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만나러 갑니다~ (2. transfer)
겨우 숨 고르니, 기내방송이 나옵니다. 삼 개 국어로 안내방송을 하고, 마지막에 한국어로 짤막하게 한 마디 덧붙입니다. “안녕히 타십시오” 엥~ 이게 뭡니까(?) 제 귀를 의심하며, 언니를 쳐다봅니다. 언니, “편안한 여행 되십시오” 바로 해석해 줍니다. 저는 얼핏 타자마자 안녕히 가시라는 줄 알았습니다^^; 가슴이 답답해 옵니다. 정정해 드리고 싶으나, 영어가 안 되는 관계로 불의를 보고 외면합니다 :^^;
기내식이 나옵니다. 태사랑에서 정보를 얻어 재미삼아 베지태리언 식단을 주문해 봤는데, 아주 콩으로 벌창을 했습니다^^; 콩 싫어하는데... 제가 원래 채식공룡이라 고기 싫다는데, 굳이 콩으로 고기를 만들어 얹어주는 센스와 黑之麻의 압박이란.. 고기 좋아하는 육식공룡(언니)까지 베지테리언으로 바꿔 놓은 터라 쫌 미안합니다. 우리 육식공룡 자꾸 치킨누들 쪽을 건너다봅니다.(뜨끔~)
두 시간 반가량의 비행 후, 대만에 도착합니다. 여기서 시차 때문에 한 시간이 늘어납니다. 비행기에서 내리니, 환승하는 승객들을 위해 에바 직원들이 안내를 합니다. 영어로 하지만 안 드낍니다. 사람들 눈치를 봅니다. 따라갑니다. 2층에 내렸는데 검색대를 지나 3층으로 올라갑니다. 3층은 면세점과 편의시설들이 있습니다만 지금이 새벽 한 시가 넘은 시간이라 모두 닫았습니다.
화장실을 찾아 좀 씻고, 편한 자리를 찾아봅니다. 곧 발견^^* 우리를 위해 세 칸짜리 가죽 소파 두 개가 남아 있습니다. 각각 눕습니다. 영화 ‘터미널’이 따로 없습니다. 언니가 배낭에서 비치 타월을 꺼내 줍니다. 하나뿐이라 저만 덮고, 언니는 긴팔 옷을 껴입습니다. 언니왈 항공담요 하나 가져올 걸 그랬다며 아쉬워합니다. 그러나 무.슨.소.리. 아니됩니다. 내 것이 아닌 것을 탐하다니요, 제가 윤리관 하나는 투철합니다^^;
자는 둥 마는 둥, 새벽 다섯 시쯤 되었을까요, 밖을 내다보니 일출이 시작되는지 점점 붉은 빛을 띱니다. 공항에 생기가 돌기 시작합니다. 어차피 잠자긴 틀렸습니다. 언니를 깨워 커피를 마시러 갑니다. 어디가 어딘지 몰라 C구역 쪽으로 한 번, B구역 쪽으로 한 번 부지런히 찾아다닙니다. 에구, 3층위치안내도를 찾아보니, 우리가 쉬던 휴게 공간 쪽으로 되돌아가야겠습니다. 에혀, 힘 빠집니다^^;
다행히 스타벅스가 영업을 시작했습니다. 카페라떼와 달지 않아 보이는 빵을 하나 주문합니다. 커피는 그랜드로 하나만 주문합니다. 4$입니다. 한국보다 싸네요^^ 대만 공항 내의 스타벅스에는 가격표에 US달러가 없습니다. 직원이 환전표 같은 걸 보고 계산해서 받습니다. 달러를 준비해 와서 다행이라며, 언니가 좋아합니다. 언니왈 이 지루한 시간에 커피 한 잔의 여유도 누릴 수 없었다면 어쩔 뻔 했어~
여행 준비를 하면서, 환전 문제로 고민을 좀 했습니다. 처음엔 무조건 달러로 가져가면 장땡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태국은 ATM의 천국이라는군요. 그래서 저도 도난의 위험을 줄일 겸 직불카드(cirrus)를 준비했습니다. 마침 city bank가 제가 사는 오피스텔 3층에 있어서 백만 원을 가지고 통장을 개설하러 갔습니다. 그런데 카드 하나 달랑 들고 여행을 간다는 게 쫌 불안합니다. 계획을 급수정하여 여행자 수표 4장(US100$)과 현찰 54$ 나머지는 통장에 넣었습니다. 친절하게도 카드를 두 장 만들어 줍니다. 마그네틱 손상의 우려가 있어서랍니다 (감동~)
제가 요렇게 세심한 준비를 해온 반면, 언니는 농협 직불 카드 하나 달랑 들고 왔습니다. 언니왈 농협 직원한테 전화해서 물어봤는데, 해외 사용은 물론 국내에서 직불카드 사용하는 것처럼 현금 결제도 가능하답니다. 정말 선.진.화.된 농협입니다. 적어도 그 땐 그런 줄 알았습니다^^; 대만 스타벅스에서 그 카드는 안 된다고 할 때 그 실체를 바로 파악하지 못하고 언니 말인지라 그냥 믿었습니다.
07. 07. 16. A.M. 08:30 방콕행 비행기를 탑니다. 좀 피곤합니다만 오랜만에 언니랑 붙어있으니 즐겁습니다. 언니가 은근히 재치 덩어리라 웃음이 끊이질 않습니다. 또 기내식이 나옵니다. 새롭게 아침을 시작하는 마음으로 커피와 빵을 좀 먹어보려는데 黑之麻가 또 태클입니다. 불평을 합니다(궁시렁~) 옆에서 언니왈 그래도 너만큼 기내식 잘 먹는 애는 본 적이 없답니다(히~) 아침 먹고 주스 마시며 출입국신고서를 작성합니다.
잠시 졸았나 봅니다. 잠을 제대로 못 자, 지치고 몽롱합니다. 벌써 방콕 쑤완나품 공항입니다. 입국심사대를 지나, 수하물을 찾으러 갑니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배낭 분실의 공포가 몰려옵니다. 너무 일찍 나왔는지 아직 우리가 타고 온 탑승기 넘버가 전광판에 보이질 않습니다. 19번 수취대라고 했는데... 드뎌 전광판에 BR 211이 뜹니다. 제 배낭이 나옵니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상봉의 기쁨을 나눕니다.
흐뭇한 마음으로 시계를 맞춥니다. 대만에서 오는 동안 다시 한 시간이 늘어났습니다. A.M. 09시가 좀 지났나 봅니다. ATM을 찾습니다. 언니가 직원인 듯 보이는 분에게 물어봅니다. 멀지도 않습니다. 일단 5000baht를 인출합니다. 카오산까지 버스를 타고 갈 계획이므로 100B 단위의 작은 돈이 필요합니다. 국제 전화 카드를 사기로 합니다. 2층으로 올라가 페밀리 마트에 갑니다. 하필 다 팔렸답니다. 남자 캐셔가 친절하게 1층을 가리키며 저기 가서 사랍니다. 알려준 대로 잡지 파는 가판대에 가서 “아이 원트 인터내셜널 텔레폰 카드”라고 말합니다. 못 알아듣습니다. 다시 몇 번 반복합니다. 겨우 알아듣습니다. 얼마짜리를 원하냡니다. “쓰리 헌드레드” 지금 300B짜리 없으니까, 100B짜리 세 개 사랍니다. “OK~" 작은 돈으로 바꿨다는 기쁨에 100B짜리 국제전화카드의 진실을 의심해 보지 않습니다.
바로 앞 노란색 국제공중전화에서 집으로 도착전화를 합니다. 연결이 안 됩니다. 재시도, 그리고 또 재시도. 역시 안 됩니다. 돌아서서 가판대 청년을 향해 ”인터내셔널 카드(?)“ 다시 한 번 확인합니다. 맞답니다. 그럼 도착전화는 저녁에 다시 하기로 하고 이만 철수합니다.
공항 밖으로 나오니, 셔틀버스 승차장이 바로 보입니다. 잠시 배낭을 벗고, 지도를 펼칩니다. 언니의 방향감각이 거의 장애 수준이라 모든 여정은 제가 지휘합니다. 약간의 책임감을 느끼며 출력해 온 ‘카오산 가기’ 프린트 물을 보조가방에서 꺼냅니다. 아, 졸립니다. 마침 흰색 셔틀버스가 옵니다. 프린트물을 주섬주섬 챙겨 얼른 올라탑니다. 언니도 뒤따라 오릅니다. 배낭이 무거워 보입니다. 돌아서서 살짝 도와줍니다.
자리에 앉아 창밖을 내다봅니다, 뭔가 좀 허전합니다^^; 어헉~ 배낭이 없습니다. 오 마이 갓입니다. 벌떡 일어나 “언니, 나 배낭 엄따” 언니, 표정 변화도 없이 침착합니다.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듯합니다. 급한 마음에 옆에 앉은 현지민을 붙잡고 “아임 로스트 백” “아임 로스트 배기지“를 연발합니다. 현지민 도와주고 싶은 듯하나 영어를 못합니다. 드뎌 언니가 나섭니다. 뭐라고 말해야 하나, 누구에게 부탁해야 하나를 잠시 숙고한 모양입니다. 뒷자리에 공항 직원인듯한 남자분을 향해 동생이 가방을 잃어버렸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도와 줄 수 있겠냐 물어봅니다. 콩글리쉬 태글리쉬 창궐입니다. 그러나 통한다는 거... 교통센터에 내려서 되돌아가는 셔틀을 타랍니다. 하우 롱~? 탠 미닛. 허걱~ㅠㅠ 머릿속이 하얘집니다.
교통센터에 도착하니, 친절한 그 남자분, 바로 떠나는 셔틀버스까지 안내해 줍니다. 공항으로 돌아오는 10분, 언니가 침착하게 말합니다. “돈은 다 나한테 있고, 옷은 사 입어도 되고 나눠 입어도 되니까 잃어버려도 여행하는 덴 큰 불편 없어. 괜찮아. 수영복이 안됐네.” 방콕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사고를 치다뉘,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으허헉~) 명절날 귀성하면서 굴비세트 놓고 내리기, 오빠 결혼식 가면서 지갑 소매치기 당하기 등... 전력이 화려한 채식공룡입니다. 배낭을 잃어버렸는데 그저 몽롱합니다. 실감도 잘 안 납니다. ‘설마 그 새 가져갔을라구’ 창밖을 내다보며 쑤완나품 공항의 규모를 구경합니다. 원더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