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왕국여행기]零.여행길에 오르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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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왕국여행기]零.여행길에 오르기까지

Minsson 4 2256

내가 태어나서 최초로 태국 문자를 본 것은 고교시절. HP프린터 잉크 케이스를 통해서였다.

당시는 그저 크메르문자려니 뭉ㅤㄸㅡㅇ그려 판단하고 지나갔다.

RosettaStone이라는 외국어 프로그램 데모버전을 통하여 태국언어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 그 난해함에 놀라, 무슨 일이 있어도 태국어를 공부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2006년 봄. 그 역사가 바뀐다.

"올해의 자신과 대화가 안될 내년의 자신을 만들자!"

나의 신조이다. 열심히 노력하여 자신의 수준을 향상시켜 작년의 자신이 어리석어 대화가 안 될 정도에 이르다보면 어느새 많이 발전한 자신을 보리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2006년. 올해는 외국인 친구를 반드시 만들겠다고 다짐하였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ICQ메신저.

처음 만난 사람은 독일인이었다.

군대 가기 전에 해외 배낭여행을 꿈꾸던 나는 월드컵을 기회삼아 독일로 가기로 하였다.

내가 만난 친구는 '포남(Poonam)'이라는 이름을 가진 인도계 독일 여자아이였다. 한국 가수인 '신화'. 특히 '전진'의 열렬한 팬이었던 그녀는 나이는 나보다 한 살 어렸고, 인도계 아버지와 독일계 계모와 계모의 아들 남동생과 함께 살고 있다고 하였다. 계모는 항상 두 남매를 괴롭혔고 급기야 포남은 나에게 자살유서를 남겼다.

그것에 충격을 먹은 나는 사흘동안 밥을 제대로 먹지 못했다. 나는 그녀를 살게 해달라고 신에게 계속 기도했다.

사흘이 지난 날. 나는 혹시나 싶어 그날도 어김없이 메신저를 켰다. 그곳에는 포남이 있는 것이 아닌가!

내가 놀라 말하길... "살아있었구나!"

"아직까지는..." 그녀의 대답이었다.

왜 죽으려 그랬는지를 따져묻자 그녀는 한마디를 남기고 잦았던 접속을 그만둔다.

"다시는 바보 같은 짓 하지 않도록 약속할게."

지금은 가끔 메신저로 연락을 주고 받는 사이이다.

메신저로나마 장미꽃 이모티콘을 나에게 발렌타인데이때 보내주었는데...

나는 태어나서 이전까지 발렌타인데이때 그 누구에게조차 그 무엇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신이 내린 행운이 찾아왔다.

또다른 누군가가 ICQ를 통하여 내개 대화를 요청한 것이다.

그녀가 바로 나를 태국으로 이끈 '어이(Aey/เอ่ย)'였다. 본명은 '팔레카 시완타나(Panleka Srivardhana/พรรฌเลขา ศรีวรระนะ)'로, Public Officer로 일하고 있는 '시완타나'씨 엄한 집안 삼남매중 막내딸이었다.

ICQ는 변태들만 득실거린다는 소문을 친구로부터 들은 나는 예전처럼 동성연애자에 의해 놀림을 받는 것이 아닌가 싶었지만... 대화를 하면 할 수록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녀의 첫 마디는 꽤나 따끔했다.

"외국인을 애인으로 두는 것은 정말 이해 못하겠어. 왜 그런다고 생각해?"

그녀의 질문에 나는 철렁했다. 그 무엇도 기대하지 않았는데, 왜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 나도 모르겠다. 아마 국제적인 가정을 꾸리고 싶어 하는 나를 비난 하는 것 같아서 인가도 싶다.

"외국문화와 언어를 배울 수 있는 잇점이 있지 않을까..."

그럴싸하게 얼버무렸다.

메신저를 통해 그녀와 나는 매일 밤마다 대화하게 되었다.

장시간의 대화를 통하여 그녀가 자라온 환경과 성격, 그리고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시 여기는 외모를 알게 되었다.

"사진이 좀 웃길거야."

자신을 새장 속의 새라고 일컫는 이 친구의 외모는 전형적인 동남아시아형의 귀여운 모습이었다.

어쩌면 그 사진이 나를 태국어 배우도록 이끌었는지도 모르겠다.

몇몇 사람들은 내 눈이 낮다니 뭐니 하는데... 나는 무엇보다 이미지를 본다. 깨끗한 이미지.

그녀는 파타야(방콕에서 가까운 해변도시)에 콘서트를 보러 갈 수 없는 것에 대해 말한 적이 있었다.

"왜 문화 행사는 주로 파타야에서 열리는 걸까?"

나는 얼른 관광가이드북 태국편을 펼쳐 파타야에 대한 검색을 하였다. 그곳에는 '눙눗'이라 불리는 곳이 유명했다. 나는 농담스레 대답했다.

"아마도 많은 가수들이 눙눗의 코끼리에게 관심이 있나보지."

그녀는 웃으며 놀람을 표했다.

"와! 눙눗을 알아?"

이 이야기 저 이야기 주고 받으며 그녀가 결정적인 한마디를 했다.

"우리는 뭔가 통하는 것이 있는 것 같아."

그 뒤에 정확히 16초 뒤. 더욱더 결정적인 한마디를 했다.

"너무 깊게 생각 하지마..!!"

나는 한참을 웃었다.

주소교환을 하고 그녀는 나에게 태국어 공부에 도움될만한 자필 자료를 보내주었다.

그녀의 태국어 글자가 너무 작아 이미 배낭여행을 마친 지금도 읽기 쉽진 않지만 꼬물꼬물한 글씨가 어쨋든 손으로 쓸수 있다는 것을 그제서야 믿게 되었다.

또다른 태국인을 알게 되었다.

그녀의 이름은 '린(Lhin/หลีน)'. 외모가 지나칠 정도로 일본인을 닮아 애칭이 '린코'라 불린다. 이 친구는 한국어를 조금씩 공부하고 있다. 일종의 인텔리계의 코리안 드림인가 싶다. 주로 일본어 이름인 '린코'는 한국식으로 읽으면 '윤자'가 되는데, 나름대로 그럴싸 하다.

나중에 알게 된 거지만 본명은 '꾼까닛 깡완쩌쑥(กุลกริษฐ กะงวานเจิคสุบ)'. 전혀 종잡을 수 없는 것이 태국인의 이름인 것 같다.

몇 번 E-mail을 주고 받다 한번 종이편지를 주고 받았다. 동북아시아 문화에 대한 애착이 굉장해 보였다.

이 친구는 우리 여행날짜와 시험날짜가 약간 겹쳐 이틀 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쓰나미 피해로 유명한 아름다운 휴양지, 푸껫에 사는 한 소녀와도 메신저가 닿았다.

그녀는 현재 방콕으로 대학을 다니고 있는데, 외국인과의 만남에 큰 관심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저 좋은 여행 되라는 말만 남기고 사라졌다.

태국으로부터의 소포

정기적으로 '씨리낏'에서는 서적회를 연다고 한다.

어이로부터 소포가 왔다. 왓 프라깨우(에메랄드 사원)에 대한 태국어-영어 서적이었다.

태국어 공부에 도움이 될거라고 하였다.

돈을 모으자

아르바이트를 앞두고 나는 메신저에 접속하여 어이를 만났다.

"아르바이트 자리를 두곳 알아두었어. 하나는 편의점이고 하나는 대학 앞 바(Bar)야. 나는 바에서 일할거야. 외국인 교수를 많이 볼 수 있거든."

어이가 대답하길 "나는 편의점에서 일하길 추천해. 술집은 위험해."

확실히 태국은 위험할테지만 한국은 다르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하지만 이야기가 쓸데없이 길어질까 싶어 내일부터 편의점에서 일해야겠다하고 채팅을 마쳤다.

그 주 쯤. 어이는 가족들과 함께 중국 여행을 다녀온다고 하였다. 번화가 골목은 위험하고 무섭다는 동생의 말을 빌어 몇가지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제 한 주 동안은 못볼 성 싶었다.

편의점에서 일하다 내부적 요인으로 인하여 위기가 닥쳐 나름대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한 통의 편지가 왔다. 어이로부터의 편지. 안에는 선물도 들어있었다. 내가 초록색을 좋아한다는 것을 기억한 모양인가. 작은 초록색 핸드폰 장식물이었다. Safety를 상징한다는 그녀의 선물은 나는 차마 핸드폰에 착용시킬 수가 없었다. 하지만 서랍에 두기에는 너무 아까워 몸에 지니고 다녔다. 그런데, 그날. 나는 그 선물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화가 조금 났다.

일이 바빠서였는지. 한동안 메신저 접속을 못했다. 우편함에 코끼리 우표가 붙어져 있는 우편물을 발견했다. 왓타나(어이가 사는 동네)로부터의 편지였다.

I MISS YOU가 주제였다.

나는 당장 메신저에 접속하여 소홀했음을 사과했다. 그리고 편지하였다.

하지만 약속과 달리 나는 또 다시 한동안 그녀와 온라인에서의 만남을 갖지 못했다.

신장결석증이 도진 것이다.

그 돌의 작은 조각은 아직도 내 몸속에 남아 태국을 다녀왔다.

메신저의 교체

ICQ메신저에서 자주 보지 못하자 MSN으로 접속하였다. 예전 주소교환과 동시에 MSN주소도 교환했기에 그녀가 등록되어있었다. 그녀의 온라인상태를 확인하고 대화를 시작하였다.

그녀의 MSN사진은 예전 보내준 사진과 사뭇 달랐다. 조명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이나 일본에 연예인으로 와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사진이었다. 놀랐다.

"태국에 오면 만나자." 그녀의 말에 나는 좋다고 하였다.

"하지만 9월은 학교시험때문에 힘들 것 같아."

"걱정마. 피해서 갈게. 너의 집에 방문할 수 있을까? 네 오빠와 일어로 대화해보고 싶어."

일문학을 전공했다는 그녀의 오빠와 짧은 일어로 대화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어보다는 뭐랄까... 개인적으로 영어보다 일어능력이 떨어지지만 뉘앙스 표현이 참으로 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때문일까...

"언니와 오빠는 나가있게 될거야. 아빠는 북부에 나가계실거고. 엄마와 나 단 둘 뿐이야. 태국에서는 이런 상황에는 남자를 집에 들일 수가 없어. 미안해."

미안하다니. 당치도 않다.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그녀에게 주지시키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추석이 되었다. 이제 한국은 가을이다.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남자친구 있어?" / "아니, 아직. 왜?"

"대부분의 여자들은 봄에 외로움을 느끼는 반면, 남자들은 가을에 외로움을 느끼지. 좋은 기회야."

그녀가 재미있는 대답했다.

"태국에는 가을이 없어..."

오랜시간동안 대화하자 이야기 할 거리가 거의 바닥났다. 하도 할 말이 없어서 상대의 대답으로 1000문 1000답을 채우기로 하였다.

"혈액형은?" / "맞춰봐"

"너를 사랑하는 사람, 네가 사랑하는 사람 중에 누굴 선택할거야?"

"어려워. 나는 그 누구도 상처 주고 싶지 않아."

"태국음악좀 추천해줘. 가면서 듣게." / "특별히 지향하는 음악은 없어. 그냥 가리지 않고 들어."

지루하지만 나름대로 의미있는 시간. 그렇게 흘렀고, 나는 태국 배낭여행을 가내에 선포했다.

때마침 쿠데타가 일어나 집안의 반대도 약간 따랐지만, 초등학교 2학년때부터 친구로 지내온 미스터 문(ICQ에 변태가 많다는 것을 알려준 친구가 바로 이 친구.)이 동행한다는 조건하에 여행을 수락받았고, 추석 이후로 날을 잡고 미리 여권과 해외여행허가서를 발급받아두었다.

호텔과 항공권을 예약하였다.

날이 막상 다가오자...

생각보다 태국어가 서툴기 그지없었고, 준비된 옷가지와 의약품은 빈약하기 그지없었다.

얼떨결에 영어학원에 나가 남아공 출신 선생님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대방역에 가서 공군지원서를 내고, 환전도 하고...

당일, 일을 마치고 정신없이 공항으로 달렸다...

무언가 두고 온 것이 필경 있으련도 하건만 이미 여행을 끝마친 지금 봐도 빠뜨린 것은 없었다.

<그녀가 항상 말하는 거지만, 그녀는 사진발이 안받는단다. 나도 때문에 처음 오프에서 만났을때 그녀를 바로 앞에두고 한참을 찾았다.>

4 Comments
퐁추롯 2007.04.02 13:02  
  팔레카 시완타나(Panleka Srivardhana/พรรฌเลขา ศรีวรระนะ) 가 아니라 판레카 씨완라나 같은데여..
'꾼까닛 깡완쩌쑥(กุลกริษฐ กะงวานเจิคสุบ)은 꾼까릿 까응완쩍쑵 같구여...
크리미 2007.04.02 16:26  
  잘읽고 갑니다~~~~슝~~~~^^
덧니공주 2007.04.02 22:39  
  ICQ가 태국여행의 계기군요~공부두하시고~
존경스럽습니다~한꺼번에 올라온 여행기~음 최고네요
nollon 2007.04.06 00:44  
  재미있네요 ,,,글 쓰시는 재주가 출중하시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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