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박 6일 태국여행 (3)

홈 > 여행기/사진 > 여행기
여행기

4박 6일 태국여행 (3)

카플렛 1 1188
(셋째 날)



 

간밤에는 닭 우는 소리에 잠을 몇 번이나 깼습니다.
방음이 전혀 안 되는 대나무집에 누워있으니 음향 좋은 극장에서처럼
시원한 서라운드 닭 울음을 체감할 수 있습니다.

시계를 보니 7시가 조금 넘은 시각,
밖에선 부지런한 서양애들이 벌써 일어나 담소를 나누고 있네요.
American Breakfast 라며 토스트와 커피를 가져다줍니다.

 

"너희는 정말 이렇게 아침을 먹어?"

떫은 표정의 미국애들이 자기는 아침을 안 먹는다고 하네요.

 

"한국인들은 어떻게 아침을 먹는데?"

"엄마 마음대로. 실은 나도 아침은 잘 안 먹어."

 

한쪽에서는 멕시코인이 오스트리아인에게 라쿠카라차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활달한 성격의 그녀는 런던에서 일하다 직장을 그만두고 나서
6개월 일정으로 세계여행을 다니는 중이라고 합니다. 지금이 4주 째.
상페쩨르부르크에서 열차를 타고 중국, 베트남을 거쳐 육로로 태국까지 왔답니다.
그런 그녀, 날 보더니 또 묻기 시작합니다.

 

"Thank you가 한국말로 뭐야?"

"Komapsumnida"

"Ko.. a... what is it again?"

전혀, 제대로 따라하질 못합니다.

"Ko map sum ni da... or Ko ma wo yo... or Kam sa ham ni da..."

몇 번 더 해보지만 여전히 부정확합니다.
역시 한국어의 발음은 외국인들이 따라 하기 어렵습니다.

 

"그럼 스페인어로는?"

"Gracias"

"그라시아스?"

"Yes! much easier!"

프랑스인이 때를 놓치지 않고 끼어듭니다.
갑자기 모두들 외국어 배우는 분위기가 되어버렸습니다.
스위스인에게 제1언어가 뭐냐고 물어보니 자기네 지역은 불어라며
학교에서는 영어와 독어를 필수로 배운다고 합니다.
이탈리아어까지 하면 모두 4개 국어를 하는 것이죠.

옆에서 듣고 있던 미국애들은 "게으른 미국인들"이라고 하면서
외국어 못하는 자기들을 자책하는 제스처를 보입니다.
하긴 영어가 이렇게 잘 통하는 세상이니 외국어가 배우고 싶을까요.

 

아침을 먹고 나서 크놈을 따라 산을 내려갔습니다.
2박 3일로 온 사람들은 "카렌"족 마을로 가서 하루 더 묵게 됩니다.
짧게나마 같이 지내며 친해진 사람들과 헤어지려니 아쉽고,
산에서 하루 더 묵고 싶어 또 아쉽지만 이제는 가야 할 시간.

 


 

 

한 시간 가량을 내려가니 폭포가 나왔습니다.
폭포 아래 계곡이 수영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크지 않아 아쉬웠지만
커다란 물줄기가 떨어지는 걸 보며 잠시 더위를 식힐 수 있었습니다.
폭포로부터 다시 한 시간을 내려가면 코끼리 농장에 도착합니다.
여기서 한 사람 혹은 두 사람씩 코끼리를 10분 정도 타게 됩니다.

 

내가 탄 코끼리는 훈련이 잘 되어있지 않아 고생을 했습니다.
중간에 바나나를 한 다발 사서 먹여줬는데도 말을 안 듣고
코를 나에게 들이대며 더 달라고 조르기만 했습니다.
조련사가 안되겠다고 생각했는지 내려서 재촉하는데도 제멋대로 멈추고 흔들림도 심해서 
나중에 내리고 나니 손잡이를 잡고 있던 팔이 후들거릴 정도였습니다.
그래도 어려서 그러겠거니- 불쌍히 여겨 바나나 한 다발을 더 사서 먹였습니다.
퇴출당하지 않으려면 부디 조련사 아저씨의 말을 잘 들으렴-하고 빌어주면서요.

 


 

코끼리에서 다 타고 나면 강변에 내려주는데
그 곳에서 5~6명씩 조를 짜서 래프팅을 시작합니다.
물은 깊지 않지만 물살이 세기 때문에 꽤 스릴 있습니다.
옆의 배와 물싸움도 하고 가끔 배가 뒤집어지기도 하기 때문에
수영복을 미리 준비해 가는 게 좋습니다.

 

래프팅을 끝으로 1박 2일의 트레킹 일정은 모두 끝나고
강변에서 점심을 먹은 후 치앙마이 시내로 돌아왔습니다.
숙소로 잡아 놓은 레지던스 빌딩에 도착하니 오후 네 시.
잠시 쉬다가 일요일마다 있다는 선데이마켓을 구경하러 나섰습니다.

 

선데이마켓은 타페문에서 시작해 동쪽으로 길게 이어집니다.
규모도 생각보다 크고 사람도 무척 북적거려 구경하는 재미가 있더군요.
그렇게 구경을 하면서 노점상의 갖가지 꼬치구이도 맛 볼 수 있습니다.

 


 

시장 구경을 하던 중에 재미있는 일이 있었습니다.
갑자기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흘러나오니까
거리의 모든 사람들이 몸이 굳어버린 듯
동시에 제자리에 멈추어 서버리는 것입니다.

나를 비롯한 외국인들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했지만
애국조회를 하는 듯한 분위기에서 혼자만 움직이기가 민망해
현지인들처럼 노래가 끝날 때까지 같이 서 있었습니다.

 

태국에서는 국왕찬가가 방송되면 모두 서서 경의를 표한다는데
아마 선데이마켓에서 들었던 그 노래가 국왕찬가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한국에서도 과거에는 애국가가 들리면 기립해야 했던 적이 있었다지요.
영화관에서 대한뉴스를 억지로 보던 시절이 그렇게 먼 옛날이 아닌데도
지금의 나에게는 이 풍경이 낯설고 우스꽝스럽기만 합니다.

 

시장 구경을 두 시간 쯤 한 후에 트레킹에서 만난 한국 분들과 MK수끼에 갔습니다.
처음 가보는 곳이었는데 듣던 대로 샤브샤브와 별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말레이시아에서 먹어보았던 스팀보트와도 거의 비슷하더군요.

수끼 재료로 6가지 정도를 시키고 별도로 오리구이를 시켜서 먹었습니다.
원래는 재료의 특성에 맞추어 하나씩 넣는다지만
비빔밥을 좋아하는 한국인답게 모조리 한번에 넣고 끓였습니다.
오리구이는 북경오리구이처럼 밀전병에 싸 먹는 식으로 나오지는 않고
그냥 먹기 편하게 잘려서만 나옵니다.
셋이서 이렇게 시키고 모두 450바트 정도가 들었는데 가격에 비해 맛이 훌륭했습니다.

 

MK수끼 근처에는 수퍼마켓이 있어서 잠시 들러 과일도 샀습니다.
망고와 Charentais(속이 오렌지색인 멜론)처럼 한국에서 맛보기 힘든 과일 위주로 골랐는데
이 녀석들은 태국에서도 가격이 그리 싸지는 않네요.

같이 갔던 한국분은 파인애플을 샀는데 과일매장에 있는 점원에게 잘라달라고 부탁을 하니
먹기 좋도록 정성스럽게 칼집까지 내줍니다.
태국인들은 먼저 나서서 해주거나 알아서 챙겨주는 서비스는 부족한 반면
부탁을 받으면 무척 친절히 도와주려고 애쓴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숙소에 들어가기 전, 오늘의 마지막 코스로 마사지를 받으러 갑니다.
발마시지 한 시간에 150바트를 받는 마사지 가게 안에서 누워 하루의 피로를 풉니다.
한국에서도 5000원에 마사지를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뭉쳤던 근육이 풀어지고 피가 순환하면서 몸에 다시 생기가 돕니다.
비록 짧은 여정이지만 내게는 이 여행이 마사지처럼 삶의 피로를 풀어주는 것 같습니다.

 

1 Comments
달밤 2006.10.05 14:12  
  잘 읽었습니다. 저는 11일 페키지로 떠납니다. 제가 해보고 싶은 여행도 이런건데 이번이 처음이고 집사람이랑 같이 가야해서 이번에 페키지로 갔다가 내년쯤 자유여행 갈 생각입니다. 
포토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