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2 - 파라다이스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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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2 - 파라다이스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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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2 - 파라다이스는 없다 (06년 7월 4일 이야기, 동월 10일 씀)

 나는 싱가포르에 대해 일종의 환상을 가져왔다. 3만 달러에 육박하는 높은 GDP, 중국인 인도인 말레이인이 정치적 대립 없이 평화롭게 살아가는 곳,
리콴유 체제로 대변되는 사회주의적 개혁, 깨끗하고 현대화 되어 있다는 도시.
내가 꿈꾸는 국가의 한 모델이 될 성 싶었다. 그러나 싱가포르에 대해 알아 가면 알수록 그것이 환상임을 알겠다.

 싱가포르에서 삼 일 째 체류하던 날, 나는 싱가포르의 가난한 동네를 찾아가 보기로 한다.
이틀 동안 오카드 거리와 센토사섬을 비롯해 싱가포르의 대표적 명소를 둘러봤으니 이제는 관광 명소가 아닌 감춰진 동네를 찾아가 볼 차례다.
숙소의 리셉션을 담당하고 있는 토띠에게 묻는다. 싱가포르에서 가장 가난한 동네가 어디냐고. 토띠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잘 모르겠단다.
내가 잘 생각해 보라고 다그치자 차이나타운에 가보란다. 거기가 제일 지저분하고 가난하다고. 나는 속으로 웃는다.
토띠는 인도인이다. 그리고 내가 돌아본 바로는 차이나타운 보다는 인도인 거주 지역인 리틀 인디아가 훨씬 지저분하고 가난한 동네였다.
그러나 물론, 차이나타운과 리틀 인디아 모두 도심의 한 복판에 있는 관광지인 만큼 내가 보고 싶어 하는 곳은 아니다.
밖으로 나와 지하철역 앞에서 중년의 중국계 남자를 만난다. 남자에게 같은 질문을 한다.
그러나 남자는 내 질문을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한참 동안 설명을 하자 남자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대답한다.
‘싱가포르에는 가난한 마을이 없어요. 가난한 마을은 말레이시아에 가야지 볼 수 있죠.’

 하여 나는 아무 버스나 올라타서 종점에서 종점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도심을 빠져 나온 버스는 주거지역으로 깊숙이 달려간다. 그러나 아무리 달려도 보이는 것은 잘 정돈된 아파트 단지의 연속일 뿐이다.
서울의 목동 단지 어디쯤을 배회하는 것처럼 때로는 고층 아파트가, 때로는 중층 아파트가 깨끗하고 세련된 모양으로 펼쳐져 있다.
커다란 실외 수영장을 비롯한 여러 야외 운동시설을 갖춘 고급 아파트들도 보인다. 하루 종일 버스를 타고 돌아보지만 가난한 마을은, 결국 찾지 못한다.
그렇다면...... 싱가포르는 진정 전 국민 부자로 살아가는 파라다이스란 말인가?

  수 천 년 전부터 말레이 반도와 (지금은 인도네시아 땅인)여러 섬에는 말레이인들의 조상들이 살고 있었다.
중세기에 접어들어 이슬람교가 빠르게 전파되었고(그와 함께 이슬람의 뛰어난 상업도 전파되었을 것이다) 말레이인들의 자랑스러운 옛 왕국 말레카는
지리적 잇점을 통해 중국과 인도, 그리고 여러 섬들을 잇는 무역의 중심지로 커다란 부를 이루었다.
그 커다란 부를 유럽 제국이 가만 놔둘 리가 없었다. 발달된 대포와 소총으로 무장한 16세기 포르투칼의 강력한 화력 앞에
말레카 왕국은 멸망하고 이후로 긴 식민지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포르투칼의 힘이 약해지자 말레이의 주인은 네덜란드가 되었다가 다시 주인은 영국으로 바뀐다.
영국은 무역의 중심 도시로 싱가포르를 건설했다.
싱가포르를 통해 인도의 아편이 중국으로 흘러들어 가고 중국의 비단과 금과 은이 영국으로 건너갔다.
싱가포르는 유럽 제국의 아시아 착취를 위한 교두보로 건설되었고 그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며 발전해 나갔다.
2차 세계대전 중 일본의 통치를 잠시 겪은 뒤에 영국 군대가 다시 몰려왔다.
내가 이용하는 여행안내서 론리 플래닛에는 (책의 진보적 경향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잔혹한 통치 때문에 영국 군대가 환영을 받았다고 되어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영국은 말레이인들의 강력한 저항 운동과 싸워야 했다.
종교 지도자들과 문학인들의 주도로 네셔날리즘이 고개를 들었고 독립을 위한 게릴라 부대까지 등장을 했다.
(쿠알라룸푸르 역사 박물관에는 각 분야별 지도자들의 사진이 커다랗게 전시되어 있다)
전 세계 곳곳에서 이미 혹독한 저항 운동을 경험한 전력이 있는 영국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대신 말레이인들의 땅에서 군대를 철수시켰다.
수백년만에 마침내 말레이의 주인은 말레이인이 된 것이었다. 말레이인들은 지역별로 대표자를 선출하고 각 주의 연합을 통해 정부를 세웠다.
싱가포르도 하나의 주로서 1963년 말레이 연방에 가입했다. 그러나 싱가포르는 경제적 번영 외에도 다른 주와는 독특한 특이성을 갖추고 있었는데,
그것은 다른 주에 비해 중국인들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다른 주들에서는 민족주의 정당이 승리하고 사회주의 정당이 패배했지만 (그리하여 사회주의자들은 게릴라가 되었고, 결국은 진압되었다)
싱가포르에서는 리콴유가 이끄는 ‘사회주의 인민의 행동’ 당이 승리를 거두었다.
1965년 민족적 정치적 차이로 싱가포르는 말레이 연방에서 쫓겨났다.
그에 대한 여파가 어느 정도 작용해 1969년 말레이의 수도 쿠알라룸푸르에서 민족간 유혈 충돌이 일어났다.
수 백 명이 죽었다.

 말레이시아 곳곳에는 수많은 중국인들이 살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소수다.
다수는 어디까지나 이슬람교도인 말레이인들이다. 그런데 왜, 싱가포르에는 그토록 많은 중국인들이 살고 있는 것일까.
중국인의 집단 이민이 시작된 것은 20세기이다. 영국은 식민지 건설을 위해 필요한 노동자들을 중국과 남인도에서 데려왔다.
당연히 신생 도시인 싱가포르에 많은 중국인과 인도인이 유입됐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인이 다수인 이유가 그 뿐만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나름대로 하나의 이유를 더 추가한다.
그것은 싱가포르가, 돈이 되기 때문이다.

 오래전 말레이인들이 누렸던 경제적 번영을, 한때는 유럽 열강이 착취했고, 지금은 영국이 세운 식민도시에서 중국인들이 누리고 있다.
무역의 중심지라는 지역적 특혜 외에도 관광의 도시, 관세가 없는 쇼핑의 도시라는 새로운 타이틀로 싱가포르는 많은 돈을 벌고 있다.

 그러나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무역로서의 잇점이 사라지게 된다면,
세계 경제 불황으로 수입이 원활하지 않게 되면,
싱가포르의 미래는 어찌 될 것인가......

  몇 년 전 인도에서 건너와서 백패커의 리셉션을 보고 있는 토띠는
자신의 일이 무척 쉬운 일이고 하루 10시간 정도만 일하지만 한달에 천 달러나 번다고 자랑스레 말한다.
한화로 따지면 50만원 밖에 안 되는 돈이다.
그의 말 속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저임금 노동에 시달리고 있는지를 엿보게 된다.
GDP 3만 불의 국가이니 평균 가계 소득은 연 10만불 이상일 텐데, 연 1만2천불의 소득을 자랑스러워하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토띠는 싱가포르가 좋아 평생을 이곳에서 살 계획이란다. 다만 마음에 안 드는 것은 집값이 너무 높다는 것인데
아파트 렌트비가 한 달에 몇 만 달러나 한다며 혀를 찬다.
월세 값으로는 천문학적인 금액이다(싱가포르보다 물가가 조금 더 비싼 서울에서 난 월 15만원 월세 옥탑방에서 살았다 ^^).
인도인들은 거짓말을 잘하기에 그의 말을 대충 흘려듣는다.
그날 지하철을 타는데 아파트 입주 광고판이 있다. 광고판에 적힌 금액을 본다.

 천문학이다.

3 Comments
아울이 2006.07.20 22:37  
  월 50만원 버는 토띠는 아파트에서 절대 살수 없겠군요;
싱가포르 인들이 이글 읽으면 속뒤집어 지겠내요 ^^;
그래도 국민소득3만불 국가이니.. 충분히 본받을 부분이 많을거 같은데.이부분이 없는게 아쉽내요.
필리핀 2006.07.21 12:29  
  잘 사는 나라는 빈부의 격차가 크지 않은 나라입니다.
때문에 싱가폴에서 부자와 가난뱅이를 구분하려는 시도는
어려움을 겪게 되는 거죠.
그리고 싱가폴의 주수입원은 관광이나 무역이 아니라
정유산업입니다.
아마 그 분야에서는 세계 최고를 구가하고 있을 겁니다.
적어도 중동의 석유가 고갈되는 날까지는
싱가폴의 고공행진은 계속될 겁니다...
mania 2006.09.24 02:39  
  아무것도 모르시는 분께서 꽤나 분석할줄 아는것마냥 비판적으로 글을 쓰시니 참 우스울 따름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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