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떠나는 날
마구술이 드디어 다시 떠납니다.
내일 아침 비행기에요. ^^
여긴 여행 후기를 올리는 곳이라 이런 글 써도 될지 모르겠지만..
지난번 쓴 후기를 보시고 답글 달아주신 분들께 감사인사를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ㅎㅎ
돌아와서 두달 정도 지났는데..
첨엔 빨리 다시 나가고만 싶고 용기도 충천해 있고 했는데..
막상 떠날 날이 다가오니 불안해지기도 하고 기대와 설레임보다는 가까운 사람들을 오래 떠나 있어야 한다는 아쉬움이 더 커져서 조금씩 흔들렸거든요. 그때마다 응원 해주시는 답글들 보며 용기를 가졌습니다.
모두들 너무 감사드려요. ^^
장기간 여행을 떠나려고 준비하다 보니 드는 생각도 많더군요.
두달 새에 부쩍 커버린 느낌이랄까?
그저 껍데기만 서른이었지 정신적으론 어린 아이에 불과했는데 이젠 주변에 대한 생각이 조금 달라졌어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걸 깨달았고..
특히 가족에 대한 생각이..
여행을 가려고 혼자 살던 전셋방을 정리하고 집으로 들어가니 어머니께서 좋아하시더라구요. 동생도 얼마 전에 독립해 나가서 많이 외로워하고 계셨거든요.
거기다 대고.. 근데 저 8월에 다시 여행 가서 쫌 오래 있다 올거에요.
했더니.. 저희 모친 한마디.
"너 태국 가서 남자 생겼냐?"
헉! 그게 아닌데...
"그냥 차라리 좋은 남자 생기면 오지 말고 거기 정착해. 나도 딸내미 덕분에 해외 좀 나가보자"
하십니다.
말씀은 그렇게 하시지만 그 속엔 이젠 너무 나이가 들어 더이상 잔소리도 할 수 없는 딸에 대한 걱정과 당신은 어려운 시절에 태어나 젊어서 즐길 줄도 몰랐고 결혼 해서는 오직 가족을 챙기는 데만 헌신하셨기에 같은 여자로서 가지는 부러움이 담겨 있다는 걸 잘 알아요.
생각해 보니.. 저희 어머니는 아버지 돌아가시고 10년이 넘게 홀로 자식들 뒷바라지 하느라 변변한 여행 한번 못 가보셨더군요. 한달에 한두번 동네 사람들과 등산이나 가시는 게 전부고.. 남들 다 가본 제주도 한번 못가보셨더랬지요.
산을 좋아하시니 금강산이라도 보내드려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외할머니랑 두분 함께 보내 드리려고 알아봤더니..
헉! 더럽게 비쌉니다. 2박3일에 1인당 50만원.. 것도 밥은 알아서 사먹어야 되고..
배도 아니고 버스를 타고 가는 것이 뭐 그리 비싼지.. 100만원이면 태국에서 한달동안 공주같이 지낼 수 있는 돈인데.. 막 아깝습니다.
지는 나가서 수백만원 쓰고 올거면서.. 못된것.
그치만 못됐어도 비싼건 비싼겁니다. 어머니를 살살 꼬셨죠..
제주도 어떨까? 할머니는 다리 아프셔서 금강산도 못 올라가실거구.. 엄마 제주도 안가봤잖아.. 택시 관광 하면 별로 비싸지도 안고 편하대요.
했더니 외려 더 좋아라 하십니다. 제주도가 더 가고싶었다구..
전부 예약을 해놓고 출국하고 싶었는데 아직 일정을 잡지 않으셔서 돈만 드리고 갑니다. 그 돈 딴데 쓰시고 놀러 안가심 안되는데.. 우리네 어머니들 잘 그러시잖아요. 당신 좋은거 하시라고 돈 드리면 결국 가족들 좋은 일만 시키시고.. 걱정이 돼서 동생한테 신신당부를 해 놓았지요.
그러곤 몇날며칠을 친구들과 송별회 한답시고 술병을 물고 살았지요..ㅋㅋ
여행의 처음 며칠은 친구들을 떼로 몰고가는 MT로 시작을 한답니다.
고등학교때부터 10년 넘게 기쁨과 슬픔을 함께했지만 이렇게 단체로 놀러가는 것은 처음이지요. 그것도 해외로.. 다들 들떠서 휴가 날짜 맞추고 비행기 표 끊고..
그런데 참 안타까운 것은 다들 빚을 내서 떠나야 한다는 거에요.
나이 서른에.. 공부도 남들 하는만큼 했고 직장도 열심히 다니고 있고 특별히 사치스러운 소비를 하고 살지도 않는데.. 월급 나오면 보험에 적금에 그닥 넉넉치 못한 집안에서 태어난 터라 가족들 생활비에.. 그렇게 조금씩 쪼개어 넣다보니 막상 여윳돈 100만원이 없는겁니다.
올지 안올지 모르는 미래에 현재를 저당잡힌 불쌍한 청춘들..
그래도 다들 그저 좋아라합니다. 잠시나마 잊고 푹 쉴 수 있다는 것에 위안을 얻으며..
그리고.. 주변의 남자아이들은 그런 말을 하더군요.
"니가 그렇게 다 정리하고 훌쩍 떠날 수 있는건 여자이기 때문이야. 남자면.. 돌아와서 다시 직장 잡고 할 생각에 감히 용기를 낼 수 없는데 그나마 여자는 시집 가면 기댈 사람은 있잖아."
물론 들어서 기분 좋은 말은 아니지만 100% 아니라고 할 수만도 없는 얘기지요.
우리나라 남자들 불쌍한 건 사실이니까..
사회의 기득권을 갖지도 못한 평범한 남자들.. 부모님께서 원하시는대로 공부도 열심히 했고 나라가 부르는대로 군대도 다녀왔고 정말 열심히 살고 있는데.. 나날이 연세가 드시는 부모님 생각에 결혼하면 아내에 자식에..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고는 해도 남자에게 무거운 책임을 지우는 게 현실이니까요.차마 다 버리고 떠나라는 말을 할 수가 없어 니들 몫까지 재미나게 놀고 오겠다고 했지요.
여자라서 서럽고 남자라서 힘이 드는 대한민국의 현실..
미래만 바라보느라 현재의 행복은 반납해야 하는..
돈에 쫒기다 보니 여유는 없고..
전셋돈 뺀데서 여행자금을 제외하고 펀드에 몽창 넣었지요.
그런데 제가 들어간 날이 우리나라 증시 최고점을 찍은 날입니다.
나날이 폭락.. 지금 10%도 넘게 빠졌더라구요.. 엉엉..
그런데 이상한 건 별로 걱정이 안된다는 거에요. 여행을 계획하면서 돈에 대한 욕심이 조금은 줄어든 모양입니다. 갔다오면 본전은 돼 있겠지. 설마 다 까먹기야 하겠어.. 그래도 별 수 없고.. 그런생각입니다.
친구 하나가 그러더군요.
젊을 때 즐기는 것도 좋지만 우리나라는 연금제도가 부실해서 유럽 선진국 사람들처럼 즐기면서 살 수 없다고..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고..
알죠.. 그래도 뭐 어쩌겠어요. 지금은 그런거 생각하기 싫은데..
암튼.. 내일이면 갑니다.
이 글을 쓰고 나서 인터넷도 정지시킬거에요.^^
먼저 따오에 다시 가서 게으름 좀 실컷 부리고 다른 대륙으로 옮길 생각입니다. 겨울에 돌아오게 되겠네요..^^
쓰다보니 원래 의도와 다르게 염장질에 우울모드가 되어 버렸네요.
죄송해요~~
응원해 주신거 다시한번 감사드려요.
열심히 자기 자리에서 일하시는 여러분이 계시기에 저처럼 일탈하는 사람도 외국에서 당당히 코리안이라고 말하고 대우받으며 다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돌아다니면서 많이 보고 느끼고.. 그만큼 제 안에 있던 집착같은 것을 버리고 돌아오겠습니다.
잘 다녀올게요.
모두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고 제가 없는 동안 대한민국을 잘 지켜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