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에서의 스릴넘치는 여행기 1
"응.. 방콕"
"우와.. 외국 나가는구나!! 좋겠다.."
"ㅎㅎ 방에서 콕박혀 지내겠다구.. 바보~"
"모야 -.-;;"
피식하는 웃음과 함께 어릴 때 유행했던 농담이 떠 올랐다.
출장덕분에 올해만해도 몇 번째 찾아오는 공항이었지만 혼자 이렇게
덩그러니 앉아 있으니 심심하기도 했거니와 문득 떠나고 싶다는 생각에
덜커덕 항공권을 끊어 놓고 휴가를 내버린 내 자신의 용기가 대견하기도
했다.
하지만 약간은 무모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약간의 후회의
감정이 밀려오기도 했다.
금요일 아침.. 평소 같으면 적막이 감도는 사무실에서 회의 준비를 하고
있을 시간인데..
별 고민 없이 내팽겨 버리고 이렇게 공항에 앉아있다.
방콕으로 떠나기 위해서.. 바다가 좋다는 보라카이나 푸켓도 아니고, 원시의
생활을 체험해 볼 수 있다는 치앙마이나 거대한 유적지인 앙코르와트도 아닌
그저 방콕이라는 도시에 가기 위해서.. 시간을 1주일쯤 낼 수 있었다면 아마
위에 언급한 어디든지 갈 수 있었겠지.. 특히나 지난 몇 년간 가보고
싶었지만 그냥 희망에 그쳐야만 했던 앙코르와트에...
하지만 내가 가진 시간은 3일 뿐이다. 눈치 보아가며 타이밍 잘 맞추어 하루
휴가를 낼 수 있었다. 금요일 아침 비행기로 방콕에 도착하지만 난 월요일
아침에는 출근을 해야한다..
"월요일에는 비행기가 오전 7시쯤 도착하니까 8시쯤 리무진버스를 탈 수
있다면 집에는 9시 정도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회사에는 건강검진을
간다고 말해두었으니 11시쯤 슬슬 사무실에 입성하면 되는 것이다.
(물론 월요일 아침에 건강검진 같은건 받을 생각도 계획도 없다.)"
출발 열흘전 계획을 짤때는 정말 판타스틱하다고 속으로 외치며 나 자신을
칭찬했지만 지금에 와서는 약간 겁까지 나는게.. 무모한 계획이지만 스릴도
넘치는 계획이었다.
그래 이왕 여기까지 온 거 후회없는 3일을 만들어보자구..
개인적으로 타이항공의 비행기들이 가장 예쁘다는 생각을 했다.
동체를 장식하는 보라빛의 색상뿐 아니라 역시 보라색의 타이 전통문양
까지.. 서비스나 기내식은 어떨까? 나도 나이를 먹었나보다.. 기내식의 맛이
궁금해지다니.. 몸 상태가 안좋은 관계로 와인을 몇잔 마시고 잠을
자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비행기에 올랐다.
5시간 30분.. 비행시간은 생각보다 길게 느껴졌다. 한참을 자고 공항 서점에
서 산 미니북도 한권 읽고 영화도 좀 보고.. 시계가 없어 거의 왔겠거니
은근히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옆에 앉은 아저씨가 노트북을 연다. 윈도우
메뉴바의 시계를 보니 한국시간 1시30분, 한국시간으로 4시나 되어야 도착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내가 잘못봤나? 아무리 다시 봐도 1시30분이다.
혹 노트북이 자동으로 시간을 셋팅했나? 하는 생각도 해 보았느나 말도
안되는 생각이다. 고토 몇천미터 상공에서 그것은 불가능할테니까..
혹 아저씨가 영화라도 보려나 해서 나도 끼어서 봐야겠다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저씨 옆에 앉은 부인에게 하는말..
"어.. 이거 인터넷 안되네.." 그리고는 다시 닫아 놓는다..
피식 웃음이 나온다.. 순진한 아저씨.. 점잖은 정장차림에 노트북까지 들고
있어서 비즈니스차 방콕에 가는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닌것 같았다.
옆에 앉은 부인은 바캉스 차림인데.. 왠지 unmatch되는 분위기..
한참 시간이 지나자 그 아저씨가 말을 건다. 별로 얘기하고픈 상태는
아니었지만 그냥 저냥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골프를 치기위해
치앙마이로 가는 길이란다. 부인과 함께.. 같이 온 일행은 1년간 머물 예정
이라하는데 은퇴 후 이곳저곳 여행을 즐기는 것 같았다.
한국에서는 골프비가 너무 비싸고 부킹도 쉽지 않아 자주 동남아나 중국으로
나온다는.. 한국에 골프장을 더 지어야 한다고 정부와 시민단체를 원망
하기도 했다. 한국에 골프를 칠 여건이 안되니 사람들이 다 나간다고..
외화낭비의 원인이 된다나..
속이 약간 뒤틀리는 기분을 느꼈다. 치앙마이에서 골프치는 것까진 좋은데
그 논리가 좀 뭐했다. 땅 부자인가? 말하는 투나 입국신고서의 간단한
영어도 해석이 안되 나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을 보니 사업가나
기업체 임직원 출신은 아닌것 같았다. 아무리 봐도 부동산 부자가 분명해..
요즘 오르는 집값때문에 심사가 좋지 않았던 나로서는 그렇게 결론을
내버리고 말았다.
아무튼 약간은 지루한 비행시간도 끝이 났고 비행기는 정시에 신공항에
착륙했다. 타이항공을 이용한 비행은 만족스러웠다. 기내식도 훌륭했다.
생각보다 맛있었다. 생선이었는데.. 와인도 괜찮았고 승무원들의 서비스도..
동남아 지역은 5년만이었다. 대학 때 베트남으로 봉사활동을 온 적이
있었는데 2주동안 하노이 근교에 머물렀었다. 그것이 나의 첫 해외경험이었
고 그것을 계기로 여행의 매력이 무었인가를 깨닫게 되었다.
왜 유럽이나 미국같은 곳으로 배낭여행을 떠나지 않았나 후회를 하기도
했다. 그때가 4학년 마지막 방학이었으니 후회만 있을 뿐 기회는 없었지만..
입사후에 간간히 출장을 가거나 주말을 낀 단기간 여행을 할 기회가 있었다.
3일간의 방콕여행도 어떻게 보면 어처구니 없는 계획이지만 어쩌겠나 시간이
없는것을.. 아무튼 남국의 후덥지근한 공기를 들이 마시면서 아 내가 멀리
오긴 멀리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한국은 11월초입.. 기온이 영하로 내려
가네 마네 하고 있는 때였는데..
신공항은 정말 컸다. (쑤왈랏폼인가? 기억이 안난다 이름은..) 한참을
뛰듯이 걸어나와 입국심사대에 섰다. 줄서서 기다리는 것을 싫어하는 체질
(누구는 좋아하겠냐만은..)이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빨리가기 위해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거의 뛰듯이 걸어간 것이다.
그런데 어처구니 없는일이.. 내가 줄을 섰던 곳의 심사인(정식 명칭은 모라
하더라..)이 갑자기 Closed 팻말을 내걸더니 우리더러 다른 줄에 서란다..
이미 다른 줄은 뒤에 온 사람들로 길게 뻗어있는데.. 쉬러 갈거면 이미 서
있는 줄은 통제한 후에 기다렸던 사람들까지는 처리를 해 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 어이가 없었지만 어쩔수 없었다.. 결국엔 꼴찌로 입국심사대를
나왔다.
버스는 한 층을 내려가서 탈 수 있었다. 원래 택시를 탈 계획이었지만 마침
카오산까지 가는 공항버스가 대기중이었고, 버스에 가득 앉아 있는 서양인
여행객들을 보니 뭔가 재미있는 일이 생길 것 같았다.
헌데 버스에 들어가고 나서야 남은 자리가 없음을 깨달았다. 안내양은
친절하게 기사 자리 뒤의 엔진석(엔진때문에 튀어나온 부분.. 사람이 앉을
수는 있다.) 안내해 주었다..
20여년전이었던가 꼬마때 타고 다녔던 버스의 기억이 떠올랐다. 아무튼
도심으로 들어가는 동안 엉덩이 마사지는 원없이 받을 수 있었다. 내 뒤에
등을 맞대고 앉은 서양인 여자는 내 등을 무슨 의자 뒷받침으로 착각한듯
편하게 기대고 있었다. 삭 피해볼까 했지만 그냥 참았다. 공항에서 얻은
지도로 방콕지리 공부를 하면서..
몇달전 중국 출장때하고 어쩌면 이리 똑같은 상황이 발생했는지..
그때도 내 바로 앞의 한국인이 중국 공안하고 싸움 나는 바람에 결국 꼴찌로
입국심사대를 나왔고 리무진 버스도 만원이라 의자 팔걸이에 엉덩이를 걸치
고 들어갔던 기억이..
[버스에서 만난 바이옥스카이.. 생각보다는 괜찮게 생겼다]
카오산 몇정거장 전에서 내렸다. 숙소가 있는 차이나타운으로 가려면 그쯤에
내려 택시를 타야했기 때문이다. 나를 등받침 삼았던 그 서양 여자도 따라
내렸다. 택시를 잡으려 기다리고 있는데 그 여자가 말을 걸어온다.
왕궁으로 가려면 어떻게 하는지 묻는다. 그것도 타랏차윙(차이나타운쯤의
수상버스 선착장)에서 수상버스를 타고 가고 싶다는 것이다. 나도 초행인데
다가 막 버스에 내려 방콕의 매연과 교통체증에 정신이 혼미했던지라 금방
답을 낼 수는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 같이 택시를 타고 차이나타운쪽으로
가면서 생각해 보기로 했다. 그 여자는 독일인으로 호주에 가는 길이었다.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하기 위해서.. 남자는 호주사람인데 몇년전 여행에서
알게되었고 결혼을 하기 위해서 가는 것이라 했다. 영원히 살기위해서..
방콕에서 경유하는 길이었고 온김에 왕궁정도만 찍어주고 갈 심산이었던
것이다. 그 버스로 카오산까지 갔으면 더 빨랐을텐데 무조건 수상버스를
타고 가야한다는 말만 듣고 길을 엄청 돌아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버스안에서 이야기를 했으면 좋았을텐데... 하긴 비좁은데 서로 등지고 앉아
있는 상황이라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지..
재미있었다. 이런것이 배낭여행의 매력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것..
사랑하는 사람과 영원히 함께 하기위해 조국과 가족을 떠나온 한 여인..
로맨틱하다고 생각했다. 숙소인 차이나타운에 도착한 후 대강 가는법을 설명
해 주었다. 나도 그쯤이 되니 지리파악이 된데다가 택시기사가 부연설명을
곁들여주었다. 그녀는 오늘 11시 비행기를 타기위해 공항에 가야 했기에
시간은 많지 않았다. 왕궁에 갔다가 씨얌쪽에 가 볼 생각이라고 했다.
난 씨얌 대신 카오산에 꼭 가보라고 이야기 해 주었다. 나도 가보진 않았지
만 워낙 유명한 곳이었기에 그녀도 분명 좋아할 것이고 유럽인들이 많기에
정보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다음날 내가 카오산에 갔을 때 난 그때 그녀에게 그곳에 가라고 권하길
정말 잘 했다고 생각했다.. 내가 경황이 있었으면 그녀와 함께 돌아다녀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지만 난 빨리 호텔에 짐을 풀고 싶었다.
그리고 오늘은 왕궁이나 카오산에 가지않고 차이나타운에 머물기로 계획했기
에 그냥 헤어지기로 했다. 명함만을 건네주고는 바이바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