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의 뿔처럼] 캄보디아 - ‘꼼뽕짬에서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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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의 뿔처럼] 캄보디아 - ‘꼼뽕짬에서의 하루’

danaia 0 800

프놈펜에서 메콩강을 따라 북쪽으로 이동한다.
계속 강을 따라 라오스로 올라갈 생각이다.
꼼뽕짬에 도착한 건 오전 11시.
버스에서 내리자 수많은 오토바이 운전사들이 달려든다.
영어를 잘하는 한 젊은 운전사를 선택한다.
매우 착하고 싹싹한 친구다.
가이드북에 소개된 숙소에 도착하자 리셉션에서 키를 받아다 방을 안내해 준다.
통로와 방이 너무 어두워 싫은 기색을 보였더니 메콩 강이 한 눈에 보이는 전망 좋고 싼 숙소로 옮겨준다.
남은 하루를 이 친구와 함께 다니면 되겠다 싶어 한 시간 뒤에 숙소로 오라고 한다.
그러나 그는 내가 점심을 먹고 숙소로 돌아올 때까지 숙소에서 마냥 나를 기다린다.


운전사의 이름은 완뎁, 스물 다섯 살이다.
영어를 잘하고 깔깔거리며 웃는 표정이 무척 천진한 친군데
다만 너덜한 모자와 구멍 난 티셔츠에서 땀 냄새가 무척 많이 난다.
집에 가서 옷 좀 갈아입고 오라고 부탁하고 싶지만, 당연히 부탁해선 안 될 일이다.


완뎁의 오토바이를 타고 오래된 사원으로 간다.
11세기에 건축된 불교 사원이다.
본당은 훼손이 심한 상태로 엉성하게 복구되어 여전히 부처를 모시고 있었고
세 명의 스님들이 신도들에게 점을 봐주고 있었다.
사원의 주변에는 라테라이트 돌담이 미로처럼 얽혀있었다.
돌담과 아치형 입구 그리고 압살라 부조는 비교적 보존 상태가 좋았다.
인적이 없는 높은 돌담 속으로 들어서니 마치 낯선 세계로 들어서는 입구를 걷는 느낌이었다.
돌담을 따라 사원 뒤로 나가니 마을이 하나 나온다.
평화스럽고 조용한 마을이다.
아이들이 놀고 있기에 다가간다.
아이들은 낯선 이방인의 모습을 신기한 눈초리로 쳐다보더니 막상 내가 가까이 다가가니
낡은 목조건물 안으로 쪼르르 도망간다.
뒤돌아서려는데 옆에 앉아 있던 마을 주민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 보라고 손짓을 한다.
뭔가 안에 특별한 게 있는가 싶어 조심스레 건물 안으로 들어가 본다.
생각보다 건물 안은 잘 꾸며져 있다.
한쪽에는 십 여대의 교육용 컴퓨터가 있고 그 옆은 작은 도서관,
그 맞은편에는 컴퓨터를 갖춘 사무실 책상이 놓여있고 스님 세 분이 앉아있다.
젊은 스님 한 분이 나에게 다가 온다.
영어를 할 수 있는 스님이다.

- 어떻게 오셨습니까.

- 한국에서 온 여행객입니다. 여긴 어딥니까?

- 고아원입니다.

오랜 내전으로 부모를 잃은 아이들, 그리고 몇 년 전 전염병이 돌 때 부모를 잃은 아이들 스무 명을
절에서 맡아 키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자 소문을 듣고 찾아온 고아들이 하나 둘 늘어 지금은 백 명의 고아들이 함께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스님의 안내로 고아원의 시설들과 숙소를 돌아본다.
그러고 나서 다시 이야기를 나눈다.
스님이 나에게 무거운 제안을 한다.

- 캄보디아에는 많은 한국 공장들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한국어를 배우게 된다면 쉽게 취직을 할 수 있습니다.
이곳에 남아서 아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주십시오.
우리에게는 당신이 필요합니다.

스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 내 주변에 모여든 마을 소녀들 중 한 명도 내 소매 자락을 흔들며 말한다.

- 여기서 우리랑 같이 살아요. 그리고 한국어를 무료로 가르쳐주세요.

잠시 입을 다물고 곰곰이 생각해 본다. 그리고 말한다.

- 죄송합니다.


고아원을 나오는데 세 명의 소녀들이 마중하겠다며 따라 나온다.
한 예쁜 소녀가 말한다.

- 한국에 돌아갈 때 저를 데려가면 안돼요?

그럴 수 없다는 걸 소녀도 알고 있을 터이기에 굳이 대답하지 않는다.

한 소녀가 사원의 화단으로 뛰어가 꽃을 꺾어 온다.
그리고 수줍게 나에게 내민다.
나도 소녀들에게 뭔가 주고 싶어 호주머니를 뒤진다.
자일레톨 껌 한 통이 있다.
한국의 껌이라고 말하며 두 알씩 나눠준다.
초라하지만 그것 외에는 줄 게 아무것도 없다.


사원의 입구에서 완뎁이 나와 소녀들을 보고 자지러지게 웃는다.

- 우와. 능력 좋네요. 그 새 여자를 세 명이나 꼬신 거예요?

쫒아 가서 완뎁의 등짝을 아프게 후려친다.
그래도 완뎁은 웃음을 그치지 않는다.

완뎁의 오토바이에 올라탄다.
오토바이가 출발한다.
사원은 멀어져 가는데 손을 흔드는 소녀들은 좀처럼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몇 개의 사원을 더 돌아보고 완뎁의 집으로 간다.
완뎁의 집은 강변의 가난한 마을에 있다.
나무 틈새가 많이 벌어진 낡은 다락집이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동네인지라 충전기로 전등을 키고 라디오를 듣는다.
책상에는 ‘백조유치원’이라는 한글이 새겨진 가방이 있다.
한국과 인연이 많은 놈이다.
충전기도 한국제고 그의 오토바이도 우체국 마크가 찍혀 있는 한국 대림오토바이 시티100이다.
완뎁은 십 년 전에 어머니를 여의고 사년 전에 아버지를 떠나보냈다.
가족이라곤 남동생뿐이다.
오래전부터 그는 운전사로 일하며 동생의 뒷바라지를 했다.
오토바이 운전을 통해 한 달에 100불 정도를 벌고
집 주변에 방목하는 병아리가 어느 정도 크면 시장에 팔아 약간의 부수입을 거둔다.
그의 수입 중 상당한 금액이 동생의 학비로 들어간다.
이제 동생은 곧 학교를 졸업하니 완뎁은 여유 돈으로 그만두었던 영어학교를 다시 다니고 저축도 할 생각이다.

- 결혼도 해야지? 여자 친구는 있어?

- 없어요. 저 같이 가난한 놈을 누가 좋아하겠어요?

말하고 나서, 완뎁은 낄낄거리며 웃는다.
이 자식, 나랑 비슷한 상황이군, 하고 나는 생각한다.

- 이게 우리 가족 사진이에요.

사진 속에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고 완뎁과 그의 동생이 있다.
제법 고급스러워 보이는 식당에서 가족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
중학생으로 보이는 완뎁과 그의 동생은 하얀 칼라가 날이 선 깨끗한 교복을 입고 있다.
열심히 젓가락질을 하는 어린 완뎁의 손이, 행복해 보인다.

완뎁의 얼굴을 올려다본다. 지금 완뎁은.......
역시 행복해 보인다.


숙소에서 내리며 완뎁에게 팁을 두둑하게 준다.
내일은 크라비로 가야한다.

- 크라비에 제 친구가 오토바이 운전을 해요. 전화해서 내일 마중 나가라고 할께요.

싫다고 대답한다.
완뎁은 좋은 놈이지만 그의 친구도 좋은 놈일지는 알 수가 없다.

- 여자인데도요?

여자 오토바이 운전사? 그렇다면 내 질문은 하나다.

- 예쁘냐?

완뎁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진다.

- 네. 무지 예뻐요.

- 좋다. 전화해라.


저녁을 먹고 나서 어두운 메콩 강변을 거닐었다.
어느새 꼼뽕짬에서의 하루가 다 저물었다.


(고아원에서 한국어 봉사활동에 관심있는 분은 아래 주소로 연락해 보시길.....

homsaran@yahoo.com - 영어 잘하는 스님
Angkor pagoda, Ampil communie
Kamponng Siem district, Kampongcham province, Cambodia
-- 고아원 주소 )

출처 blog.naver.com/dana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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