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이름은 시타였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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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이름은 시타였다 4

mr.jeon 0 924
사랑하는 시타까지 되찾았겠다



라마(정확히 말해 라마의 모습을 한 비슈뉴신)는 더 이상 두려울게 없었다.



남은 악마들과의 지난한 싸움에서 승리한 비슈뉴는 천계로 돌아간다.





힌두 신화를 근거로한 앙코르문명의 체계를 확립한 수리바르만 2세는



오랜 내전과 반대파 숙청끝에 얻어낸 권력의 정당화를 위해



자신을 비슈뉴에 비유하고자한다.





눈에 보이지않는 비슈뉴에 버금가기위해선



눈에 보이는 것중 가장 아름답고 화려한 건축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것밖에 없다.



따라서 인류역사상 이집트 피라미드와 더불어 가장 많은 시간



과 인력이 투입되고 어마어마한 규모와 동시에 1센티 1센티의 간격 간격이 모두 의미를



가지고 있는 세계 7대 불가사의의 건물을 지어내게된다.







그리고 외친다. 이 신전은 비슈뉴의 것입니다!



하지만 패기무쌍한 비슈뉴의 모습과 달리 수리바르만 2세의 모습은 죽기 직전의 모습이었고



태양빛에 따라 매시간마다 다르게 보이게 설계된 앙코르와트의 첫 일출을 보기도전에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이곳에 묻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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썬라이즈가 끝나고도 발을 뗄줄을 몰라하는 나를 놔두고 시타는 급한일이 있다며 어디론가



사라졌다. 이미 이틀이나 봤지만 역시 일출과 함께하는 앙코르와트는 다른 모습이었다. 함부로



앙코르와트에 대해 안다고 알은척하기가 스스로 쑥스러울정도로.



모텔 냉장고에서 들고온 헐렁한 생수병 하나로 버티며



햇볕에 따라 새록새록 변하는 앙코르와트를 숭배하듯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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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네겹으로 되어있는 앙코르와트안에 들어가 시계반대방향으로 걸어가다보면



수야바르만 2세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를 분명히 읽을 수 있다. (라고 가이드북이 이야기해줬다.



시타, 이년은 어디간거야, 돈만받아처먹고 완전 농땡이아냐 --)








라마가 시타를 얻기위해 싸웠던 지리한 싸움은 캄보디아 민족의 전쟁사를 반영하고 있었다



그것을 결국 평정해내는 비슈뉴. 그리고 그 다음에야 이어지는 천지창조의 그림.



(캄보디아를 먼저 확보하고 그다음에 천지를 창조했다는 전혀 앞뒤가 맞지않는, 그러나 진지한



벽화들)



마지막엔 더 넓은 세상으로 달려가는 수야바르만 2세 본인의 그림으로 벽화는 구성되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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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이 온통 벽화와 부조투성이었다. 하지만 시간시간별로 들어오는 햇살에 따라 벽화속의 특정한



개체가 도드라져 보였는데, 그것을 온전히 이해하기위해선 동시간대에 수백명의 사람이



각각 무전기를 들고 각각의 벽화앞에서 그림의 변화를 이야기하며 소통해야지만 가능하다고한다.



해리포터 시리즈를 능가하는 입체적인 스토리가 11세기 앙코르와트에서 시작되어



1000년이 넘는 동안 매 순간 벌어지고 있는것이었다.







*





가이드 북을 읽으며 2층으로 올라가고 있는데 여기 어딘가 가슴치는 방이 있다고 한다.



가슴이 답답한 사람이 자신의 심장을 치면, 그 억울한 정도에 따라 울림의 소리가 달라진다는.



가이드북의 안내는 이런식이다.



"1층 계단을 다 올라왔다면 11시 방향을 바라보라. 거기서 세발자국 정도 걷고 뒤돌아서 남서쪽



으로 다섯발자국. 그리고 한숨을 쉬라. (왜 한숨을 쉬라는건지) 가슴에 느낌이 왔을때 앞으로 열발



자국 걸어가면 거기가 가슴치는 방이다"



물론 그대로 했다. 여기가 맞나...어리둥절하는데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할머니 한분이 자신의 가슴을 치고있다.



소름이 돋는 스테레오로 메아리가 돌아온다.



할머니가 나가기 무섭게 내 가슴을 쳐본다.



장마철 수책구멍에서 올라오는 듯한 역한 메아리가 내 귓전을 때린다.









*



2층 회랑 순례를 마치고 나니



3층 탑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이는데 그 경사가 장난이 아니다.



왕과 제사장만 올랐다는 일종의 지성소인데



신에게 다가가는 마음으로 왕마저 허리를 숙이게 하기위해



일부로 급경사를 지었다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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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가는 것은 어렵지않았으나 내려오는게 까마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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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을 다 오르니 비슈뉴신의 동상이 나를 쳐다보고있다. 비슈뉴에게 말을 걸었다.



"당신이군요. 시타를 차지한 당신...내게도 시타라는 친구가 있는데 참 재밌어요..."




평지에서 비슈뉴까지가 54미터, 비슈누부터 탑 꼭대기까지 54미터



이 사원은 결국 108미터라고 한다. 108이란 숫자가 힌두교에서 갖는 의미는 각별하기도 했거니와



사원의 중심에 비슈뉴를 모시고싶던 수야바르만 2세의 마음이 담겨져있기때문이란다.







실제로 1세기 후, 스스로를 부처라고 여긴, 그 자야바르만 7세는



이곳 앙코르와트마저 불교식으로 바꾸고 싶었지만



중앙에 박혀있는 비슈뉴의 형상을 뽑으면 건물 자체가 무너질 위기에 있어 당황했다고 한다.





대신 비슈뉴보다 높은 곳에 거대한 부처의 입상을 세워놓는것으로 만족해야했다.



내려오는데, 벌써 석양이 지려는걸보니 하루 온종일을 앙코르 와트에 소비한 모양이었다.



여느때처럼 입구에서 시타가 기다리고 있었음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긴 순례자의 길 (외부와 앙코르와트가 통하는 통로)



을 걷기시작할무렵 등허리가 따가워



뒤를 돌아봤다.



앙코르와트 사원에서 수행하다가 잠시 바람쐬러 나온 승려들이 나를 보고있었다.



그들은 과연 힌두교사제들일까, 대승불교 사제들일까,



팥죽색과 오렌지색 사이의 장삼을 입은 그들은 과연 무슨 꿈을 꾸고있을까.



비슈뉴의 부활일까, 비슈뉴가 품은 시타일까, 수야바르만 2세의 영광일까,



자야바르만 5세가 만들어놓은 부처의 자비일까.



아니면 잊어버린 혹은 잃어버린 자기 자신에 대해서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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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구에 도달하니 거짓말처럼 시타가 환하게 웃고있다.



반달모양의 보조개가 아닌 만개한 해바라기같은 웃음을 그녀가 내게 지어보이는건 처음이었다.



대체 무슨 좋은 일이 있길래 코까지 히릉히릉대는것일까.



그녀는 왜이렇게 늦게 나왔냐며, 여기 눌러붙어 승려되려는건 아닌지 걱정했다며



웃기지도 않는 농담을 하며 나를 오토바이에 태웠다.



그리고 이내 악셀을 당겼다.







"어디가는건데 시타?"



"내 남자친구 보여주러! 기대되지 친구도?"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지않아 뱃가죽이 등에 들러붙는것같았지만



문득 그녀의 남자친구가 궁금해서 한 번 참아보기로 한다. 왜냐하면



그녀는 내가 이곳 캄보디아에 떨어지던 날 같은 비행기가 있었다.



분명히 결혼하려다 실패해서 돌아오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와서는 줄곧 (야심한 심야와 오늘 하루를 제외하고는) 나와 함께 있었다.



대체 언제 그를 만났으며 어떻게 사랑을 나눴을까.



몸을 비빈것으로 따지면 나또한 그녀와 경험이 있는데 그것과 다른 그 어떤것이



그를 그녀의 남자친구로 규정짓게하고 행복하게 하는것일까.









배에선 꼬르륵 소리가 앙코르와트 해자 (사원과 속세를 구분하려고 인공적으로 만든 호수)를



출렁이게 할 정도였지만 나는 조용히하라고 내 배에 명령한다. 그리고 즐겁게 뛰는 그녀의



심장소리를 들어보기위해 그녀의 등에 다소곳이 귀를 가져다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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