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이름은 시타였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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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이름은 시타였다 5

mr.jeon 2 1040

13세기에 캄보디아를 방문했던 중국의 주달관이라는 사신은



<진랍풍토기>라는 책을 발간해서 세상에 캄보디아를 알린다.



그 책에 의하면 '진담'이라는 재밌는 풍습이 생생하게 전해져내려온다.






여자 아이를 출산하면 그 부모는



"우리 예쁜 딸아, 너는 꼭 큰 부자가 되어 장차 천, 백의 남자에게 시집가야돼~"





이는 당시 캄보디아가 (지금도 그렇지만) 모계중심 사회였음을 말해준다.



말이 일부일처제이지, 가부장사회에서 소위 능력있다는 남자들은



비공식적으로 처첩을 거느리고 있듯이



모계 중심 사회에선 많은 남자를 경험하는것이 여자의 능력인것이다.






부잣집의 여자는 일곱 살부터 아홉 살,



가나한 집의 여자는 열한 살이 되면



반드시 승려와 도사에게 생명을 맡기고 처녀성을 없애는 절차를 밟는데 이를 진담이라고한다.





처음에 이 부분을 읽었을땐 뭐 이런 콩깍지같은 사회가 다 있나 싶었는데



두고두고 곱씹어보니 처녀성을 빨리 파괴하고,



얼른 다양한 남자를 만나서 거느리라는 축복같은 것으로 해석될수있었다.




가끔씩 우리 드라마에서 아들이 스무살이 되는 날,



요정에 데려가 술을 진탕 먹이고 여자의 손에 아들의 손목을 쥐어주고 2차를 보내는 아버지는



대게 능력있는 남자로 그려지는것과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겠다.






시간이 지나면 승려는



여자와 함께 침실로 들어가 자신의 손으로 (과연 손일까? )



여자의 처녀성을 제거한 다음 그것을 술에 넣었다고 한다.



어떤 집에서는 이것을 가지고 부모, 친척, 주위 사람들의 얼굴에 묻히기도 하고



어떤 집에서는 입으로 맛을 보기도 한다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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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목욕을 하는 연못이라는



(개인 욕실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비경제적일 정도로 큰)



스랑스랑 앞에 시타의 남자친구가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말끔하게 생긴 베트나미 (베트남 사람) 였다.






그는 젠틀하게 나에게 악수를 청했고 자기 여자친구를 가이드로 써줘서 고맙다는 말까지



잊지않았다. (나는 내 가이드랑 사귀어줘서 고맙다는 말을 했다)






시타는 옆에서 공연히 얼굴이 홧홧해지고 있었다. 역시 여자란 알래야 알 수 없는 존재다.



우리 셋은 근처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캄보디아에선 무난하게 먹으려면 무조건 볶음밥을 시키면 된다. 내가 볶음밥을 시키자



그들은 각자 좋아하는 스타일의 캄보디아 푸드를 주문했다. 아무도 지나가지 않은 눈발처럼



다소곳이 쌓여있는 밥을 느리게 팔을 들어 숟가락을 입으로 가져갔다. 포근포근하고 뜨뜻한



느낌이 입 안 가득 퍼졌다. 어금니로 찬찬히 씹어보았다. 건조한 밥 알갱이들이 잇새에서



이겨지는 맛은 달큼하고 애틋했다. 피곤해서 돋아난 혓바닥돌기가 밥알들 틈에 보드랍게 파묻혔다.



숟가락질이 점점 빨라졌다. 순식간에 밥그릇 바닥이 보였다. 마취한 듯 위에는 아무 감각도 없었다.



숟가락을 놓자 등뼈와 어깨죽지가 혼곤해지고 온몸에 맥이 풀려왔다.





(내가 이렇게 밥한끼 쳐먹는걸 상세하게 묘사하는건



그들이 캄보디아 말로 지네끼리 속닥속닥거리는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밥쳐먹는 것 밖에 없었기때문이다)





"둘이 어떻게 만났어요?"




둘 사이 좀 비집고 들어가보려고



트름 소리가 꺼억~나는것을 참지않은 채 물었지만 잘생긴 베트나미는 친절히 대답해줬다.





"저도 여행가이드거든요.



제가 캄보디아 시장조사차 여기왔을때 로칼가이드를 알아보다가



그녀(she)를 만났어요. 그리고 그녀가 베트남에 왔을땐 제가 가이드했지요."





베트나미는 계속해서 시타를 she라고 지칭했다. 그녀의 본명이 뭐냐고 묻고싶었지만



실례일것같아 자제했다. 어쩌면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진짜 이름을 가르쳐주는것일지도 모른다.



그게 또한 시타의 룰일지도.





하지만 하나의 질문을 억지로 눌러넣으면 숨죽이고 있던



더 독한 질문이 튀어나오는것이 고약한 심보들의 특징이다.





"결혼때문에 한국에 가려고했던게 이 사람때문이니?"





물론 말이 되지않는다는것을 잘 알고있다. 베트나미와 결혼하려고 한국에 왜 가겠는가.



말이 되지않는 소리를 하는게 이방인의 영어아닌가.



시타의 얼굴이 에그조틱하게 붉어지고 베트나미는 못알아듣는 척 한다.



사태의 심각성을 늦게나마 인식한 난 사죄하는 뜻으로 그들의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이야기했다.






베트나미는 이내 밝아지면서 벌써 포즈까지 취한다.



그런데 시타가 이상한 주문을 귓속말로 한다. 자기의 얼굴이 뭉그러지게 사진을 찍어달라는.



내가 그런 능력이 어딨겠니. 일단 찍고 볼께.






나는 그녀의 직업이 뭔지 참 궁금했다.



가이드같기도 하고, 잡상인 같기도 하고, 정부쪽에서 일하는 산업스파이같기도 하고, 어쩌면



몸파는 여성같기도 했다. 그런데 이 사진을 현상해서 뽑아든



순간엔 혹시 그녀가 역술가 또는 심령술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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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부분의 종교는 선으로 천지창조가 시작되지만 인간의 타락으로



오돌토돌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힌두신화에선 천지창조는 선과 악의 공존, 아니



협업을 통해 이루어졌다. 매일 악마에게 밀리기만 하는 천상의 신들은 (힌두교신들은 맨 왜 그



모양인지...)






우유로 이루어진 전설의 바다를 가로젓길 원한다. 우유바다를 가로저으면 신비의 불로장생 약초가



솟아오른다는데 그걸 먹기 원했던것이다. (훗날 학자들은 그 약초를 대마초로 해석하고있다)



하지만 신들만으로는 힘이 부족했다. 악마들을 살살 꼬신다. (신들이 더 나쁘다)



우리 같이 저어서 약초를 나누어갖자. 순진한 악마들은 이에 응한다.



그리하여 총 108 명의 신과 악마들이 거대한 뱀 ('나가'라고 하는데 훗날 중국과 서양으로 건너가



dragon이 된다) 을 붙잡고 우유바다를 휘젓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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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라 우유젓기를 하고있는 108명의 신과 악마가



자야바르만 7세가 만든 앙코르 톰의 남대문 입구에 고스란히 재현되어있었다.



앙코르 와트의 영광을 뛰어넘기위해



그보다 몇배나 더 크게 만든 앙코르톰은 거대한 도시 그 자체였다.





당시 앙코르톰 내부에는



많은 사원과 테라스, 광장과 궁전이 있었고 승려와 군인, 관료등 거주 인원이 약 10만명을 넘었으며



도읍지를 둘러싸고 사는 거주민들의 수는 수백만에 이르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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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정사각형 모양의 앙코르톰의 서쪽문은 이른바 승리의 문으로 불리운다.



승리의 문으로 나가면 700km떨어진 곳에 참파왕국이 있었는데



과거 참파왕국의 지배를 받았던 걸 기억하며



자야바르만 7세는 언젠가 저 승리의 문으로 진격해 참파왕국을 정복할 꿈을 꾸고있었다고한다.




(물론 그러하지못했고 그의 죽음 이후 앙코르는 쇠락하기에 이른다)





자야바르만 7세는 스스로를 부처라 칭하며



많은 학교와 병원을 짓고 백성들을 돌보는데 힘썼는데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왕 스스로가 문둥이였기때문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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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그녀를 찾아가고 싶었다. 그녀의 남자친구를 통해 그녀를 더욱 알아가고싶었다.



그리하여 '이왕에 캄보디아에 살지않기로 마음먹은 이상' 며칠내에 베트남으로 여행가겠다고



선포했다. 그랬더니 시타와 그녀의 남자친구 헐이 동시에



"really?"




갑자기 내가 뭐라도 된것같아 비장하게 이야기한다.



"absolutely!"




헐은 베트남 달랏이란 지역에서 일하고있는 호텔 종업원 겸 관광가이드라고 했다.



달랏, 반드시 가서 연락할께요.



명함을 주고받고 그렇게 내 여행일정이 결정됐다.






*






40일 밤낮을 우유젖기에 몰두해서 마침내 대마초를 얻어낸 신들은



악마들을 배신한다. 그들을 내쫓고 자기들만 대마초를 즐기게된다.



악마들은 이를간다. 신을 믿은 우리가 바보지. 이쯤되면 누가 신이고 누가 악마인지



헷갈리게된다. 이게 힌두교고 이게 캄보디아다. 모계 중심 사회에서 달라붙는 남자들에게 지친



시타는 자신의 능력으로 여행을 다니는 남자 여행객들이 대단하게 보였을지도 모른다.



한국인 여행객이 거의 절반을 차지하니 한국을 왔다갔다하는건 당연할지도.



그러다가 돈을 소비하는 그들보단,



같은 여행을 해도 돈을 버는 가이드 남자가 더욱 솔깃해졌을 것이다.



소비지향적인 한국남자보다 건실해보이는 베트나미가 매력적으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




툭툭 (오토바이를 개조한 마차)을 타고 혼자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오는 길은 꺼끌꺼끌한 쌀을



씹는 기분이었다. 그네들은 여전히 캄보디아말로 어디선가 사랑을 속삭이고 있을것이다.



지나치는데 앙코르와트의 탑 꼭대기가 또 좀 다르다 싶은 느낌이었다. 높게 드리워진 탑위에



잡목이 무성해져있는것처럼 보였다.





게스트 하우스에 도착하니 오늘 씨암렛에 떨어진 배낭족들이 짐을 푸느라



정신이 없다. 며칠전 내 모습처럼 설레임으로 가득차있다



다가가서 한 명 한 명에게 인사를 한다.



오늘 저와 소주한잔 하실래요? 한국에서 챙겨온 소주팩 풀께요.



다들 좋다고 난리다. 밤이 늦어지도록 소줏잔을 기울였다.



나를 거쳐갔던 여자들 얼굴이 하나하나 스쳐지나간다.






"다음 경로는 어떻게 되세요?"



그들이 내게 묻는다.



단 돈 1불 아끼는게 지상목적인 배낭객들에게 무료 소주와 안주는 더운날 만난 소나기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더욱 친근하게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베트남에 가려구요"



"왜요?"



"캄보디아에선 살아있는게 감사하다는걸 느꼈고 베트남에선 어떻게 살아야할지 배우고싶어서요"





꽥 꽥 우는 소리에 깜짝 놀라 사방을 둘러봤다.



벽에 달라붙은 도마뱀이 개구리처럼 울고있다.



뭔가 좋은 일이 벌어지겠는데요, 라고 30대 중반의 게스트하우스 여사장이 이야기한다.



캄보디아에선 도마뱀이 영물이고 그가 울면 좋은 일이 벌어진다고 한다.



그 말을 믿어보기로 하고 기분좋게 소줏잔을 넘긴다.















* 이 글은 다른 게시판에서 이곳으로 이동되었습니다. 앞으로는 꼭 게시판 성격에 맞도록 글을 올려주세요. ^_^ (2006-06-01 18:12)
2 Comments
곰돌이 2006.06.01 19:49  
  Mr. jeon 님~
싸이월드에 링크된 사진은 안 보입니다.[[으에]]
몽땅 이쪽으로 옮겨야 하는데...
사진도 보이게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윙크]]
mr.jeon 2006.06.01 20:34  
  글쿠나, 지금은 회산데 집에 가는대로 사진올려놓을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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