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코타이 여행기(1)
태국어를 배운지 3개월.
태국을 알자고 수코타이를 찾는다. 그런데 자료가 없다. '헬로 태국', '태국의 이해' 달랑 2권만 들고 왔으니 막막하다.
태국엔 서점이 많다. 그런데 그 많은 책방, 그 많은 책 속에 까오리(태국어로 한국) 건 없는 거다.
간혹 한 두 권, '한태사전', '한국어 배우기'에 불과하다. 그 흔한 소설책, 잡지는 물론, 여행 가이드 한 권 없는 거다.
왜. 왜. 왜.
인터넷을 뒤진다. 맹점은 많은 자료중 어느 것이 진짜고 어느 것이 가짜인지 분별 불가능 한거다.
읽다 보면 초등 학생 글이고, 죽자고 출력 받아보면 수준 미달이다.
찾다 찾다 교민잡지에 연재된 수코타이를 보고 전화를 건다. 답이 쉽게 나왔다.
보고서 비슷한 자료를 브로그에서 출력 받고 덤으로 도움말을 듣는다.
1. 북부 터미널에서 저녁 9시 차를 탈 것.
2. 새벽 5시쯤 떨어지면 뚝뚝이를 타고 왓 사판힌으로 갈 것.
3. 히스토리칼 파크를 한 바퀴 돌았다고 끝났다 하지 말고 북쪽으로 가서 또 다른 히스토리칼 파크를 찾을 것.
4. 북쪽 것을 다 보고 돌아와도 방콕 마지막 차를 충분히 탈 수 있음.
기쁜건 하루 밤 자야하는 수고로움. 게스트 하우스나 호텔을 찾고, 값을 흥정하고 먹을 건 뭘로 할 건지. 세탁물은 어디서.... 냉방장치는.... 이런 허접스런 것들이 한꺼번에 해결된 거다.
북부 터미널 모칫역으로 가는 지상철이다. 스카이 트레인. 하늘 기차다.
지하철 개념으로 일관하던 내가 이 기차를 처음 타고 '은하철도 999'를 연상한 건 환상을 쫓고 있다는 걸까.
알퐁스 도어테, 또는 앙리 보스꼬의 환타지나, 무지개 밑에 황금 보따리가 있을 거라든가, 복권을 한 장 사면 금방 당첨이 되고 수억 원대 부자가 될 수도 있을 거라는 망상 같은 거.
사원에 오르기 전 좌측 언덕에서 만나는 탑이다.
우리나라 일주문 같은 것. 아니면 당간지주 같은 것일까.
생면부지. 처음 대면하건만 부석사에 올라 당간지주를 만난듯 왜 이리 반갑냐. 낮설지 않아 신기한 노릇이다.
수코타이에서 첫 번째 만난 불상이다. 왓 사판힌의 불상 프라 아타롯.
아침 제일 먼저 햇빛을 맞는 불상이다. 석굴암 대불 같은 것.
어렸을 때 석굴암 대불의 웅장함에 기함을 했는데…. 석굴암 그 분에 세상에서 가장 크고 웅대하고 장엄하고….
그런데 그게 아니다. 세상은 이렇게 넓은 거다.
부처님을 가사 한 쪽 황금 실크로 뒷머리에서 좌측 손끝까지 늘여 놓을 줄 안 그는 누구일까.
화가일까. 시인일까. 아니면 스님, 가난한 신도....
대불 아래 황금 빛 가사를 두르고 앉아 게신 부처님이 반갑다. 지붕과 벽체는 긴긴 시간 속에 사라졌다.
몇 개의 붉은 기둥과 두분 부처님이 또 다른 새벽을 응시한다. 세월 속에서.
가이드가 있다면 람캄행 대왕을 들먹였을 거다. 수코타이 문자를 만드신 왕. 세종대왕과 맞먹는 분.
그 분 람캄행 대왕이 코끼리를 타고 오셨다는 곳이라 더 유명한 성지인 모양이다.
태국에 와서 이상하게 생각한 건. 왜 세종대왕을, 단일민족이란걸, 사계절이 있다는 걸, 뭐 대단한 특권 같은 거라고 세뇌교육 시키듯 했느냐는 거다.
그 게 오히려 진취적 사고을 위축하게 한 건 아닌지.
부처님 앞에서 여명을 맞는다.
부처님 정면에서 본 동쪽은 우측 지평선으로 연결된 지점이다.
사진 중간지점 빨갛게 보이는 게 아침 해란 거다.
그러니까 적어도 10도 이상은 빗나간 거다.
아니지 계절상으로 원 제작자와 내가 본 오늘이라는 날자의 계절이 일치 하지 않는다고 보아야지.
내가 올라온 돌다리다. 사원으로 오르는 석축.
누구를 위한 것일까. 신. 아니면 신도. 아니면 중생....
북부 터미널에서 9시 차를 타고 수코타이 버스 터미널에 와 떨어진 게 5시. 뚝뚝이를 내쳐 타고 온 거다.
사탕수수. 잘 안 보이지. 새벽 여명에 찍은 거라 그렇다.
이 사탕수수 밭이 수코타이 지역에 지천이다.
지평선으로 연결되는 드넓은 땅이 온통 사탕수수 밭이다.
왓 스리춥. 부처님은 큰 돔 안에 계시다.
정면에 문을 내고 신도들이 예불을 드리게 한 모양이다. 부처님 앞, 시골 예배당 만한 공간에 지붕과 벽체는 사라지고 붉은 돌 기둥 몇개 남아 있다.
다음 사진은 원경이다. 어때 정원치곤 너무 넓지. 절의 부지라 해도 너무 아름답지 않아.
대문 위 하늘을 향한 화살표가 윗사진 부처님이 거처하시는 방이고 그 앞에 작은 기둥 몇개 세워진 사각의 축대가 옛 사원의 터다.
너무 일찍 온 바람에 관리인이 늦은 걸 부끄러워하며 자전거로 달려와 문을 열어 준다.
그리고 크지요. 웅장하지요. 한 두 마디하며 웃고 사라지는 게 얼마나 의연해 보이는지.
뭣 좀 알았다하면 떠들고 싶어 안달하는 나 같은 좀팽이가 아닌 게 다행이다.
이 부처님 께서도 오늘 하루를 조용히 접수하고 게시다.
뭐 이게 하루 이틀이어야지. 안 그렇겠어. 세월은 가고 또 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