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왕국여행기]五.강서로의 진출
방콕시티는 짜오프라야 강을 젖줄로 두고 있다.
때문에 한강에는 '괴물'이 나오고 짜오프라야강에는 악당들이 숨겨둔 '옹박'이 나온다.
전철로 연결되어 있지 않는 서쪽에는 우리가 그토록 가고 싶어하는 '씨리랏 병원'이 존재한다. 환자로 가는 것이 아니라 여행자로서 의학박물관 견학을 하고 싶은 것이다.
BTS의 남쪽 종착역인 싸판딱씬(Saphan Taksin)에 내려 싸톤(Sathon) 선착장에서 수상버스(르어두언)를 타고 강을 거슬러 건너 올라가 톤부리(Thonburi) 선착장에 도착하여 씨리랏 병원(Hospital Siriraj)으로 가는 것이 오늘의 견학코스이다.
약간의 두려움도 갖고 있었지만 이미 미스터 문에게 나의 능력이면 얼마든지 갈 수 있다고 장담했던 터라 물러설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BTS역까지는 철도이므로 어려움 없이 도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수상버스는 그야말로 태어난 이래, 지구상에서 처음타보는 것이었다.
싸판딱신 역을 나가자 선착장에 안내소가 있었다. 백인가족들이 많이 보였다. 백인가족의 존재는 태국 배낭여행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안전한 곳임을 뜻하는 것이다.
"라오 떵깐 빠이 씨리랏 크랍(우리는 씨리랏에 가길 원합니다.)"
안내원들은 떠듬거리는 내 태국어를 웃으며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들의 옆방향을 가리키며 이 쪽에 오는 배를 탄다고 하였다. 헌데 나는 여기서 실수를 하고 말았다.
"르어난 마이 크랍?(เรื่อนั่นไมครับ 그 배입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지금 옆 선착장에 정박해있는 '이 배'냐고 묻는 것인데... GIGO원칙에 의해 잘못된 질문은 잘못된 답변을 불러왔다.
"차이 카!(ใซ่ต่ะ 그렇습니다.)"
안내원의 대답에 우리는 미친듯이 옆 선착장을 향해 달렸다. 배에 올라 자리에 앉았지만 이상한 기운을 느꼈다. 외국인이 단 한명도 없는 배. 망설이다 뒤에 앉은 현지인에게 물었다.
"커톳 크랍. 르어니 빠이 씨리랏 마이 크랍?(실례합니다. 이 배가 씨리랏 갑니까?)"
씨리랏을 모르는지, 현지인은 대답을 망설였다. 나는 씨리랏에 가까운 톤부리역을 묻기로 했다.
"빠이 톤부리 스테이션 마이 크랍? 톤부리 크랍!(톤부리 스테이션 갑니까? 톤부리!)"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그걸 본 순간 재빨리 배에서 내렸다. 알고보니 이 배는 강을 건너는 배였다.
옆에 있는 또 다른 선착장에는 이미 강을 거슬러 오르는 배가 떠나고 있었다. 늦은 것이다.
다음 배가 오려면 20분 정도를 기다려야 했다. 이쪽 선착장, 저쪽 선착장 뛰고 줄 서고... 잘못된 의사소통으로 몸이 좀 성가시긴 했지만 경험이 되어 좋았다.
정신차리고 가까이서 본 강물은 그야말로 열대똥물이었다. 온갖 열대나무 잎들이 떠밀려 내려오고 있었고, 빈부격차에 따라 그 물은 하수구가 되기도 하고 물놀이의 도구가 되기도 했던 모양이다.
20분이 지나 배에 올랐고 멀리 보이는 왕궁과 인근 수상마을들을 지나 배는 씨리랏으로 향했다.
배의 엔진소리가 참 컸다. 그 사이로 들려오는 선원들의 휘슬 소리(배와 선착장의 거리와 방향을 알리기 위한 휘슬)가 인상적이었다.
이때, 어이에게 전화가 왔다. 안 그래도 잘 못듣는 나는 배의 엔진 소리 때문에 대화하기가 힘들었다. 오후4시 반. 싸얌역에서 만나자는 요점을 점검하고 바로 끊었다.
가는길 내내 번개가 쳤다. 하지만 익숙한 현지인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을 계속 해나갔다.
태국 거리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모습은 허름한 집조차도 옷을 아주 깨끗하게 빨아 널어 놓는 것이었다. 옷을 깨끗이 빨아 널어놓는 것은 다음 입을 옷을 준비한다는 것이고 그것은 곧 삶의 의욕에 대한 징표로... 나는 그렇게 해석했다.
씨리랏 선착장에 내린 우리는 굉장히 막막하였다.
우리의 제2 모국어인 영어가 도무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제 모든 것을 태국어로만 하여야 한다. Museum도 읽지 못하는 사람과 대화하기 위해서는 '피피타판(พิพิธภัณ)'이라는 박물관을 뜻하는 태국어를 직접 읽고 물어야 한다.
씨리랏 병원은 구름 탓인지 우중충하고 복잡해보였다. 1층은 우리로 치면 대기실이었는데, 마치 시장 같았다. 태국 병원의 병실 시설은 세계적으로 꿀리지 않는다고 들었는데...(정확히 말하자면 한국과 비슷한 수준..)
1층은 그러려니 하고 여러채의 건물을 헤짚고 다녔다.
몇바퀴 돌아도 피피타판(박물관)은 나오지 않고 외국인 티를 내는 굴욕을 무릅쓰고 이사람 저사람에게 물어 겨우 찾아갔다.
(굴욕적이라는 것. 외국인 티를 내지 않으려고 6개월동안 태국어를 공부했는데... 외국인이라는 것이 창피한 것이 아니라 6개월동안 공부했음에도 불구하고 떠듬거리는 것이 굴욕적이라는 것이다.)
어느 건물 2층에 오르는 순간 짠!!
'씨리랏 의학 박물관 <พิพภัณฑ์การแพทย์ศิริราซ피피타판 깐팻 씨리랏>'이라는 태국어 간판이 왜그리도 반가운지...!!
입장료를 지불하고 작은 질문서를 작성하였다. 내가 멈칫했다. 무엇을 쓰라는 거지?
"마 짝 쁘라텟아라이 마이 크랍?(어느 나라로부터 왔는가... 입니까?)"
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 쁘라텟 이뿐 @#$@ 쁘라텟 까올리(어쩌고 일본 저쩌고 한국...)"
아마 한국인지 일본인지 묻는 것 같은데... 우리는 확실히 한국인이라는 것을 주지 시키고 입장했다.
식욕이 떨어질 정도로 끔찍한 것들을 전시해놓는 다는 씨리랏 의학박물관...
인체 해부 실물들은 크게 끔찍해 보이지 않았다. 참 신기해보였다.
헌데, 다음 파트인 사고로 죽은 사람들의 사진은 참으로 끔찍했다.
그래도 내 식욕을 떨어뜨릴 수는 없었다.
다음 파트로 들어가보니, 왠 한자가 보였다. 진파(津波)?
'파(波)'는 일본어로 '나미'로 뜻읽기 하던데... 일본식으로 읽으면... 쓰나미.
쓰나미에 대한 것들이었다.
죽어간 사람들을 보자 얼마전 "쓰나미는 신이 내린 벌"이라는 망언을 한 호주산 주교와 조선산 목사가 떠올랐다. 와서 시체들을 보란 말이다. 물을 먹어 불은 몸. 굳이 이것을 보지 않더라도 시체를 넣는 봉투에 담겨져 여기저기 널부러져있는 이 모습을 보고도 그런 말이 쉽게 나온다면...
그들은 그들이 그토록 존경코자 하는 신으로부터 신성시여기는 예언서에 따라 불결히여기는 자들과 함께 끔찍히 여기는 곳으로 끌려가게 될 것이다. 공금횡령한 사람이 지옥 밖에 더 가겠나 싶다.
이상하게도 이 박물관은 현지인에게 인기가 좋았다. 연인으로 보이는 남녀와 어린아이들과 엄마가 손잡고 와서 이런 자극적인 박물관을 견학한다는 것은... 글쎄, 한국사람으로서 이해하기 쉽진 않았다.
박물관을 돌고나니 점심시간이 되었다. 아침을 뷔페식으로 항상 폭식하기에 저녁이 되어서야 배가 고파, 바로 어이와의 약속장소인 싸얌으로 향했다.
돌아가는 배를 잘못타, 방콕시를 벗어나... 한국으로 치자면 양평부근 까지 찍고 왔다. 그곳에는 정말 그야말로 현지색이 짙은 '현지인'들이 살고 있었다. 나보다 한 두살 어려보이는 애들이 배를 타기위해 몰려왔다. 우리로 치면 한창 골아파할 여고생들인데, 그들은 이곳에서 무엇을 생각하며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에 대해 생각할때 쯤, 반대방향으로 가는 배가 도착했다.
더운 여름. 학교에서 조는 느낌으로 배 안에서 잠을 청했다. 날씨 탓인지, 피로 탓인지... 오는 길 중간중간 깨어 사진을 찍어가면서도 땀에 범벅되어 세상몰라라 잤다.
싸톤 선착장에 도착하자 마음이 좀 놓였다. BTS를 타고 싸얌으로 향했다.
싸얌에서 가장 눈에 잘 띄는 싸얌 패러곤(Siam Paragon) 1층에는 분수가 있다.
4시가 조금 넘어 그곳에 도착한 나는 어이에게 나의 위치를 알려주기 위해 핸드폰을 열었다.
핸드폰을 여는 순간, 이전에 전화가 세번 정도 와있었다는 흔적을 발견했다. 졸다가, 걷다가, 배의 엔진소리때문에 진동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태국 사람들, 겉은 안그래도 속은 무섭다던데... 혹시 전화 받지 않은 것으로 내게 악감정 품지 않았을까 살짝 걱정되었다.
'나는 싸얌 패러곤 가장 큰 문 앞 분수에 있을게'
좀 있자 어이가 나타났다. 알고보니 몇분 전 부터 있었댄다. 유니폼을 입으니 살짝 몰라봤다.
이곳에는 대학생도 유니폼이 있단다. 색상은 속칭 '유관순 컬러'인데... 흰색 셔츠와 검정색 치마이다. 의외로 배색이 좋다.
난 식사라도 할 줄 알았는데, 집에 5시 53분까지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가까운 주스 가게에 들어가서 과일주스라도 마시며 이야기 하기로 했다.
그녀 손에는 신문이 들려 있었다. 꼬물꼬물 징그러운 글씨. 태국어를 6개월동안 공부해갔지만 태국 글자는 아직도 눈에 익질 않는다. 또 꾸밈체가 얼마나 많은지 현지인도 헷갈린댄다.
이렇게 예쁜 소녀가 저런 글씨를 보고 쓰고 한다고 생각하니 악간 역겨운 느낌도 들었다.
가게 앞에 들어서자 그녀가 앉으라고 하인 인양 두 손을 내밀었다. 미스터 문과 함께 밤에 이 얘기 저 얘기 하면서 함께 느낀 거지만, 그 자세는 정말이지, 지나치게 부담스런 자세이다.
음료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다. 그녀가 신문 뭉터기 사이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파쳇나(손수건)'와 데모음반이었다. 뭔가 싶었는데... 선물로 가져온 것이었다.
이렇게 고마울수가!
상자에 든 아홉가지 색색의 수제 손수건. 너무 예뻐서 아직까지 풀지도 못하고 있고...
앞으로도 풀어서 사용조차 못할 것 같다.
데모 음반은, 내가 태국에 와서 태국 음악을 들으면 좋을 것 같으니 곡을 추천해보라고 흘려 말한 것을 기억해 하나를 가져왔다며 주었다.
CDPlayer를 가져왔는데, 이날은 태국 음악을 들으며 잠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너무 고마운나머지 내 표정이 굳어졌다...
한참 대화하고 있는데... 어이가 떨고 있었다. 에어콘이 강한 것 같아보이던데... 한여름에 떨다니..
20년 넘게 야자수의 나라에서 살았으니 그렇게 느낄만도 하겠다만...
귀족집안에서 자라 그런가 싶은 얄미운 구석도 있었다.
"방콕에서 추위에 떠는 사람만큼 행복한 사람은 없을거야!!"
나름대로 쌉쌀한 농담이라고 뱉은 이 말을 그녀는 웃으며 받았다.
"내일 같은 장소에서 보자."
그렇게 아쏙 역에서 헤어지고 우리는 저녁먹으러 싼씨바(Zanzibar) 식당으로 향했다.
싸게 먹으려는데, 세트메뉴 가능한 시간대가 아닌지라 양적고 비싼 음식을 시킬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시킨 닭꼬치 요리는 좋았는데... 문제는 미스터 문이 주문한 카우팟 이딸리아(이탈리아식 볶음밥). 무슨 이탈리아 사람들이 이런 걸 먹는다고... 같이 맛보고 매워 죽는 줄 알았다.
지나가던 점원들도 우리를 보며 웃을정도...
너무 매워서 시키지 않아도 될 후식을 시켜 영수증은 더욱 길어졌다.
대충먹고 쑤쿰윗에서 우리가 전에 먹었던 팟타이로 남은 빈배를 채우려 했지만 가는 사이 배가 불렀고 바로 호텔로 향했다.
※
너무 향락적인 부분을 세부 묘사해서 오해가 있을 듯 싶은데...
태국은 맥주가 비싸지 않는데다...
본인에게 비뇨기과 의사선생님께서 특별히 지시하시길... "너는 많이 마셔라..."
이것은 본인에게 있어 건강유지를 위한 불가피한 방법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