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의 미소를 만나다-다섯째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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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미소를 만나다-다섯째 날

우이호이 0 846
아침에 일어나 일기를 쓰고있는데 누가 밖에서 노크를 한다.

장따나와 남이 숙소로 찾아왔다. 숙소 입구 테이블에 앉더니 내 양쪽 목에 주황색 실로 짠 팔찌를 매어준다. 그리고 뭐라고 중얼중얼 주문을 왼다. 실에 매듭을 지으면서는 입김을 훅훅 불기도 한다. 옆에선 남이 계속 까불며 떠든다. 이녀석. 이런때는 조금 진지할 것이지... 뭐가 웃긴건지 나만 보면 까르르댄다.

 

저쪽에서 오빠가 보인다. 양 손에 뭔가 들고 숙소로 들어간다. 나는 양손을 들어올리며 이것보라며 자랑을 했다. ㅋㅋ

 

장따나는 치앙콩에 가거든 자기집에 머물라며 주소와 번호를 알려준다. 그리고 남의 모바일 번호를 적어주며 루앙프라방에 도착하거든 전화하란다. 나도 우리집 주소와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그런데 바보같이 내 번호가 잘 생각이 안나는것이었다. ㅠ_ㅜ 썼다가 지우니까 남은 또 손가락으로 날 가리키며 깔깔댄다. 나도 같이 따라 웃었다.

 

방에 오니 오빠가 바나나 쉐이크와 빵을 사왔다. 그 유명하다던 루앙프라방 베이커리!!  세심하고 친절하기도 하여라~ 남은 건 버스안에서 먹으라며 싸준다. 아~맛있기도 하지! 내가 감탄을 하는 사이 오빠는 어서 가방을 싸라면서 물건을 챙겨준다. 잘 넘어질 것 같다면서 ㅠ_ㅜ 맨소래담 로션도 가져가라고 준다. 어제 자전거를 못빌려서 미안하다니까 오빠가 대신 빌리겠단다. ㅋㅋ 또 Thanks!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길에 어제 신발가게 청년도 보인다.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 버스정류장에 도착하니 삼십분 먼저 떠났던 모리스도 아직 그대로 있다. 오래전에 만났던 친구마냥 반갑다.

 

잠시 후 어제 같이 표를 샀던 일본아이와 일본아저씨가 온다. 그나저나 일본애는 자기는 루앙프라방에 못간다는거다. 내일 방콕에 가서 일본가는 비행기를 타야한다면서 버스비를 환불받는다. 날짜계산을 잘못했는지..이구..바까!

 

버스를 탔다. 그런대로 약하지만 에어컨도 나온다. 혹시나 사고의 위험을 대비하여 운전기사 뒤쪽 두번째 자리에 앉았다.ㅋ 버스는 다름아닌 현대. 경남에서 다녔던 차다. 스티커도 아직 그대로 붙어있다. 괜시리 친근한 느낌이다. 이 녀석은 우리나라에서 끝나지 않고, 여기 라오스까지와서 기운을 다하고 있는거다. 그런데 오빠의 말대로 여기까지 운반해오는데 돈이 더 들었을 것 같다는 의문이 들기는 한다.

 

잠시후 한국인 세 명이 버스에 오른다. 버스 출발! 어젯밤 어쩌면 돌아오지 못했을 지도 모르는 길을 그대로 거슬러올라가고 있다.

안녕안녕... 셔터를 계속 눌러대지만 실물보다는 못하다. 훨~씬 못하다.

 

산 속에는 가끔씩 작은 마을이 나타나고, 사람들은 신기한 듯 버스를 쳐다본다. 중간에 버스는 우리에게 휴식시간을 주고, 같은 장소에서 먼저 쉬고 있던 모리스와 잠시 상봉! 몇 년만에 만난 사람들처럼 팔짝팔짝 뛰었다.^--^

 

아까 한국인으로 보였던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한국분이세요?"

한 분은 6개월, 다른 한 분은 5개월째 여행중이시란다. 옆에 아저씨는 2주째. 대단하다. 인도를 거쳐서 티벳 그리고 이쪽 동남아 대륙으로 이동하신거다.

 

차에 타니 건너편 옆좌석 앉아있는 태국 여자 아이들에게 자꾸 시선이 간다. 열 두 살쯤 되었을까? 귀여워서 사탕을 주니 눈이 마주치면 마냥 웃는다. 나더러 하늘을 보라며 엄지 검지로 동그랗게 원을 만들어 보인다. 구름이 동글동글 그림같다.

 

4시간쯤 버스에만 가만히 있으려니 피곤하고 배도 고프다. 그 때 마침 뒤에서 한국아저씨가 프링글스를 내밀며 이거라도 요기하라고 주신다. 흑흑 한국인이여!! ^--^

 

버스보조기사는 태국아이들에게 가서 말도 걸고, 관심을 끌려고 한다. 여자아이들과 서로 알고 있는 사이인지, 그래서 잘보이려고 준비를 했던건지 버스기사와 보조기사는 태국식으로 말쑥하게 차려입었다. 귀여운 청춘들.ㅋㅋ 하지만 첫째언니는 아까부터 남자가 가까이와도 새초롬하니 시선을 창밖에 둔다. 둘째는 재미있어하는 것 같던데..

 

드디어 도착. 벌써 4시다. 아이들 사진을 찍으려니 알아서 포즈를 취해준다. 찍고나니 보여달라고 바짝 다가온다. 그런데 갑자기 뜨악해지는 내 감정은 뭘까? 처음이고 싶었던걸까? 이 욕심쟁이.

 

버스에서 내리니 뚝뚝기사들이 몇 명 보인다. 자기네 게스트하우스에서 머물라며 한 남자애가 다가오더니 사진첩을 보여준다.  어려보이는데..쉽사리 거절을 못하겠다. 사진을 보니 시설도 괜찮은 것 같다. 그러자고 하고 한국인들과 안녕..

 

날 데리고 가는 이 아이의 이름은 싸이. 스무살이다. 싸이는 나를 오토바이 뒤에 태워가며 오늘 친구들과 파티가 있는데 가지 않겠냐고 묻는다. 현지인과 어울릴 수 있는 좋은기회란다. 게다가 나는 라오스 사람처럼 생겼다면서..^--^; 구분도 잘 못할거라나...

 

숙소에 도착해서 2층에 방을 받았다. 더블침대에 방도 비교적 넓은편. 싸이는 짐을 옮겨주며 이따가 9시에 디스코텍에 가자고한다.  잘 모르겠다고 망설이자 그럼 그렇게 알고 있겠다면서 휙 가버린다. 이를 우짜노 ㅠ_ㅜ

 

샤워를 마치고 그 유명한 야시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아직 어디가 어디인지 잘 모르겠다. 지도를 들고 나와 그냥 걸었다. 길가엔 바나나를 구워파는 여인이 있다. 두 개를 사서 하나를 호호 불어가며 먹었다. 앞에서 어떤 여자가 걸어온다. 그 사람에게 다가가서 야시장이 어디냐고 묻고, 이름도 묻고, 내 이름은 아무개며, 까올리(한국인)이라며 묻지도 않은 대답을 해주고 내친 김에 남은 바나나도 하나 주었다. ㅋㅋ

 

야시장에 도착. 와아~ 정말 길다. 저 사람들은 고산족일까? 의상이너무 아름답고, 얼굴도 모두 예뻐보인다. 지나갈 때마다 "사바이디~"하고 인사한다. 나도 같이 "사바이디~" 몇 십번이나 인사를 했는지 모르겠다. 그 거리를 지나오니, 예쁜 가게들이 눈에 띤다. 허기진 나는 우선 인디안 식당에 들어가서 커리를 주문했다. 그리고 바나나라시.

 

잠시 후 식사가 나오고, 옆 테이블엔 한 old lady가 자리를 잡으신다. 뉴질랜드 출신에 집에선 치즈농장을 하고 있다는 그녀의 이름은 이브. 루앙프라방은 작년에도 왔었는데 베트남은 별로 가고 싶지 않단다. 그러면서 "베트남 사람들은 쌀을 키우고(Grow),캄보디아 사람들은 쌀이 자라는 것을 들으며(Listen),라오스 사람들은 쌀이 자라는 것을 본다(See)"는 말 들어본 적 있느냐면서 라오스가 너무 좋다고 하신다. 웃는 모습이 너무 예쁘시다.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고, 난 고민이 있다면서 "싸이의 초대에 응해도 될까요?"하고 물었다. 그녀는 뭐라고 확실히 대답은 못해주겠지만 여기 사람들은 순박하고 착하니까 괜찮을거라고, 그런 경험하면 얼마나 멋지겠냐고 하신다. 그리고 너도 느끼는게 있을테니, 네 마음이 움직이는대로 하라고 하신다.

 

식사를 마치고, 내 숙소 화장실이 별로라니까 그녀가 머물고 있는 숙소가 괜찮다면서 보여주겠단다. 친절한 그녀. 그녀를 따라 방구경을 하고 여행 잘하라고 인사를 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그나저나 9시까지 보기로 했던 싸이. 싸이는 10분뒤에 로비로 나오라고 한다. 내려가니 어떤 아저씨들이 있고, 나를 보며 뭐라고 하며 웃는것 같다. 얼떨결에 그의 오토바이를 탔다.

 

 아냐 아냐..이건 아닌 것 같다. 아까 나에게 보여주었던 다소 명령적인 말투와 태도가 조금 거슬린다.(내가 원래 조금 느리다.ㅠ_ㅜ)그리고 아까 그 아저씨들은 뭐지? 이 녀석 나보다 어려서 동생같이 만만하게 생각하고 따라온건데...오토바이를 세워둔 채 돌아간다고 하니 이 녀석이 당황하는 기색이다. 아까 그 아저씨들이 왜 웃었던거냐면서 꼭 날보고 웃는것 같았다니까 여기에 온 '레이디보이'때문이지 너 때문이 아니란다. 할 말이 없어졌다. 알겠다고 하고 다시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그리고 난 디스코텍은 안갈꺼고 친구집에 잠시 있다가 집으로 오겠다고 했다.

 

그런데 친구집이 아니라 여기는 또다른 게스트 하우스다. 잠깐 여기서 다른 친구들을 기다리잖다. 정말 이상하다. 친구 한명이 나오더니 비어라오를 꺼내온다. 그리고 물을 마시겠다는 내게 자꾸자꾸 술을 권한다. 라오스 위스키라면서 갑자기 술을 제조!한다.

 

친구는 비닐봉지에 어떤 술을 가져오더니 어떤 병에 붓고, 거기에 에너지 드링크를 붓고, 세븐 업을 섞는다. 이거 이상한거 아니야? 의심부터 들기시작한다. 먼저 싸이가 한 모금 마신다. 음 안전하군. 그래도 안돼. 난 물만 계속 마셔대는데 싸이는 옛날 한국사람들처럼 계속 술을 강요한다. 난 알코올을 안좋아한다니까 라오스꺼라서 못믿니? 라는 식으로 얘기한다. 으앙 ㅠ_ㅠ 아니라구!

 

그래서 한 모금 마셨다 ㅠ_ㅜ 그리고 더 권유하길래 정말 이건 아니다싶어서 화는 못내고 그냥 집에 가겠다고 했다. 그런데 막무가내로 디스코텍에 가잖다. 내가 정색을 하며 넌 인조이하고 난 걸어서 집에 가겠다고 하니 그제서야 이 녀석도 알겠다는 듯 데려다 주겠단다. 그리고 자기도 숙소로 가겠단다. 불안불안한 마음으로 오토바이에 타고 겨우 숙소로 돌아왔다.

오토바이를 타고 있는 내내 조금 불안했다. 나보다 어리다고 어린애로만 봤는데 잘못하다가는 큰일나겠다싶다.

싸이는 고집이 세다. 이 녀석 분위기 파악이 안되는건지 숙소로 향하는 길에
도착하면 술을 다시 마시잖다. 나 술 세거든? 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그랬다가는 내 무덤 파는 것 같아서 그래그래..하면서 잠자코 있었다. 날 제발 무사히만 데려다 다오..

숙소에 도착.
싸이는 숙소와 같은 마당을 쓰고 있는 작은 헛간같은 곳으로 간다. 문은 따로 없고 마당쪽으로 트여있는 구조다. 놋이라는 친구와 같이 거기서 잔다고 했다.
들어가보니 티비도 있고 바닥엔 돗자리가 깔려있고, 몇 마리의 강아지 인형이 얼굴이 뭉개진 채 널부러져 있다.


놋은 티비를 보고 있다. 티비는 대부분 태국방송. 예쁜 태국여자가 나와서
남자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싸이는 술을 가지고 온다. 놋은 심드렁한 표정이다.

놋에게 말을 붙여볼까 하다가, 얼굴이 심하게 편편해진 인형을 들며

"놋! 이거 왜이래?" 하고 물으니,

"이거 맨날 베고 자서 그래.." 하고 대답한다.



"너 몇 살이니? 틴에이져가 이런거 술 마셔도 되니?"

하고 물으니, 얼굴을 붉히며

"열 일곱인데, 이제 조금 있으면 열 여덟이야. 그리고 난 지금 대학생이야."

이제서야 굳어진 얼굴이 조금 펴지는 것 같다.

그리고 당혹스러워하는 모습이 정말 어린애같다.


피곤하다. 자꾸 술을 권하는 싸이때문에 더 피곤하다. 난 이제 올라가볼테니 너희는 여기서 놀아라..하고 이층 내 방으로 올라가려는데 싸이가 따라붙는다.

너 피곤하지? 하면서 마사지를 해주겠단다.

'마사지?' 잠시 혹한 나는 그래볼까? 하고 어깨를 맡겼다.

비어있던 옆 방으로 들어가잖다. 조급해하는 이 녀석의 표정에서 꿍꿍이속이 훤히 보인다. 자기네는 학교다니면서 교육과정에 마사지가 포함되어 있다는 거짓말을 한다.

마사지도 시원찮고, 이제 그만 홀로 쉬고 싶다.

나 들어갈래..슬리피해..
싸이는 나를 붙잡는다. 그러더니 내게 가까이 다가오더니 키스를 해달란다.

어이가 없다. 그래서 웃음이 난다.

내 손을 자기 가슴에 가져다대더니 자기는 지금 너무 떨린단다. 콩닥콩닥 뛰고 있는 심장이 진실이라는 듯 어찌할 바를 모르는 표정이다.

"너 사실대로 말해. 아까 나한테 술마시게 한거 부터..왜 그랬어? 이거 때문이야?"

"사실 며칠전에 친구들이랑 비디오를 봤어. 그런데 거기서 남자 주인공이 여자한테 그렇게 하더라고. 그래서..나도 따라해봤어. "

난 어른스럽게 이야기했다.

"싸이. 넌 나랑 오늘 처음 만났고, 난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키스같은 거 하고 싶지 않아. 넌 날 사랑하니? 난 아니거든?"

"난 이제 일년 후면 경찰이 되기 위해 멀리 떠나야해. 그러면 몇 년간 여자를 만날 기회도 없단 말야."

징징대는 이 아이. 정말 철없다.

"너 나한테 이러는 거 정말 무례한거야. 넌 내가 만만해보이는구나.. 너 자꾸 이러면 나 내일 떠날꺼야. 어서 내려가. 난 피곤해."

입술로 떨어지는 싸이의 시선이 부담스럽다. 가만히 서있다가 알겠다면서 등을 돌린다.

내 방으로 들어가서 문을 잠그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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