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여행하는 법] 10. 빠이의 첫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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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여행하는 법] 10. 빠이의 첫느낌...

피비 8 3302
빠이부터는 일기장이 드문드문...
본격적으로 기억을 되살려야 할 때입니다...



인간이 현재라고 생각하는 순간은 단 8초라고 합니다.
8초가 지나면 과거가 되어버리죠.



과거는 제멋대로 각색되어 우리 뇌 세포에 하나씩 자리하게 됩니다.
그래서 기억이란 것은 항상 아름답거나 혹은 슬픈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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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6월 16일



빠이에 가는 날이다.



빠이.
이름부터 깡촌스럽다...
기대하고 예상하는 것은 일종의 선입견을 낳는다.
조심해야지... 그러면서도 빠이 가는 로컬 버스에서 나는 더욱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만다.



빠이행 로컬버스. 72밧.
어김없이 막차를 탔다.



짠순이 언니와 잠깐 헤어지는 게...
아쉬워 치앙마이 터미널로 가는 쏭태우 안에서 찔끔 눈물이 났다.



빠이로 떠나는 나에게,
과거 시험 보러 가는 아들을 둔  기분이라며 무언가 사주고 싶다는 그녀.
따끈따끈 말랑말랑한 모카빵, 파파로띠를 내 손에 쥐어준다.



빠이로 가는 산길은  새벽 수목원을 투어 하는 양 상쾌하고 좋았다.
막차를 탄 보람과 함께 날씨의 축복도 있었다.
중간 중간에 살짝 흩뿌리던 비는 마치 스프링클러 같이 촉촉한 느낌이었다.



해질 무렵, 드디어 빠이에 도착.
작디작은 터미널을 나와 메인 거리를 걷자니
왠지 익숙하다.



산길을 굽이굽이 3시간을 돌아 도착했는데...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세븐일레븐,
거리 양 옆으로 쭉 늘어서 있는 바와 레스토랑들,
곳곳에 설치된 ATM...



이것이 '리틀 카오산'이라 불리는 빠이의 정체였다.



시골의 정취를 가득 안고 있으면서도,
여행자 편의시설 또한 완벽하게 갖춰진, 산골 마을.
그 이중성...



어둑어둑한 늦은 저녁, 혼자 여행지에 떨어져 싼 숙소를 구할 때만큼
처량할 때가 또 있을까.



첨에 팜을 찾아간다는 게 찰리로 갔다가,
백밧 짜리 숙소의 우울함을 목격하자니 빠이고 뭐고 그냥 치앙마이가 그리웠다. 
배고픔에 로티 하나 사서,
셔터내린 방콕 은행 계단에 앉아 로티를 씹어 먹자니,
서걱서걱 모래를 씹는 것처럼 입안만 불편하고 맛은 느껴지지 않았다.



중증이다.



난...
이제...
혼자 배낭 할 수 없는 체질로 바뀐 건가... 



당당한 싱글의 신분으로 씩씩하게 배낭을 메고...
태국을 누비고 싶었는데...



지금의 내 모습이란... 
남친이 보고 싶어 질질 짜며 혼자 로띠 하나 맛있게 못 먹는 수준으로 타락해 버렸다. 



이럴 땐 세븐일레븐에 가야 한다.



아...
청량한 에어컨 바람...
진짜 카오산에 온 것 같은 이 기분...
편하고 내 집 같다.-_-;



난...
빠이가 예상보다 번화한 것에 대해 실망하면서도...
세븐일레븐에서 또한 위안을 얻는다.



이것은 빠이의 이중성에 대한 나의 이중 잣대.



타야이 겟하우에 첵인한 후, 
트윈 베드 한쪽에 짐을 다 부려 놓으니...
더더욱 실감이 났다.
온전히 혼자라는.



열시쯤 되니...
메인 거리의 불이 꺼지고 사방은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역시 밤엔 할 일이 없구나...



다음날,
나는 이것이 얼마나 큰 착오인지를 깨닫게 된다.

8 Comments
신디홍 2006.08.04 01:16  
  우아..피비..빠이 이야기..기대하고 있었는데..빨랑..다음편 올려줘여.. 얼마나 기둘렸다구여..!!!!!
솜누스 2006.08.04 02:31  
  낙찰입니다........가져갈 책.....전날의 섬"으로......^^;
손꼽아 기다리는 다음  또 다음의 사람들이 많습니다....하하 시원한 여름 나기 하세요.....^^
걸산(杰山) 2006.08.04 08:09  
  정말 오래간만에 글이 올라왔네요 - 게시판 페이지가 바뀌고서야 말이죠.
피비 2006.08.04 08:55  
  신디홍~ 빠이 이야기 왜 기다리는 거야? 대체? 곧 간담서? 부러워 죽어.ㅠㅠ

솜누스님~ 님도 시원한 여름 나세요! 지금 태국 가면 태국이 더 시원하겠죠?ㅋ

걸산님~ 난 분명 일주일 뒤에 글을 올린 건데... 왠일인지 이주일이 지났네요. 저도 영문을 몰겠어요! 
JLo 2006.08.04 10:03  
  그래 바로이날! 한국가고 싶다고 전화질질하더니 그 담날 돌변하시더군요--
알리바바 2006.08.06 22:04  
  나빠요.. 너무 고대하게 만드시고 이리 늦게 올리시다니^^.
천천히... 길~게 올려주세요.  맛난 음식처럼 되새기며 읽게요^^
死부시 2006.08.07 00:37  
  남친이 보고 싶어 질질 짜며 혼자 로띠 하나 맛있게 못 먹는 수준으로 타락해 버렸다..이 글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빠이의 all about coffee가 생각나네요..
거기 방명록에 저하고 제 여친이 쓴글이 아직도 있을라나? 다시 기억이 새록새록하네요..^^
피비 2006.08.08 10:31  
  알리바바님~ 천천히... 올릴게요. 하나씩 꺼내서 추억하고 싶을 때마다.ㅋ

사부시님~ 올어바웃커피... 정말 맛나죠... 아... 그리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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