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 3박 5일] 배낭여행의 고생은 사서도 한다! - 070228 4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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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 3박 5일] 배낭여행의 고생은 사서도 한다! - 070228 4일차

불꽃소녀 16 3741

햇빛이 들지 않는 방이지만 어렴풋이 들어오는 햇살에서 아침이 온 걸 알 수 있었다.
오전 7시 30분... 나의 방콕에서의 마지막 아침이 밝았다.
색소폰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겠다는 계획도, 스카이 라운지에서 방콕의 야경을 즐기겠다는 계획도, 뚝뚝을 타고 사원과 왕궁 등을 돌아다니며 야경사진을 찍겠다는 계획도, 겁을 무릅쓰고 팟퐁에 가려고 했던 계획도 이루질 못했다.
하지만... 그만큼 다음에 다시 올때 하고 싶은걸 남겨놓고 가는 거니까... 그만큼 더 많이 그립고 다시 오고 싶을테니까 아쉬운 마음은 곱게 접어서 마음 한켠에 담아두기로 했다.

못에 걸어두었던 옷가지들도 하나씩 정리해서 가방에 담고, 이불도 정리해놓고, 쓰레기도 치우고 나니 처음 들어올때처럼 방안이 휑해졌다. 워낙에 살림살이도 별로 없는 방이었는데 그래도 사람이 있었던 흔적이랑 떠나는 흔적은 차이가 났다.

참!
망고 얘기를 마저 해야겠다.
결국 칼을 사지 못했다. 길거리에서 10밧에 팔때 살껄, 땅화생 백화점에서 사려고 하니 100밧 가까이 달라는거다. 그래서 결국 칼을 사지 못하고 떠나는 날까지 망고는 작은 탁자위에 그대로 있었다.
오늘 돌아다니다가 칼을 산다고 해도 배낭을 메고 어딘가에서 손에 과즙을 잔뜩 묻히면서 망고를 먹기도 어려운일, 한국에 들고 들어가긴 불가능하고, 그렇다고 버리기엔 아깝고...
결국 대충 입으로 베어먹기로 했다. 어차피 버릴 수 밖에는 없으니까...
그런데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다.
그냥 이로 대충 껍질을 발라내고 먹으려 했는데... 맙소사... 망고 껍질이 마치 바나나처럼 손으로도 너무 잘 벗겨지는것 아닌가...
내가 한국에서 망고를 먹어봤어야 말이지... 망고 껍질이 원래 그렇게 잘 벗겨지는건지 정말 몰랐었다.
망고는 순식간에 그 속살을 드러냈다. 못먹으면 버리려고 마음먹었던 참이라 마치 공짜로 망고 1kg이 굴러들어온 느낌이었다.
망고는 노랗게 너무나 잘 익어서 한 입 베어물면 그 달콤함이 목구멍을 타고 위까지 전해지는 느낌이었다.
새콤함 그런건 없다. 오로지 달콤하기만했다. 꿀처럼 정말 달고 맛있었다.
커다란 망고 세개를 그자리에서 먹어치웠다. 바닥에는 망고 과즙이 잔뜩 떨어져있었고 내 얼굴 반은 망고 과즙으로 범벅이 됐다.
그래도 행복했다. 태국의 망고는 정말 동급최강이었다^^

배를 두드리며 숙소를 나왔다.
왠지 기분좋은 하루가 될 것 같은 예감이들었다.
오늘은 그동안 시간이 늦어서, 잠이 들어서 혹은 기타 이유로 가지 못했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기로 했다. 하지만 꼭 3시 이전에 일정을 끝내야 했다.
3시부터는 반나절 운하 투어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시리랏 의학박물관을 가려고 버스를 기다리다가 결국 너무 오래기다려서 포기하고 에라완을 먼저 가기로 했다.
버스를 타고 센트럴시티로 갔다. 센트럴시티에 거의 다 와서 내리려고 일어서있다가 버스가 급커브를 돌면서 휘청했는데 우락부락하게만 생겼던 버스안내원이 놀란 눈으로 다가와서
'take care'
라고 말했다. 뭘... 그냥 잠깐 기우뚱 한것 뿐인데...
안내원의 따뜻한 한마디에 마음이 짠했다.

친절한 안내원 덕분에 기분좋게 센트럴시티에 내렸다. 유명한 쇼핑센터인 마분콩과 게이손 플라자, 나라야판등이 보였다.
에라완은 센트럴 시티에서 몇 분 거리도 되지 않는 곳에 있었다. 단지 에라완 때문에 시내까지 들어왔는데 바로 이곳에 있었다니... 얼마전 센트럴 시티와 빅씨에 왔을때 들렀으면 좋았을텐데...
그래도 덕분에 그때 들르지 못했던 쇼핑센터들도 구경하고 다시한번 빅씨에 가서 가족들과 병원 식구들에게 줄 먹거리들을 한가득 살 수 있었다,.

빅씨에 있는 푸드센터에서 남은 람부탄을 먹으며 다음 코스를 살펴보았다. 곧바로 시리랏 병원에 갈까, 아님 왓뜨라이밋을 들렀다 갈까 고민을 했다. 3시부터 강 투어를 하려면 왓뜨라이밋을 거쳐가는건 시간이 조금 빠듯해보였다.그래도 이왕 왔는데 세계에서 가장 비싼 불상은 한번 봐야되지 않겠냐 싶어 왓뜨라이밋으로 가기로 했다.

이제는 버스도 잘 타고 다닌다.
왓뜨라이밋은 훨람퐁 역에서 가깝기 때문에 버스 노선을 잡기도 쉬웠다.
버스를 타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서 훨람퐁 역으로 갔다.
지난번 밤에 왔을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그땐 차이나 타운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온 몸이 파김치가 되어 도착해서 그다지 역 자체에 대해 감흥을 느끼지 못했는데 오늘 다시 훨람퐁 역에 도착하니 다양한 사람들로 북적되는 중앙역의 분주함과 활기찬 기운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마치 명절날 고향에 가려고 서울역에서 기차를 기다릴때의 느낌이랄까...

왓뜨라이밋은 훨람퐁역부터 이정표가 잘 되어있어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역시 가장 비싼 불상이라 그런지 그 위용과 럭셔리함에 입이 떡 벌어졌다. 저런 화려한 불상이 석고에 갖혀 있었다니... 참 안타까운 일이었다.

왓뜨라이밋을 보고 드디어 나의 마지막 목적지인 시리랏 의학 박물관으로 향하였다. 랏차웡에서 배를 타고 시리랏에서 내려 바로 정류장옆에 있는 병원으로 들어갔다. 병원내에 있는 의학 박물관은 사실 어떤 사원이나 궁전보다도 가장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다.
하지만 걱정이 앞서는건... 책에 쓰여진 소개만으로도 이미 나는 겁에 잔뜩 질려있었다. 목이 잘린 시체라던지, 살인마의 미라라던지... 공포영화도 못보는 내겐 무모한 도전일지 몰랐다.
그래도... 이번 기회가 아니면 언제 또, 라는 생각에 박물관으로 들어갔다.

...

...

...

참... 사람들 비위 대단하다.
교복을 입은 어린 학생들도, 나이가 지긋하신 어른들도 아무렇지 않게 호기심 어린 눈으로 보고 있다.
나는? 거의 눈을 뜨고 다니지 못했다.
정말... '눈 뜨고는 차마 못볼' 이라는 말 그대로였다.
목이 잘리고, 팔이 잘리고, 온 몸이 산산조각이 나고,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신체부위 등등... 그리고 희대의 살인마의 미라... 온갖 장기들, 뼈 등등...
그 모든게 '실제' 라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바로 옆의 해부학 박물관까지 다녀왔더니 시간이 3시를 훌쩍 넘기고 있었다. 서둘러 타창에 갔다.

강을 건너가는 배만 타면 되는데 줄을 잘못서서 타창에 도착했을때는 30분이 넘어버렸다. 3시 30분 배를 놓치면 한시간이나 기다려야 하는데...
책에 나와있는대로 배 타는 곳으로 뛰어 갔더니 천만다행으로 배가 가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책에 나와있는대로 앞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내 옆자리와 앞자리에는 태사랑에서 정보를 보고 왔다는 한국인 여자분 3명이 있었다.
지나가면서야 한국인으로 추정되는 (?) 여행객들을 많이 봤지만 실제로 대화를 나눈 한국인은 5일만에 처음이었다.

호주에서 스카이 다이빙을 하고 나서 유독 그날만큼은 일기장에 아무것도 적지 못했다.
무슨 말로도 표현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날의 운하투어도 자세히 적을 수는 없다.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많이 돌아다닌것도 아니고, 크게 유명한것을 보지도 않았고, 대단히 맛있는걸 먹지도 않았지만
난 그 날의 강바람과, 태국인들의 소박한 삶의 모습이 가장 기억에 남고 그립다.
투어를 마치고 방람푸로 돌아오는 배에서 본 붉은 노을은 날 너무 감동스럽게도, 아쉽게도, 슬프게도 만들었다.
잊고 싶지 않아서... 기억하고 싶어서... 연실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노을은... 내 마음과는 달리 너무 빨리 사라졌다.

방람푸 대신 테와랏에서 내려 쌈쎈 거리를 지나 싼타찬 쁘라깐 공원에 갔다. 파쑤멘의 야경도 아름다웠지만 공원에서 바라본 라마8세 다리와 강변의 야경에 쉽게 자리를 뜰 수 없었다.

정말 마지막이구나...
이젠 서울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지난 4일이 필름처럼 머리를 스쳐갔다.
5일전 태국에 도착해서 난생처음 노숙을 했던 일부터 처음 버스를 탔던 일, 이상한 생강맛의 닭국, 브릭바에서의 잊지못할 밴드연주 등...
일상에서 4일은 평범하고 별다른 이벤트 없이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는데 여행을 떠나면 하루하루가 그렇게 귀하고 소중할 수 없다.
하루동안에도 너무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입안으로 들어가는 하나하나가 선물이고 모험이다.
여행지에서의 4일은 40일을 보낸것 같이 지나가는데, 여행에서 돌아온 후 정확히 보름이 지난 지금, 일상의 보름은 하루처럼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모르게 지나가버렸다.
그립다... 시끄럽고 사람많고 차도많고 횡단보도도 없어 위험천만한 태국, 방콕이...

이제 정말 일어나야 할 시간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카오산에 작별인사를 하고 서울로 가야지.
나는 카오산으로 갔다.
그리고 여행중에 꼭 해보고 싶었던 것을 하기로 했다.
맥주 마시면서 카오산 어슬렁거리기.
문 닫을 준비를 하는 땅화생백화점에 들어가서 '창'맥주를 산다음 카오산 입구에서 맥주를 땄다.
그리고 거리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를 들으면서, 주머니에 손을 넣고 맥주를 마시며 카오산거리를 그야말로 '어슬렁'거렸다.
처음 도착했을때 겁에 질려 배낭을 꼭 메고 숙소를 찾던 나였는데, 길거리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어슬렁거리다니... 내 모습이 재밌었다.

어슬렁 거리다가 공항으로 가는 버스비와 약간의 여분의 돈만 남기고 모두 털어서 군것질을 했다. 여행내내 찾았지만 결국 찾는데 실패한 벌레 대신에 맛있는 로띠와 카놈브앙을 먹었다. 물론 길거리에 앉아서^^

돈도 떨어지고 시간도 다 되고...
이젠 정말 정말 정말 정말 가야한다.

공항으로 가는 시내버스를 타기위해 정류장으로 갔다. 정확한 버스정류장의 위치를 몰랐지만 이미 다른 여행객들이 커다란 배낭을 놓고 기다리는걸 보고 이곳인가 싶어 같이 기다렸다.
손가락만한 바퀴벌레가 있길래 사진찍는다고 설치다보니 어느새 버스가 와서 사진은 못찍고 서둘러 버스를 탔다.

공항으로 가는길, 멀리 전승기념탑도 보이고 결국 가지 못했던 스카이라운지가 있는 높은 빌딩(?호텔?) 도 보았다.

공항에 도착하여 티켓팅을 하고 남은 21밧을 어떻게 쓸까 고민하다가 훼밀리 마트에서 초코우유1개, 떠먹는 요구르트 1개를 샀다. 나의 태국에서의 마지막 만찬이었다.

카오산에서 마신 맥주가 '싱'이 아니고 '창'이었던 이유는...
바로 비야싱은 기내에서도 먹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그리운 비야싱을 두캔이나 마셨다. 기내에서 먹는 알콜은 평소에 먹는 것보다 3배나 취하게 한다지만 이젠 마지막이니까...

싱을 마시고... 난 그대로 깊은 잠에 빠졌다.

잠에서 깨어나면... 다시 꿈에서 현실로 돌아와 있겠지...

나의 4번째 배낭여행이 그 막을 내리고 있었다.

16 Comments
불꽃소녀 2007.03.15 21:35  
  에구에구
일에 치여서 바쁘게 살다보니 보름만에 후기를 다 올렸네요.
사진도 없고 길고 재미없는 글 읽어주신 많은 분들 고맙습니다.
디지몬 2007.03.15 21:59  
  무척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맥주를 좋아하시네요. 저희도 싱을 많이 먹었는데 싱말고 다른 맥주 맛있는게 있다고 해서 찾아해맸는데 실패! 그게 타이거인가요?
요술왕자 2007.03.16 00:58  
  재미있게 잘 보았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어서 다시 떠나실수 있기를 바랍니다.

디지몬님/ 씽 말고 창, 리오도 많이 먹습니다. 타이거는 싱가폴 맥주입니다.
월야광랑 2007.03.16 02:41  
  불꽃소녀님, 조금 아쉬운듯 싶지만, 다음에 또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으실 겁니다.
항상 여행을 떠날 땐, 두근두근 거리는 마음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하는 기대감에 잠 못 이루게 되는 것 같아요.
잘 익은 망고는 저도 좋아 하는데... :-)
망고를 먹을 때마다 응얼거리는 노래...
Under the mango tree 던가?
007 영화 중에서 나오던 노래죠. ^>^
불꽃소녀 2007.03.16 07:04  
  아 맞다! 타이거는 걸리버에서 먹었던 맥주이고,
마지막날 먹은 맥주는 '창'이었네요^^; 거의 반 자면서 썼더니 헷갈렸어요. 수정했습니다.
덧니공주 2007.03.16 09:43  
  망고와의 전쟁.불꽃소녀님 win~[[원츄]]
잘익은망고는,잘익은 복숭아처럼 껍질 잘까지죠~
하지만,뼈주위는 좀 조심하셔야,,,가끔,민감한 분들은 망고독 올라서,입술팅팅 부어요.ㅋㅋㅋ(경험담)
태국여행일정중,아쉬움이 많이 남는거같아요.
그래서,더욱더 태국이 그리워질껄요~ㅋㅋㅋ
안다만 2007.03.16 12:42  
  타이항공 승무원에게 '커-비야 씽'하니 고개를 갸웃덩거리다 '아! 커-비야 씽"하고 안주까지 함께 주었던 씽하...
여행기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시골길 2007.03.16 16:02  
  여행기의 마지막편은 항상 가슴이 찌릿해지는 스토리가 되게 마련이구..여기에서 읽으신 많은 분들이 매우..절실히 공감하는 감정이겠죠... 그래서 환자는 환자끼리, 중독자는 중독자끼리의 동질성이 생기나 봅니다.
mira 2007.03.18 01:27  
  태국온지 9년이나 된 아줌만인데요...너무 잼있게읽었네요...제가 모르는데두 많구... 언제 기회 되심 또 오세요..
남쪽두 북쪽두 아직 볼꺼 많이 남았네요....
저두 20 대엔 단짝친구와...미국으로 인도로 유럽으로 배낭여행 다니곤 했는데...지금은 두아이의엄마라.... 아 여행가고파라...(신랑이 한 오만밧 정도 보조 해줄테니 가라하네요....) 순전히 못간다는걸 알구 하는말있듯...
부럽습니다 ^^
GH 2007.03.23 23:21  
  잘 읽고갑니다...
피비 2007.04.02 02:52  
  뒤늦게 너무 잼나게 읽고 갑니다.
입안에 들어가는 하나하나가 선물이고 모험이다,
이 부분에서 완전 동감합니다!
까미75 2007.04.02 09:26  
  글 참 차분하게 쓰시네요.  잘 읽고  갑니다...
태국간다ㅋ 2007.04.03 00:31  
  전 노점에서 벌레 파는거 봤는데 용기가 나지않아서 못먹었네요.. 꼬사무이 어딘가 이름없는 시장이였는데.. 현지인들만 이용하는 곳 같았어요~ 종류 얼말 다양했었는데~ㅎㅎ 그래도 메기 통체로 구운거는 먹어봤네요~
pilie 2007.04.05 20:22  
  가기 전에 쭉 읽고, 갔다 와서 쭉 읽고..
신기한 이야기를 듣던 느낌에서, 그리운 옛 이야기를 듣는 느낌으로..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던 그 동네가 나날이 생각나는 저녁입니다.
다니엘킴 2007.04.22 14:30  
  글 잘 읽었습니다. 재미있게 노셨네요. 짧은시간이지만 한달있었던 저보다 더 충실히 노신듯.... 또 가세요.... 저도 또 갈거에요 ㅋㅋ
브라보타이 2007.09.01 13:52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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