쑤린 & 씨밀란 여행기 13-방콕으로, 방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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쑤린 & 씨밀란 여행기 13-방콕으로, 방콕으로...

필리핀 0 1416
홀로 여행을 하다 보면
10여일을 전후해서 고비가 온다.
‘내가 왜 이 고생을 사서 하지?’ 라는 생각이 들면서
집, 가족, 고국에 두고 온 모든 게 그리워진다.
이때 한국 음식을 먹으면 그 고비를 넘길 수 있다.
한 달쯤 되면 향수병이 본격적으로 몰려온다.
이때는 아무 데도 안 가고 한 곳,
가능하면 도시에 머물면서
음주가무에 푹 빠져 지내는 게 좋다.
방탕의 나날이 지겨워져서 
다시 길을 떠날 마음이 들 때까지.
여행이 열흘을 넘기자,
너에게도 슬슬 향수병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너는 별 걱정을 하지 않았다.
오늘 밤차로 방콕으로 갈 것이며,
내일 아침에는 한국 음식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레에는 한국행 뱅기를 탈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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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 차 레의 메뉴판



너는 찬 차 레에서 카레볶음밥으로 아침식사를 했다.
이번 여행은 볶음밥으로 시작한 여행이니
마무리도 볶음밥으로 하고 싶었다.
어제 저녁, 손님이 없을 때부터 짐작은 했지만
찬 차 레의 음식 맛은 50점밖에 못 주겠다.
역시 완벽한 곳은 없다.
잘하는 게 있으면 못하는 것도 있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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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레볶음밥... 셋팅은 그럴듯하다.



식사를 하고
찬 차 레에서 방콕 행 여행자버스를 예매했다.
여행 끝물에는 현지 물가에 적응이 되어
500밧이 5만원처럼 느껴진다.
(실지로 태국에서 500밧은 한국에서 5만원의 위력이 있다.)
버스는 500밧이고, 기차는 1,000밧이다.
편하기는 기차가 편하지만,
어쨌든 일단 버스에 몸을 실으면 방콕까지 가기는 가겠지.
그러면 500밧을 절약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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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 차 레 로비에는 태국과 말레샤 해변의 모래들을 병에 담아 진열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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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배낭을 찬 차 레에 맡겨놓고
아오낭 풍경을 몇 장 더 사진에 담으러 가기로 한다.
아오낭 행 썽태우 정류장에 한국인처럼 생긴 두 여성이
잔뜩 들뜬 표정을 하고 서 있다.
말을 걸어보니 한국인이 맞다.
인터넷에서 만나 같이 여행 온 사이란다.
둘은 아오낭에 잔뜩 기대를 걸고 있었다.
너는 아오낭의 현실에 대해 잠깐 설명해주었다.
그래도 둘은 반신반의하는 표정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새 아오낭에 도착했다.
어, 그런데 해변 한쪽 끝이 심상치 않다.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무언가를 지켜보고 있다.
무슨 일인가 싶어 가보니,
뮤직비디오를 촬영하고 있었다.
그런데 태국 뮤직비디오가 아니라,
인도 뮤직비디오다.
주인공 남녀 가수는 인디안이고,
백댄서는 태국인들이다.
인디안 피디가 영어로 지시를 내리면,
옆에서 태국어로 통역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백댄서 중 낯익은 얼굴이 몇 눈에 띈다.
어제 보그백화점에서 봤던 때깔 고운 아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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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직비디오 촬영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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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그백화점에서 낯이 익은 아이들도 있었다.



네가 뮤직비디오 촬영 장면을 동영상으로 담고 있는 동안
바다에 들어갔던 두 여성은 아오낭에 대해 실망한 눈치이다.
너는 4시에 방콕 행 버스를 타야 했으므로
두 여성과 함께 시내로 돌아와 점심을 먹기로 한다.
까이양과 쏨땀과 얌탈레로 식사를 한 뒤
그들과 짧은 만남을 아쉬워하며 헤어졌다. 
찬 차 레에서 샤워를 한 판하고 옷을 갈아입고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자 썽태우가 픽업을 하러 왔다.
썽태우에는 유러피안 커플이 타고 있었다.
중국에서 조사원으로 일하고 있는 노르웨이 인이란다.
요즘 중국은 일본 정치인들의 망언으로 인해
일본인에 대한 감정이 무척 안 좋단다.
‘일본인 출입금지’라고 써 붙인 업소도 있을 정도란다.
5시에 끄라비를 출발한 버스는 먼저 수랏타니로 갔다.
수랏타니는 여행자버스의 허브 같은 곳이었다.
끄라비, 푸켓에서 방콕, 싸무이, 팡안 등지로 가는 여행자와,
싸무이, 팡안에서 방콕, 끄라비, 푸켓 등지로 가는 여행자가,
이곳에 다 모였다가 행선지별 버스로 갈아타는 것이었다.
약간 혼잡하기는 했지만,
각양각색의 사람을 만나는 재미가 있었다.
승객이 많은지 방콕 행은 2대의 버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순서대로 태우다보니 한 대의 버스는 꽉 찼지만,
네가 탄 버스는 자리가 많이 남았다.
덕분에 너는 2개의 좌석을 차지하고
편하게 방콕까지 올 수 있었다.
버스가 수랏타니를 벗어날 즈음,
검문소에서 경찰과 함께 웬 아가씨가 탑승한다.
그리고 유창한 영어로 이야기를 했다.
“여행자버스에서 도난사고가 자주 일어난다.
각자의 귀중품은 잘 챙기고,
만약 도난을 당했을 때는 관광경찰에게 연락해라...”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2년 전, 너는 짐칸에 실었던 배낭을 털린 적이 있었다.
마침 귀중품은 작은 가방에 담아 휴대하고 있었던 터라
스포츠 타올 하나만 도난당했을 뿐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핸드폰, 카메라, 여권, 현금을
배낭에 넣은 채 짐칸에 실었다가 도난을 당한다.
이것은 태국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파리나 로마의 경우, 공항 직원들이
수화물을 귀신같이 뒤져서 귀중품을 훔쳐가는 것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고 있다.
얼마나 자다 깨다를 반복했는지 모른다.
어느새 창밖으로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버스는 방콕 시내로 접어드는 참이었다.
오전 6시, 마침내 버스는 카오산에 도착했다.
너는 노르웨이 커플과 가벼운 인사를 나눈 뒤
배낭을 울러 메고 람부뜨리 거리로 향했다.
막 람부뜨리 거리로 들어설 무렵,
주홍색의 물결이 너의 시야를 가로막았다.
탁발 행렬이었다.
맨발에 주홍색 장삼을 걸친 스님 수십 명이
새벽거리를 행진하며 음식을 보시 받고 있었다.
이른 새벽,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열을 지어 행진하는 구도자의 모습을 보자
왠지 숙연한 기분이 들었다.
그들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데,
불현듯 너도 배낭을 던져버리고
저 영원한 순례자의 행렬에 동참하고 싶다는 생각이
가슴 밑바닥에서 치솟아 올랐다.

[image]IMG_0279.jpg[/image]
*쏘이 람부뜨리에서 마주친 탁발 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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