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이름은 시타였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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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이름은 시타였다 1

mr.jeon 3 4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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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끈하더니 마침내 시큼하게 붉은 태양이 튀어올라왔다.



크르륵 가래끓는소리처럼 뭉클한것이 내 속에서 올라와 해괴하게 울어댔다.



대체 저러한 풍경이 지상위에 존재한다는것이



거대한 순례의 치밀한 예정에 의해 초대되어 내가 그 앞에 섰다는것이



내가 살고 있다는게 감사했다.



앙코르와트를 만든 수야바르만 2세는 더 이상 이 광경을 보지못한다.



하지만 나는 본다.



지금 보고있다. 심지어 내일도 볼 수 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맺혔다.



내 옆의 시타는 내 촉촉한 눈가를 보더니 비가오나해서 하늘을 올려다본다.





시타는 프놈펜에 가지않겠다고 말했다.



나와는 여기까지인것같다고 이야기한다.



조금 서운하긴 했지만 그녀와의 토론으로



내 눈을 불사르고 있는 앙코르와트의 썬라이즈를 망치고싶지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삶으로 돌아갈 것이고



나또한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난 앙코르에 있다, 시타와.





*







그녀의 이름은 시타였다.



내가 '라마의 부인 시타인가요?' 라고 되묻자



그녀의 표정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것은 마치 처음만난 외국인에게



나무젓가락 부러지는듯한 소리로 따닥따닥 내 이름 세음절을 끊어말하기 귀찮아서



대충 '철수'라고 에둘러댔는데 그 외국인이 "그럼 영희 친구겠네요?" 라고



반문했을때 내가 지어야할 표정이었다.






'시타'란 이름을 처음 들어본건 교회 중등부때 수련회를 따라가서였다.



당시 '팝뮤직에 나타난 사탄의 활동' 이란 제목으로 까까머리 중학생들에게 특강을 하러온



젊은 강사는 조지해리슨의 "my sweetest lord"란 곡을 자신의 구형 카셋레코더를 통해 들려주었었다.






'내 달콤한 주님, 내겐 당신 밖에 없어요'...라는 가사로 진행되는 이 곡은



"할렐루야"로 화답하는 코러스로 인해 더욱 은혜충만한 찬송가같은 분위기를



띄고있었는데,



그 강사는 목에 핏발을 세우며 2절에 블라인드 메시지가 숨겨져있다고 강조했다.





숨을 죽여 자세히 들어보니 정말 2절의 "할렐루야"가 은근슬쩍 "할렐라마, 할렐시타"로



바뀌어져있었다. '라마'와 '시타'는 힌두교의 신이었고, 기독교의 주님을 노래하듯 하면서



결국 이교도의 신을 찬양하고있는 이 노래는 분명히 사탄이 활동하는 증거였었다





열세넷의 난 그 자리에서, 팝뮤직을, 특히 조지해리슨의



노래와, 그가 몸담았던 비틀즈의 음악을 절대 듣지않겠다고 맘먹었드랬다.






조지해리슨의 노래를 그녀가 알지 모를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스스로를 시타라고 소개했고, 그 이상 그녀는 시타일 수 밖에 없었다.



철수라고 이름을 속였어도, 나라는 사람은 변하지않는것이고 철수라는 이름에 내 본질이



고스란히 옮겨 담겨지듯. 설사 그녀의 이름이 시타가 아닐지라도 시타는 그녀인것이다.






"즐거운 여행이 되길바래요, 시타"







다정다감한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용서하듯 쓰다듬고,



기내 음악방송용 헤드셋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14, may, 2006 서울에서 캄보디아 씨암렛으로 날아가는



20시 30분 발 아시아나 항공 oz8337편에서



옆자리에 앉은 캄보디아 아가씨 시타와의 첫 만남이었다.







힌두교에선 신들이 항상 악마들을 이기는게 아니었다.



천계에서 악마들에게 항상 신이 얻어터지자



답답함을 이기지못한 우주 창조의 신 비슈뉴는 스스로 인간의 몸을 입어



지상으로 내려와 악마로 인해 자신과 단절된 사람들에게 평화를 주려고했다.




비슈뉴의 여섯번째 환생인인 아요드야의 왕자 라마는 16살이 되던해에



마침내 악마와의 싸움을 위해 머나먼 길을 떠난다. 신들이 축복해주고



요정들이 동행해주었다. 그가 바데하 왕국이라는곳에 도착했을때



궁전에 커다란 활이 달려있는걸 발견한다.




"저것은 무엇입니까?" 라마가 바데하 왕국의 왕에게 물었다.



"오래전일이지. 천계에서 파괴의 신, 시바신이 나에게 활을주었다네. 시바신의 활을



잡아당겨 구부리는 사람은 내 딸 시타공주의 남편이 될것이야. 시타공주는 대지의 신



의 딸이라네"



"대지의 신의 딸이면서 당신의 딸? 어떻게 그런관계가?"



"14년전 도시 밖에서 밭갈이를 하고 있었다네. 그런데 뒤를 돌아다보니 밭고랑 사이에 누워있는



시타를 발견했다네. 황금의 피부를 가진 어린 아기였던 그녀는 대지의 어머니 발밑 아래



먼지 속에 있었다네"



"대체 활이 얼마나 강하길래 그렇습니까?"



"수많은 신들과 요정, 악마들이 들어보려고 시도했지만 아무도 들어올리지못했네. 14년간



나는 이 활을 바다를 건너는 뗏목으로 활용했네. 이제 딸이 결혼할때가 됐는데 아무도들지 못하고



나는 가슴이 아프다네"



활을 바라보는 라마왕자의 눈이 반짝 반짝 빛났다.







시타와 내가 다시 이야기를 나누게 된건 각자의 테이블에 기내식이 놓여졌을때였다.



소고기와 생선중 무엇을 먹겠냐는 스튜어디스의 질문에 내가 머뭇거리자 그녀는 소고기가



더 맛있다고 귀뜸해주었다. 빞스테이크를 썰면서 내가 물었다.




"힌두교도는 소를 먹지않지않나요?"



그녀는 내가 자기에게 묻고있다는걸 나중에야 알았는지 한참을 우물거리다 대답했다.



"아마도요..."



"힌두교도가 아니신가봐요?"



"캄보디아에선 불교를 더 많이 믿어요"



"그럼 불교신자세요?"



"아마도요..."



"불교신자가 왜 고기를 먹어요?"



"......"




시타와의 대화는 썰어지는 스테이크처럼 종종 단절됐다.



그녀는 한국에 국제 결혼을 하러왔었고, 무언가가 잘못되어 돌아가는 길이란다.



한국인에게도 비싸지만 캄보이아인에겐 평균 월급 몇달치를 털털 털어서사야할만큼



비싼 서울-씨암렛 직항기를 그녀가 이용하고 있는것을 보면



화급히 돌아가야할 일이 생겼거나, 엄청나게 화가 난 일이 있었을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유가 넘치는 그녀의 표정에서 두가지중 어떤 이유도 찾지못했다.



옷차림이나 피부결로 봐서 부유한 가정의 딸로 보이는 이 여자가



이름에 이어 두번째로 나를 속이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





씨암렛 공항은 마치 우리나라 시외버스 터미널 같았다.



후덥지근하면서 텁텁하고 캐러멜 향처럼 약간 달착지근하기까지 한 밤 공기엔



이상한 마력이 있었다. 또 외국인들 특유의 노린내, 체취와 땀 냄새가 한데 섞여 그 공기는



내 코를 심하게 자극했다. 몽롱한 듯, 알 수 없는 열기와 흥분이 느껴졌다.





패키지 여행객들에 치여 내 비자가 제일 늦게 발급되었다. (비자피는 20$)



깜깜한 밤, 맨 마지막으로 공항을 나서는데



공항에 북적북적하다는 택시기사들이나 오토바이맨 툭툭기사들이 하나도 보이지않았다.



막막한게 꼭 인생같았고 뚱뚱한 여행트렁크를 뒤뚱뒤뚱끌며 스르르 걸어가는 내 모습은



내가봐도 어리숙한 이방인의 그것이었다.




잠시 후 새까만 어둠속으로 새까만 피부에 하얗게 반짝이는 눈동자와 이빨들이



나를 향해 다가오는게 느껴졌고 곧 뜨겁고 불콰한 숨결들이 내 피부에 닿았다.



공포를 느낀건 그들이 다가왔을때가아니라,



멀찌감치서 그들에게 시선을 떼지않고있는 공항 경찰의 시선을 발견했을때였다.






"한밤중에 걸어가려구요? 시내까지 태워드릴께요. 20불이면 되요"





친절하고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그들이었지만 바가지는 그 이상이었다. 시내까지 1불이면 간다고



가이드북에서 방금전 읽었던 터라, 아무리 늦은 밤이었고 보이는것은 없었지만 20배의 바가지를



첫날부터 뒤집어쓰고싶진않았다.



"5불이면 타구요"



내 어설픈 흥정에 코웃음치는 그들사이를



노땡큐~하며 지나치려했지만 내 트렁크는 너무 무거웠고



오토바이를 탄 그들은 놀리듯 계속해서 따라왔다



"헤이 맨~ 이 깜깜한 밤중에 어떻게 걸어가려구~ 너 바보아니니"



신경질이 왈칵 치밀어올랐다. 하지만 공항경찰의 시선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고있었고



다른 불빛이나 시선아래로 이동하기전엔 대화 자체를 피해야겠단 생각에 속력을 내어 걸었다.





시야를 어지럽히는 오토바이불빛들과 꺽꺽거리는 캄보디아 새들의 객쩍은 울음소리에 어느정도



지쳐갈때, 오토바이 한대가 내옆에 바짝 붙어선다. 이 습한 공포를 이기는 방법은 그냥 이십불을



지불하는것밖에 없는것인가보다, 하며 오토바이맨을 바라보는데......그녀의 이름은 시타였다.







라마왕자는 활을 들기전에 생각한다



'이 활은 인간의 힘으론 들수없다. 내가 들 수 있다면 그것은 다른 힘이다. '



그는 창문너머 커텐아래 숨어있는 시타의 실루엣을 보았고 그녀를 갖고싶다는 생각을 한다.



라마는 균형을 잡고 활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나서 시위를 당겼다.



너무 세게 당긴 나머지 활은 커다란 굉음을 내며 두동강나고 말았다.



모두들 뒤로 벌렁 나자빠졌다.



"지금 벌어진 일을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



시타는 창문너머로 라마를 보았고 눈길로 라마를 어루만지면서 이미 사랑에 빠져들었다.

























* 이 글은 다른 게시판에서 이곳으로 이동되었습니다. 앞으로는 꼭 게시판 성격에 맞도록 글을 올려주세요. ^_^ (2006-06-01 18:12)
3 Comments
이효균 2006.06.02 00:52  
  혹시 죠기 위에 있는 사진 퍼가도 될까요 ??
mr.jeon 2006.06.02 01:15  
  죠기 위에 있는 사진 저도 퍼온검다..일출때 넋을 놓느라 찍는걸 잊었거든요...네이버 이미지 앨범에서 가져왔
기 때문에...저 사진에 대한 권리는 제게 없음을 알립니다.
바람의아들^^ 2006.07.14 01:47  
  잠시 읽어 내려온 글이 참 좋으네요. 작가 지망생?
ㅎㅎ  책을 쓰셔도 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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