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벙이부부 태국+캄보디아가다(종회)
4/3(토) 일곱 왕궁에서 저잣거리 까지
07:00.
피곤함 가운데도 더위는 여전해서 자다 깨기를 반복하며 다시 방콕의 아침을 맞았다.
어지러운 꽃무늬 커튼 사이로 투과한 아침 태양이 투명한 유리 한 장을 사이에 두고 에어컨 찬 바람과 냉전을 벌이고 있다. 이 방을 나서면 우리는 다시 정열의 태양과 묵묵하고 까만 피부의 타이전사들과 한 배를 타야 한다.
그녀는 어느새 샤워장을 다녀온 후 더위와의 임전태세로 화장 공사에 정신이 없다. 화장실, 샤워는 공동으로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남들보다 서둘렀다는 이야기다.
숙소는 몸의 적응도, 경제적인 문제를 고려해서 3단계 중 마지막 단계였다.
생각 같아서는 도미토리와 노숙까지 체험을 하고픈 마음도 있지만 혼잣 몸도 아니고 해서 3단계까지만 고려했다.
적어도 아짐씨에게는 먹는 문제는 다시 불거진 중요한 문제다. M광장은 아침 매식이 없었다.
숙소를 나섰지만, 이른 시간이라서 식사를 할 만한 곳이 안 보인다.
구운 바나나 4개를 샀다. 달콤한 맛은 화기(火氣)가 집어 삼키고 생고구마 씹는 맛이다.
방람푸를 지나 카오산 쪽으로 향했다.
“아니... 거시기 아니유”
도착 첫 날 ‘**야채누들’을 먹다 **사건을 격은 ‘Pannee(식당)’였다.
‘하루를 편하게 지내려면 메뉴 선택을 잘해야 한다’
신중한 의견 조율 끝에 샌드위치(계란+비프)와 커피로 결정했다.
툭툭을 타고 왕궁으로 갔다. 개장시간을 기다린 인파들이 일시에 밀려들어간다.
꺼벙이는 입구부터 돈을 꺼내들고 하시라도 입장권을 사야 할 판이다. 사람들 틈에 섞여 앞 사람을 따라 들어갔다. 한 눈에 아래위를 보더니 손가락으로 밖을 가리켰다.
이름하여 에티켓 검문소, 복장 불량자(?) 임시변통하는 곳이었다.
예의 차리느라고 신체 노출을 자제한 몸속에서는 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입이 안 떨어지는 자 눈치로 때려잡아야 한다는 불문율을 잠시 망각한 탓이다.
1인당 200b에 표를 2장씩 주었다....일단 주머니에 접수했다. 많은 인파와 뜨거운 날씨는 보행조차 힘들었다.
지나는 사람과 접촉하는 불쾌감을 안줄려고 요리조리 피해야지, 높은 지붕(탑) 올려다봐야지, 땅콩 아짐씨 분실할까봐 뒤 돌아 봐야지, 여간 부산하지가 않다.
사람들의 발길에 휩쓸려 다니다 보니 코스를 잃어 버렸다. 처마 밑 그늘에 털퍼덕 주질러 앉아 땀을 식혔다. 엎어진 김에 쉬어가자.
꺼벙이는 왕궁지도를 보고 탈출구(?)와 나머지 남은 표를 소진 할 곳을 찾느라고 정신이 없다.
와중에도 땅콩 아짐씨는 가이드책자를 펴고 유적을 견주어 보는 여유를 부렸다.
염치불구하고 한국말을 하는 태국인 가이드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녀는 느릿느릿한 한국말로 아주 자세하게 가르쳐 주었다. 다음 목적지 주말시장 행 시내버스를 타고 내리는 방법까지.
‘왓 프라케우’박물관에는 아기자기한 불교용품과 사원을 건축하고 보수하는 과정의 도식이 그려져 있었다.
그러나 황금색의 화려함과 날렵한 지붕, 그 속에 감추어진 대부분의 소재가 목재라는 느낌이 어딘가 허전한 느낌이 든다.
묵직한 대리석 건물의 영빈관(챠그리 전)은 우리나라 대통령도 묶었던 곳 이라고 한다.
건물 출입구에 서 있는 두 초병의 부동자세는 완전한 밀랍인형처럼 굳어있다.
한 무리의 아가씨들이 다가가 팔을 꾹 찔러도, 사진을 찍어도 까만 눈동자만 살짝 궁굴릴 뿐 병사는 여전히 목석이었다.
황금색의 타일조각, 뾰족탑, 사원안의 참배객, 타이고유의 민속화, 비교적 화려한 외관이 앙코르의 웅장함과는 대조되는 분위기였다.
11:00.
왕궁 앞에서 ‘차튜착(주말시장)’행 시내버스(1인당 12b)를 탔다.
방콕의 교통난이 문제인지, 거리에 비해서 요금이 싼 것인지, 도무지 분간하기가 아리송했다.
장장 1:10분 만에 주말시장에 도착했다. 총각차장은 우리의 부탁을 잊어버렸는지 연락도 없다.
가까스로 출발하는 차를 세워서 내릴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남대문시장을 완전히 접수해 본적이 없어서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 그 이상의 규모가 아닐까 싶다.
좁은 공간에 사람과 물건, 찌는 듯한 더위가 한 솥에서 부글부글 끓는 모습이었다.
한 블럭 돌아보고 그늘에서 한 줌 쉬고, 인내심이 없이는 관전하기가 힘들 지경이다.
눈이 즐거움을 느끼려면 배가 차야 한다.
수박화채, 덮밥, 가는 면발의 국수, 이름도 모르는 음료수 등 이것저것 맞을 보느라고 과식을 한 탓인지, 급한 화장실 볼일도 빼먹지 않았다.
그래도 그나마 시장노점에서 먹는 이색적인 즐거움이 없었다면 금방 후퇴하고 말았을 것이다.
물론 아내는 이상하리만치 먹거리에 관심을 보이는 내 입만 보고 있었다.
제대로 배를 채우지도 못하고 눈만 즐거웠던 땅콩아짐씨에게 조금 미안했다.
무더위 속에서도 변함없이 반짝이는 사파이어+다이야몬드 반지를 끼워주며 우리는 동의했다.
“마음만 이라도 진짜라고 생각 헙시다”
사람, 사람들의 일상을 6시간에 걸쳐 돌아보았다.
돌아오는 택시에서의 주윤발 닮은 기사는 시장 맴돌기로 지친 우리에게 연실 이야기를 붙여왔다.
고속도로로 가자고 애교적인 목소리로 간청하기도 하고 주변의 건물에 대해서 끝임 없이 설명을 해댔다. 말 울음소리를 내는 것을 보니 경마장을 말하는 것 같기도 했다.
서투른 영어와 자국어가 섞인 말을 이해하기는 힘들었지만 그의 서글한 눈매와 노력은 청량제 역할을 했다.
20:00
숙소에 돌아와 또 한 차례 물을 뒤집어썼다.
7시에 만나 ‘랍스터’ 만찬을 하기로 했던 송&조는 아직 나타나질 않는다.
점심도 거른 채 마지막 까지 태국 음식에 적응하지 못한 ‘헝그리’한 아줌마는 작은 키가 더 작아 보였다.
“우선 여기서(M광장) 주문하고 기다려 봅시다.
왕새우, 게 요리가 익어 갈 즈음 송&조 배낭 팀이 도착했다.
함께한 시간이 많은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는 어느새 오랜 길동무가 되어 있었다. 작은 식탁을 가운데 두고 ‘한 여름 밤의 꿈’같은 이야기가 이어졌다.
여린 말투와 나약한 모습이지만 두 여성이 지나온 여정과 앞으로의 포부는 몸에 맞지 않는 대단함 이었다.
멋있는 랍스터 식사약속을 지키지 못함이 얼마나 미안하고 서운했던지.
아쉬운 마음으로 사진을 나누어 찍었다. 정들자 이별은 그런 것이었다.
내일 아침 4시 공항으로 향한 귀국길이 너무 아쉽다. 툴툴거리는 에어컨 소리도 시큼하게 피어오르는 방콕 운하의 향기도.
4/4(일) 여덟째 귀국, ‘민들레 홀씨되어’
옆에서는 연실 부시럭 소리가 느껴지고 에어컨은 멈추었다 돌아가기를 반복했다.
어느샌가 3시 모닝콜 인기척이 왔다.
약속시간 보다 20분이나 늦은 픽업버스를 타고 공항에 도착했다.
인천공항의 출국 절차와는 순서가 조금 달랐다. 면세구역 내에서 샌드위치로 아침식사를 때웠다.
대기실 밖으로 희뿌연 미명의 하늘이 더욱 가깝게 다가온다.
07:00시 떠나기가 아쉬운 듯 멈짓 거리던 타이항공 비행기가 이륙했다.
좌석은 거의 만석에 가까웠다. 눈치를 보니 대만을 거쳐 가는 모양이다. 기내식 아침을 먹고 나니 밀렸던 잠이 엄습해 온다.
빨간 흙먼지 황톳길에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자화상이 보였다.
비쩍 마른 몸은 페달을 밟기에도 버거워 보인다. 움직이는 자전거에는 앞 뒤, 양 옆에 가방이 무겁게 달려있다. 세상 짐을 다 달고 가는 인생길이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무엇을 위한 일탈인지 몰라도 멈출 듯한 기미는 없어 보였다.
“덜커덩”
움푹 파인 구덩이에 걸려 넘어졌다. 자전거와 몸을 떨어지지 못한 채 깊은 수렁으로 한없이 빠져들어 갔다. 꿈이었다.
대만 착륙을 알리는 기내방송이 들렸다. 또 한번 ‘덜커덩’몸에 반응이 왔다.
기류가 좋지 않은지 비행기 몸체가 심하게 흔들렸다.
출입국신고서를 쓰던 옆자리의 인도친구가 내 팔을 가격해 왔다. 잠이 덜 깬 눈으로 옆을 보니 그 친구 안전벨트를 찾느라고 난리법석이다.
‘덩치는 커 가지고 겁은 겁내 많네’
그래도 자기 얘기 쓰는 줄은 아는지 열심히 적고 있는 내 수첩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다.
혹시 이 친구가 한글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유 노 언더스탠?”
‘그러면 그렇지’
내가 하는 짓에 관심이 많은지 이것저것 많이 묻는데 알아듣는 것은 반도 못됐다.
명함을 달라고 하기에 건네주었다. ‘혹시 이 친구를 매개로 인도 땅을 밟아봐!’
자필로 내 수첩에 이름을 기록하라고 했더니, ‘이건 글씨인지 그림인지...’
그 친구 겁은 엄청 많아서 착륙 할 때도 이어폰을 끼고 큰소리 노래를 불러댔다.
비행기는 대만공항에서 사람을 내려주고 1시간을 기다려 다시 절반의 승객을 태웠다.
이륙하자마자 아짐씨는 또 멀미를 호소했다. 두 끼의 기내식도 물리치고 잠과 멀미 사이를 오가며 헤쳐 온 비행길도 이제 접을 때가 다가왔다.
바다와 연이어진 각이 반듯한 땅이 아련하게 내려다 보인다.
저곳에 닿으면 다시 땅의 생김새만큼이나 정형화된 사고로 틀에 맞게 직각보행을 해야 하겠지.
4~5월에는 민들레라도 찾아보아야 할까보다. 귓가에 맴도는 노랫말 따라.
“달빛 부서지는 강 뚝에 홀로 앉아 있네/ 소리 없이 흐르는 저 강물을 바라보며
어~ 음~ 가슴을 에이며/ 밀려오는 그리움, 그리움
우리는 들길에 홀로 핀/ 이름모를 꽃을 보면서/ 외로운 맘을 나누며
손에 손을 잡고 걸었지
산등성이의 해질녘은/ 너무나 아름다웠었지/ 그님의 두 눈 속에는
눈물이 가득 고였지/
어느새 내 마음 민들레 홀씨 되어/ 강바람 타고 훨~훨 네 곁으로 간다.
~ ~ ~ “
-THE END- 감사합니다. 녹음 짙어가는 4월, 유성에서 -朱鍾天-
--거꾸로 보는 꺼벙이 세상--
07:00.
피곤함 가운데도 더위는 여전해서 자다 깨기를 반복하며 다시 방콕의 아침을 맞았다.
어지러운 꽃무늬 커튼 사이로 투과한 아침 태양이 투명한 유리 한 장을 사이에 두고 에어컨 찬 바람과 냉전을 벌이고 있다. 이 방을 나서면 우리는 다시 정열의 태양과 묵묵하고 까만 피부의 타이전사들과 한 배를 타야 한다.
그녀는 어느새 샤워장을 다녀온 후 더위와의 임전태세로 화장 공사에 정신이 없다. 화장실, 샤워는 공동으로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남들보다 서둘렀다는 이야기다.
숙소는 몸의 적응도, 경제적인 문제를 고려해서 3단계 중 마지막 단계였다.
생각 같아서는 도미토리와 노숙까지 체험을 하고픈 마음도 있지만 혼잣 몸도 아니고 해서 3단계까지만 고려했다.
적어도 아짐씨에게는 먹는 문제는 다시 불거진 중요한 문제다. M광장은 아침 매식이 없었다.
숙소를 나섰지만, 이른 시간이라서 식사를 할 만한 곳이 안 보인다.
구운 바나나 4개를 샀다. 달콤한 맛은 화기(火氣)가 집어 삼키고 생고구마 씹는 맛이다.
방람푸를 지나 카오산 쪽으로 향했다.
“아니... 거시기 아니유”
도착 첫 날 ‘**야채누들’을 먹다 **사건을 격은 ‘Pannee(식당)’였다.
‘하루를 편하게 지내려면 메뉴 선택을 잘해야 한다’
신중한 의견 조율 끝에 샌드위치(계란+비프)와 커피로 결정했다.
툭툭을 타고 왕궁으로 갔다. 개장시간을 기다린 인파들이 일시에 밀려들어간다.
꺼벙이는 입구부터 돈을 꺼내들고 하시라도 입장권을 사야 할 판이다. 사람들 틈에 섞여 앞 사람을 따라 들어갔다. 한 눈에 아래위를 보더니 손가락으로 밖을 가리켰다.
이름하여 에티켓 검문소, 복장 불량자(?) 임시변통하는 곳이었다.
예의 차리느라고 신체 노출을 자제한 몸속에서는 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입이 안 떨어지는 자 눈치로 때려잡아야 한다는 불문율을 잠시 망각한 탓이다.
1인당 200b에 표를 2장씩 주었다....일단 주머니에 접수했다. 많은 인파와 뜨거운 날씨는 보행조차 힘들었다.
지나는 사람과 접촉하는 불쾌감을 안줄려고 요리조리 피해야지, 높은 지붕(탑) 올려다봐야지, 땅콩 아짐씨 분실할까봐 뒤 돌아 봐야지, 여간 부산하지가 않다.
사람들의 발길에 휩쓸려 다니다 보니 코스를 잃어 버렸다. 처마 밑 그늘에 털퍼덕 주질러 앉아 땀을 식혔다. 엎어진 김에 쉬어가자.
꺼벙이는 왕궁지도를 보고 탈출구(?)와 나머지 남은 표를 소진 할 곳을 찾느라고 정신이 없다.
와중에도 땅콩 아짐씨는 가이드책자를 펴고 유적을 견주어 보는 여유를 부렸다.
염치불구하고 한국말을 하는 태국인 가이드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녀는 느릿느릿한 한국말로 아주 자세하게 가르쳐 주었다. 다음 목적지 주말시장 행 시내버스를 타고 내리는 방법까지.
‘왓 프라케우’박물관에는 아기자기한 불교용품과 사원을 건축하고 보수하는 과정의 도식이 그려져 있었다.
그러나 황금색의 화려함과 날렵한 지붕, 그 속에 감추어진 대부분의 소재가 목재라는 느낌이 어딘가 허전한 느낌이 든다.
묵직한 대리석 건물의 영빈관(챠그리 전)은 우리나라 대통령도 묶었던 곳 이라고 한다.
건물 출입구에 서 있는 두 초병의 부동자세는 완전한 밀랍인형처럼 굳어있다.
한 무리의 아가씨들이 다가가 팔을 꾹 찔러도, 사진을 찍어도 까만 눈동자만 살짝 궁굴릴 뿐 병사는 여전히 목석이었다.
황금색의 타일조각, 뾰족탑, 사원안의 참배객, 타이고유의 민속화, 비교적 화려한 외관이 앙코르의 웅장함과는 대조되는 분위기였다.
11:00.
왕궁 앞에서 ‘차튜착(주말시장)’행 시내버스(1인당 12b)를 탔다.
방콕의 교통난이 문제인지, 거리에 비해서 요금이 싼 것인지, 도무지 분간하기가 아리송했다.
장장 1:10분 만에 주말시장에 도착했다. 총각차장은 우리의 부탁을 잊어버렸는지 연락도 없다.
가까스로 출발하는 차를 세워서 내릴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남대문시장을 완전히 접수해 본적이 없어서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 그 이상의 규모가 아닐까 싶다.
좁은 공간에 사람과 물건, 찌는 듯한 더위가 한 솥에서 부글부글 끓는 모습이었다.
한 블럭 돌아보고 그늘에서 한 줌 쉬고, 인내심이 없이는 관전하기가 힘들 지경이다.
눈이 즐거움을 느끼려면 배가 차야 한다.
수박화채, 덮밥, 가는 면발의 국수, 이름도 모르는 음료수 등 이것저것 맞을 보느라고 과식을 한 탓인지, 급한 화장실 볼일도 빼먹지 않았다.
그래도 그나마 시장노점에서 먹는 이색적인 즐거움이 없었다면 금방 후퇴하고 말았을 것이다.
물론 아내는 이상하리만치 먹거리에 관심을 보이는 내 입만 보고 있었다.
제대로 배를 채우지도 못하고 눈만 즐거웠던 땅콩아짐씨에게 조금 미안했다.
무더위 속에서도 변함없이 반짝이는 사파이어+다이야몬드 반지를 끼워주며 우리는 동의했다.
“마음만 이라도 진짜라고 생각 헙시다”
사람, 사람들의 일상을 6시간에 걸쳐 돌아보았다.
돌아오는 택시에서의 주윤발 닮은 기사는 시장 맴돌기로 지친 우리에게 연실 이야기를 붙여왔다.
고속도로로 가자고 애교적인 목소리로 간청하기도 하고 주변의 건물에 대해서 끝임 없이 설명을 해댔다. 말 울음소리를 내는 것을 보니 경마장을 말하는 것 같기도 했다.
서투른 영어와 자국어가 섞인 말을 이해하기는 힘들었지만 그의 서글한 눈매와 노력은 청량제 역할을 했다.
20:00
숙소에 돌아와 또 한 차례 물을 뒤집어썼다.
7시에 만나 ‘랍스터’ 만찬을 하기로 했던 송&조는 아직 나타나질 않는다.
점심도 거른 채 마지막 까지 태국 음식에 적응하지 못한 ‘헝그리’한 아줌마는 작은 키가 더 작아 보였다.
“우선 여기서(M광장) 주문하고 기다려 봅시다.
왕새우, 게 요리가 익어 갈 즈음 송&조 배낭 팀이 도착했다.
함께한 시간이 많은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는 어느새 오랜 길동무가 되어 있었다. 작은 식탁을 가운데 두고 ‘한 여름 밤의 꿈’같은 이야기가 이어졌다.
여린 말투와 나약한 모습이지만 두 여성이 지나온 여정과 앞으로의 포부는 몸에 맞지 않는 대단함 이었다.
멋있는 랍스터 식사약속을 지키지 못함이 얼마나 미안하고 서운했던지.
아쉬운 마음으로 사진을 나누어 찍었다. 정들자 이별은 그런 것이었다.
내일 아침 4시 공항으로 향한 귀국길이 너무 아쉽다. 툴툴거리는 에어컨 소리도 시큼하게 피어오르는 방콕 운하의 향기도.
4/4(일) 여덟째 귀국, ‘민들레 홀씨되어’
옆에서는 연실 부시럭 소리가 느껴지고 에어컨은 멈추었다 돌아가기를 반복했다.
어느샌가 3시 모닝콜 인기척이 왔다.
약속시간 보다 20분이나 늦은 픽업버스를 타고 공항에 도착했다.
인천공항의 출국 절차와는 순서가 조금 달랐다. 면세구역 내에서 샌드위치로 아침식사를 때웠다.
대기실 밖으로 희뿌연 미명의 하늘이 더욱 가깝게 다가온다.
07:00시 떠나기가 아쉬운 듯 멈짓 거리던 타이항공 비행기가 이륙했다.
좌석은 거의 만석에 가까웠다. 눈치를 보니 대만을 거쳐 가는 모양이다. 기내식 아침을 먹고 나니 밀렸던 잠이 엄습해 온다.
빨간 흙먼지 황톳길에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자화상이 보였다.
비쩍 마른 몸은 페달을 밟기에도 버거워 보인다. 움직이는 자전거에는 앞 뒤, 양 옆에 가방이 무겁게 달려있다. 세상 짐을 다 달고 가는 인생길이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무엇을 위한 일탈인지 몰라도 멈출 듯한 기미는 없어 보였다.
“덜커덩”
움푹 파인 구덩이에 걸려 넘어졌다. 자전거와 몸을 떨어지지 못한 채 깊은 수렁으로 한없이 빠져들어 갔다. 꿈이었다.
대만 착륙을 알리는 기내방송이 들렸다. 또 한번 ‘덜커덩’몸에 반응이 왔다.
기류가 좋지 않은지 비행기 몸체가 심하게 흔들렸다.
출입국신고서를 쓰던 옆자리의 인도친구가 내 팔을 가격해 왔다. 잠이 덜 깬 눈으로 옆을 보니 그 친구 안전벨트를 찾느라고 난리법석이다.
‘덩치는 커 가지고 겁은 겁내 많네’
그래도 자기 얘기 쓰는 줄은 아는지 열심히 적고 있는 내 수첩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다.
혹시 이 친구가 한글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유 노 언더스탠?”
‘그러면 그렇지’
내가 하는 짓에 관심이 많은지 이것저것 많이 묻는데 알아듣는 것은 반도 못됐다.
명함을 달라고 하기에 건네주었다. ‘혹시 이 친구를 매개로 인도 땅을 밟아봐!’
자필로 내 수첩에 이름을 기록하라고 했더니, ‘이건 글씨인지 그림인지...’
그 친구 겁은 엄청 많아서 착륙 할 때도 이어폰을 끼고 큰소리 노래를 불러댔다.
비행기는 대만공항에서 사람을 내려주고 1시간을 기다려 다시 절반의 승객을 태웠다.
이륙하자마자 아짐씨는 또 멀미를 호소했다. 두 끼의 기내식도 물리치고 잠과 멀미 사이를 오가며 헤쳐 온 비행길도 이제 접을 때가 다가왔다.
바다와 연이어진 각이 반듯한 땅이 아련하게 내려다 보인다.
저곳에 닿으면 다시 땅의 생김새만큼이나 정형화된 사고로 틀에 맞게 직각보행을 해야 하겠지.
4~5월에는 민들레라도 찾아보아야 할까보다. 귓가에 맴도는 노랫말 따라.
“달빛 부서지는 강 뚝에 홀로 앉아 있네/ 소리 없이 흐르는 저 강물을 바라보며
어~ 음~ 가슴을 에이며/ 밀려오는 그리움, 그리움
우리는 들길에 홀로 핀/ 이름모를 꽃을 보면서/ 외로운 맘을 나누며
손에 손을 잡고 걸었지
산등성이의 해질녘은/ 너무나 아름다웠었지/ 그님의 두 눈 속에는
눈물이 가득 고였지/
어느새 내 마음 민들레 홀씨 되어/ 강바람 타고 훨~훨 네 곁으로 간다.
~ ~ ~ “
-THE END- 감사합니다. 녹음 짙어가는 4월, 유성에서 -朱鍾天-
--거꾸로 보는 꺼벙이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