빽미와 신양의 태국 여행기 11- 사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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빽미와 신양의 태국 여행기 11- 사투

etoil 5 1483
5월 3일 여행12일째




아니 이 놈의 버스는 왜 이리도 안 오는 것인고.
찔끔찔끔 빨아먹는 우유가 바닥이 날 정도로 길고 지루한 시간이 흐르는 데도 32번 버스는 함흥차사다.
시계로 계속 확인해보니 장장 반 시간이나 지나 있었다.
9시까지인데 지금 9시 다 됐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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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의 정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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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잔! 푸우의 P자를 누르면 시계가 튀어나오는 깜직한 구조의 손목 시계.
마분콩에서 샀던 바로 그 아동시계다.
아직까지 태국 시간에 맞춰서 돌아가는 추억의 푸우 시계.

우으윽…
사고라도 났나.
그럼..
띠리리리….(눈동자 돌아가는 소리)
아까 전부터 계속 눈에 거슬리는 여인네에게 물어봐야겠다.
목에 바디파우더가 마치 밀가루처럼 더덕더덕 붙어있어 조금 특이한 아는지 모르는지 새초롬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그 여인네.
더 이상 기다리길 포기하고 그녀를 잡고 와포 가는 버스를 물어 물어 겨우 다른 버스에 올라탈 수 있었다.
그런데…

빵빠라라 빵바라라라라~~~
심봤다!

태국인 답지 않게 키가 훤칠하게 큰 상큼한 핸섬 보이가 버스의 차장이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이 정말로 있었구나!

아아 하느님… 고맙습니다.
당신의 존재 이제 믿습니당

오라이 오빠가 수줍게 다가와 요금을 받는다.
나는 그냥 있는 돈 다 꺼내주고 싶은 걸 꾹 참고 애써 태연한 척 표를 끊었다.
아아 보는 것 만으로도 흐믓하다.
행복한 시간은 참으로 화살처럼 빠르게 흐르고 언제 이렇게 왔지 싶은 왓포에 내리게 되었다.
안녕 오라이 오빠!
당신을 잊지 않을게요~

근데…
여기가 어디랴?
왓포는 왓포인데 사원이 너무 크다 보니 마사지 스쿨 가는 쪽의 길을 모르겠다.
-_-;;
이렇게 된 이상 할 수 없다.
왓포 담장을 빙 도는 수밖에…
가다 보면 언젠가 나오겠지.
왓포 담장은 정말 끝이 없을 정도로 길었다.
ㅜ.ㅜ
그리고 좁은 길에 웬 차가 이리도 많이 세워져 있는지…
자세히 보니 다 번지르르한 고급 승용차다.
아우 짜증나.
그렇게 한 참을 걸었을까…
아니 저것은…
파란 차양에 배 그림이 그려져 있는 지나칠 때마다 보는 저 가게.
눈물이 나도록 반갑구나.
드디어 찾았다.
시계를 보니 이미 9시 30분.
-_-;;
흐미 대 지각…큰일 났다!
내가 급하게 방으로 올라섰건만 모두들 이미 연습을 시작하고 있는 상태.
심지어 파는 다른 사람과 파트너가 되어 마사지 연습을 하고 있었다.
아니 파 너마저!
너만은 배신 안 할 줄 알았는데….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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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늦건 말건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였다.
나 홀로 파트너가 없어서 30분을 그렇게 잊혀진 채로 비참하게 놀고 있었다.
으윽…
뚬 티쳐 그런 내가 안쓰러워 보였는지 마침 놀러 온 것 처럼 보이는 마냥 한가롭게 친구랑 이야기 삼매경에 빠져있는 생전 처음 보는 통통한 여인네를 붙여준다.
으음…
난감한데…
국적을 당체 알 수 없는 얼굴이다.
머리는 군인처럼 짧게 친 세련된 숏커트에 또렷한 이목구비.
게다가 어제의 필리핀녀를 뛰어넘는 발군의 영어 실력을 뽐낸다.
정말 코쟁이 코를 후려칠 정도로 영어를 정말 잘했다.
내가 국적을 묻자 여인네 완전 깔깔 난리 났다.
???
지 친구랑 한참을 웃더만 태국이라고 한다.
내가 보던 태국녀들은 다 치렁치렁 삼단머리를 자랑하던데…
허억.
이제는 제법 보는 눈이 생겨 딱하면 딱 용한 처녀 보살 수준이라고 자부했었는데 고수의 길은 과연 멀구나…
뚬 선생한테 들어보니 영국에 살고 있단다.
그럼 그렇지.

그렇게 마사지를 시작하는데…
이 여자 과연 예사롭지 않았다.
시작한지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바로 내가 틀렸다며 지적해준다.
-_-;;
이럴수가…
어제는 그토록 나는 천재다 라고 감탄했었는데…
-_-;
그 우쭐함이 민망해 질 정도로 가차없이 계속 지적당했다.
여자가 답답했던지 직접 콕 집어 가르쳐준다.
퍼스트 라인이 여기고 세컨드 라인이 여기라고…
허걱…
이것은 기초중의 기초인데도 틀렸단 말이야?
난 도대체 뭘 배운거야…
눈물 콧물 쏙 뺄 정도로 엄한 그 여인네에게 마사지 하고 나니 남는 것은 지친 몸과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마음뿐….
아아 파야 돌아와~~!!
ㅜ.ㅜ
너는 천사였구나.

그렇게 한참 연습을 하고 있는데 헉…
어딘가 본 듯한 지나가던 남자와 눈이 마주친다.
저 사람은!!
하드락 클럽의 그 사기꾼!
저 사람이 여긴 왠일이래??
벙한 순간이었다.

알고 보니 그 때는 사기꾼이라고 생각했는데 다 나의 오해였다.
원래는 무에타이 관장인데 마사지 배우러 스쿨에 왔다며 나보다 훨씬 전에서부터 시작해서 지금은 오일 마사지를 배우고 있다고 했다.
오해는 풀렸지만 안 좋은 추억이 있어서 그런가 영 껄끄러웠다.
내가 다른 한국인은 없냐고 물으니 자기말고 또 한명의 남자가 배우고 있다고 말해준다.
오,,,왜 이태까지 몰랐다지..
미안하지만 이 아저씨는 패스하고 그 사람이랑 친하게 지내야겠다.
그렇게 헤어지고 파가 누구냐고 묻길래 안 친하다고 모종의 사건이 있어서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 먼 당신이라고 눈빛으로 다 말해주었다.
파가 까올리처럼 안 생겼다고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드는 모습이…
풋!
하긴 키도 좀 작고 진~하게 생기기는 했지만…
ㅋㅋ
파의 그 생뚱 맞은 포즈를 보니 웃음이 절로 나온다.

뚬 티쳐 에게 오늘 배우는 마사지 코스는 가히 상상초월 할 정도로 스펙터클을 자랑했다.
프린트 봤을 땐 설마 이런 것도 할까 싶었는데 당연히 하게 되다니.
-_-;
타이 마사지의 진수인 꺽기부터 올라타기 몸 비틀기…
모든 것을 총망라해서 배우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힘든 줄도 몰랐다.
그래 내가 원했던 것이 이거야..
해주는 사람도 뭔가 하는 것 같고 받는 사람도 뭔가 받은 거 같은 이런 걸(?) 나는 원한 것이지.
후후후
콧소리가 절로 나온다.
나를 배신했던 파에게 응분의 앙갚음을 시도 했지만 의도는 좋았으되 너무나도 가벼운 그녀이기에 그냥 인형 움직이듯 아주 유연하게 돌아간다.
무슨 꼭두각시도 아니고 야는 관절도 없나.
있는 힘껏 비틀어도 힘들어 하지도 않는다.
뭐야…
실망스러운 반응인걸…

반대로 내가 당할 때는 당연히!

죽는 줄 알았다.
-_-;;

아가야 제발 그만 비틀어라 ㅜ.ㅜ
억억 소리가 절로 나온다.
어쩔 수 없는 운동부족의 한계가 어둠의 그림자처럼 소리도 없이 엄습해온다.
히이익 ㅜ.ㅜ


그렇게 잼나고도 괴로웠던 수업이 끝나고 돌아와 방에서 스스로 자조하며 자학하던 찰나 문득 어제의 필리핀녀가 생각난다.
그래!
꼭 간다고도 했고 이참에 기분전환도 할 겸 자기들이 노래한다는 그 클럽에 가봐야겠다.
이런 결정에는 역시 할 게 없어서 시간이 남아돈다는 점이 주효 했다.
근데 그 클럽이 뭐랬드라?
샤프록? 샴락?
분명 ㅅ 자로 시작했었는데 -_-;;
그새 뇌세포가 퇴화됐는지 영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없던 오기가 생기지
나의 마지막 보루이자 생명줄인 헬로태국을 쫙 하고 펼쳐 들었다.
오 238페이지의 레스토랑 54번 샤프론!
느낌이 팍 온다.
이거 외엔 영 이름이 비슷한 클럽도 없는데…
그럼 그렇지…꼴랑 세 명이서 밴드 한다는데 그냥 작은 레스토랑 같은 데서 하겠지..
묘하게 납득이 된다.
그래 오늘은 여길 가는 거야!

시간도 아직 여유 있게 남았고 하니 프론트에 가서 이틀에 한번 꼴로 통화를 했던 신양과 가족에게 간단하게 안부전화를 했다.
여기서 잠깐.
나를 농락했던 이 넘의 전화기.
수신자 부담 전화기!
물론 그때는 참 편하네 하고 펑펑 쓸 때는 좋았는데 나중에 크게 뒤통수를 맞게 된다.
요금의 압박이 장난 아니었다.
최대한 간략하게 하고 끊었는데도 요금 10만원의 압박이란….
세상에 역시 공짜는 없다.
물론 내 돈에서 빠져나가는 것은 아니지만 10만원의 압박이란 친구사이에 금 갈 정도로 강력한 태클이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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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자기돈 내고 카드 사서 이 노란 전화기로 통화 하는 게 훨씬 속 편하다.

그런데 아까부터 계속 귀에 거슬리는 음악소리가 있다.
어딘가에서 환청처럼 아련히 들려오는 음악소리….
근처에 클럽이 있나?
아닌데… 이 근처는 죄다 주택간데…
계속 들려오니 신경이 쓰인다.
이상하게 자주 마주치던 일꾼을 잡고 근처에 클럽이 있냐고 물어보았다.
청년 내가 말거니 굳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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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사진에서 볼 수 있는 뻣뻣 일자 자세가 어딘지 정겹다. 사진 찍을 때 유일하게 특별한 포즈를 취하지 않는 태국인이었다.

예스 하는데 이것이 당체 영어를 알아 듣고 대답한 것인지….
큰 클럽이냐?
예스.
좋냐?
예스.

-_-

비싸냐?(이게 젤 중요하다)
예스.
고개까지 주억거리며 청년 척하니 엄지손가락 치켜드는 포즈를 취해준다.
-_-;;
그럼 안되겠네…
에이 좋다 말았네…
거 참 이상하네 근처에 클럽 같은 거는 암만 찾아봐도 없었는뎅…

후후후…나는 샤프론이나 사야겠다.
아껴두었던 짜뚜짝에서 산 치마까지 입어주고 위풍당당하게 나서는 걸음이 참으로 방정맞다.
-_-;
파이팃 거리라…
아직 한번도 안 가본 곳이라 설레네…
히히
사원을 통과해서 메리브이 하우스랑 벨라벨라 하우스 사이의 길을 지나 목표로 했던 샤프론까지의 코스도 정해놓고 느긋하게 걸어나갔다.
드디어 모서리에 당도 했으니 피아팃거리로 올라가볼까…

근데 도대체 샤프론이 어디있지?
계속 올라가도 안 보였다.
이상하네…..
결국 한참을 올라가도 샤프론이라는 곳을 찾을 수가 없었다.
현지인 잡고 물어봐도 그런 가게는 없단다.
-_-;;

흐메 그럼 난 헛고생한겨?
아쉬움과 허탈감에 한참을 서성이다 결국 포기하고 돌아가기로 했다.
터덜터덜….
아아 힘 빠진다.

힘없이 걷는데 처음 보는 거리라 그런지 느낌이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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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사진이라도 찍으니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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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쑤멘 요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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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로 하는 듯 아롱지게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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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다. 그래도 너를 봤으니 헛 짓은 아니었나 보다.


그래 허전한 이 맘 달래주는 것은 역시 먹을거야!!
씨푸드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오늘도 나의 사랑 푸 팟 뽕 커리를 시켜 볼까나…
아니야…오늘은 좀 색다른 걸 시켜보자.
그래서 선택한 것이 게는 겐데 정체불명의 오리엔탈 소스 게 찜이었다.
오리엔탈은 무슨…
그냥 간장으로 양념 된 게였다.
그래도 게니깐 열심히 먹어재꼈다.
둘이서 먹을 때는 몰랐는데 혼자서 먹으니 그 양이 장난 아니다.
그래도 140바트짜린데..
나는 악착같이 먹고 또 먹고 꾸역꾸역 끝없이 입으로 집어 넣었다.
서빙 하던 소녀 눈이 휘둥그레 놀란 기색이 다분하다.
이미 일하던 가족들 모두 흥미진진하게 나를 주시하고 있는 듯했다.
시선이 영 거슬려도 이제는 아주 뻔뻔해져 그냥 무시하고 계속 먹는데 나중에는 배가 차다 못해 거의 토할 지경이었다.
-_-
그래
이것은 이미 자신과의 싸움이다!
절대 절대 포기할 수는 없어.
얘기하자면 눈물이 나올 정도로 게와 힘겨운 사투를 벌이는 나의 모습…
얼마나 게걸스러웠을꼬….
냄새 맞고 달려드는 초파리들을 끊임없이 쫓으며 그렇게 나는 자신과의 싸움을 악착같이 해나갔다.
드디어 그 많던 것이 흉하게 껍질만 남기고 내 뱃속으로 사라진 순간은 정말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나는 이겼다!
위 아더 챔피언~~~우~~~~
위 아더 챔피언~~~~~~~

일어나는데 거의 목까지 다 차서 몸을 움직이기도 힘들었다.
이것이 바로 상처뿐인 영광인 것인가!
한 손으로는 불룩 나온 배를 움켜지고 카운터에 돈을 내는데 일하던 모든 가족들이 그런 내모습을 보고 웃고 있다.
-_-;;
나도 내가 얼마나 흉한지 알거든요…
ㅜ.ㅜ
으윽 괴로워…걸을 때마다 요동치는 위 속의 내용물들…

시련은 그치지 않았다.
그날 따라 그 얼마 안 되는 길이 그렇게 멀게 느껴질 줄이야…
그때 걸었던 그 순간이 오늘 스쿨에서 겪었던 그 어떤 스펙터클한 시간보다도 제일 괴로웠다.


무식하면 삼대가 고생한다더니 지나친 만용은 역시 뒤가 안 좋다는 아주 당연한 교훈을 배우며 하루가 그렇게 쓸데없이 흘러간다.


5 Comments
스마일n_n 2005.11.05 19:09  
  ㅎㅎ 잼있어요 ㅋ
태국에서 살다 오셧군요 ㅎㅎ
윤희영 2005.11.08 14:37  
  님 후기는 태국 백만년살다가온 느낌의 후기...
조목조목 느므 많은걸 알아두셨네요..
동심초심 2005.12.03 02:33  
  음... 담편이 기대 되는군요..
뭐 딴지는 아니고 그럴수도 있겠구나 생각도 되지만
의아한 부분도 몇가지 있음다.
왜 멀리까지 가서 그렇게 고생을 하실까???
젊어 고생은 사서 도 한다지만 그정도 고생이고 하면
울나라에도 고생할거 많은데......
동심초심 2005.12.03 02:35  
  제가 베낭족들의 맘을 아직 이해못하는 부분들이 많나 봅니다, 결코 딴지는 아니니 오해 하지 마시고..
보통 글솜씨가 아니네요^^&
정말 놀랍습니다....필력,,,,기억력,,,,,,
나르 2005.12.18 02:13  
  너무 재밌어서 저도 빨리 가고 싶어요~~~ (일주일이여 빨리 지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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