을 대문의 위에 인터넷에서 봤던 낯익은 글귀가 들어온다.
王府井小吃街
먹거리 장터로 유명한 [왕푸징샤오츠지에]이다.
“야! 전부 저쪽으로 가자!!”
대문을 지나서 장터로 들어서자 제일 먼저 우리를 맞이한 것은 [탕후루(糖葫蘆)]. 과일을 꼬치에 꽂아 설탕물에 조린 것으로 중국에 왔다면 꼭 먹어봐야 한다는 대표적인 간식이다. 5위안을 주고 하나를 사서 먹어봤는데 실제의 맛은 “너무 달구 셔.”
이어서 [양러우(羊肉)]도 역시 꼬치 하나를 5위안에 사서 먹어봤는데, 뭐 아주 맛있지는 않아도 그런대로 괜찮다. 어차피 양고기꼬치를 한국에서 먹어보기는 쉽지 않으니까.
사실 내가 이곳에 오면서 큰 기대를 가졌던 음식은 [초우또우푸우(臭豆腐)]였다. 발효 냄새가 나는 두부인데, 들은 바로는 이 음식은 보통의 내공을 지닌 자들로서는 그 엄청난 냄새를 견뎌내기 힘들다고 한다. 그런데 그런 말을 들으면 더욱 더 도전하고 싶은 것이 사람의 심리인가 보다. 문제는 왕부정에 와 있는 지금 이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중국어가 되는 것도 아니고, 영어로도 이것을 설명하기에는 실력이 부족하고.
왕부정은 먹는 것뿐만 아니라 쇼핑의 재미를 즐길 수 있어서 좋다. 그리고 무슨 대단한 물건을 구입하는데 목적을 두기 보다는, 처음엔 말도 안 되는 값을 부르는 상인들과 더불어 화내지 않고 가격을 맞추어 가는 과정을 즐기는 것이 좋다. 물론 더러는 바가지도 쓰고 더러는 사기도 당하지만, 그런 것쯤은 웃어넘기자. 어차피 지나고 나면 다 즐거웠던 에피소드가 되는 것을.
다른 조의 학생들도 모두 그랬듯이 내가 인솔한 학생들도 여기서 전자계산기를 눌러 가며 쇼핑하는 것이 무척 즐거운 모양이다. 골목을 빠져 나와서도 다른 데로 갈 생각은 않고 다시 그 골목으로 들어가자고 한다. 하하!!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학생들은 저녁때만 되면 거기에 다시 안 가느냐고 내게 물었었다.) 나는 집에 있는 딸아이를 생각해서 30위안을 주고 그래도 가장 ‘중국적’이라는 생각에 팬더곰 인형을 샀다.
자유시간으로 2시간이 주어졌는데 어느덧 다시 모이기로 한 8시30분이 되었다. 학생들도 나도 모두 아쉬운 마음에 발걸음을 돌려 백화점 앞 광장으로 모였다. 특히 우리 조는 [샤오츠지에]에서 너무 오래 머무르는 바람에 왕부정의 또 다른 명물인 야시장을 갈 수 없었다. 포장마차처럼 생긴 88개의 점포가 붉은 빛을 내며 우리를 유혹하는데, 그것을 외면하고 차에 오른다는 것은 참으로 고통이다. 사실 저기를 가야 그 동안 말로만 듣던 뱀, 전갈, 지네, 물방개, 애벌레, 불가사리, 해마, 굼벵이 같은 고단백 꼬치를 먹어보는데…
사족:
1) 3박4일간의 이 여행기는 앞으로 4회 정도로 나누어 쓸 생각입니다.
2) 프롤로그에서 언급한 김 남희 기자님은 풍부한 감수성과 예리한 관찰력으로 좋은 글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이 분의 글은 오마이뉴스(http://www.ohmynews.com)에 가셔서 [여행]탭을 누르시면 볼 수 있으며, 지금은 [연재기사]로 “까탈이의 세계여행”을 올리고 있습니다.
3) 원래 왕푸징(王府井)이란 이름은 말 그대로 [황실 전용 우물이 있었던 자리]라는 의미입니다. 명나라 시대부터 전문 상업지역으로 조성된 이곳은 청나라 시대에 와서는 지금의 저자거리가 발달되었으며 특히 1997년부터 중국 정부에서는 10억 위안(우리 돈으로는 약 140억원)을 투입하여 지금과 같은 자동차 없는 쇼핑거리로 탈바꿈시켰습니다. 2008년 북경올림픽을 앞둔 지금의 시점에서는 앞으로도 더욱 더 많은 발전이 기대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4) 장국영 주연의 1993년도 영화 [패왕별희]를 보면 이런 대사가 나온다고 합니다. “난 죽을 때까지 이것만 먹다가 죽고 싶어.” 사실은 저도 [패왕별희]를 보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여행기를 쓰면서 알아보니 이 영화는 장 국영의 연기뿐만 아니라 경극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작품으로도 유명했습니다. 시간 있으면 한번 보셔도 좋겠습니다.
5) 경극이야기가 나와서 그런데 [왕푸징샤오츠지에]에 가 보니 어떤 건물 2층에서 상당히 특이하게 분장한 배우가 나와서 노래도 하고 큰 소리로 대사도 말하고 그러더군요. 난 처음엔 인형극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까 사람이었습니다. 그게 경극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으나 아무튼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6) 또 경극이야기. 누군가는 그러더군요.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모르고, 특히 중국말을 모르는 상태에서 보는 경극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 이거죠. 한국에 처음 온 외국인에게 판소리를 보여주는 것하고 다를 바 없다는 논리입니다. 저는 상당히 공감했습니다. 처음에 5분이야 신기하니까 집중하겠지만 아무래도 대사 수용이 안 되면 잠이 쏟아지겠죠.
7) 아래 동봉한 사진은 왕부정거리의 [왕푸징샤오츠지에]입니다. 제가 글은 모르지만 나름대로는 옛날에 [우물이 있었던 자리]를 표시하는 것 같아서 촬영포인트로 잡았습니다.
누군가 내게 ‘왜 사느냐?’고 묻는다면 난 이렇게 대답할 것 같다. ‘여행을 하기 위해서’라고. 실제로 난 늘 [여행]을 꿈꾸며 산다.
그 ‘낯설음’과 ‘설레임’을.
내가 존경하는 [오마이뉴스]의 김남희 기자님은 이런 글을 남긴 적이 있다.
“길은 위대한 학교였으며,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스승이었다. 세상에 나온 모든 목숨이 귀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누구에게나 배울 점이 있음을, 나누며 사는 삶이 가치 있는 삶이며 사람들은 누구나 소통을 꿈꾼다는 것을 길은 내게 가르쳐 주었다.”
지금도 이 분은 스스로 ‘이렇게 죽을 수도, 또는 이렇게 살 수도 없다’고 말한 서른네살의 나이에 방 빼고, 적금 깨서 배낭을 꾸렸다. 그리고 인생의 전반인 마흔까지는 유목민으로 살겠다며 낯선 길 위를 헤매고 있다.
앞에서 말했듯이 난 늘 여행을 꿈꾼다. 하지만 동시에 늘 현실과 부대끼며 산다. 나에겐 출근해야 할 학교가 있고, 가르쳐야 할 학생들이 있으며, 보살펴야 할 딸과 어머니가 있고, 함께 꿈을 나눠야 할 아내가 있다.
결혼하고 아이가 없었던 때는 아내와 의기투합하여 라오스, 캄보디아, 태국 이런 나라들을 헤매고 다니는 것도 가능했는데, 최근 3년 동안은 ‘임신-출산-육아’에 이어 지금은 둘째까지 들어선지라 해마다 근신의 날들을 보내며 살았다.
답답함.
잠시나마 꿈을 접어야 하는 이런 답답한 상황에서 한줄기 빛과 같은 존재가 있었다면 그것은 [해양소년단]이었다. 작년에 지금의 학교로 부임하면서 전임자가 내던지는 바람에 엉겁결에 떠맡았는데, 항상 ‘부담스러움’이란 마음의 짐을 안고 가야 하는 문제가 있긴 해도, 학생들을 끌고 강으로 바다로 다니면서 배타고 노젓는 생활은 나에겐 그 자체가 삶의 활력이었다.
올해는 세계화의 추세에 발맞추려는지 연맹에서는 여름방학을 맞이하여 [중국문화역사탐방]이란 거창한 이름의 행사를 준비하였기에 평소에도 그랬던 것처럼 부리나케 희망자들을 끌어 모아 보니 모두 24명이었다. 그리고 결국 이들과 함께 참여하였다.
- 출발 -
2005년 8월21일 일요일 아침 5시40분 기상. 일요일 아침에, 그것도 방학 중의 일요일 아침에 이렇게 일찍 일어난 것이 얼마만인가? “내일 지구가 망한다 해도 난 오늘 두 그릇의 저녁식사를 한다.”는 평소의 신념에 따라 아내가 준비한 아침을 먹는데 너무 새벽이라 그런지 입맛이 하나도 없다. 그래도 그릇을 말끔히 비우고는 아내가 운전해 주는 차를 타고 학교로 달려갔다. 7시15분 도착.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학생들 중 몇몇은 엄마와 함께 벌써 나와 있다. ‘그래도 오늘은 다행히 지각을 안 하는구나.’ 오늘처럼 학부모님들도 다 나오시는 날 그래도 명색이 선생님인 ‘내가 지각을 하면 이게 무슨 망신일까’ 싶어서 나름대로는 엄청 서둘렀는데 그 보람이 있다.
조금 있으니까 엄마 손을 잡은 학생들이 속속 집결하고, 곧이어 의정부에서 역시 이번 행사에 참가하는 학생들과 선생님을 태운 관광버스가 들어 왔다. 먼 길 떠나는 자녀들을 바라보는 학부모님들을 뒤로 하고, 버스는 인천공항을 향해 출발한다. 7시40분.
- 비행기 연착 -
휴일 아침의 시원하게 뚫린 도로를 달려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시각은 9시10분. 우리들을 기다리는 한국해양소년단 경기북부연맹의 부사무국장님과 여행사 관계자를 만나서 이번 여행에 필요한 사항들을 전달받고, 이어서 학생들과 더불어 CHECK-IN. 49번 GATE로 이동하는 것까지 시간도 여유롭고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그러나... 잠시 후 우리 앞의 스크린에 이런 글이 나타난다.
"CZ686 is delayed..."
하늘은 쾌청하여 곧 가을이 올 것 같은 모습인데 연착이라니… ‘참! 살다보니 별일이 다 있구나’하고 있는데, 순간적으로 떠 오른 생각은 ‘고장’. ‘지금 얘네가 뭔가를 고치고 있구나.’ 갑자기 항공기와 관련된 각종 사고들이 떠오르면서 왠지 모르게 불안해진다.
아무튼 일은 벌어진 것이니 어쩔 수 없고, 학생들을 이해시키고 남은 시간을 때우는 것이 문제였다. 더러는 면세점에 들어가서 아이쇼핑도 하고, 또 더러는 텔레비전 앞에 앉아서 가수들 춤추는 것을 보고 있지만, 그렇더라도 무려 1시간30분이나 연착하는 비행기를 기다린다는 것은 고역이다.
시간이 갈수록 학생들이 지쳐가는 모습은 역력하고 이러다가는 중국에 도착하기도 전에 지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난 공연히 공항 내를 배회하며 사진이나 찍고, 흡연실이나 들락거리고 하다가 담배 한 보루와 음료수 하나를 샀다. 수정과 캔 하나가 1,500원. 엄청난 가격에 기겁하며 다른 메뉴를 보니 김치우동이 6,000원이다. 여기서는 우동 속에 금가루를 넣는가보다.
- 기내 -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으려니 이윽고 비행기가 온다. 중국남방항공의 CZ686기. 설레는 마음으로 탑승. 그러나 자리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니 비행기가 참으로 작다. 게다가 냉방이 안 되는 것인지 아니면 약한 건지는 모르겠는데 암튼 내부가 답답하고 찜통이다. 시설도 참 열악해서 명색이 국제선임에도 다른 비행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스크린조차도 없어서 비상탈출교육을 할 때는 방송에 따라 승무원들이 나와서 시범을 보인다.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모습이다. 지난번에 보니 제주도 가는 비행기에서도 저런 모습은 사라졌던데…
아까부터 연착 때문에 마음이 불안했는데 그래도 비행기는 무사히 이륙한다. 이어서 기내식 등장. 짜잔~! 출발 전부터 그러니까 학교에서 오리엔테이션을 할 때부터 학생들이 내심 큰 기대를 가졌던 것은 바로 기내식이다. 비행기 안에서 공짜로(사실은 공짜가 아니라 비행기 삯에 다 포함되어 있는 건데도 아이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밥을 먹는다는 사실 자체를 매우 신기해했다. 메뉴는 뭘까? 어떤 맛일까? 등등.
앞에서 승무원이 밥을 나눠주는 걸 보며 학생들 중 몇몇은 내게 “돈을 내야 하느냐?”고 묻는다. (전에 다 설명한건데도 또 이렇게 묻는 것을 보면 역시 애들은 애들이다)
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야! 여기서 밥 먹을 사람은 나한테 만원씩 내라!!”
이러자 많은 애들은 키득거리며 웃지만 더러는 어리둥절해 한다. ‘뭐야, 약속이랑 다르잖아? 이걸 먹어야 돼? 말아야 돼.’ 뭐 이런 고민을 하는 모양이다.
“선생님! 너무 비싸요."
“그래? 그럼 넌 5천원만 내.”
“선생님! 전 한국 돈이 없어요.”
“그래? 그럼 넌 외상으로 해 줄께.”
하지만 막상 앞에 놓인 기내식을 보자 말이 안 나온다. 빵 조각 2개, 요구르트 1개, 햄 1쪽, 메추리알 1개… 우리 학생들은 꼭두새벽에 일어나서 설레는 마음에 또는 급한 마음에 태반이 아침을 걸렀다. 게다가 연착되는 바람에 지금은 오후 2시가 넘은 시각이다. 아무리 비행시간이 짧아도 그렇지 이건 너무한 것 같다.
정말로 ‘간에 기별도 안 오는’ 식사를 하고 나니 비행기는 어느덧 대련의 상공을 날고 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대련은 거대한 공업지대이다. 가끔씩 눈에 들어오는 집들은 수십채가 꼭 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 이채롭다. ‘저런 곳에 살면서도 자기 집을 잘 찾을 수 있을까?’하는 걱정 아닌 걱정을 해 본다.
- 길을 잃다 -
인천에서 북경까지는 직항편이 하루에도 몇 대씩 날아다니는데 이렇게 대련을 들러서 불편하게 가는 까닭은 정확히 모른다. 처음에 일정표를 봤을 때는 ‘돈을 아끼려고 이러나?’라고도 생각했는데, 가만 보면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지금은 ‘여행사에서 비행기표를 확보하는데 실패한 모양’이라고 짐작할 뿐이다.
아무튼 이제부터는 중국이다. 나는 맨 뒤에 서서 학생들이 입국심사대를 지나는 모습을 약간은 긴장까지 해 가면서 지켜보았다. 그리고 맨 뒤에 나오면서 건강증명서와 입국신고서를 내고 세관을 향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 발생.
카트에 가득 짐을 실은 중국놈이 내 앞을 가로막으며 새치기를 시도한다. 나는 순간 멈칫. 녀석도 순간 멈칫. 내가 다시 앞으로 나서자, 녀석도 카트를 들이밀며 또 새치기 시도. 그 광경을 보던 세관원이 녀석에게 뭐라고 뭐라고 싫은 소리를 하니까 녀석은 슬며시 뒤로 빠진다. 이미 불쾌해진 내가 세관신고서를 제출하는데, 세관원이 하는 말.
“이름을 써야지요. 이름을!”
서명란을 비워둔 것이다. 내가 좀 기가 죽어서 괴발개발 이름을 써서 냈더니 이번엔 잔소리까지 보탠다.
“이름은 안 쓰면 누가 누군지 어떻게 아나!”
‘한국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드나들면 이 사람이 이렇게 우리말을 잘할까?’
그런데 밖으로 나와 보니 우리 일행이 안 보인다. 참 나 황당해서. 주위를 둘러보니 제복을 입은 녀석이 하나 서 있다.
“Can you help me? I lost my friends. I'm going to …"
근데 말하면서 이 녀석 얼굴을 보니 하나도 못 알아듣는 표정이다. ‘내가 너한테 묻느니 혼자 해결을 하지’
짐을 끌고 이정표를 보며 국내선 갈아타는 곳을 향해 걷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이거 만일 학생이 이렇게 됐으면… 특히 저 문(출구)을 열고 밖으로 나가버리기라도 하면…’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등짝에 찬물을 끼얹은 듯 모골이 송연해진다. (엄마들이 자녀를 외국에 보낼 때는 여행사 가이드나 해양소년단 연맹을 믿고 보내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도교사인 ‘나’를 믿고 보낸 것이다.)
‘가이드 이 자식. 만나기만 해 봐라!’
겨우 겨우 찾아간 국내선 타는 곳. 하지만 우리 일행은 없다. ‘괜히 이런데 있으면 나를 찾는 사람이 힘들어지구나.’ 싶어서 다시 처음의 내가 일행들을 놓친 위치로 이동. 짐을 끌고 터벅터벅 걷는데 공항 여직원이 내게 뛰어온다. 흐흐. 그럼 그렇지.
학생들은 모두 이미 비행기에 오른 상태였다. 난 가이드에게로 가서 말했다. 무슨 일을 이렇게 하느냐고. 만일 내가 아니라 학생이었으면 어떻게 할 뻔 했냐고. 이미 벌어진 일 때문이 아니라 나중을 위해서 싫은 소리는 필요했다.
물론 잘못은 내가 했다는 것은 나도 안다. 하지만 우리 일행 중에 가이드가 있는 이유는, 또 우리가 직접 가지 않고 여행사를 통하는 이유는 안전한 여행을 위한 책임을 져 달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 대가로 보수를 받는 것이다.
북경으로 향하는 비행기는 CZ6121편. 그러나 아까와 다를 바가 없다. 안 그래도 부아가 치미는데 안은 또 왜 이렇게 찜통인지. 승무원을 불러서 에어컨이 고장 났느냐고 물어보니 돌아오는 대답은 “It's broken"이다. 미안하단 말 한마디 없이 대답한번 간단해서 좋다.
- 드디어 북경 -
정말로 긴 여행 끝에 드디어 북경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4시25분. 너무나 배가 고파서 거의 모든 의욕을 상실한 까닭에 제일 먼저 식당으로 향했다. 사천반점. 2층으로 오르는 계단을 보니 그동안 이곳을 다녀간 면면이 정말 화려하다. 등 소평, 주 은래, 양 상곤, 왕 진. 등… 사실 우리로서는 자장면과 짬뽕 말고는 중국요리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지만, 워낙 허기가 져서 그런지 대부분의 음식이 꿀맛이다. 특히 내가 앉은 테이블에는 모두 남학생들만 있어서 모두 굶다가 온 사람들처럼 먹어대는 통에(사실 굶다가 왔음) 맛있는 음식들은 대부분 동이 났다. 게다가 음식을 돌려가며 먹는 스타일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랬는지 밥 먹는 게 무슨 전쟁하는 것 같다.
- 왕부정거리 -
알고 보니 우리가 밥을 먹은 사천반점은 [왕부정거리]에 있었다. 따라서 5분 정도 걸었더니 신동안백화점 앞 4거리가 나온다. 백화점 앞 광장에 집결한 우리들은 우리를 인솔하고 있는 조 명걸 가이드님으로부터 왕부정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듣고, 학생들을 6개조로 편성한 후 돌아보기로 했다. 내가 담당한 학생들은 4조. 모두 8명이다.
학생들과 함께 차가 다니지 않는 길로 나섰는데, 주변의 웅장한 건물들과 호쾌하게 뚫린 넓은 도로를 보니 가슴이 탁 트이는 느낌이 든다. 흡사 서울의 명동처럼 길가 양옆으로 많은 상점들이 늘어서 있고, 거리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는 모습에 마치 해방구에라도 온 듯한 착각에 빠졌다.
우리는 연신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감탄하고 또 여기저기서 플래쉬를 터뜨리며 길을 따라 내려가는데, 오른쪽으로 눈을 돌리자 솟을 대문의 위에 인터넷에서 봤던 낯익은 글귀가 들어온다.
王府井小吃街
먹거리 장터로 유명한 [왕푸징샤오츠지에]이다.
“야! 전부 저쪽으로 가자!!”
대문을 지나서 장터로 들어서자 제일 먼저 우리를 맞이한 것은 [탕후루(糖葫蘆)]. 과일을 꼬치에 꽂아 설탕물에 조린 것으로 중국에 왔다면 꼭 먹어봐야 한다는 대표적인 간식이다. 5위안을 주고 하나를 사서 먹어봤는데 실제의 맛은 “너무 달구 셔.”
이어서 [양러우(羊肉)]도 역시 꼬치 하나를 5위안에 사서 먹어봤는데, 뭐 아주 맛있지는 않아도 그런대로 괜찮다. 어차피 양고기꼬치를 한국에서 먹어보기는 쉽지 않으니까.
사실 내가 이곳에 오면서 큰 기대를 가졌던 음식은 [초우또우푸우(臭豆腐)]였다. 발효 냄새가 나는 두부인데, 들은 바로는 이 음식은 보통의 내공을 지닌 자들로서는 그 엄청난 냄새를 견뎌내기 힘들다고 한다. 그런데 그런 말을 들으면 더욱 더 도전하고 싶은 것이 사람의 심리인가 보다. 문제는 왕부정에 와 있는 지금 이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중국어가 되는 것도 아니고, 영어로도 이것을 설명하기에는 실력이 부족하고.
왕부정은 먹는 것뿐만 아니라 쇼핑의 재미를 즐길 수 있어서 좋다. 그리고 무슨 대단한 물건을 구입하는데 목적을 두기 보다는, 처음엔 말도 안 되는 값을 부르는 상인들과 더불어 화내지 않고 가격을 맞추어 가는 과정을 즐기는 것이 좋다. 물론 더러는 바가지도 쓰고 더러는 사기도 당하지만, 그런 것쯤은 웃어넘기자. 어차피 지나고 나면 다 즐거웠던 에피소드가 되는 것을.
다른 조의 학생들도 모두 그랬듯이 내가 인솔한 학생들도 여기서 전자계산기를 눌러 가며 쇼핑하는 것이 무척 즐거운 모양이다. 골목을 빠져 나와서도 다른 데로 갈 생각은 않고 다시 그 골목으로 들어가자고 한다. 하하!!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학생들은 저녁때만 되면 거기에 다시 안 가느냐고 내게 물었었다.) 나는 집에 있는 딸아이를 생각해서 30위안을 주고 그래도 가장 ‘중국적’이라는 생각에 팬더곰 인형을 샀다.
자유시간으로 2시간이 주어졌는데 어느덧 다시 모이기로 한 8시30분이 되었다. 학생들도 나도 모두 아쉬운 마음에 발걸음을 돌려 백화점 앞 광장으로 모였다. 특히 우리 조는 [샤오츠지에]에서 너무 오래 머무르는 바람에 왕부정의 또 다른 명물인 야시장을 갈 수 없었다. 포장마차처럼 생긴 88개의 점포가 붉은 빛을 내며 우리를 유혹하는데, 그것을 외면하고 차에 오른다는 것은 참으로 고통이다. 사실 저기를 가야 그 동안 말로만 듣던 뱀, 전갈, 지네, 물방개, 애벌레, 불가사리, 해마, 굼벵이 같은 고단백 꼬치를 먹어보는데…
사족:
1) 3박4일간의 이 여행기는 앞으로 4회 정도로 나누어 쓸 생각입니다.
2) 프롤로그에서 언급한 김 남희 기자님은 풍부한 감수성과 예리한 관찰력으로 좋은 글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이 분의 글은 오마이뉴스(http://www.ohmynews.com)에 가셔서 [여행]탭을 누르시면 볼 수 있으며, 지금은 [연재기사]로 “까탈이의 세계여행”을 올리고 있습니다.
3) 원래 왕푸징(王府井)이란 이름은 말 그대로 [황실 전용 우물이 있었던 자리]라는 의미입니다. 명나라 시대부터 전문 상업지역으로 조성된 이곳은 청나라 시대에 와서는 지금의 저자거리가 발달되었으며 특히 1997년부터 중국 정부에서는 10억 위안(우리 돈으로는 약 140억원)을 투입하여 지금과 같은 자동차 없는 쇼핑거리로 탈바꿈시켰습니다. 2008년 북경올림픽을 앞둔 지금의 시점에서는 앞으로도 더욱 더 많은 발전이 기대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4) 장국영 주연의 1993년도 영화 [패왕별희]를 보면 이런 대사가 나온다고 합니다. “난 죽을 때까지 이것만 먹다가 죽고 싶어.” 사실은 저도 [패왕별희]를 보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여행기를 쓰면서 알아보니 이 영화는 장 국영의 연기뿐만 아니라 경극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작품으로도 유명했습니다. 시간 있으면 한번 보셔도 좋겠습니다.
5) 경극이야기가 나와서 그런데 [왕푸징샤오츠지에]에 가 보니 어떤 건물 2층에서 상당히 특이하게 분장한 배우가 나와서 노래도 하고 큰 소리로 대사도 말하고 그러더군요. 난 처음엔 인형극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까 사람이었습니다. 그게 경극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으나 아무튼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6) 또 경극이야기. 누군가는 그러더군요.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모르고, 특히 중국말을 모르는 상태에서 보는 경극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 이거죠. 한국에 처음 온 외국인에게 판소리를 보여주는 것하고 다를 바 없다는 논리입니다. 저는 상당히 공감했습니다. 처음에 5분이야 신기하니까 집중하겠지만 아무래도 대사 수용이 안 되면 잠이 쏟아지겠죠.
7) 아래 동봉한 사진은 왕부정거리의 [왕푸징샤오츠지에]입니다. 제가 글은 모르지만 나름대로는 옛날에 [우물이 있었던 자리]를 표시하는 것 같아서 촬영포인트로 잡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