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여행 생초보를 위한] 35세 독거노인 방콕 표류기 (18)
전편에서 왕궁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짧았나요? ^^ 가장 태국적인 매력이 묻어나는 중요한 유적인데 말입니다. 그런데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저는 세상에서 가장 필 안오는 글이 ‘자동차 시승기’ 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글로 옮길 수 없는 걸 글로 옮기려고 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시동이 걸리는 순간 차체를 타고 엔진의 묵직한 떨림이 전해왔다.’, ‘브레이크가 약간 밀리는 느낌이다.’, ‘코너링 시에서는 약간 핸들이 가볍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런 정보도 의미있고 필요하고 유용하죠. 전혀 의미가 없다는건 아닙니다. 하지만 그런 글을 통해서 그 차가 가진 본질을 누군가에게 정확히 전달하는건 아마도 분명히 불가능한 일임에 틀림없을 겁니다. 그 차를 잠시라도 직접 몰아본 사람만이 그 차의 느낌을 자기 안에 담을 수 있는 것이죠. 자칫 잘못하면 읽는 분들께 오히려 그 차에 대한 오해와 선입견만 주는 일이 될지도 모릅니다.
저도 나름 그곳에서 보고 느낀 것들이 있기는 합니다만, 제 글 솜씨로는 제가 보고 느낀 것들을 자동차 시승기들만큼도 전해드리기가 어렵네요. 또한 그렇게 제가 느낀 순수한 저만의 주관을 세세하게 전달드리는 것이 과연 다음 방콕을 방문하시는 분들께 진정으로 도움을 드리는 일이 될까라는 생각을 갖습니다.
느껴야만 알 수 있는 건 직접 가서 느끼셔야만 하는 일이 아닌가 싶네요. 그래야만 그것을 자기 안에 담을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제 글은 애초에 글로 옮길 수 없는 부분을 굳이 현란한 수사로 치장해서나마 글로 옮기려 애쓰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렇게 가서 느끼시는 과정에서 도움이 되실만한 정보를 정리한 글 정도, 그리고 그 와중에 너무 지루하시지 않도록 약간의 농담 섞인 글 정도로 봐주시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
===============================================================
[여행 3일차, 4월 1일, 일요일]
15. 더위가 나의 108번뇌 - 왓 포를 가다
왕궁을 돌아나오게 되면, 이제 왕궁 바로 인근에 자리하고 있다는 왓 포를 찾는게 보통 순서가 됩니다. 왕궁 출구 쪽에 배치된 경찰인지 군인인지 싶은 제복을 입은 분께 물어봅니다.
“왓 포가 어느 쪽이죠?”
“왕궁 바로 뒤쪽이에요”
“가는데 얼마나 걸리나요?”
“걸어서 한 5분 정도요”
걸어서 5분이라면 당연히 걸어서 가야죠. 걸어서 5분, 걸어서 5분.. 걸어서.... 5분.... 걸어......서...... 5......분......
뚝뚝 타세요, 뚝뚝!!!! 제가 16번째 글에서 방콕에서는 택시만 타면 됐지, 뚝뚝은 필요할 일이 없다고 했습니다. 다만 왕궁 사이 왔다갔다할 때는 유일하게 필요할 수도 있다고 했지요. 바로 지금이 그 포인트입니다. 제가 유일하게 방콕에서 뚝뚝 안 탄 것을 후회한 순간입니다. 오죽하면 제 여행수첩을 찾아보면 ‘걸어서 갔으나 뚝뚝 타는게 나았을 것’ 이라는 당시의 처절한 심경을 담은 메모 한 줄이 남아있습니다. 오전 10시 경에 왕궁에 도착했습니다. 왓 프라깨우와 왕궁을 아주 천천히 돌아봤기 때문에 이미 해는 중천입니다. 기온은 35도라고 기장님이 설명해 주셨던 제 여행 첫날보다는 훨씬 뜨거운 것이 분명했죠. 여기에 햇볕마저 황홀할 정도로 창창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초등 의무교육을 이수한 바에 따르면 기온이란건 땅 위에 약간 떨어진 그늘에서 측정하는 거라 했으니, 아마 실제 이 날 땡볕에서 받았을 체감온도는 상상불허의 수준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땀이 미처 닦을 새가 없이 동글동글 그대로 떨어져 내리는데, 그게 저만 그런게 아니라 각국에서 온 주변의 여행객들 대부분이 그러시더군요. 나이있는 어르신 분들은 저러다가 탈 나시는게 아닐까 살짝 걱정도 드는 그런 날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흔한 모자 하나도 없이 그저 무방비 상태~ 이미 왓 프라깨우와 왕궁 안을 돌면서 제 몸은 상당부분 훈제화(?)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성격은 또 급해서 그늘에서 쉬면서 다닌 것도 아니고 줄창 땡볕 아래를 걸어다니느라 정신이 없었으니, 이미 체력이 꽤 빠져가고 있었죠.
걸어서 5분이라고 했는데, 실제로 5분이 넘는 거리였는지 제가 힘들어서 길게 느껴진건지, 여튼 제 걸음으로는 거의 10분을 걸어간건지 싶더군요. 이런 날씨 하에서,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주로 땡볕 아래서 이런저런 구경을 해야하는 입장에서 태양 아래 10분은 짧은 시간이 아닙니다. 이런 때는 그냥 약간 바가지 쓰실 각오 하시더라도(그래봐야 현지인들보다 20-30바트 정도 많이 내는 겁니다.) 그냥 뚝뚝을 타실 걸 권해드립니다.
여튼 이렇게 왓 포에 도착합니다. 왓 포는 방콕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사원으로, 그 유명한 누워있는 부처님상, 즉 와불이 있는 곳입니다.
* 왓 포 입장료 : 50바트
사원이니만큼 볼 거리는 주로 불상과 탑들이 됩니다. 물론 그 중에서도 단연 와불에 사람들의 시선이 가장 집중적으로 머물죠. 왓 포 내부는 지금도 계속 증축되고 있는 곳이 많습니다. 그리고 생각보다는 내부가 미로처럼 생겨있어서 여기저기 헤집고 다니다간 길눈 어두운 분들은 잠시나마 길을 잃으실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저도 삼국지에 나오는 무슨 기문진에 빠진 것 같은 기분으로 한 10분여 헤맸습니다. -0-; 다행히 한방향으로만 쭉 다시 나오니 쉽게 벗어나긴 했습니다만~
여튼 이 곳에 오면 누구나 들려야할 곳이 일단 와불입니다. 태국에서 이 곳처럼 경건함을 갖춰야 할 곳들은 대부분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는 곳이 많습니다. 줄을 서서 밖에 있는 신장발에 신발을 넣어두고 들어가시면 됩니다. 와불은 원체 그간 많이 소개되었기에 익히 사진이나 영상으로 보신 적이 있을거에요.
<부처님 다리 끝에서 본 전체 불상>
사진 보시면 아시겠지만, 불상의 다리 끝 쪽에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누구나 저처럼 이렇게 와불 전체를 사진 한 장에 담아보고 싶어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이것도 나름 좀 기다린 끝에 사람이 없는 틈을 타고타서 간신히 찍은 겁니다. 절대로! 제가 저 백인미녀분을 찍으려고해서 찍은게 아닙니다. 진짜로! 진짜로? ^^; 여튼 사람 전혀 없을 때 멋지게 찍어보시려는 시도는 아마 왠만해선 성공하시기 쉽지 않을 듯 합니다.
그리고 이 곳에 제가 13번째 글에서 소개드렸던 동전넣는 108개의 작은 항아리가 있기도 합니다. (108개의 항아리에 대해 알려주신 스컬리님께 감사의 말씀을~)
다시 신발을 신고 경내를 천천히 돌아보시면서 많은 탑과 불상들을 천천히 돌아보시면 왓 포의 구경이 끝나게 됩니다. 참고로 왓 포 안에는 타이 마사지를 받으실 수 있는 곳이 있어요. 타이 마사지 자체가 왓 포에 설립되었던 교육기관 중 하나인 전통 의학에서 발전한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도 타이 마사지 교육장으로서 매우 이름높은 곳이라 하구요. 진정한 전통의 타이 마사지를 받아보시려면 이 곳이 제일 좋은 곳인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이미 더위에 지친 저는 에어콘이 없어 보이는 이곳에서 마사지 받을 엄두는 안나더군요~ ㅎㅎ
그리고 저는 이미 오늘의 마사지를 받을 곳을 이미 한국에서 결정해놓고 왔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제 바로 르아 드언을 타러 갈 시간입니다.
16. 강 건너 십원짜리(?)가 보인다 - 르아 드언을 타다
왓 포로 오는 길에 이미 르아 드언을 탈 선착장을 봐놓고 왔습니다. 왓 포의 바로 앞에 보면 이렇게 선착장으로 들어가는 짧고 허름한 골목을 볼 수 있어요.
<타 띠엔 선착장으로 가는 골목>
이 따 띠엔 선착장에서는 짜오프라야 강을 오르내리는 르아 드언 뿐 아니라, 강 건너편을 가로질러 다니는 왕복편도 있습니다. 이건 수상버스라고 부르지 않는다네요. 요금은 3바트입니다. 특히 이 타 띠엔 선착장에서 왕복편을 타시면 왓 아룬, 일명 새벽사원을 보러 가실 수 있습니다.
태국에 가셔서 거스름돈을 받아 동전이 생기시게 되면이
10바트 짜리를 보세요, 무슨 탑조형물이 하나 있는데 그 모델이 바로 왓 아룬입니다. 말 그대로 십원짜리(?)인 것이죠. ^^ 르아 드언을 타고 내려가시면 바로 그 십원짜리의 전경을 보실 수가 있습니다. 원래는 왓 아룬도 가볼 계획이었지만 이미 더위에 꽤나 지쳤습니다. 이미 왓 포를 봤으니 더 이상 사원을 봐봐야 그게 그거라고 스스로를 납득시켜 그냥 르아드언을 타고 강을 내려가기로 합니다.타 띠엔 선착장 왼쪽에서 타면 왕복편을 타시게 되고, 오른쪽으로 내려가서 타시게 되면 르아 드언을 타시게 됩니다.
<르아 드언을 타기 위해 기다리는 곳>
선착장에는 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외국인들도 한번쯤 타보려는 생각들을 가져서인지 많이들 있네요. 한동안 기다리면 르아 드언이 옵니다. 봐서는 어디로 가는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럼 물어봐야죠. 태국어가 불가능하시다면 제가 일찍이 말씀드린 대화법을 사용하시는게 아마도 편하실 겁니다.
“이 르아 드언이 “싸톤에 가는게 맞나요?”
“예, 그렇습니다. 싸톤에 갑니다.” (그다지 성공확률이 높아보이지 않는 예)
“싸톤?”
“싸톤~” (먹힐게 거의 틀림없는 예)
훗훗~ 위의 대화법을 통해 잘 올라탔습니다. -_-; 배에 타고 잠시 계시면, 제 글 3편에서 말씀드렸던 버스 탈 때와 똑같은 과정을 거치시게 됩니다. 한분이 왠 동그란 통을 손에 들고 찰랑찰랑 흔들면서 르아 드언 안을 돌아다니심 →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는데, 나에게 어디 가냐고 묻는 듯함, 하긴 다른 말을 걸 일도 없을 듯함 → “싸톤”, 행선지를 간략하게 말함 → 요금을 말해주심 → 돈을 내면, 작은 우표처럼 생긴 승차권을 내주심 → 또 해냈다~ ^o^
* 타 띠엔에서 싸톤까지 르아 드언 요금 : 13바트
르아 드언은 이전에도 간단히 설명드린 적 있지만, 수상 버스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저도 이 개념을 약간 착각했었는데, 유람선이 아니라 버스인 겁니다.
- 케이치의 르아 드언 상상도
: 보석이 부서지는 듯 빛나는 짜오프라야 강 위를 강물과 함께 흐르듯 미끄러져 내려가는 르아 드언~ 어딘가에서 날아온 갈매기가 뱃전에 내려앉고, 갑판에는 많은 사람들이 손잡이를 붙잡고 서서 강물을 바라보며, 뱃전에는 타이타닉을 따라하는 한 연인~ ^o^
- 실제 르아 드언
: 클로렐라 라면 국물 같은 색깔의 짜오프라야 강물빛, 그리고 많은 쓰레기 건더기. 마치 재개발하기 전의 한강물을 보는 듯~ 배가 물살을 가를 때 튀어오르는 지저분한 강물을 박기 위해 낮은 플라스틱 보호막이 쳐진 배의 옆면. 그리고 생각보다는 꽤 빨라서 뱃전에서 타이타닉 놀이를 하다가는 짜오프라야 강에 거꾸로 쳐박힌 후, 뒤에서 들이닥치는 르아 드언에 그대로 치이고 말 듯~ -_-;
르아 드언은 낭만적인 유람선이 아니라 말 그대로 짜오프라야 강을 오르내리는 수상버스입니다. 그래서 르아 드언의 운행시간도 출퇴근 시간대(배의 종류에 따라 약간씩 다르며, 일반적으로는 6시 내외 정도까지)이며 저녁시간엔 운행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느릿느린 강주변 경관을 즐길 수 있는 속도가 아니라, 나름 빠른 속도로 물살을 가르며 달립니다. 그래서 선착장에 배를 댈 때도 매끄럽고 천천히 대는게 아니라 약간 충돌한다고 느껴질 정도로 쿵~ 하면서 부딪치며 멈춰섭니다.
* 르아 드언에 대한 보다 상세한 정보 : 태사랑-지도자료실-수상버스 노선도
생각보다 낭만적인 느낌은 별로 없군요. 그래도 강주변으로 보이는 태국전통 양식의 사원이나 탑, 건물들 중 운치있어 보이는 것들이 가끔 눈에 들어오고, 강 아래쪽으로 내려갈수록 강가에 인근한 대형호텔들도 보입니다. 강에도 생각보다 거대한 많은 배들이 오르내리고 있어서 유람선 외에는 배가 별로 보이지 않는 한강과는 달리 짜오프라야 강이 운송에서도 많은 부분을 담당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강은 아마 상수원 보호 때문에 그런거겠죠?
낭만적인 맛은 생각보다 덜 했지만, 그래도 르아 드언은 한번쯤 타볼만한 것 같습니다. 교통수단으로서도 저렴하면서 교통체증이 없다는 큰 장점이 있구요, 그리고 배 타 볼 일 자주 있는 것도 아닌데 한번 타면서 시원한 강바람 한번 맞아 보는 것도 나름 여행의 작은 묘미 정도는 될 듯 하구요.
여튼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질주하는 르아 드언 덕에 저는 예상보다 빠른 시간에 “싸톤” 선착장에 도착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