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여행하는 법] 8. 호숫가에서...

홈 > 여행기/사진 > 여행기
여행기

[느리게 여행하는 법] 8. 호숫가에서...

피비 11 2812
2006년 6월 14일



“거기 어디에요?”



“어제 왜 전화 안 받았어요?”



“친구들이랑 상암에서 월드컵 봤어요. 그래서 지금 어디......”



“나 안 보고 싶어요?”



“뭐... 별로...”



첫사랑과 끝난 이유가 바로 이거였다.
부재.



사랑에 빠지면 착각하고 싶어진다.
떨어져선 단 일초도 살 수 없다고.



하지만 살아진다. ‘잘’은 아니더라도 그럭저럭.
그 깨달음은 관계란 것이
강력 접착제가 아닌 오백원 짜리 딱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는 거다.
그래서 사귀는 기간 동안에는 여행을 잘 나가지 않는다. 똑똑한 사람이라면.



“정말 나 안 보고 싶어요?”



“그건 또 아니지만... 그래서 지금 어딘데요?”



옆에서 들리는 회사 동료들의 간섭소리.
그래서 끊었다.



내가 끝내 가르쳐 주지 않은 이 장소는 치앙마이 대학안의 호숫가이다.
조용하고 한적하다.
군데군데 낚시 줄을 드리우고 있는 사람들 몇 명. 조용히 얘기를 나누는 커플 몇 쌍.
그리고 이 일기장 위로 올라오는 개미들을 손가락으로 튕겨내고 있는 나.



날 만난 이후 혼자였던 적이 없었던 그의 주말은
지난 주 텅 비어 있었다고 한다.
조만간 곧 그 자리는 딴 것으로 채워질 것이다.
너무 친해 수상한 그의 형과 남자친구들로, 아마도.



결핍을 그대로 안고 사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사람들은 늘 ‘대체’할 것을 찾는다.
두부가 없으면 우유를 마시는 것처럼, 아주 간단히. 



사실 나는 도이수텝을 갈 생각이었다.
치앙마이 MUST GO LIST의 첫 번째를 차지하는 산 속 사원, 도이수텝.



집 앞에서 쏭태우를 잡아타고 도이수텝을 외치니
날 치앙마이 대학 정문 앞에 내려줬다.
거기서 기다려야 한단다.
8명이 다 모이면 왕복 70밧에 출발할 거라고.
하지만 도이수텝에 가려고 온 사람은 달랑 나 하나뿐이다.



그래서 일단 치앙마이 대학 안으로 들어왔다.
미소네 사모님이 치앙마이에서 가장 좋아한다는 바로 이 장소로.

 

‘느리게’하는 여행은 바로 이것이다.
주위가 조용해서 내 숨소리가 들리기 시작하고, 바람이 얼굴을 훑고 지나가는 게 느껴지는.
시간이 아주 ‘느리게’ 흘러가는 바로 이 느낌.



아무래도 나는 도이수텝의 ‘대체’를 금방 찾아버린 거 같다.



--------



동거녀가 들려준 그녀 친구 커플에 대한 얘기.




결혼한 친구의 집들이에 친구A와 A의 남친 그리고 동거녀가 갔다고 한다.
친구A의 남친은 과묵한 성격으로 집들이 내내 말 수가 적었다고 한다.



그날 밤, 친구A는 중국으로 일주일간 여행을 떠났고
남친이 A를 공항까지 바래다주었다.



일주일간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A는
남친에게 귀국 소식을 알리지 않았다.
남친 역시 A를 찾지 않았다.
그 둘은 서로를 찾지 않았고 단 한통의 전화도 없이 자연스럽게 그렇게 끝이 났다.



관계란 것이 방심한 채 서로 탁 놓아버리는 순간이 있다면...
그렇게 그대로 끝나 버린다.
서로 함께 하지 않아도 멀쩡히 잘 살아가는데
굳이 서로를 찾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사랑?
호르몬만 잘 조절하면 참을 수도 막을 수도 있다.
다 실패하더라도 18개월 유효기간 만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외로움?
밥을 많이 먹으면 된다.


11 Comments
신디홍 2006.07.22 20:54  
  빠이는 언제 올릴거여유? 빠이..로 언제..이동하시는지.. 저녁에..이글 보려고 다시 컴을 켰어여....비밥..야그 꼭 ....
피비 2006.07.22 22:22  
  하루종일 치앙마이 여행기를 정리했더니 멀미가 막 나고 치앙마이 질려서 다시는 안 가고 싶은 맘이야.--;

내일 멀미가 진정되면 쓰고... 아님 담주 주말에.ㅜㅜ
우욱...
필리핀 2006.07.23 15:01  
  헤어짐의 고통을 삭이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로
그 사랑의 진가를 평가할 수 있죠.
제대로 한 사랑은 잊는데만 3년 정도 걸린답니다.
그런 사랑 3번만 하면 청춘이 다 가죠...
피비 2006.07.24 01:51  
  그런 사랑 3번만 하면 인생... 성공한 거죠.
석하 2006.07.24 04:15  
  그런 사랑 3번만 하면 인생....성공한 거죠.
사랑한 사람..사랑받은 사람...
사랑받구도 모르는 사람
알리바바 2006.07.28 10:10  
  뒷 이야기는 어찌 이리 안올리시는지.. 간만에 마음에 쏙 담기는 후기라 기다려집니다. 빠이 이야기 얼렁 들려주세요^^!
아리잠 2006.08.08 17:27  
  밥을 많이 먹으면 된다.
밥을 많이 먹으면 된다.
밥을 많이 먹으면 된다.
밥을 많이 먹으면 된다.
밥을 많이 먹으면 된다.
피비 2006.08.10 00:10  
  꼭! 갓지은 하얀 쌀밥요...
못된바보 2006.08.14 03:43  
  태국입니다.. 밥보단 국수로 떼울수도 있는 걸까요??
피비 2006.08.14 16:52  
  국수로 대체될 수도 있습니다만...
단, 밥이 아니면 먹어도 먹어도 허해질 수도 있습니다.
외로우신가요?
그래도... 태국이시잖아요.
피비 2006.08.14 16:57  
  한국은 요새 너무 더워요...
쩨*랑 너무 더워서 피씨방으로 피신 왔어요...
지나간 게시물에서 리플로 얘기하니까,
수업시간 선생님 몰래 속닥거리는 것처럼 잼있네요.^^
포토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