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여행 생초보를 위한] 35세 독거노인 방콕표류기 (끝)
20. 엥? 이게 팟 퐁? - 팟 퐁 야시장에 가다
원체 늦게 나선 길인데다가, 마사지 2시간, 인터넷 2시간반, 잠시 먹은 시간, 잠시 걸은 시간, 잠시 택시탄 시간~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져가고 있습니다. 이제 드디어 팟 퐁에 진출할 시간이 되어가고 있는 겁니다. 하긴 진출이래봐야 실롬 콤플렉스에서 거의 바로 길건너자마자입니다.
방콕의 야시장 문화와 밤문화를 대표하는 팟 퐁을 마지막날 짐까지 끌고서 찾게 되다니~ 뭔가 일정을 잘못 잡은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인터넷 하느라 시간을 너무 많이 보내서 팟 퐁을 구경하는데 시간이 모자라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그러나~
“어라? 이게 정말 전부야?”
그냥 골목 하나네요, 골목 하나. 그것도 아주 좁고 짧은 골목 하나. 그 골목의 중간에 노점상들이 늘어서서 길을 두 줄로 나눠놨지만, 그래봐야 쇼핑을 하지 않는다면 그 두 줄의 골목을 한바퀴 빙 도는데 걸린 시간은 불과 5분여.
‘아, 이건 좀 황당한 걸~ -_-;’
내심 훼이꽝 야시장 정도는 되지 않겠나 예상하고 있었거든요. 길 중앙의 노점상서에는 옷이나 시계, 기타 잡화를 중심으로 팔고 있고, 양 양쪽 변의 가게들 역시 비슷합니다. 다만 양쪽 변으로는 어고고바들도 꽤 있죠. 하지만 팟 퐁의 어고고바는 바가지 쓰기 쉽다는 말도 들어봤고, 이미 지난 이틀 간이나 다른 지역의 어고고바를 가봤기에 별관심이 없습니다, 패스~ 쉴새없이 마사지를 받으라는 삐끼들의 작업이 들어옵니다. 역시 패스~
패스한 건 좋은데 그걸 모두 패스하고 나니 할게 없습니다. 아직도 시간은 꽤 남았는데, 두 어시간은 보낼 수 있을거라 생각한 팟 퐁을 겨우 5분만에 패스~ -_-;
이 난감함을 타계하기 위해 일단 주변을 어슬렁거려 보기로 합니다. 팟 퐁 골목 외에도 그 주변에 사람도 많고 대체로 불빛들이 밝은걸 보면 뭔가 다른게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며 발길을 옮깁니다.
팟 퐁을 지나 약간 길을 거슬러 올라가니 뭔가 큰 골목이 하나 나옵니다. 팟 퐁보다 훨씬 넓습니다. 그리고 뭔가 조금 화려하기도 합니다. 여기로 한 번 들어가 봅니다. 흠, 여기는 일본어 간판이 많습니다. 이쁜 푸잉들도 길거리에 많습니다. 호객행위도 합니다. 근데 전부 일본말로 말합니다. 여기서 동북아인처럼 생기면 일단 일본인으로 보나 봅니다.
“마사지 받으셈”
“어서오셈, 가라오케 어떠삼?”
하도 계속 말을 해대서 정신이 없어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뭐 대체로 이런 말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과연 일본어로 가라오케, 마사지라고 써진 가게들이 즐비합니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 이르러서 확실히 그렇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타니야’ 라는 골목 이름이 써붙어 있는 걸 봤거든요.
‘아하, 여기가 바로 타니야였군~’
일본인들이 주로 찾는 유흥가라고 제 안내책자에도 나와 있습니다.
타니야라고 써진 빨간 간판 아래서 안내책자를 꺼내보며 확인하고 있는데, 왠 건장한 흑인 아가씨(?)가 다가옵니다. 한국에서는 저보다 어깨 넓은 남자가 그다지 많지 않은데 이 아가씨(?)는 저보다 키도 크고 어깨도 넓습니다. 종아리의 굵은 망사 스타킹도 터져나갈 듯 합니다. 그리고 역시 예상했던대로 매우 굵고도 터프한 음색의 일본어로 저에게 마사지를 권합니다.
“마사지 한번 받으시죠! 아가씨도 이쁩니다! 허허허허~” ^o^
“미안한데 필요없어요 (목숨만 살려주삼~ ㄷㄷㄷ ToT ) ”
잠시 긴장했지만 웃으면서 부드럽게 말하니 가볍게 미소 짓고 사라져 갑니다. 아, 정말 여러번 강조했지만 이 소프트한 삐끼 문화는 정말 마음에 듭니다. 타니야에서 다시 뒷길을 돌아 팟 퐁 쪽으로 올라가면서도 숫하게 많은 삐끼를 만나는데, 그 수많은 삐끼 중에서 제가 ‘노 땡큐’ 했는데도 두번세번 말을 건넨 삐끼는 단 두 명 뿐이었습니다.
이렇게 뒷길을 통해 팟 퐁 쪽으로 가다보니 바들이 밀집한 아주 작은 골목이 또 하나 있습니다. 쫌 전에 안내책자를 꺼내 타니야에 대해 찾아보면서 여기가 뭔지는 이미 알아뒀습니다. 씨롬 쏘이 4, 한마디로 아까 같은 아가씨(?)들이 많이 계신 곳~ 요만큼도 관심없는 저는 종종걸음으로 빨리 지나칩니다. 잡지 마삼~ ToT 하긴 잡기는커녕 정작 그 앞에서는 호객하는 삐끼도 없더라는~ 장사가 잘 되나?
이렇게해서 다시 팟 퐁 골목까지 돌아오니 이제 더 이상 갈 곳도 없습니다. 그리고 이제 공항으로 떠나야 할 시간도 가까워 왔습니다. 노변건물에 앞에 가로막은 것이 하나도 없는 식당이 하나 보입니다. 이 곳에서 오리덮밥 한 그릇과 창 맥주 한병을 마시면서 분주하게 월요일밤 거리를 오가는 태국님들을 봅니다.
어디에서나 사람들이 활기있게 생활하는 모습을 본다는건 참 멋진 일입니다. 당분간은 이 거리와 이 사람들을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마지막으로 더 열심히 머리 속에 담아둬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노력 덕인지 제가 앉아있던 식당 바로 앞에서 노점상에서 가게 주인인 듯한 아버지와 함께 즐겁게 뛰놀던 여자 아이의 모습이 제 태국에서의 마지막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 팟 퐁에서 쑤완나 품 공항까지 택시 요금 : 285바트 (톨게이트 요금 40바트 포함, 팁 포함 300바트 지불)
21. 다시 꿈을 꾸기 시작하란 의미일까 - ‘동물원’의 노래 중에서
그리고~
화요일 아침 인천국제공항에 떨어져 드디어 화요일 오후에는 사무실에 도착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일부러 큰 소리로 인사하며 사무실을 들어섭니다. 훼이꽝 야시장에서 사 온 작은 초 선물도 같은 사무실 직원들 책상 위에 하나씩 올려놓습니다. 호접몽이라고 하던가요~ 태국에서의 시간이 꿈인지, 사무실에 돌아온 지금이 꿈인지 뭔가 붕 뜬 듯한 어색함 속에 컴퓨터를 켜며 자리에 앉습니다. 이렇게 저만의 짧은 봄방학은 마무리 됩니다.
“팀장님 저 병원에 좀 가봐야겠는데요”
“왜?”
“이게 좀 화상이 심해서 피부과에 좀 가려는데 점심시간 조금 넘길 수도 있을거 같아서~”
“내가 니 껍데기를 벗기는 수가 있다!”
"ToT"
"빨리 다녀와~"
일상이란 항상 감내할 수 있을만큼 잔인합니다. ㅎㅎ 감내할 수 없을 정도에 이른다면요? 글쎄요, 아마 쓰러지겠죠. 그래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쓰러지지 않고 걸어갈 수 있는 이유는 꿈이 있기 때문일 듯 합니다. 다시 꿈을 꿀 수 있다는 희망이 있기 때문에~
저도 이러한 적당히 견딜만큼 폭력적이고 또 적당히 참을만한 무료한 일상 속에서 또 꿈을 꿉니다.
‘이번 여름휴가엔 어디 가지? 앙코르와트? 일본도 오사카 쪽은 못 가봤잖아~ 근데 저번에 영화에서 보니까 중앙아시아 쪽도 멋지던데~ 이번 여름엔 마일리지 쌓인 걸로 다녀오면 비행기 표는 공짜로 해결되겠는데... 군시렁군시렁 중얼중얼’
그래도~
이래야 살지 않겠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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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4일 다녀온 여행기가 다른 분들 한달을 다녀온 여행기보다도 길어졌네요. 짧은 경험이나마 저처럼 처음 방콕 나서시는 분들께 도움을 드리고자 하는 욕심이었다는 것으로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또 이렇게 길고 지루했던 글을 참을 인자 써 가시면서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꾸벅~
책이나 영화의 가장 좋은 점은 인생에 대해 통찰력 있는 사람들이 만든 멋진 말을 저처럼 둔감한 사람도 그대로 빌려쓰면서 멋있는 척 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이죠.
제가 좋아하는 영화감독 중에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이 있습니다. 이 분의 말년작 중에 ‘붉은 다리 아래 따뜻한 물’ 이라는 영화를 최근에 봤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는 별로 추천드리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여튼 이 영화의 대사 중에 그런 말이 나옵니다.
“진정한 자유란 자신의 행복에 대해서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는 것을 말하네”
딱 한번 보고 지나친거라 정확하게 한글자 한글자 옮기진 못한 것 같습니다만~
지금까지 니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뭐냐고 누가 물으면 항상 ‘자유’라고 말했었는데, 정작 니가 말하는 자유가 뭐냐고 물으면 그에 대해선 추상적인 답만을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저 멋진 말을 빌려서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태사랑의 모든 분들께도 그런 자유로움이 삶 속에 함께 깃드시기를 바랍니다~
ps 1. 오늘은 집에서 글을 올리다보니 사진이 빠졌네요. 회사에 출근해서 사진을 보충하도록 하겠습니다. 근데 이미 보여드릴만한 사진은 거의 다 올린지라 이거~ 흠~
2. 제 글 초반에 출연해서 제게 많은 여행정보를 주었던 제 친구는 사실 제가 방콕으로 떠나기도 이틀 전인 3월 28일 출국하여 유럽을 일주한 이후 바로 얼마 전인 4월 26일에나 귀국했습니다. 여행 중에도 인터넷을 통해 제 글을 보고 있었다고 하는군요. 여튼 참 부러운 넘입니다~ 아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