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비의 밤하늘에 열아홉의 마침표를 -2-
하늘 아래서 보는 방콕의 새벽
새벽 3시쯤 기장의 방송이 나오고, 나는 감고 있던 눈을 부비며 창 밖을 보았다. 길게 늘어진 가로등이 길을 밝히고 있고, 간간이 차도 달리고 있었다. 비행기에서 내리고, 입국수속을 밟고, 따뜻한 태국의 새벽 공기를 마시며 카오산으로 가는 공항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저기서 어떤 아저씨가 뛰어오시더니 손바닥에 다가 “5:40”이라고 적으신다. ‘아, 아직 4시 30분이니까 1시간정도 기다리면 되겠네.’라고 생각했다. 처음 만난 태국인이라 그런지 나는 더욱 흥분해서 몸짓발짓을 동원해 이 공항경비아저씨와 대화하려고 노력했다.
“어디서 왔어?”
“까올리!(한국)”
“아! 대장금! 태국에서 대장금 인기 많아!”
태국도 한류의 바람을 피해가지 못 하는가보다.
“안 추워?”
한국에서 올 때 입고 온 가디건을 벗자 아저씨는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아뇨, 지금 한국은 눈와요. 사진 볼래요?”
평생 한번도 눈을 본 적이 없는 아저씨는 신기한 듯 내 사진기의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환하게 웃으신다. 겨울이 이렇게 따뜻하다니, 그것도 새벽인데 말이다. 그렇게 1시간을 기다려 5시 40분이 되어도 5시 50분이 되어도 온다던 카오산행 버스는 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아무렇지도 않지만 그 때는 정말 ‘공항버스가 이렇게 약속을 안 지키다니!’라며 짜증이 슬슬 났다. 결국 6시가 넘어 내가 기다리던 버스가 공항에 도착했다. 아저씨와 작별인사를 하고, 버스에 올라탔다. 그런데 이제 버스 에어컨이 말썽이다. 작동을 안 해서? 천만에! 너무 작동이 잘 돼서 얼어죽을 것 같은 것이다. 에어컨은 최대로 틀어놓고 사람들은 다들 두터운 옷으로 몸을 최대한 바람으로부터 막아내고 있었다. 차라리 에어컨 바람을 좀 줄이면 얼마나 좋아? 말은 통하지 않고, 시험 때문에 전 날을 꼬박 새운 탓에 잠이 급선무라 그저 나는 덜덜 떨면서 버스 안에서 잠만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