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떠난 '다낭-호이안' 4박5일 저렴한 여행기-마지막
2018. 11. 4. 일요일
룸메이트들은 여전히 자고 있다.
간단한 조식을 먹은 후, 복도로 조심스럽게 배낭을 가지고 나와 대충 짐을 꾸린다.
룸메이트들과 얼굴 마주보고 제대로 대화조차 해 본 적 없으나 인사도 없이 숙소를 쏙 빠져나오는 상황이 좀 맘에 걸린다.
프런트에서 체크아웃을 했다.
2박 요금 24만동에 자전거 대여료 4만동, 체크인 직후 마신 맥주 한 병 25,000동
도합 305,000동(15,000원)
숙소에서 나와 잠시 걷다가 버스터미널로 이동하기 위해 그랩 오토바이를 불렀는데, 오토바이 기사는 내가 있는 곳으로 오지 않고 다른 곳에 있으면서도 자꾸 도착했다는 문자를 보낸다.
그랩 예약을 취소하고 까오라우(cao lau)를 먹어보기로 한다.
10분 여를 걷다가 발견한 식당에 들어가 까오라우(cao lau)를 주문했다.
쌀국수라는데 면발 굵기와 식감은 완전 우동면과 비슷했다.
숙주와 고수, 상추, 삶은 돼지고기가 올려져있고 그릇 바닥에 깔린 소스는 간장 베이스의 소스다.
간장 비빔국수 같은 느낌으로 전혀 거부감이 없었다.
생수까지 한 병 주문해서 마시고 지불한 가격은 85,000동(4,000원)
비싸게 받은 것 뻔히 아는데도 아무말 하지 않고 그냥 돈을 내고 나왔다.
처음부터 메뉴판과 가격을 보고 주문한 것이 아니니 별 수 있으랴.
다시 그랩 오토바이를 호출했고, 이번에는 다행히 식당 앞까지 오토바이 택시가 왔다.
버스터미널까지 15,000동(750원)
이번에는 당하지(?) 않으리라 마음먹고 미리 2만동 짜리 지폐를 준비했다.
버스 차장이 요금을 받으러 다가오길래 눈도 마주치지 않고 2만동 지폐를 손에 들고 있으려니 차장 아저씨가 알아서 돈을 채간 후 별말 없다.
버스는 다낭을 향해 40여분을 달린다.
그동안 잠시 비도 내렸지만 다행히 다낭에 도착할 때 쯤 알맞게 그쳤다.
옆자리에 투어 가이드라는 한 베트남 청년이 앉아 있었는데 “Where are you from?”, “I’m from south korea”라는 대화를 주고 받은 후 다낭에 도착할 때까지 그 친구의 휴대전화 갤러리에 저장된 사진들을 거의 반강제로 구경했다.
자식...넉살도 좋고 말도 무지 많다.
어쨌든 고마운 일이다.
버스에서 처음 본 외국인이 심심하지 않도록 말 붙여주고 놀아주니....
거의 다낭 시내로 접어들 무렵, 이 친구가 나를 가리키며 버스 차장에게 다낭 한시장(Han market) 앞에 내려주라고 부탁을 하고는 먼저 버스에서 내린다.
다낭 한시장 앞에 내린 시간은 12:30, 비행기 이륙 시간은 00:30.
앞으로 정확히 12시간이 남았다.
별로 할 일도 없고, 아무리 기온이 28도, 29도라지만 나에게는 너무 덥다.
일단 오늘 짐 보관과 샤워가 가능한 곳을 찾아보기로 했다.
다낭 시내에 티라운지라는 곳이 있다는데, 7만동에 샤워와 짐 보관이 가능하단다.
롯데마트에서는 무료로 짐보관이 가능하지만, 샤워하고 잠시라도 쉴 수가 없고...
다시 호스텔월드를 뒤져보니 멀지 않은 곳에 10만동 짜리 게스트하우스가 있다.
차라리 10만동을 주고 샤워도 하고 잠시 쉬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 도모다치 하우스(tomodachi house)를 구글지도에서 검색하고 출발.
도모다치 하우스를 찾아 가는 길에 몇 군데 보이는 숙소들을 들러 가격을 물어보았으나, 대부분 짐보관과 샤워만 하는 경우 10만동을 달라고 한다.
도모다치 하우스를 찾아내 비용을 지불하고 도미토리에 짐을 풀었다.
8인실 혼성 도미토리에는 젊은 베트남 친구들이 가득했다.
몸을 씻고, 잠시 잠을 청했지만 이 친구들이 서로 대화하고 움직이는 소리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다.
그래도 오후 2시가 좀 넘으니 이 친구들이 전부 우르르 밖으로 몰려나갔다.
잠은 달아났고, 나도 밖으로 나가 몇 가지 집에 가지고 갈 물품들을 구매해야겠다.
숙소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재래시장(콘 시장)과 빅씨가 있으니 가보기로 했다.
좌로 기웃, 우로 기웃하며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전방에 빅씨가 보일 무렵, 여러가지 디저트를 판매하는 음식점 한 곳을 발견했다.
한 번 시도해보기로 했다.
안으로 들어가 일단 대충 영어 메뉴판을 훑어보고는 chè đậu đỏ라는 것을 주문했다.
팥빙수였다.
설탕에 졸인 통팥과 약간의 요거트, 얼음, 땅콩이 컵에 담겨 나온다. 단돈 1만동(500원)
작은 티스푼으로 섞어 맛을 보니 영락없는 팥빙수다.
이거 맛있다. ㅎㅎㅎ
콘 시장은 그냥 둘러보며 구경만 하고, 빅씨로 들어갔다.
베트남 쌀국수 국물 맛을 내는 스톡이 있다던데....
빅씨 안을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쌀국수 스톡을 찾았다.
큐브 형태의 고체로 된 스톡 아래칸에는 분말로 된 것도 있다.
두 가지를 모두 양손에 들고 한참을 고민하고 있는데, 옆에서 나를 잠시 지켜보던 젊은 베트남 아기 엄마가 갑자기 내손에 들고 있던 분말 형태의 스프 봉지를 낚아채간다.
ㅋㅋㅋ
서로 말이 통하지는 않았지만 젊은 아기 엄마의 표정과 제스처를 보니 분말은 영 아니란다.
고체 형태의 스톡이 훨씬 맛있다고....
ㅋㅋㅋㅋ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는 이웃들과 나누어 먹을만큼 여유있게 쌀국수 스톡 20개 들이 한 상자와 아이들에게 줄 간단한 과자, 배낭에 넣어 가져갈 수 있도록 100ml를 넘지 않는 소스 작은 병 몇 개, 라이스페이퍼와 쌀국수 몇 봉지 등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한국인들이 선호하는 제품들만을 모아놓은 코너가 따로 있을 정도로...
빅씨 내부를 돌아다니는 사이, 단체 관광을 오신 것으로 보이는 아저씨(정확히는 형님뻘.... ㅡ.ㅡ;;) 몇 분이 스파게티 면을 들고 베트남 쌀국수라며 몇 개씩 장바구니에 담는 모습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이분들 그 이후로는 약 십 여 분간 내 뒤를 졸졸 따라 다니면서 내가 장바구니에 담는 것들을 보고 따라 담는다.
“저 사람이 베트남에 대해서 많이 아나봐”....
ㅋㅋㅋㅋ....형님들 때문에 내가 미친다.
물건을 담다보니 처음 다낭에서 100달러 환전 후 가지고 있던 돈이 좀 모자랄 것 같다.
쌀국수 스톡만 20개 들이 한 상자를 담아 20만동이 넘으니...
빅씨 맞은편에 있는 금은방에서 5만원권 1장을 환전했다.
딱 100만동을 준다.
빅씨 쇼핑백을 손에 들고 다시 한 번 베트남 팥빙수 chè đậu đỏ를 먹기 위해 디저트 식당으로 들어갔다.
쇼핑을 마쳤지만 여전히 할 일이 없다.
딱히 다낭에 볼 것이 있는 것 같지도 않고...
그저 간단히 저녁을 먹고 쉬다가 공항으로 가야지
팥빙수는 여전히 맛있었고, 팥빙수를 먹으면서 ‘트리플’ 어플을 이용해서 주변 식당을 찾아봤다.
이용자 후기는 한 개도 없었지만, 후에 지역의 전통음식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이 숙소 근처에 있다.
후에를 가보지 못한 아쉬움을 후에 전통음식으로 풀기로 하고, 식당을 찾아갔다.
메뉴판도 없는 식당이었다.
외국인들은 아무도 없고 현지인들만 식사를 하고 있다.
마지막 만찬이니 여러 가지 음식을 맛보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일단 두 개의 메뉴를 손가락으로 가리켜 주문했다.
바나나 잎에 싸서 쪄낸 떡 같은 식감을 가진 반남(Bahn nam),
쪄낸 쌀가루 반죽에 뻥튀기 같은 쌀과자 부스러기와 다진 새우를 한데 넣고 피시소스를 기본 베이스로 한 소스를 부은 뒤 골고루 섞어 먹는 반베오(Bahn beo), 그리고 맥주 한 캔.
모든 음식이 정말 맛있었다.
피시소스가 들어갔지만 전혀 비리지도 않았고, 식감이나 맛 모두 전혀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이거 괜찮네....ㅎㅎㅎ
이 식당(Bahn beo Ba Be) 정말 강추!!!
음식이 나오자마자 아주머니 한 분이 오셔서 어떻게 먹는지 몸짓으로 알려주신다.
그러고는 내 옆에 앉아 내가 빅씨에서 어떤 것들을 구매했는지 쇼핑백을 뒤적거리며 흥미로워 한다.
나중에는 나에게 나이가 몇인지 물어보고, 자기가 나보다 2살이 많다고 하고, 아이들 사진을 보여 달라고 하고, 겨우 찾아 보여준 휴대폰 속 아이들 사진을 들고는 자기들끼리 돌려보며 웃는다.
아마 아이들이 나를 닮았다고, 아이들이 아빠보다 키가 커 보인다고 뭐.... 이런 얘기들을 하는 것 같다.
베트남어로 말해 뭐라고 하는지 정말 한마디도 못 알아들었지만 상당히 유쾌하고, 정감어린 분위기였던 것만은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여행 중 카카오톡으로 전송한 사진들을 본 아내가 ‘왜 당신 모습을 찍은 사진은 하나도 없어?’라고 물었던 기억이 났다.
여행 중 한 번도 셀카를 찍지 않았는데... 정이 가는 이 ‘누나’와는 셀카를 찍어 이 따뜻하고 유쾌한 분위기를 기억하고 싶어졌다.
음식 값은 2가지 요리와 맥주 한 캔 해서 단 돈 5만동.
‘신깜언’을 몇 번이나 말하고, 몇 번을 웃으며 인사를 한 후에서야 뒤돌아 걸어 가는데, 누가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누나’가 손에 무언가를 들고 나를 향해 달려온다.
커다란 차(茶) 봉지다.
‘너의 빅씨 쇼핑백에는 차(茶)가 없는 것 같으니 집에 가져가서 가족들과 마시’란다.
정말 얼마나 고맙고 행복함이 느껴지던지...
다낭의 저녁 기온이 26도로 내려가 날씨는 그래도 좀 선선해졌다 싶었는데 이 누나 덕분에 마음이 더워졌다.
계획없이 떠난 짧은 여행이 이렇게 뜻하지 않은 인연으로 따뜻해지는 구나.... ㅎㅎㅎ
걸어 숙소로 돌아가는 길.
어제 호이안 무료 투어에서 만난 남자 대학생 Đặt으로부터 갑자기 메시지가 왔다.
뭐.... ‘너 비행기 타려면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 내가 다낭에 있는 바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으니 와서 맥주 한잔 하고 떠나’란다.
자기는 새벽 2시까지 일을 해야 해서 따로 만날 시간은 없지만, 만약 내가 8~9시 사이에 자기가 일하는 곳을 방문하면 손님들이 많지 않아서 잠깐씩 대화도 나눌 수 있을 거라며...
숙소에 짐만 놓고, 한국에서 떠나기 전 챙겨놓았던 손목시계가 담긴 작은 상자 하나를 들고는 오토바이 택시를 타고 Đặt이 알려준 ‘Sailor’라는 이름의 바로 갔다.
※ 올 1월 태국 여행 때 방콕 빅씨에서 개당 250바트를 주고 손목시계를 구매했었다. 그런데, 사실 손목시계 차는 것을 불편해해서 그냥 박스에 담아 보관만하고 있었는데, 혹시 이번 여행에서 현지인 친구가 생기거나 누군가로부터 큰 도움을 받게 되면 기념으로 주려고 가방에 넣어 가지고 왔었다.
‘Sailor’는 한강 바로 앞에 위치한 건물에서 영업 중인 바였다.
손님들이 대여섯 테이블 정도를 차지하고 앉아 있었는데, 모든 손님들이 한국사람들이다. 게다가 종업원들 수가 더 많다. ㅎㅎㅎ
Đặt과 그의 동료들이 나를 반갑게 맞아준다.
해피아우어라서 음료 하나를 무료로 준단다.
사실, 칵테일 같은 것은 마셔본 경험이 거의 없는데, Đặt이 15만동 짜리 칵테일을 하나 추천해줘서 주문했다.
칵테일은 달짝지근했다.
한강의 야경은 아름다웠다.
다낭 한강의 야경을 볼 생각은 하지 않았고, 더구나 이런 바에서 혼술을 하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는데 Đặt 덕분에 기분 나쁘지 않은 경험을 하게 됐다.
맥주를 2잔 더 시키고, 감자튀김을 하나 주문해서 혼자서 강의 야경과, 강변에서 여유를 즐기는 베트남 현지인들, 1대의 오토바이에 4~5명의 가족들이 타고 이동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나도 여유를 즐겼다.
Đặt이 ‘보스’의 눈을 피해 중간 중간 와서 말을 붙여준다.
‘한국 학생들은 대학에 들어갈 때, 어떤 과목들을 시험보는’지.., ‘다낭에 한국 관광객들이 가장 많다’, ‘서울이라는 도시가 얼마나 큰’지 뭐 이런 저런 것들을 묻고,
나는 또 드문드문 알아듣고, 더듬더듬 답변하며 적적할 수도 있는 시간을 Đặt과 함께 보냈다.
이런 저런 얘기들을 하던 중, Đặt이 무심코 오늘이 자기 생일이란다.
아따~ 이 절묘함 보소?
미리 기념으로 주려고 준비했던 손목시계를 꺼내 ‘내가 미리 생일선물을 준비했다’고 너스레를 떨며 건넸다.
가족이나 친구들로부터도 생일 선물을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다며 정말 정말 기뻐한다.(만약 내가 잘못 알아들었다면 오늘 아무에게도 선물을 받지 못했다는 얘기일 수도 있다)
나는 다소 민망해져서 ‘이거 비싸고 좋은 시계 아니야’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하지만 Đặt은 무척 행복한 표정을 지었고, 아들 또래인 어린 친구의 순수하고 행복한 표정을 보는 나 역시 행복해졌다.
아.... 오늘 밤은 조금 전 만난 식당 누나에, Đặt 이 친구에.... 아무튼 예상치 못한 인연이 된 현지인들로부터 듬뿍 정을 받는 행복한 날이로구나.
하이네켄 맥주 작은 병 2병과 감자튀김 1개 값으로 15만동을 치르고, Đặt과 기분 좋게 헤어졌다.
오토바이 택시를 불러 숙소에 들러 짐을 챙기고, 공항으로 이동했다.
북적거리는 공항 터미널에서 나와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같은 곳으로 돌아갈 많은 사람들 틈에 파묻혀 비행기를 기다리고, 탐승하고, 그리고는 몇 시간 뒤인 아침 7시,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입국수속을 밟고 서둘러 공항버스를 잡아 타고, 사무실에 도착한 시간은 정확히 9시 10분.
“월요일 아침이라 그런지 버스가 밀렸네요”
단지 평소보다 좀 커다란 가방을 메었을 뿐인 나는....
별일 없었던 듯 월요일 아침 사무실에 출근했다.
의자에 앉자마자 습관적으로 컴퓨터의 전원을 켜고,
정수기에서 뜨거운 물을 받아 텀블러에 믹스커피를 타고,
모니터 속의 활자들을 대충 대충 눈으로 훑어가며 홀짝, 믹스커피를 한 모금 들이키면서....
나는 문득.... 짧은 꿈에서 깼다.
[다음 날, 한참 일하는 중 Đặt으로부터 받은 메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