쑤린 & 씨밀란 여행기 6-쑤린의 낮과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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쑤린 & 씨밀란 여행기 6-쑤린의 낮과 밤

필리핀 3 2056
너는 한 때 등산에 푹 빠졌던 적이 있었다.
주말과 연휴에는 어김없이 등산화 끈을 졸라매고
배낭에 코펠과 버너와 텐트를 챙겨 넣고
전국 각지의 산을 향해 훌쩍 떠나곤 했었다.
아름드리나무가 우거진 산 구비에 텐트를 치고
계곡물에 씻은 쌀로 밥을 지어 먹고
풀벌레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들던 시절이 있었다.
새벽녘에 텐트 밖으로 나와 수풀에 오줌을 갈기다가
문득 올려다본 하늘에는 왜 그리도 많은 별이 빛나고 있었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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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쑤린, 파라다이스로 가는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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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운 무공해 휴양지 쑤린...



쑤린에서 너는 청춘의 그 시절로 되돌아가는 경험을 했다.
참으로 오랜만에 매트리스를 깔고 슬리핑백을 덮고
텐트에서 잠을 잤다.
정해진 식사시간에 밥을 먹고
하루 2차례 있는 스노클링 투어에 빠짐없이 참가하고,
저녁에는 식탁에 모여서 캔 맥주를 마시며 잡담을 하다가
10시가 되기도 전에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오전 6시면 저절로 눈이 떠져서 산책과 요가(!)를 하고
아침을 먹고 스노클링 투어를 하고,
점심을 먹고 다시 스노클링 투어를 하고...
그렇게 규칙적이고 부지런한 생활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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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쑤린의 텐트촌. 해변 바로 앞에 있어서 시원하고 전망도 좋다. 대영료 소형(2~3인용) 300밧, 대형(3~4인용) 450밧, 베게 10밧, 매트리스 20밧, 슬리핑 백 30밧...



네게 태국여행의 큰 즐거움 중 하나는 식도락이다.
너는 팍치에 대한 거부감이 거의 없다.
그것은 태국 음식을 얼마나 제대로 즐길 수 있느냐를 가늠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웬만한 태국 음식에는 팍치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샌드위치에도 들어갈 정도이다.
그런데 쑤린에서는 식도락의 기쁨을 잠시 보류해야 한다.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섬이다보니
재료 공급이 원활하지 못해서 메뉴가 다양하지 않다.
그러나 음식 맛은 육지의 웬만한 식당보다는 괜찮았다.
식당이나 리셉션에서 근무하는 직원들도 싹싹하고 친절했다.
샤워장과 화장실은 남녀가 쓰는 건물이 달랐고
시설도 아주 깔끔하게 관리되어 있었다.
(쑤린은 공기가 맑아서 옷이 쉽게 더러워지지 않았다.
그래서 빨래를 자주 할 필요도 없었다.
너와 너희 일행들은 2박 3일 동안 한 벌의 옷으로 지냈다.)
꼬 싸멧과 꼬 피피에서 염분이 많은 물 때문에
고생한 기억이 있어서 걱정을 했었는데
쑤린의 물 사정은 썩 괜찮은 편이었다. 
강원도나 제주도의 한적한 휴양시설로
웰빙여행을 떠나온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정도의 만족감을
너는 그곳에서 지내는 동안 느낄 수 있었다.
너의 일행들도 다들 만족하는 눈치였다.
장기여행 중인 노처녀는 아예 1달 정도 있을 작정이라고 했다.
(그녀는 육지에서 텐트를 빌려 가지고 왔다고 했다.
텐트가 있으면 자릿세로 1일 80밧만 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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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쑤린의 식당 겸 매점. 밤 10시까지 전기가 들어오므로 텔레비전을 보거나 책을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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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덮밥이나 볶음밥류는 50~70밧, 요리는 100~150밧. 맛은 괜찮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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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은 한 접시 30밧.


쑤린의 밤에 대해서 너는 특별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첫날밤, 너는 한밤중에 두 번이나 잠에서 깨어났었다.
첫 번째로 잠이 깬 것이 새벽 3시였던가,
잠들기 전에 마신 맥주로 인해 요의를 느끼고   
텐트 밖으로 나오다가, 너는 눈이 부셔서 잠시 멈칫했다.
마침 그때가 음력 보름 무렵이기도 했지만,
다른 인공 불빛이 없었기 때문에
달이 그렇게 환하게 빛날 수 있었던 것이었다.
텐트 앞에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는 순간,
너는 그 자리에 그대로 얼어붙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었다.
하늘에 박힌 달이 지상을 대낮처럼 밝히고 있었다.
썰물 때의 해변은 바닥이 훤히 드러나 있었다.
저 멀리에 물러가 있는 바다는 끊임없이 철썩거리면서
해변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그런데 저 멀리에서 철썩거리는 파도소리가
네 귀에는 미지의 생명체가 웅성거리는 소리처럼 들렸다.
해저에 사는 생명체들이 야밤을 틈타 뭍으로 올라와서
저희들끼리 모여서 수군거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너는 겁에 질려 바지춤도 제대로 올리지 못하고
얼른 텐트 속으로 다시 기어들어왔다.
그리고 두 번째로 깨어난 건 새벽 5시쯤이었다.
이번에는 너는 잠에서 깨어나고도 한참을
텐트 속에 그대로 누워 있었다.
왜냐하면 너는 네가 눈을 떴는지 감았는지를
분간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정말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사방이 지독하게 어두웠다.
밤의 심장처럼 빛나던 달이 지고 나자
어둠의 신이 세상을 장악한 것이었다.
그때 너는 처음으로 어둠도 공포가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3 Comments
이 미나 2006.03.07 09:44  
  럭셔리한 호텔..주방집기가 갖추어진 콘도..
웰빙여행도 좋지만,
별밤에,텐트 옆에서 코펠로 차려진 밥과 찌개에
기울이는 쏘주 한잔이 마구마구 그리워 집니다.[[취한다]][[그렁그렁]]
창려리 2006.03.08 13:20  
  글을 읽는 동안 제 가슴이 다 뛰는군요. ....아.가고 싶다.
줄리엣0410 2006.03.13 19:39  
  ㅎㅎㅎ흥미진진해요..상상력을 발휘시키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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