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의 뿔처럼] 캄보디아 여자 다린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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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의 뿔처럼] 캄보디아 여자 다린의 일기

danaia 7 1549

2006 8 27일 일요일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어젯 밤 콤퐁참의 사업 파트너 완뎁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팁을 후하게 주는 ‘신’ 이라는 코리언이 오늘 크라티에 도착할 테니 마중 나가서 구워삶으란 내용이었다.
하여 ‘welcome shin' 이라는 팻말을 준비해서 정류장으로 나갔다.
콤퐁참에서 버스가 도착했고 신이 먼저 나를 알아보고 내 이름을 불렀다.
얼굴이 새까만 게 도저히 코리언답지 않은 놈이다.
게다가 앞머리는 시원하게 벗겨졌다. 영 마음에 들지 않는 스타일이지만 상관없다.
팁만 후하게 준다면 입이 삐뚤어 졌든 눈이 하나 없든 그 무슨 상관이랴.


신을 거래처 호텔로 안내했다.
가난한 놈인지 에어컨 룸 대신 팬 룸을 선택한다.
룸을 안내하고 나서 돌고래를 보러 가지 않겠냐고 종용했다.
단순한 놈인지 그저 오케이, 오케이 한다.


오후 세 시에 돌고래를 보러 출발했다.
신은 내 뒤에 태우고 신보다 한 시간 일찍 도착한 또 다른 나이 많은 코리언은 오토바이를 한 대 더 불러 태웠다.
오늘은 코리언만 두 명을 낚았다.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코리언은 조금만 잘해주면 과분하게 팁을 쏟아내지만 조금만 무심하면 냉냉하게 톨아지는 인종이다
.


20분쯤 달려 돌고래 선착장에 도착했고 보트를 타고 20분쯤 강의 중심으로 향했다.
보트 위에서 나는 열심히 설명을 했다. 돌고래의 먹이는 뭐고 수명은 어떻고 새끼는 언제 낳고.......

그런데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늙다리 코리언의 눈빛이 참 재수가 없다.
끈적끈적한 눈을 내 얼굴에서 잠시도 떼지 않는다.
가끔씩 입맛을 다시듯 찍 웃음을 짓기도 한다.
구역질나는 놈. 다 늙은 놈이 나를 자신의 침대로 끌고 가고 싶어서 안달이 난 것이다.
신도 늙다리의 눈빛이 역겨운지 멀리 떨어져 앉아 고개를 돌린다.
마음 같아선 침을 뱉고 돌아서고 싶지만 그는 나에게 달러를 줄 손님이다.
나는 그의 눈빛을 받으며 정성껏 설명을 계속했다.


돌고래 포인트에서 머문 30분 동안 돌고래의 화려한 점핑은 보지 못했다.
살짝 수면 위로 머리를 내민 돌고래는 숨을 쉰 뒤 재빨리 물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신과 늙다리는 숱하게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지만 카메라에 담긴 것은 매번 지느러미뿐이었다.
늙다리는 이게 뭐냐며 짜증스러워했고 신은 강의 아름다움만으로도 만족스럽다며 보트 끝에 앉아 하염없이 물구경을 했다.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신이 나에게 집을 보여줄 수 있냐고 물었다.
나는 당연히 오케이다
.
나의 집에 오면 저녁 식사를 요리해 주겠다고 했더니 신은 좋아 죽으려고 한다.

근데 문제는 늙다리였다
. 호텔 앞에서 늙다리만 떼어놓고 신을 집에 데려가려 했더니
늙다리의 표정이 거의 창백해지는 수준으로 변하는 것이었다
.
아니나 다를까 한 시간 쯤 뒤에 신에게 먹일 저녁을 만드는 데 늙다리로부터 전화가 왔다.
내일 나를 통해 구입하기로 한 버스표를 취소하겠다는 것이었다.
그 말은 내일 나를 만나지 않고 다른 곳으로 떠나겠다는 말이자 오늘 가이드에 대한 팁도 주지 않겠다는 말이었다.
순간 열이 확 올랐으나 겨우겨우 참아냈다.
신이 꼬리언이 아니었으면 꼬리아를 향해 인정사정없는 저주를 퍼푸어 주었을 떼지만
눈을 말똥말똥 뜨고 천진한 표정으로 내 앞에 서 있는 신이 꼬리언임으로 그럴 수는 없는 일
, 속만 부글부글 끓었다.


신은 내 집에서 한 시간쯤 머물고 호텔로 돌아갔다.
가끔씩 외국인 친구들이 내 집에서 자고 가기도 한다는 말을 신에게 해주자 신은 자신도 내 집에서 홈스테이를 하고 싶단다.
그래서 내일 내 집으로 짐을 옮기기로 했다. 정신 바짝 차리고 이 놈이라도 잘 구워보자.
달러가 후드득후드득 떨어지게.



2006 8 28일 월요일


오전에는 신과 영국인 늙은이 그리고 그의 젊은 캄보디아 애인 세 명을 이끌고 사원을 다녀왔다.
오후 일정에는 조금 문제가 있었다.
영국 늙다리와 그의 애인은 어제 신과 같은 버스로 도착했지만
어제 오후에 돌고래를 보지 않고 숙소에서 쉬었기에 오늘 돌고래를 보러가고 싶어 했다
.

그런데 신은 어제 돌고래를 보고 온 관계로 자신은 다른 데로 가겠단다
.
영국 늙다리와 신을 양 손에 올려놓고 무게를 재어 봤다.
어느 쪽을 택할까. 고민 끝에 신을 택하기로 했다. 애인 딸린 늙다리 보다는 아직 피부가 탱탱한 신이 훨씬 낳은 건 당연하지 않은가.
그래서 영국 늙다리 일행은 다른 기사를 불러 돌고래 선착장으로 보내고 오후 내내 신을 내 등 뒤에 태우고 들판을 달렸다.

수 백 마리의 소 때가 풀을 뜯는 너른 초원도 가고
, 비구니 스님들이 묵언 수행을 하는 사원도 가고,
운치 있는 샛강에도 갔다.
, 이 놈은 참 무뚝뚝한 놈이다.
내가 분위기를 북돋아 주기 위해서 감탄사를 내뱉으며 아름답지 않냐고 물으면 그저 어, 그래, 한다.
내가 운전을 하며 이것저것 수다를 떨어도 어, 그래, 하며 대답만 할 뿐 자기 얘기는 한 마디도 안한다.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만들어 먹일 때도 그랬다.

말은 한 마디도 안하고 내 뒤만 졸졸 쫓아다니다가 밥만 아작아작 먹는다
.
잘 먹었다는 말 외에는 한 마디도 안한다.
살다 살다 이렇게 재미없는 놈은 처음 본다.



그런데 이 재미없는 놈이 기어코 사고를 쳤다
.
조금 전 오빠의 해먹 뒤로 신이 잘 잠자리를 만들어주고 잘 자라는 인사를 할 때였다
.
아무도 안보는 어두운 구석인 것을 이용해서,
이 자식이 글쎄, ‘굿나잇 키스’ 하며 내 볼에 뽀뽀를 한 것이었다.

어떻게 막을 새도 없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
개시끼, 개시끼. 내 얼굴에 입을 대는 것은 우리 집 똥개 밖에 없는데, 정말 개 같은 놈이다.

지금 개시끼 신은 모기장 안에 웅크리고 누워 신나게 코를 곤다
.
, 저 개시끼에게 어떤 벌을 내려야 하나.
입술을 가위로 잘라버려야 하나?




2006 8 29일 화요일


개시끼 신은 오늘 오후 버스로 크라티를 떠날 계획이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이 개시끼가 하루를 더 머물겠다는 것이었다.
가지 없는 개시끼.
이 놈의 개시끼 때문에 미리 사놓은 표를 취소하고 다시 끊어야 했다. 내 일만 늘은 것이었다.


오늘도 개시끼를 태우고 오토바이 운전을 했다.
아침 일찍 그의 짐을 호텔로 옮기고
(홈스테이는 그만 하겠단다) 강변을 따라 달렸다.
그런데 도중에 오른쪽 눈이 심하게 아파오기 시작했다.
예전에도 종종 그러더니만 열이 오르고 뒷통수까지 아팠다.

오토바이를 세우고 다른 일정 때문에 돌아가야겠다고 신에게 말했다
.
신은 그러는 게 어디 있냐고 따졌다
.
어쩔 수 없이 선글라스를 벗어 눈을 보여주며 아프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금방
표정이 바뀌어서 자신이 오토바이를 운전해 병원에 데려다 주겠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
오토바이 운전은 해본 적이 없다는 놈이 아주 쇼를 했다
.
어쨌든 신이 일정을 다 취소해 준 덕에 몇 시간 동안 집에서 쉬었다.


언니한테 마사지를 받고 몇 시간 잠을 잤더니 오후에는 머리가 한결 가벼워 졌다.
저녁 무렵 호텔로 나갔다
. 내일 돌고래 투어를 할 사람이 있는지 체크해 보았다. 젠장. 아무도 없었다.



리셉션에서 신을 만났다.
신이 자신의 방에 가서 어제 찍은 사진을 보자고 했다.
신의 방에서 그의 노트북으로 사진을 보고 영화도 한 편 봤다.
방을 나오려 하는데 신이 사흘 동안 오토바이를 탄 페이를 하겠다고 했다.
얼마를 주면 되냐고 그가 나에게 물었다. 나는 주는 대로 받겠다고 했다.
신이 지갑을 열어 달러를 꺼내 내 손에 쥐어주었다. 무려 25달러였다.
나는 깜짝 놀라 환호성을 질렀다.

바보 같은 신은 자기가 너무 적게 줘서 내가 화를 내는 줄 알고 깜짝 놀라 주춤했다
.
나는 신에게 달려들어 그를 꼭 안아 주었다
.


방을 나오자 호텔 직원들의 모든 시선이 나를 향해 꽂혀 있었다.
청소하는 아줌마와 리셉션의 키키와 운전사 주가 차례로 묻는다.

신의 방에는 왜 간 거야
? 거기서 도대체 뭘 한 거야? 왜 그렇게 오래 있었어?
나는 어쩔 수 없이 차례로 설명했다.
신이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영화를 보았다, 그 외에는 정말 아무 일도 없었다, 라고.

쇼파에 앉아 있던 영국 늙다리의 애인 지니가 까르르 웃으며 말했다
.
‘콱 낚아채 버려, 그냥.


집으로 돌아와 이런 저런 생각을 했다.
나는 가난한 캄보디아 남자와는 결혼하고 싶지 않다.

나의 남편 상대는 반드시 외국인이어야 한다
.
그 상대자가 신이라면 어떨까
.
머리가 벗겨졌고 좀 어리버리 하지만 그런대로 괜찮지 않을까.




2006 8 30일 수요일


개시끼 신. 그 개시끼가 나를 떠나갔다.


오전에 개시끼를 태우고 산위의 사원으로 갔다.
나에게는 특별한 장소였다. 어렸을 적 할머니와 함께 자주 갔던 곳이었다.
소녀 시절 나는 산 위의 사원에서 들판을 내려다보며 수많은 공상을 했고 저 들판 너머의 세계를 그리워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로도 나는 자주 그곳에 갔다. 사원에서 나는 참 많은 치성을 드렸다.
나의 많은 기도가 쌓인 그 자리에서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았는데.......



마침 비가 내려 우리는 사원 안 의자에 앉아 어쩔 수 없이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었다
.
신은 오전 내내 우울해 보였다. 짜식이 여느 때보다 더욱 굳게 입을 닫고 분위기를 잡는다.
무슨 생각을 하냐고 물어보면 그저 nothing 이란다.
그래서 내가 먼저 찔러 보았다. 나 너에게 할 말이 있어, 하고.
신은 말해 보라고 한다.
나는 살짝 새침하게 굴어 본다.
니가 무슨 생각하고 있는 지 말하면 말해 줄께, 하고.
나는 신의 입에서 ‘나 사실은 널 사랑해’ 라든가, 하다못해 ‘너 나 어떻게 생각하니’ 하는 말이 나올 줄 알았다.
그런데 정작 이 새끼한테 나온 이야기는 나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딴 여자에게 관한 이야기였다.
잠시 좋아했던 여자가 있었는데 그 여자가 마약 중독이라서 결국은 여자를 떠났다나 어쨌다나,
참 기가 막힌 노릇이었다.

그렇지만 계획해 놓았던 내 작업을 포기할 수는 없는 일
. 그가 이야기를 끝내자마자 나는 내 이야기를 펼쳤다.
나는 반드시 외국인과 결혼할 생각이다.
가난한 캄보디아 남자와는 결혼할 생각이 없다.
오직 외국인만이 내 남편이 될 자격이 있다, 하고.
마지막에는 살짝 떠보았다.
나에게는 수많은 외국인 남자친구가 있다. 조만간에 결혼을 할 건데 지금은 누구와 결혼할지 잘 모르겠다, 하고.
웬만큼 어리버리한 놈이라도 내가 이렇게까지 이야기하면 대충 알아들었을 텐데 신은 또다시 엉뚱한 이야기를 꺼낸다.
자기가 10년 동안 짝사랑한 여자가 있었는데 그 여자가 며칠 전에 결혼을 했다나 어쨌다나.
답답해서 울화통이 터질 것 같았다.
산을 내려오면서 신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너 여기 더 머물러. 호텔에서 짐 빼서 우리 집으로 가자.’ 하고.
그런데 이 개시끼가 대답을 안 했다.



엊그제 내 집에서 잘 때 신은 샤워실이 없어 창피하다며 샤워를 안했다
.
그래서 샤워하는 대신 바르라고 향수와 분을 사들고 오후에 신의 방으로 갔다
.
신에게 선물을 주고 ‘자
, 이제 우리 집으로 가자’ 했다.
그런데 이 개시끼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화가 나서 뒤도 안돌아보고 나와 리셉션으로 갔다
.


잠시 뒤에 신이 가방을 싸들고 리셉션으로 와서 채크 아웃을 했다.
버스 정류장으로 가려는 놈을 붙잡았다
.
기다리라고
, 버스는 호텔 앞을 지나가니 내가 어련히 잡아서 태워주겠다고.
하루에 한 대 밖에 없는 버스였다.
버스를 놓치면 신은 무조건 하루를 더 이곳에서 보내야 했다.

그러니 버스를 보내고 신을 붙잡을 생각이었다
.
예정대로 잠시 뒤 버스는 빠른 속도로 호텔 앞을 지나 도시를 떠나갔다.

나는 ‘어째 이런 황당한 일이’ 하는 표정으로 신을 바라보았다
.
만약 신이 안달하거나 화를 냈다면 나는 조용히 신의 말을 듣다가 우리 집으로 끌고 갔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신은 웃고만 있었다
. 나에게 미안하다는 듯이 씁쓸한 웃음으로.......
그 웃음을
, 나는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버스회사에 전화해 버스를 세웠다
. 그리고 신을 오토바이에 태워 길가에 멈춘 버스까지 데려다 주었다.



신이 버스에 탈 때
, 나는 해서는 안 될 말을 해버렸다. 나는 외쳤던 것이다.


“신, 다시 돌아와. 돌아오지 않으면 내가 쫓아가서 죽여 버릴 꺼야!


하고.



(부분적인 허구가 곳곳에 숨어 있습니다. 어쨌든 저의 모습이 너무 멋있게 그려졌네요. 사실은 제가 추접했고 다린이 멋진 여자였습니다.)

출처 : blog.naver.com/danaia

7 Comments
ㄱㄱ ㅑ~ 2006.09.09 19:15  
  ㅋㅋ현지인에게 보이는 한국관광객의 모습도 재미있네요.. 아싸 1등이다
태린 2006.09.09 22:24  
  돌고래에 대한 정보는 오래전에 접했습니다..
캄보디아에 가게되면 꼭 가리라고 생각하고있습니다..
인연이되면 지나가다 얼굴마추치기를 기원합니다..
yaho 2006.09.11 08:22  
  멋진 그러나 쓸쓸한 남녀네요...
글 잘 봤습니다
danaia 2006.09.12 01:00  
  ㄱㄱ ㅑ 님 축하드립니다.

태린님... 전 대머리니 먼저 알아봐 주셔야 합니다.

yaho님  다린은 안 그런데 제가 사는 게 늘 다소 쓸쓸합니다. 그래도 열심히 살께요.
캔버라 2006.09.12 15:27  
  글 넘..재밌게 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나비 2006.09.12 16:37  
  아놔- , 로긴하게 만드네요.
안네의 일기이후 최고에요
뭔가 흡입력이 상당한 문장인듯. 암튼 넘 잼있습니다.
danaia 2006.09.13 14:45  
  캔버라님  재믿게 읽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비님.. 저도 '하나비' 팬입니다..... 역시 재믿게 읽어 주셔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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