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1 - 싱가포르, 네 정체가 무엇이냐?
싱가포르 1 - 싱가포르, 네 정체가 무엇이냐?
(2006년 7월 2일 이야기, 동월 9일 씀)
호주 케언즈에서 싱가포르행 비행기를 탔다.
비수기라면 호주 달러로 700불이면 충분했을 텐데, 불행히도
지금은 전 세계의 대학생들이 방학을 맞아 쏟아져 나오는 성수기 중의 성수기,
케언즈의 플라이 센터를 샅샅이 헤집으며 돌아닌 끝에 899불짜리 비행기 표를 어렵게 구했다.
천 불 이하였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라고 내 스스로를 위로한다.
싱가포르 창기공항에 착륙하자마자 나를 공포스럽게 했던 것은 온도.
해가 기운 뒤였음에도 불구하고 비행기 안 전광판은 실외 온도 섭시 31도를 기록하고 있었다.
비록 케언즈에서 약간의 적응 기간을 갖았지만 8시간 만에 겨울에서 여름으로 계절갈이를 한 셈이었다.
지하철을 타고 시내에 가야하는데 지하철 표시가 보이지 않는다. 안내 데스크에 물어보니 옆 청사로 가야한단다.
어쩔 수 없이 청사의 밖으로, 에어콘의 마력이 미치지 않는 공포의 지역으로 발걸음을 내딛는다.
숨이 턱턱 막히는 습도 높은 공포의 지역에서 제일 먼저 눈에 들어 온 것은 기도하는 무슬림 남자의 모습이었다.
머리에 흰 모자를 쓴, 사람들이 옆으로 지나가건 말건 신경 쓰지 않고 땅바닥에 엎드려 기도하는,
진정한 무슬림의 모습을 나는 처음으로 보게 되었다.
(호주의 무슬림들은 무릎을 꿇고 기도하지 않는다. 왜 기도를 하지 않느냐고 물어보면 기도하긴 하되 그냥 마음으로만 한단다.)
조상신을 섬기는 중국인, 흰두교를 믿는 인도인, 알라를 믿는 말레이인,
기독교인인 서양인들이 자신들의 삶의 자세를 그대로 간직한 채 섞여 사는,
다양성의 나라 싱가포르가 아시아 대륙의 관문으로 나에게 열린다.
지하철역에서 충전식 교통카드를 사고 역사 안으로 들어가 본다.
역사는 세련되고 깔끔하다. 열차가 도착한다. 열차 안에 올라탄다.
객차 안은 인천 지하철만큼 폭이 작고 아담하다. 역시 세련되고 깔끔한 모습이다.
배낭과 보조 가방을 내려놓으며 무장해제를 하는데, 맞은편에 앉은 남자가 내 많은 짐이 신기하다는 듯이 나를 쳐다본다.
내가 먼저 하이, 하고 인사한다. 그러나 남자는 대답하지 않는다.
나를 쳐다보기만 한다. 쑥스러움이 많은 친구군, 하고 생각하며 시내 지하철지도를 들여다본다.
그러자 남자가 내 옆으로 자리를 옮겨와 자신의 핸드폰을 내민다.
핸드폰 액정에는 어디로 가는 중이냐는 물음이 영어로 씌어있다.
나는 내가 가는 역 이름을 말한다. 그러자 남자는 말 대신 어버, 어버 하는 답답한 소리를 낸다.
나는 그제야 남자가 벙어리라는 것을 알게 된다.
남자가 자신의 핸드폰을 다시 내민다. 그리고 자신의 귀를 가리키며 손을 내젓는다.
알아들을 수 없으니 나보고 글로 써보라는 것이다.
그제야 남자가 벙어리에 귀머거리인 것을 알게 된다.
남자의 이름은 토마스, 나와 동갑인 스물 아홉이다.
컨설던트 회사에서 일하고 있고 나보다 훨씬 유창한 영어를 구사한다.
토마스와 나는 종이에 글을 써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눈다.
짧은 시간 만에 이야기가 깊어진다.
‘너는 너의 나라를 어떻게 생각하니?’
‘나는 이 나라의 정책이 싫어. 돈을 충분히 모으면 영국이나 호주로 이민 갈 생각이야.’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드는데?’
토마스는 잠시 고민한다. 그리고 이야기 한다.
‘이 나라에서는 bf를 만들 수가 없어.’
‘bf 가 무슨 뜻이야?’
‘boy friend......'
그제야 나는 이 남자가 벙어리에 귀머거리에 게이라는 걸 알게 된다.
토마스가 나에게 묻는다.
‘너는 여자를 사랑할 수 있니?’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덧붙여 여자를 너무 밝히고 어린 여자까지 좋아한다고 솔직하게 말하려다....... 그만 둔다.
토마스는 나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부럽다는 눈빛이 역력하다.
싱가포르에서는 동성애가 불법인지라 태국에 남자 친구가 있고 때로는 친구가 싱가포르로 와서,
때로는 자기가 태국에 가서 친구를 만난다고, 그는 나에게 고백한다.
‘부모님도 아시니?’
‘당연히 모르셔.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야.’
‘만약 부모님이나 다른 누가 너의 성향을 알게 되면 어떤 일이 생기니?’
‘....... 다시는 부모님을 볼 수 없게 될 거야.’
토마스가 내려야 할 역이 가까워 오자, 토마스는 자신의 전화번호를 적어준다.
내일 저녁 SMS로 연락을 하면 기꺼이 싱가포르 안내를 해주겠단다.
문이 열리고, 토마스는 인사 하고 내린다.
토마스는 알고 있었을까? 나는 그를 충분히 이해한다고 말하고, 실제로 이해 할 수 있지만,
그와 악수를 할 때, 내 몸에 살짝 소름이 돋았다는 것을,
그리고 SMS 따위는 보낼 리가 없을 거라는 것을......
한 때 싱가포르에서는 껌을 씹는 것 자체가 불법이었다. 휴지 한 장을 버려도 막대한 벌금을 물리던 곳이다.
그러나 지금은 껌을 씹어도 되는 것은 물론이고 카지노도 생겼다 한다. 그것은 사회주의 정책의 퇴보를 뜻하는 것일까?
토마스가 느끼는 싱가포르의 정책의 답답함은 무엇일까?
장애인이지만 능력만 있으면 안정된 취업을 보장하는 혜택과 성적인 억압에서의 자유,
그 중에서 무엇이 더 중요할까? 이 나라는 정말 사회주의 국가인가?
그리고 바른 길로 가고 있는 사회주의 국가인가?
몇 정거장을 더 가서 나도 지하철에서 내린다. 시청 앞 번화가다.
무더운 대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수많은 젊은이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화려한 빌딩들이 스카이라인을 이루고 있다.
더운 날씨 때문에 여자들의 옷은 한결같이 노출이 심하다.
문득 도시 국가 싱가포르에게 묻고 싶어진다.
네 정체가 무엇이냐고
(2006년 7월 2일 이야기, 동월 9일 씀)
호주 케언즈에서 싱가포르행 비행기를 탔다.
비수기라면 호주 달러로 700불이면 충분했을 텐데, 불행히도
지금은 전 세계의 대학생들이 방학을 맞아 쏟아져 나오는 성수기 중의 성수기,
케언즈의 플라이 센터를 샅샅이 헤집으며 돌아닌 끝에 899불짜리 비행기 표를 어렵게 구했다.
천 불 이하였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라고 내 스스로를 위로한다.
싱가포르 창기공항에 착륙하자마자 나를 공포스럽게 했던 것은 온도.
해가 기운 뒤였음에도 불구하고 비행기 안 전광판은 실외 온도 섭시 31도를 기록하고 있었다.
비록 케언즈에서 약간의 적응 기간을 갖았지만 8시간 만에 겨울에서 여름으로 계절갈이를 한 셈이었다.
지하철을 타고 시내에 가야하는데 지하철 표시가 보이지 않는다. 안내 데스크에 물어보니 옆 청사로 가야한단다.
어쩔 수 없이 청사의 밖으로, 에어콘의 마력이 미치지 않는 공포의 지역으로 발걸음을 내딛는다.
숨이 턱턱 막히는 습도 높은 공포의 지역에서 제일 먼저 눈에 들어 온 것은 기도하는 무슬림 남자의 모습이었다.
머리에 흰 모자를 쓴, 사람들이 옆으로 지나가건 말건 신경 쓰지 않고 땅바닥에 엎드려 기도하는,
진정한 무슬림의 모습을 나는 처음으로 보게 되었다.
(호주의 무슬림들은 무릎을 꿇고 기도하지 않는다. 왜 기도를 하지 않느냐고 물어보면 기도하긴 하되 그냥 마음으로만 한단다.)
조상신을 섬기는 중국인, 흰두교를 믿는 인도인, 알라를 믿는 말레이인,
기독교인인 서양인들이 자신들의 삶의 자세를 그대로 간직한 채 섞여 사는,
다양성의 나라 싱가포르가 아시아 대륙의 관문으로 나에게 열린다.
지하철역에서 충전식 교통카드를 사고 역사 안으로 들어가 본다.
역사는 세련되고 깔끔하다. 열차가 도착한다. 열차 안에 올라탄다.
객차 안은 인천 지하철만큼 폭이 작고 아담하다. 역시 세련되고 깔끔한 모습이다.
배낭과 보조 가방을 내려놓으며 무장해제를 하는데, 맞은편에 앉은 남자가 내 많은 짐이 신기하다는 듯이 나를 쳐다본다.
내가 먼저 하이, 하고 인사한다. 그러나 남자는 대답하지 않는다.
나를 쳐다보기만 한다. 쑥스러움이 많은 친구군, 하고 생각하며 시내 지하철지도를 들여다본다.
그러자 남자가 내 옆으로 자리를 옮겨와 자신의 핸드폰을 내민다.
핸드폰 액정에는 어디로 가는 중이냐는 물음이 영어로 씌어있다.
나는 내가 가는 역 이름을 말한다. 그러자 남자는 말 대신 어버, 어버 하는 답답한 소리를 낸다.
나는 그제야 남자가 벙어리라는 것을 알게 된다.
남자가 자신의 핸드폰을 다시 내민다. 그리고 자신의 귀를 가리키며 손을 내젓는다.
알아들을 수 없으니 나보고 글로 써보라는 것이다.
그제야 남자가 벙어리에 귀머거리인 것을 알게 된다.
남자의 이름은 토마스, 나와 동갑인 스물 아홉이다.
컨설던트 회사에서 일하고 있고 나보다 훨씬 유창한 영어를 구사한다.
토마스와 나는 종이에 글을 써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눈다.
짧은 시간 만에 이야기가 깊어진다.
‘너는 너의 나라를 어떻게 생각하니?’
‘나는 이 나라의 정책이 싫어. 돈을 충분히 모으면 영국이나 호주로 이민 갈 생각이야.’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드는데?’
토마스는 잠시 고민한다. 그리고 이야기 한다.
‘이 나라에서는 bf를 만들 수가 없어.’
‘bf 가 무슨 뜻이야?’
‘boy friend......'
그제야 나는 이 남자가 벙어리에 귀머거리에 게이라는 걸 알게 된다.
토마스가 나에게 묻는다.
‘너는 여자를 사랑할 수 있니?’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덧붙여 여자를 너무 밝히고 어린 여자까지 좋아한다고 솔직하게 말하려다....... 그만 둔다.
토마스는 나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부럽다는 눈빛이 역력하다.
싱가포르에서는 동성애가 불법인지라 태국에 남자 친구가 있고 때로는 친구가 싱가포르로 와서,
때로는 자기가 태국에 가서 친구를 만난다고, 그는 나에게 고백한다.
‘부모님도 아시니?’
‘당연히 모르셔.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야.’
‘만약 부모님이나 다른 누가 너의 성향을 알게 되면 어떤 일이 생기니?’
‘....... 다시는 부모님을 볼 수 없게 될 거야.’
토마스가 내려야 할 역이 가까워 오자, 토마스는 자신의 전화번호를 적어준다.
내일 저녁 SMS로 연락을 하면 기꺼이 싱가포르 안내를 해주겠단다.
문이 열리고, 토마스는 인사 하고 내린다.
토마스는 알고 있었을까? 나는 그를 충분히 이해한다고 말하고, 실제로 이해 할 수 있지만,
그와 악수를 할 때, 내 몸에 살짝 소름이 돋았다는 것을,
그리고 SMS 따위는 보낼 리가 없을 거라는 것을......
한 때 싱가포르에서는 껌을 씹는 것 자체가 불법이었다. 휴지 한 장을 버려도 막대한 벌금을 물리던 곳이다.
그러나 지금은 껌을 씹어도 되는 것은 물론이고 카지노도 생겼다 한다. 그것은 사회주의 정책의 퇴보를 뜻하는 것일까?
토마스가 느끼는 싱가포르의 정책의 답답함은 무엇일까?
장애인이지만 능력만 있으면 안정된 취업을 보장하는 혜택과 성적인 억압에서의 자유,
그 중에서 무엇이 더 중요할까? 이 나라는 정말 사회주의 국가인가?
그리고 바른 길로 가고 있는 사회주의 국가인가?
몇 정거장을 더 가서 나도 지하철에서 내린다. 시청 앞 번화가다.
무더운 대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수많은 젊은이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화려한 빌딩들이 스카이라인을 이루고 있다.
더운 날씨 때문에 여자들의 옷은 한결같이 노출이 심하다.
문득 도시 국가 싱가포르에게 묻고 싶어진다.
네 정체가 무엇이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