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
동북아시아의 위대한 나라.
나는 단지 한국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해외에서 대접받는 것을 보면 상대적으로 누군가가 차별대우 받아야 한다는 것에 약간 슬프기도 하지만 참으로 다행으로 느낀다.
외국에 대한 동경과 한국을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에서 시작한 펜팔이...
결국은 조국 사랑으로 돌아가다니.
꼭 누군가를 복수하기위해 운동을 시작한 사람이 운동을 하고나니 기분이 좋아져 상대를 용서하는 것과 비슷한 무언가를 느낀다.
한국기업은 항상 유럽과 미국시장을 겨냥해와서 그런지 동남아시아에는 파워가 약하다는 느낌이 확연히 든다. 유럽이나 미국이야 다양한 문화와 사상이 건건드러지게 조화를 이루고 있지만 동남아시아는 그에비해 평균교육수준이 낮아 그들이 한국을 낮게 보지 않을까 걱정된다.
태국에 굴러다니는 차들은 대다수가 일제이다. 도요타(와 렉서스), 혼다. 하다보다 듯도못한 이스즈(Isuzu Motors) 차도 굴러다니는데, 일본 드라마에서도 못본 이스즈가 태국을 활보하는 것을 보니... 아마도 자국시장에서조차 외면받은 이스즈가 운전석이 똑같은 위치에 달린 태국에 떨이로 팔아념겼으니 싶다.
우리도 동남아시아시장을 하루빨리 공략해야 할텐데...
일본 모 기업처럼 도로를 정비해준다는 조건으로 차량판매독점권을 얻는 식으로라도 장사를 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이 날은
방콕의 용산이라 불리는 펀팁플라자(Pantip Plaza)에 갔다.
불법CD를 파는 호객꾼이 나에게 다가와 '에로위디오! 쎅씨위디오!'를 외친다.
하도 집요하길래, "마이밍언!(돈 없어!)"이라 말하자...
'동북아시아 부자나라에서 온 사람이 무슨 돈이 없냐'라는 식으로 어이없어하며 웃어 제낀다.
내가 이곳에 온 가장 큰 목적은 키보드를 구입하기 위한 것.
'네이버 붐'에서 우스개거리로 전락한 태국 키보드는 태국어를 배우는 나에게 정말 필요하고 값진 것이다.
여기저기 삼성마크과 LG가 붙어있었다. 마치 외국명품전자점에 필립스나 노키아처럼, 굉장히 멋지고 값나가게 보였다. 한국 가전제품 제작사 마크가 이렇게 멋지게 보인적도 처음이다.
그 전날, 나는 또 다른 태국인 현지인 친구를 만났다
내게 종이편지를 주고 받고 있는 태국인은 두 명. 그 중 한명은 매일 만나다시피한 어이(Aey).
또 다른 한명은 린(Lhin)이다. 외모가 지나치게 동북아시아인을 닮아, 현지인조차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그녀와 우리가 찻집에 들어갔을 때, 점원이 떠듬거리는 영어로 그녀에게 메뉴를 물었다. 외국인 상대로 한 호객행위도 꽤 많이 받아봤단다.
돈이 조금 모자란 사람들의 놀이터 MBK에서 그녀와 만나기로 했다.
(우리로 치면 테크노마트 같은 스타일의 쇼핑몰)
혼자 지나치게 상상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지만... 서민인 그녀는 이곳에 온 적이 많이 없었는 듯 싶다. 점심을 먹기로 했는데, 처음 시키는지 메뉴가 영 아니다.
내가 태국 요리에 매우 자주 들어가는 독한 야채인 '팍치'를 내 입으로 꽤나 사랑한다고 말 하지만 이렇게 독한 음식은... 이원복 교수의 '먼나라 이웃나라 - 프랑스편'에 나오는 <으윽! 죽기 아니면 살기다!>하는 식으로 음식을 먹는 장면이 퍽 떠올랐다.
'린'은 우리 앞에서는 웃지만 표정 전환때마다 암운이 드리워져버렸다.
나만 슬쩍 느낀 줄 알았는데, 미스터 문이 더 먼저 눈치챘었다고 한다.
그녀 집 주소에서 '땀본', '암퍼'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지방인 듯 하다.
방콕에 유학(?)와서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공부중이라는데...
그녀의 꿈은 한국에서 일하는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어를 정식으로 배우는...
일종, 인텔리들의 코리안 드림인 셈이다.
내가 동남아시아나 중국 등지에서 기술관리직으로 일하고 싶어하는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외모가 동북아시아인인 린은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어째 좀 씁쓸한게... 그녀 한국어보다 내 태국어가 더 뛰어나더라.(자랑아님;;)한국어가 원체 조사, 띄어쓰기, 법칙이 많아서 그런가?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나는 태국글자를 100% 못읽고 그녀는 한글을 100% 읽을 수 있다는 점. 세종대왕의 승리! 이날 4시 반. 어김없이 어이를 만났다. 좀 불쾌했다. 프롤레티라이 사상에 입각한 나만의 착각임이 분명하지만 불편한 심기는 어쩔수가 없었다.
그녀는 전에 말한대로 그의 친구를 데리고 왔다. 이름은 끼(Kee)인데 자기네들도 웃긴가보다.
'끼'를 보고 실망감이 밀려왔다. '옹박'영화에 나오는 태국 남성을 보고 싶었는데... 이 친구는 내 고등학교 앨범 뒤적이면 한 두명 나올 법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피부색 끼리끼리 논다는 느낌일까? 생체학적으로 비슷한 쪽을 선호하는 것은 어쩔수가 없으니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개인적으로 인종차별, 인종구분조차 싫어하는데, 이곳에는 은근히 피부색별로 하는 일이 구분지어져 있는 것 같아 보인다. 그나마 불행중 다행인 것은 피부색에 따라 계급이 제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재산에 따라 계급이 나뉜다는 것. 또 그 다행중 불행인 것은... 안그래도 부자가 부자되고 빈곤한자는 로또 아니고선 벗어날수 없는 형태를 갖고 있는 태국 사회에서 어두운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이 궂은일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쨋든 이 친구는 남자인지라 무언가 얘기가 통할 듯 싶었다. 내가 그에게 먼저 손을 흔들었다.
"สวัสดี"(써왓디!:안녕!)
"สวัสดีครับ"(싸왓디 캅!:안녕하세요!)
나는 한국외대 태국어과 이병도 교수의 테이프를 소장중이라, 인사할때 남자의 높임말이..
오직 '크랍'인줄 알았는데... 또, '크랍'을 빨리해서 '캅'으로 들린다고 알고 있었는데...
이 친구는 아주 대 놓고 '캅'한다. 로보캅(Robo-cop) 할때, '캅(Cop)'말이다.
그동안 '크랍'이 얼마나 발음하기 불편했는지... 이제부터 나도 말 할때 '캅'하기로 했다.
(아, 그러고보니 미스터문이 나를 '싸왓디캅'대신 '로보캅'으로 나를 얼마나 웃겼는지 모른다. 어이와 절교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인사할때 '로보캅'하라는 것이다. 기계음까지 내면서... 만약 진짜 그러면, Public officer인 그녀의 아버지가 총을 가져와 나를 쏴버릴 것이다.)
내가 살짝 고개를 숙이며 '끼'에게 최대한 빠르게 말했다.
"인디티다이루짝쿤!ยีนดีที่ได้รู้จักคุณ"(알게되서 기뻐!)
내가 태국어를 거의 못하는 줄 았는지, '끼'라는 친구가 놀랐다. 어이와 끼는 웃어 자지러졌다.
나는 그들말로 인사를 했는데, 막상 그들은 일본어는 커녕 한국어도 모르는 것이다.
우선 무언가를 마시며 이야기하기로 했다.
이 녀석들이 우리를 불러놓고 무엇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태국어로 마구 말하는 것이다.
나도 바로 보복에 들어갔다. 미스터문에게 말했다.
"야! 참 신기하다. 저런 것도 말이라니... 너, 알아들을 수 있겠어? 야, 너도 빨리 아무거나 말해봐.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대한민국 만세..."
그들이 바로 우리를 보고 웃으며 미안하다 했다. 서로 말할때에는 불편하더라도 영어로 말해주어야 우리들이 한마디라도 알아듣는데 말야...
'끼'라는 친구는 남자라 무언가 통할법 했다. 바로 남자들의 로망, 축구!
상대방을 짓눌러 이기는 게임에 관심이 전혀 없다시피한 어이는 빠지고 바로 축구에 대해 물었다.
끼가 물었다.
"어느 팀 가장 좋아해?" 그의 질문에 나는 바로 답했다.
"끄룽타이 타나칸!"
이 팀은 태국 팀이다.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팀이 나올줄 예상했던 그는 크게 놀라 물었다.
"우와! 태국 축구 봤어?"
"눈여겨 보진 않았지만 경기하는 걸 본 적은 있어."
예전 전북과 BEC테로사사나인가 뭔가 하는 팀과 AFC챔피언스리그 무대에서 경기한 것을 본 적이 있다.
나는 그에게 슬쩍 물었다.
"어때? 이제 태국말만 제대로 할줄 알면 외국인인줄 모르겠지?"
나의 문화 흡수력에 그가 항복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전생에 네덜란드인이었나... 왜이리 동남아가 땡기지? 또, 타문화에 대한 수용속도가 엄청나다. 아마도 가리지않고 아무거나 먹어대는 것의 연장선이 아닐까도 싶다.
끼는 나에게 '바둑'에 대해 물었다. 유소년 교육시스템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지만, 현 실력 만큼은 한국이 세계적인 것이 사실이다. 안타까이도 나는 바둑에 미친 친구만 두었을 뿐, 나는 바둑에 아직 열광하지 못했으므로 상세한 이야기가 못이루어졌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무조건 영국인을 만나면 요새 박지성의 플레이가 어떻냐고 묻는 것과 같은 것 같다. 영국이 확실히 축구로 인해 움직이고 있는 나라이긴 하지만 또, 영국인이라고 해서 모두 축구에 미쳐있는 것은 아닐테니 말이다.
다음에는 바둑을 좀 더 배워서 이 친구를 한번 눌러주고 싶다는 생각이 퍽 들었다.
어이는 오늘은 어째 시간이 나는지, 저녁을 먹자고 한다. 태국식 국수라나...
내가 혹시 '바미'라는 것이냐 물었더니 그건 또 아니란다.
이들과 함게 국수집에 갔다.
내 비뚤어진 시각때문인지... 이 날은 귀족과 서민을 구분짓는 날이었다.
어이는 화장실 갈 필요도 없다. 물 없이 씻을 수 있는 알콜젤이 있기 때문이다.
화장실을 자주가는 미스터문이 화장실을 찾은 사이 우리는 알콜젤로 손을 소독했다.
(태국 식당은 주문하면 주문된 음식을 바로 바로 테이블에 올려놓는다. 누가 주문한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주문한 음식을 우리 테이블에 가져와 누구 앞에든 놓는다. 때문에 바꿔 먹은 적이 몇번 있다.)
우리는 신나게 먹고 있는데, 아직도 어이의 앞에는 아무것도 없다. 주문을 다시 하고나서, 내가 후식을 향해 덤비기 시작했을때야, 그녀의 음식이 왔다.
태국은 불교 국가인데, 음식을 잘들도 남긴다.
사시사철 농사지을 수 있는 나라여서 그런지, 음식이 하찮게 여겨진다. 값이 싸다는 이유도 있다. 이 남은 음식들은 나중에 안 것이지만, 길거리 개들의 밥이 된다. 이것을 또 일종의 공양으로 본다는데... 나름대로 말이 되는 것 같다.
식당에서 계산하고 나면 작은 쟁반에 잔돈과 영수증을 준다. 나 같은 추악한 외국인들은 싹다 긁어가지만 어이 같은 현지 귀족들은 계급이 높을 수록 잔돈을 많이 남기고 간다. 팁이다.
태국은 철저한 계급사회이다. 불공평해 보이지만 그것은 오히려 속시원하고 편해보인다.
팁을 많이 남기고 많이 줄 수록 귀족인 것이 그들의 문화이기에, 베품이 많다.
그래서 그런지 태국에는 여기저기 모금함이 많다. 하지만 그것이 근본적인 빈곤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
작은 잔돈 쟁반에서 동전을 많이 남기는 어이의 모습이 왜그리 밉던지...
서로 가장 좋아하고 친한 외국인 친구라지만... 어쨋든 미웠다.
돈 많은 자가 밉다는 단순한 프롤레타리아성 감상주의 심리 때문일 것이다.
반면 미스터 문은 유대스러운 사상이 깃들어가, 가난은 죄! 돈 많은 자는 본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그의 뇌를 지배하고 있다. 미스터 문의 머리가 부럽다.
낮에 본 린의 모습이 겹쳐지면서 설명할 수 없는 슬픔이 내 속에 밀려들어왔다.
배낭여행와서 쓸데없는 동정이라니...
해가지고나서 태국의 대학로인 싸얌스퀘어를 거닐다 약국을 발견했다.
나는 어이에게 혹시 이곳에 알콜젤이 있지 않을까 물었더니, 그녀는 들어가더니 그야말로 '쏼라쏼라'물어서 바로 찾아내었다. 여행중 필요하지 않을까 나와 미스터문은 하나씩 집어 계산했다.
이제 슬슬 헤어질 시간이다.
"너 때문에 여행 온 이래 가장 늦게까지 밖에 있게되는구나."
무슨 바람인지, 이제 능청스런 농담도 곧잘 나온다.
"이봐, 끼. 넌 몇시까지 들어가야하지?"
"난 크게 상관없어."
"밤새자!"
왠지 우울해져서 자꾸 쓸데없는 농담이 나왔다.
그렇게... 그날. 다 같이웃으며 그냥 헤어졌다.
어이는 에스컬레이터가 좋다고 한다. 올라가거나 내려가면서 자신과 남의 키차이를 줄여준다나.
하지만... 결국 도착하면 원래대로 돌아온다.
이 날은 날아다니는 날벌레에게조차 뭔가 의미를 찾고 싶은 날이었다.
"린의 표정 봤어?", "린은 이제 안보는 거야? 뭐야, 린을 먼저 봤어야지."
호텔에 돌아와서 미스터문의 대사는 계속되었다. 갑자기 이 친구 왜이래...
잘은 모르겠지만... 그날 밤은... 아마도... 내 몸이... 맥주가 쓴 것이... 소주를 그리워했나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