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n's Story - 사파(Sapa)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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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s Story - 사파(Sapa)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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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파로 가기 위해서는 라오까이까지 기차를 타고 가야한다. 하노이역까지 픽업해줄 차량을 만나기 위해 신까페를 들렀다. 알고보니 픽업차량이 콜택시다. 아마도 신까페를 통해 사파로 가는 일행은 김군과 나 둘뿐인 모양이다. 구시가에서 하노이역까지는 그리 멀지 않은 거리인데 역에 도착하자 택시기사가 택시비를 내놓으란다. 무슨 소리냐, 픽업비는 이미 투어비에 포함이 돼있는 거 아니냐. 서로 옥신각신. 한참을 그러고 있자 신까페 직원이 오토바이를 타고 도착하여 택시비를 지불하였다. 진작 자기는 오토바이 타고 올 거라고 말을 해주던가. 하고 싶은 말은 많으나 기분 좋은 여행을 위해 참자. 영화에서 본 명대사 한 마디가 생각난다. '눈을 콕 찍어서 검은 자에 먹물을 쪽 빨아버릴랑께'

차 편은 간혹 소프트 슬리퍼(Soft sleeper; 한 칸에 침대가 4개가 있고 푹신한 메트리스가 깔려 있는)를 예약했는데 하드 슬리퍼(Hard sleeper; 한 칸에 침대가 6개가 있고 조금 덜 푹신한 메트리스가 깔려 있는)가 배정되는 경우가 있다기에 다짐에 다짐을 받기는 했으나 조금 염려가 된다, 다행히도 소프트 슬리퍼다. 긴 야간기차여행에 처음 침대칸을 이용해본다는 설레임도 인다. 자리를 잡자 여자 두 사람이 한 방에 들어온다. 좁은 공간에 남녀가 서로의 자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게 된다는 사실, 그리고 기차 떠날 때까지 남은 한 시간을 그 좁은 공간에서 어떤 식으로든 보내야 한다는 사실이 멀리 극동아시아의 한 조그마한 나라에서 유교식의 '남녀칠세부동석'을 듣고 배우고 자란 우리에게는 상당히 뻘쭘하기 그지 없다. 김군과 기차 떠날 때까지 바깥에 있자고 했다. 나는 침대 1층을 쓰기로 했고, 김군은 2층을 쓰기로 했는데, 두 여자중 이쁜 여자가 1층이다. 신은 항상 미남에게는 미녀만을 내려준다, 괜히 기대가 된다. 기차 떠날 시간에 맞춰 들어오니 자리가 바뀌어 있다. 이쁜 여자가 한기랑 같은 2층, 전형적인 뚱뚱한 서양 아줌마가 1층. 갑자기 생뚱맞다. 신은 역시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공평했다. 알고 보니 두 사람은 모녀지간이었다. 기차가 정시에 역을 떠났고, 불이 다 꺼지니 안과 창밖이 구분이 되지 않아 덜컹 거리는 소리만 없다면 기차에 탔는 지 안 탔는 지 모르겠다. 의외로 침대칸은 편해서 편안한 잠을 잘 수 있었다.

새벽 5시 30분쯤 눈을 떴다. 기차는 어느 역에 정차되어 있었다. 예정대로라면 라오까이역이어야 할텐데, 기차문이 열리지도 않고 아무도 내리지 않는다. 아마도 무슨 절차가 있는 모양이다 싶은데 이러한  상황이 계속 이어진다. 불길한 예감은 늘 비켜나가지 않는 법이어서 아무도 말해주지는 않았지만 무언가 이상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의 술렁이는 소요. 들리는 이야기로는 간밤에 비가 너무 많이 온 탓에 선로가 유실되었단다. 지금 있는 곳은 라오까이에서 약 40km 정도 떨어진 역이라 한다. 일부 사람들은 짐을 챙겨 내리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여전히 사태를 파악하지 못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고 있다. 승무원들도 베트남 승객들도 누구 하나 설명해주지 않는다.

그렇게 하염없이 시간이 지나자 베트남 사람들은 모조리 기차를 내려 바깥으로 나가고 주로 침대칸에 있는 외국인들도 일단 짐을 싸서 나가는 분위기다. 같은 방을 썼던 아주머니가 내 베낭에 붙여친 캐나다 국기를 보며, 어디서 왔냐 한다. 그러고보니 같은 방을 쓰고 같이 동침(?)을 한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처음 봤을 때 "Hi" 한 것 말고는 전혀 대화가 없었다. 어학연수차 캐나다에서 잠시 살았다 하니 자신도 캐나다 사람이라며 어디에 머물렀냐 한다. 벤쿠버. 그 모녀도 지금은 중국 인터내셔널 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데 자신들도 벤쿠버 사람들이라 한다. 그 것도 내가 살던 곳과 그리 멀지 않은 동네에서 살고 있는 데다 낯 익은 거리이름이며 Sky train이름이 나오니 마치 한 고향 사람들을 만난 듯 굉장히 반가워한다. 이 모녀들과 이렇게 통성명이 되니 이 불길한 상황에 대한 불안감이 눈 녹듯 사라진다. 역시 사람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 보듬어 주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역사 밖은 완전히 아수라장이 돼있었다.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 내려서 환불하는 사람. 그 북새통에 캐나다 아주머니는 어느틈에 매표소 앞자리에 서서 표를 환불을 한다. 고맙게도 우리 것도 같이 환불해주셨다. 그런데 고작 환불받은 액수는 1인당 10,000VND. 여기서 라오까이가 얼마나 되는 지도 모르며, 또 어떻게 가야하는 지도 모르며, 왜 기차가 여기 서서 가지 않으며, 또 언제 떠날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고작 10,000VND이라니... 아주머니가 한참 성을 내며 따졌지만 냉정한 매표소 직원의 일관된 '모로쇠' 앞에서 어쩌겠는가. 여하튼 베트남어는 하나도 모르고, 그나마 알아 듣는 영어도 짧은 마당에 이 아주머니가 지금 이 순간에는 구세주로 보였다.

역사를 빠져 나오니 여기도 온통 아수라장이다. 벌써부터 미니버스가 사람들을 사파로 실어나를 준비를 해준다. 혹시 기차가 떠날 수 없어 제공해 주는 공짜 미니버스? 베트남에서는 절대 그런 일은 없었다. 1인당 10USD에 미니버스로 사파까지 데려다 준단다. 그 것도 차안 가득 사람을 빼곡히 채운 채... 캐나다 아주머니가 터무니 없다는 표정으로 "No"를 외치며 타기를 거부한다. 정말 이 순간에는 이 아주머니가 물에 빠졌을 때 오직 의지할 수 있는 지푸라기만 같다. 그 북새통에 그만 그 모녀를 잃어 버리고 말았다. 미니버스를 타고 안 타고는 문제가 아니다, 김군과 그 모녀를 찾았지만 어디에도 없다. 아, 이 일을 어쩌나?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 지 머릿속이 하얗다. 우리는 라오까이에서 우리를 기다릴 사람을 만나야 하는데, 그리고 사파에 도착해서 어느 호텔에 묵어야 하는 지도 모르는데. 그 사정이야 나나 그 캐나다 모녀나 마찬가지일테지만 그 순간에는 그들을 의지하고 싶었다. 잠시 생각에 빠져있는데 김군이 캐나다 모녀 일행을 찾았다. 미니버스에 이미 앉아 우리를 보더니 손가락 5개를 펴보이며 빨리 타란다. 지금 이 순간 10USD가 아니라 100USD라도 내고 타야겠다는 생각이 번쩍 든다. 1인당 50,000VND에 미니 버스에 올랐다. 드디어 사파에 가는구나. 그런데 우리를 기다릴 라오까이 사람하며, 우리가 묵을 숙소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숙제거리다.

어디로 가는 지도 모른 채 한참을 달리는가 싶더니 미니버스는 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꼬불꼬불 길을 달리는데 한 쪽은 벽, 또 다른 한쪽은 깊은 절벽이다. 바리케이트, 이런 건 없었다. 마침 내리는 비에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공연한 걱정이 스물 스물 머리에서 기어나온다. 마치 링에 나오는 TV 귀신처럼... 그래도 창밖으로 보이는 계단식 논들이며 구름이 갇힌 산자락이며 간혹 지나치는 고산족 사람들 모습이 사파가 그리 멀지 않다는 걸 짐작케 했다. 그리고 두 시간여만에 사파에 도착을 했다. 어디에서 내리지? 신까페에서 미리 숙소를 물어보고 올걸. 확인하지 못한 걸 후회한다. 눈물로 세상을 살지 말라는 선인들의 말처럼 울 수는 없었지만 하늘이 내 대신 눈물을 계속 흘리고 있었다. 어디서 '로얄호텔'이라는 말이 나온다. 그러고 보니 그 이름이 낯설 지 않은 거 같다. '그래, 우리가 가는 곳이 로얄호텔이야.' 로얄 호텔 앞에서 차 안에 사람들이 모두 내렸다. 호텔 프론트에서 사람들의 명단을 확인해주고 속속 방을 배정해준다. 마지막으로 우리 차례, 어디를 보아도 Mr. Moon은 보이지 않는다. 아, 나는 어떡하라고...

하노이의 신까페에 전화라도 해야할 거 같아 신까페의 명함과 여행 계약서를 보여주었더니, 어딘가에 전화를 건다. 그리고 다른 곳에 또 전화를 건다. 그리고 잠시 쇼파에 가서 앉아 있으면 픽업하러 올 거라며 걱정말고 쉬고 있으란다. 이렇게 고마울 수가. 그래도 걱정스러워 안에 앉아 있지 않고 비오는 문앞에 서 있었는데 또 다른 직원들이 걱정 말라며 안에서 기다리란다. 이 자리를 빌어 로얄호텔 직원에게 감사를 드린다.

잠시 후, 우리가 묵을 숙소 직원이 오토바이로 픽업을 왔다. 내심 지프차라도 와줄 줄 알았는데, 그래도 오토바이라도 어디냐 감지덕지 하지.

호텔에서 일정을 확인하고, 가보고 싶었던 박하는 일요시장이 열지 않으면 아무 것도 볼 것이 없다는 직원의 만류에 포기하고 여장을 풀었다. 사파에 도착하기까지 우여곡절은 많았지만, 이렇게 변수가 있어야 여행의 참맛 아니던가. 어느덧 내리던 비도 멈추고 숙소도 전망이 트인 꼭대기층이라 마음에 든다.
 

긴장이 풀리니, 노래가 절로 나온다.
"사파~ 사파~ 사파~ 사파~ 우렁찬 엔진 소리~ 독수리 오형제~"

아, 독수리 오형제는 사파출신이었다는 걸 사파에 와서야 알게 되다니.

 

 
2 Comments
나니 2005.08.17 14:51  
  너무 웃겨요~ 신은 공평하다...독수리 오형제..ㅋㅋㅋ
Moon 2005.08.22 16:22  
  나니님, 사파에 그런 비밀들이 숨겨져 있더라구요, 글쎄...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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