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이름은 시타였다 2

홈 > 여행기/사진 > 여행기
여행기

그녀의 이름은 시타였다 2

mr.jeon 0 1349


1.jpg





시바신같기도 하고, 시바신이 타고다니는 코끼라같기도하고,



원숭이 형태를 한 악마 라바나같기도 한 검은 형체의 괴물이 내 목을 조르고있었다.





살려줘, 우리말로 내뱉자 괴물은 알아듣지못하는 표정이었다.



그러면서도 내게는 어설픈 한국말로 욕을 한다.





“야 이 놈아, 여기엔 왜 기어들어온거냐, 우리가 그렇게 만만해보여?”




허걱거리다못해 팔다리가 흔들린다. 대체 내게 뭘 원하는거야,



이대로 죽어버려, 아무도 널 기억하지도 사랑하지도 않을것이야,



저항하던 손목에 힘이 없어지고 눈가가 처연해진다.




그 순간 쾅쾅쾅 하는 소리가 들리며



괴물의 몸이 하물하물 증발해갔다.





눈을 떠보니 천장위에 달린 대형 선풍기가 요란스럽게 돌아가고있었다.



내 목을 졸랐던 선풍기를 한참을 째려봤다.





말이 게스트하우스지,



세 평 남짓한 감방에 침대하나 달랑 얹어놓은듯한 이 방



(게다가 단돈 2달라를 아끼려고 에어콘 대신 선풍기가 있는)



에 벌러덩 드러눕던 첫날,





천장을 가득 채우고있는 저 선풍기를 처음 보면서



저걸 틀어놓고자면 질식사하는 것도 순식간이겠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불과 3일만에 가물가물해져버린...)





악몽은 끝났지만 쾅쾅쾅 소린 계속되고있었다. 그게 문을 두들기는 소리라는것을 한참후에야



알았다. 시타였다. 답답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있었다.



지금 몇신줄알아, 몇일이나 됐다고 벌써 퍼져버린거야, 오늘 일정 포기한 거야?





반달모양의 보조개는 분명 그녀의 매력이었지만



사람을 비웃을때만 지어지는 것이라 언제나 부담스러웠다.





주섬주섬 옷을 집어입고 시타의 오토바이 뒷좌석에 앉았다.



다짜고짜 허리를 잡으니 그녀가 소리내어 웃는다.



얼굴의 썬블록 크림이나 마저 바르지 그래.



그리고 방문도 잠가야지.





말썽꾸리기 아들을 혼내는 엄마처럼 지시하고



나는 그 지시에 따라 깡총깡총 뛰어다녔다




그러자 시타, 이번엔 장난꾸러기 소녀의 표정으로 오토바이 시동을 건다



쫓아가 올라타니까 만족한 표정을 짓는다.





"밥도 안먹었겠네?"



"먹고잤어"



"그런게 어딨어?"



"머리감고 잔다는 말도 있잖아, 마찬가지로 난 먹고잤어, 어제 밤에"



"웃기지말고 이거먹어"




하며 자신의 크로스백에서 바게트빵을 꺼내준다.



성의를 봐서 우걱우걱 씹긴 했지만



먼지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비포장도로위에서



프랑스 식민지배의 잔해를 뜯어먹는 기분은 전혀 유쾌하지않았다







거기에다 래게머리를 허리까지 기르고 파리를 벌떼처럼 이끌고 다니는 캄보디아판 노숙자의



괴기스런 모습에 놀라, 빵조각이 목구멍을 틀어막고 말았을때



나는 또 시타의 등을 쳐서 오토바이를 세우고 말았다.







못 말려 정말, 가지가지한다...



복대에서 2000리엘(캄보디아 화폐, 4000리엘이 1달라)을 꺼내더니 노점상 할머니에게



달려가 물 한 병을 사다준다. 시타를 만나지않았더라면 오늘만 난 두번 죽었다.




시타는 수호천사?



글쎄,,, 전통적인 수호천사라기엔 무리가 있다, 현대적인 방식으로 댓가를 치루기때문이다.






"윽, 살거같다, 땡큐, 이따가 10달라 2000리엘 주면 되는거지?”



“천만에...11달라줘야지, 빵도 먹었잖아”





시타는 언제나 정확한 금액을 내게서 받아갔다.



한국에선 베풀고 돈을 받지않는게 배려와 친절이라면



여기선 칼같이 돈을 받아내는게 상대방을 존중하는 것이란다.



(그게 정말 사실인지, 아니면 돈을 갈취하려고 갖다붙인 말인지는 아직까지 모르겠다.



후자일 경우 기분 더러워질까봐 다른 사람들에게 묻지도 않았다)






그날 밤,



내가 캄보디아 씨암렛 공항에 미아처럼 던져진 밤에도,



그녀가 자신의 오토바이로 나를 한국인이 운영해주는 게스트하우스까지 픽업해주던 밤에도,



시타는 내게서 3달라를 받아갔다.







*




“왜케 늦게 공항에서 나온거죠?”



“비자 발급이 늦었어요. 제 여권을 제일 늦게 주던걸요”



“바보, 1달라만 얹어 주면 급행으로 해주는데...”




캄보디아에 발디딘지 채 한 시간도 되지않아 나는 바보란 소리를 두 번이나 들어야했다.



여기 사람들이 솔직한것인지 한국 사람들이 나를 배려해 하고싶은 말을 참았던지



그 둘 사이에 진실이 있을것이다.





여기 여자들은 (남자는 물론이고) 대부분 자신의 오토바이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오토바이 없인 움직이지 못하는 곳이 캄보디아란다.




물론 차도 간혹 보였지만



도마뱀떼같은 오토바이들의 일련의 흐름속에서



자동차들은, 쥐를 무서워는 소처럼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시타는 왜 늦게나왔어요?”



“아, 제 오토바이키를 어디다뒀는지 까먹어서 트렁크를 열고 다 뒤지느라요”



“시타도 블랙홀을 가지고있나봐요?”



“블랙홀이요? 그게 뭔데요?”



“작은 구멍하나죠. 첨엔 열쇄나 핸드폰따위를 삼키다가 점점 당신을 먹어버릴걸요.



나중엔 사랑하는 사람까지”



라고 한국말로 했다면 그 속뜻까지 전달이됐을텐데, 안타깝게도 짧은 영어로 표현하자니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이해가되어지고있었다.





“병원에 가세요. 듣자하니 암보다 큰 병이네”





우리나라의 읍면쯤으로 되어 보이는



(하지만 우리나라 모든 읍면의 일년예산을 합친 것보다 많은 돈



을 한달안에 벌고 있는 세계적인 관광지인) 씨암렛의 밤은 무척이나 조용했다.



그녀의 오토바이엔진소리와 내 목소리가 정적을 깨는것처럼 느껴질정도로.




2.jpg





“예약한 숙소나 호텔있어요?”



“아뇨”



있을 리가 만무하다. 단 하루만에 캄보디아행을 결정하고, 그 다음날 편도 티켓을 구입했으며,



하룻밤 자자마자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 내가 그런것을 해놨다면, 그런 류의 인간이라면,



굳이 여기에 유령처럼 떠돌고 있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시타는 유명한 게스트하우스라며 (하지만 전혀 유명해보이지도,



한국인이 있을것같지도 않는 캄보디아판 기와집같았다) 나를 내려줬다.





미안해서 그리고 고마워서 어쩌죠, 하는 내 표정을 무색하게 그녀는 온리 3달라라고 말했다.



30달라가 아닌걸 감사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어쨌든 고마워요 돌아서는데 아쉬운 맘이 감돈다. 그녀도 그랬을까.



혹시 여행 관광가이드있으세요? 하루종일 10달라요, 어때요?



라며 친절하게도 (나중엔 알았지만 평균 싯가보다 조금더 비싼) 가이드 역할을 자처해왔다





좋아요!





라고 내가 한순간에 외친것은



선택과 집중, 이라고 했던가. 내가 알려고하는 캄보디아는 너무나 크고 막연했다.



캄보디아안에서 씨암렛을 선택하고 씨암렛 가운데서 시타에게 집중한다.



그리고 그녀를 통해서 씨암렛을 보고 씨암렛을 통해 캄보디아를 알아가는 것이다,



하는 것은 순전히 핑계였고,




그 더운 날 밤, 오토바이 뒷자석에 앉아서 잡았던 그녀의 서늘한 허리와 매끈한 어깨가 맘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라마왕자는 결혼식에서야 비로소 시타를 볼 수가 있었다. 시타는 아주 귀엽고 어린 소녀였다.



검은 눈동자는 암사슴의 그것과 같았고, 입술은 한껏 부풀어 있었고,



등 뒤로 늘어트린 검고 긴 머리칼은 발목까지 내려왔으며 그윽한 향을 발산했다.



이마에는 불그스레한 점을 하고, 볼에는 붉고 흰 백단향의 분을 발랐으며



발바닥에는 라크 물감으로 염색하고 있었다. 진홍색 원피스에 공기처럼 가벼운 은색의



면사포, 자수로 짠 벨트, 걸을 때마다 살랑거리는 발찌, 보석으로 만든 왕관,



일곱 개의 줄에 진주를 장식한 목걸이가 가슴까지 내려왔다.



그러나 누가 시타를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인가? 그녀를 보는 순간 이 모든 표현들은 헛된 것이



될 뿐이었다. 그녀가 미소 지을때, 이 세상 어디에서 그와 같은 미소를 찾아볼 수 있을까.



자나카왕은 결혼선물로 시타의 앞머리에 진주를 박은 황금의 잎사귀를 꽂아 주었다.



왕은 시타가 태어났을 때 사용했던 불꽃을 지상에 있는 라마왕자의 불꽃과 합쳤다.



왕은 라마와 시타를 이끌고 불꽃이 타오르는 제단 앞에 섰다.



이렇게해서 라마와 시타는 부부가 됐다.







*






시타의 가이드로 출발한지 3일째,



오늘 방문하는 유적지는 씨암릿에서 상당히 먼 곳에 있는 모양이었다.



지척에 있는 앙코르톰이나 앙코르와트를 방문했던 어제, 그제와 달리



시타의 오토바이는 멈출 생각이 없는 듯 했다.



그녀가 내 손에 쥐어준 물병의 물이 벌써 반이나 비어갔다.





“오늘 어디가는거야?”



“반테이 스레이!”




혀에 버터라도 바른듯이 매끄럽게 미끄러지는 반테이 스레이는



가장 보고싶었던 사원이기도 했으며 내가 아직까지 가장 잊지못하는 사원이다.



비행기 안에서 읽었던 가이드북은



'반테이 스레이는 한마디로 보석이라고' 칭송하고있었다.



반테이 스레이를 발음하는 캄보디아인들의 목소리에 유난히 조심스러움이 배어있어서



주목하고있던 사원이었다.





앙코르의 모든 유적군이 국가 신전으로 신의 무덤이라는 성격을 지니는 데 반해,



이 사원은 살아있는 사람들을 위한 사원이란다.



규모는 작지만 빈틈없이 화려한 조각으로 채워져있고



중앙탑엔 동양의 비너스라 불리는 여신상이 붙어있다고한다.



프랑스 소설가 앙드레말로가 아름다움에 반해 몰래 밀반입하려다



캄보디아 공항에서 국제적 망신을 당해서 더욱 유명해진 여신상.







오토바이는 마침내 씨암렛에서 훌쩍 벗어나버렸다.



물과 뭍사이에 2층집을 짓고 사는 전형적인 캄보디아인들의 시선과 수없이 맞딱드렸다.



그들과 그들의 아이들이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목은 말랐지만 열대성 과일의 단맛처럼 달가운 미소들이었다.



혹시 저 아이들의 미소가 순례객의 마음에 보석처럼 박히는게 아닐까.



그리하여 반테이 스레이라는 이름이 어린아이의 눈망울을 상기시키고



그것이 보석으로 기억되는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보았다.







하지만 굳이 현지민의 미소와 연결시키지않더라도



반테이 스레이 사원은 첫인상부터 수줍어하는 보석, 그 자체였다.





okaforever_1149179905_01.jpg





okaforever_1149179905_02.jpg




앙코르와트나 앙코르톰을 갔을때와 달리, 시타는 특별한 설명이 없이 조용히 돌아다녔다.



정육면체로 이루어진 건물들이 다시 육면체를 이루고있는 이곳사원들



곳곳에 붙어있는 그림과 조각, 시타는 이미 여러번 봤을터인데도



다시금 보석에 취한 것 같았다.





그녀와 떨어져 걷던 난 시타라는



그녀 이름의 진실에 대해 알 수 있는 부조 한 조각을 발견해냈다.



흥분해서 큰 소리로 그녀를 불렀더니 서양인 관광객들이 눈살을 찌푸린다






"헤이, 시타! 이 부조는 무슨 그림이야?




okaforever_1149179973_01.jpg




“원숭이형태를 한 악마의 왕 라바냐가 라마의 아내 시타를 납치해가는 장면이지”





하지만 그녀의 표정과 말투가 너무 진지해서



왜 저 아름다운 여신의 이름을 (고작 나를 속이려는 목적으로) 니가 함부로 따다쓰냐고 따지려던 원



래의 의도는 조용히 사 묻혔다.





라바나라는 원숭이 형태를 띈 악마의 왕은 모든 신을 정복한다. (비뉴슈신만 남겨놓은채)



그리고 비슈뉴신의 여섯번째 환생인 라마를 잡으려고 환장해있다.



하지만 라마는 아무도 못든 전설의 활을 한손으로 번쩍든 경력이 말해주듯



여섯번의 윤회를 통해 너무나 강해진 사람이자 신이다.



아무리 라바나가 악마의 왕이라지만 오랜 전쟁에서 지쳤고



라마와 정정당당하게 붙었다간 뼈도 안남을 심산이다.



라마의 이성을 흐트러놓을 약점이 무엇일까 하루종일 살피던 라바냐는



마침내 그의 아내, 시타왕비를 납치하는데 성공한다.






석양이 지는 하늘아래, 늘어지듯 시타의 몸에 기대 돌아오는 동안,



반테이 스레이 사원이 보석이라 불리우는 까닭이 두가지 연유에서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사랑은 빼앗기기 전엔 그 소중함을 모르는것이라 했던가



라마왕이 자신의 아내 시타를 빼앗긴 이 사원의 돌조각이



눈물조각처럼 섬세하고 아름다운 까닭은 무엇이며





다른 유적지에 비해 엄청나게 긴 거리를 왕복하는 동안



순례자들은 무슨 생각을 하겠는가



덜컹덜컹 흔들리는 비포장도로에서 내내 사랑에 대해,



자신의 사랑에 대해 결국 생각하지않을까, 햇볕에 달구워지고 석양에 숙성되어



결국 순례자들 자신의 사랑은 보석처럼 반짝이는 추억으로 변모되는것이 아닐까






"헤이, 미스터 전, 어땠어? 정말 보석같았어? "



"아니..."



"왜?"



"난 기억하기위해서가 아니라 잊기위해서 왔기때문이야. 나와 어울리는 곳이 아니야..."



"그렇다면 돌아가는 길도 무지 멀겠군"




다행히 더 이상 내 과거는 그 어떤 감상도



후회도, 아쉬움도 주지 않는다. 그러기엔 여긴 너무 덥다.





*




반테이스레이를 보고 돌아온 밤, (툼레이더를 찍을 당시의 안



젤리나 졸리가 자주 방문해 유명해졌다는) 씨엠릿 퍼브스트릿의 중심에 있는 바



“red piano"에서 시타는 처음으로 자기의 이야기를 했다.





캄보디아 여성에겐 세가지 사랑이 있다고 한다.



첫째는 원나잇 스탠드



(서구에서나 근현대적 개념이지 캄보디아에선 전통적인 사랑의 한 방법이라고한다)



둘째는 육체관계를 위한 만남. 마지막 셋째는 결혼하기위한 만남이라고 밝혔다.



24살의 그녀는 최근 세 번째 사랑에 도전했다가 실패했으며



그것 때문에 한국에 다녀오는 길이란다. (더 구체적으로 말했으나 내 영어귀



가 짧아 그 정도만 이해했다)





그것이 한국의 에이전시들이 장삿속으로 내걸고 있는 국제결혼인지,



아니면 진짜 한국인과 사랑에 빠졌다는 소린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에이전시에게 돈을 받고 몸 팔듯 결혼을 하기엔 그녀는 도회적인 풍미를 풍겼고,



한국인과 진짜 사랑에 빠지기엔 속물근성이 넘쳐보였다.






아니, 한국인을 만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솔직히 말해, 그 때 난 (우리 맥주보다 훨씬 돗수가 높은)



앙코르 맥주 여러병에 얼큰히 취해있었다.





대신 내가 이 말을 했던 기억은 분명히 있다.





“Hey! miss SiTa!



Shall we make first combodian style love, tonight?......"





내 눈망울의 초점심도는 시타에게 깊어졌다.



그녀가 농담이냐고 물으면 진담이라고, 진담이냐고 물으면 농담이라고 대답하려고 맘먹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동안 망연해지더니 입을 열었다.





“fifty dollars, okay?"





그녀는 천천히 일어나더니 예외적으로 자기가 술값을 계산했다.



삐그덕 흔들리는 목조의자가 그녀의 부재를 요란스럽게 강조하고있었다.



무더위속에 스르륵 지나다니는 유령같은 외국인들을 배경으로 한 채,



나는 잠시 혼란에 빠져있었다.































* 이 글은 다른 게시판에서 이곳으로 이동되었습니다. 앞으로는 꼭 게시판 성격에 맞도록 글을 올려주세요. ^_^ (2006-06-01 18:12)
0 Comments
포토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