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배낭여행3 - 고도 아유타야에서 왕조의 흥망성쇠를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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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배낭여행3 - 고도 아유타야에서 왕조의 흥망성쇠를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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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배낭여행3 - 고도 아유타야에서 왕조의 흥망성쇠를 보다!


1월 31일(토) 아유타야 - 짜뚜짝주말시장 - 쑤쿰윗 한국인상가 - 마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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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일어난 탓인지 식당에 세팅된 자리가 있다. 역시나 중국과 일본음식 코너는 있는데 한국음식은 없다.

나중에 번화가인 싸얌에서 보니 일본 스시 식당 앞에 태국의 멋쟁이 대학생들이 구름같이 모여 대기표를 받아 식당에 빈자리가 나기를....

행복한 얼굴로 기다리는 모습을 보게되는 데, 이 나라에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일본음식이 대유행하고 있다.


팁으로 20바트를 베게 밑에 올려놓고는 경전철인 BTS를 타고 전승기념탑에서 내려 아유타행 미니버스 타는곳을 찾는데 ....

책자에 표시된 곳에서 한 골목 옆쪽에 흐름한 봉고들이 줄지어 있다. 그런데 손님이 모이기를 기다리는 탓인지 어렵게 의사를 통한결과 1시간 20분이나 있어야 출발한다는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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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고민에 빠진다. 이쪽이 돈으로는 훨씬 싸다. 그러나 1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는게 영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택시를 타고 북부버스터미널 (콘 쏭 머칫 마이)로 향하는데 시내를 벗어나 황량한 갈대숲을 지나는데 멀기도 하려니와 을씨년 스러워 후회가 된다. 그냥 기다릴걸 그랬나?


2-30여곳 매표창구의 지렁이처럼 생긴 태국 글자로 된 행선지를 하나하나 확인하여 어렵사리 아유타행 매표창구를 찾았는데 여기만 창구직원이 없는게 아닌가?

어리둥절.... 옆 창구에 물으니 손가락으로 저리 가라며 뭐라 말한다. 가보니 역시 이곳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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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아가서 재차 물으니 창구 직원이 아예 문을 열고 나오더니 자기를 따라 오라는데 터미널에 대기해 있는 버스 하나를 가리키며 그냥 타란다.

버스앞을 보니 태국말로 ‘아유타야’라고 적혀 있다.


왜 이 버스만 표를 끊지 않고 타는지 내내 궁금했는 데, 달랑 5명만 태우고 버스는 출발한다.

이렇게 손님이 없어서야 기사와 차장 월급은 누가 주나고 쓸데없는 걱정을 해본다. 20살이나 되었을까?

마치 해군사관복 같은 제복을 입은 총각차장이 역시나 필통처럼 생긴 둥근 통에서 정액금액이 적힌 표를 행선지 요금에 맞추어 몇장 끊어 준다.


그런데 버스는 돈무앙 공항을 지나 가면서 중간 중간 승객을 태우는데, 중간의 시골역에서도 엄청 사람을 태워 콩나물시루처럼 되어 버렸다.

아유타야가 비교적 가까운 곳이라 차장이 직접 표를 끊으며, 시내 승객들도 외진곳의 터미널까지 오지않고 공항역등에서 기다리고 있었던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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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의 시골역에는 우리네

6-70년대 가난했던 시절을 연상하는 행색들을 대하며 마음이 찐하게 와 닿는다.

그런데 차장은 아직 아유타야 시내에 못 이른 것 같은 외진 곳에 서양인 부부와 우리를 내리란다. 순간의 망설임....


나중에 생각해보니 나머지 태국 승객들은 이 버스의 종점인 아유타야 신시가지로 가는 것이고 우리 관광객은 당연히 구시가지 옛 유적을 보러 가는 것이니 이곳 갈림길에 내리라 했는 모양이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네 시골 마을의 입구 동구나무 같은 곳에 툭툭이가 몇대 서 있고 대표인듯한 젊은 녀석이 구시가지 간다며 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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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추어몽 따올라이 송콘캅?” 한시간에 우리부부 두사람 대절료가 얼마냐고 물으니 200바트 란다.

이녀석? 누굴 바보로 아나! 그런데도 서양인 부부는 무척 싸다며 같이 타고 가잔다.

우린 비싸서 안탄다며 서양인 부부를 먼저 태워 보내고 버텨본다.


그냥 바쁠 것 없다는 식으로 드러누워 바람을 씌는데, 그들도 알고 나도 안다. 찌는듯한 더위에 지리도 모르면서 그 넓은 곳을 걸어서 돌아 다니는 것은 아예 불가능한 일이다!

택시나 마을 버스도 없는 이곳에서 결국은 툭툭이를 타야 한다는 것을...


그들은 독점상태인 것이다.

결국 밀고 당기는 흥정 끝에 1시간에 150바트(4,500원)으로 대절하여 출발하는데 지도를 보여주며 태국발음으로 하나 하나 우리가 들러고자 하는 행선지를 일러 주었다.

뚝뚝“은 경운기 처럼 생겼는데, 앞부분은 오토바이이고 뒷부분이 손님이 타는 좌석이다. 방콕 시내의 것은 앞을 보고 앉는 2인용인데, 여기 것은 옆을 보고 마주 앉는 4인승이라 엉덩이가 반만 걸쳐 지는게 너무나도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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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교외의 푸카오텅 부터 먼저 가자고 분명히 말하였는데, 이 녀석이 폐허가 된 구시가지 한복판의 어떤 건물 앞에 내려 놓으며 들어가란다.

의사소통은 안되고.... 여기가 그러니까 아유타야 역사공원 입장허가 하는 곳으로 생각하고 30바트씩을 주고 입장하니... (그러니까 여기 들러 입장료부터 내야하는 모양이다)

1층에서는 초등학생들이 빽빽이 앉아 설명을 듣는고로 2층으로 갔더니 지도 몇장과 부처님, 탑, 약간의 동전등 유물등이 있다.


방에 들어가 부처님을 캠코더에 담고 예감이 이상해 얼른 집어 넣는데 관리인이 들어오더니 사진 찍지 말라며 우리나라에서 처럼 두 손목을 가로 겹쳐 수갑을 차는 듯한 시늉을 한다.

기분나쁜 녀석 같으니라구. 어디에 사진촬영금지 표시를 해두었냐고 툴툴거리며 내려와 물을 한병 사서는 툭툭이에 올라 강을 건너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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쩨디 푸카오텅’이라 불리는 이 곳은 일명 황금산이라고도 하는데 미얀마군의 1차 침공때 침략자가 쌓은 곳으로 당연히 미얀마 양식인데...

희고 높은 탑으로 그 규모가 높고 웅장하며 아유타야의 폐허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데 계단이 너무 가팔라서 내려오는데 현기증이 나지만 따로 입장료를 받지 않아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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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왓차이왓타라람‘으로 향하니 그 규모가 웅장하여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한마디로 장엄하다.

선물가게에서 입장료를 20바트씩 받는데 손님이 많을때는 혼잡한 틈을타 그냥 들어가는 사람도 많다.


회랑의 5-60 부처님의 목이 잘려 있는게 미얀마군의 침입때 점령군의 소행이라 여겨지는데 이 사람들은 일부러 보수하지 않고 놔두는 것일까?

한국인 관광객이 도착하여 무리지어 들어오는 모습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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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뚝뚝이를 타고

왕궁으로 향하니 여긴 완전한 폐허로 흔적조차 분명하지 않은데 입구에 프라몽콘버핏사당이라 이름 불리우는 현대식 건물안에 불당이 있다.

금박을 붙이며 소원을 비는 사람들로 가득한데 양초타는 냄새가 진동하여 급히 밖으로 나오니 우텅왕의 기마상이 당당히 버티고 서 있다.


옛 왕궁안의 ‘프라씨싼펫’ 사원에 들러니 집사람은 더위에 지쳐 주저앉으며 혼자 다녀오란다.

왕실 전용사원으로 세 개의 거대하고 무척 견고해 보이는 탑안에 세명의 왕의 유골이 묻혀 있다는데 250kg의 순금을 입힌 16m 높이의 탑은 미얀마군이 약탈해 갔단다.

무덤은 일견 도굴이 불가능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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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를 해자처럼 두른 프라람 사원에는 교사의 인솔로 초등학생들이 유희를 하느라 열심인데 좀전의 서양인 부부가 뚝뚝이 안에 엉거주춤 앉아가는 모습을 마주치니 웃음이 나온다.

마지막으로 박물관으로 가쟀더니 이런? 어디서 본 모습이다 싶은데, 히어링과 눈썰미는 나보다도 나은 집사람이 처음에 들렀던 바로 그곳이란다.

그러니까 처음에 박물관으로 데려와 개괄적인 모습을 살펴보고 14개나 되는 사원 순례를 시작하는게 이곳의 관광절차인 모양이다.


하여 더위에 지치기도 하여 방콕가는 버스정류장으로 데려다 달랬더니 왠걸? 한적한 도로변에 세우더니 다왔단다.

얼른 믿어지지않아 한참 주위를 살피고는 집이라고는 두채 밖에 없는 구멍가게에 물으니 여기서 버스를 탈수 있단다.


시간을 보니 두시간반이 경과했기로 400바트를주고 기사를 돌려보내니 고맙다고 난리다. 이를 본 집사람이 흥정을 할 때나 돈을 줄때는 아무말 못하더니 나중에서야 “자기는 인심도 좋네 두배나 주고” 하며 빈정거리며 샐쭉해 진다.

이런 난감한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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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부부는 국내에서는 1년에 부부 싸움을 한번 하면 많이 할 정도인데, 여행을 나오면 보름에 서너번은 반드시 싸운다.

집사람이 겁이 많고 소극적이라 그당시는 절대 나서지 않고 바라보기만 하는데 꼭 끝나고 나면 돈을 허비했다고 토라져서 말도 하지 않고 심술을 부리곤 하는 것이다.


이 바보야! 어째 많이준 것이야? 한시간에 150바트니 두시간에 300바트이고 또 30분을 경과했으니 정확히는 375바트인데 시간당 200바트에서 깍은 것도 있고 해서 400바트 준 것인데? 그러니까 집사람이 이런다. 한시간이 걸린게 아니고?


두시간 반이나 걸린걸 한시간으로 착각했던 모양이다.

버스안에서 찬물을 줄줄 알았으면 물을 사지 않는건데... 후회가 되는데, 요금이 45바트씩을 내란다.

그러니까 물이 공짜가 아니고 5바트(150원)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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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버스터미널에 내린후 오늘이 토요일이라 40바트에 택시를 타고 주말시장인 짜뚜짝에 들러니 혼잡하기가 그지 없다.

온갖 종류의 시장이 다 있는데 ,규모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고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데 특히 서양인 관광객이 많다.


실크를 고르는데 옷은 엄두를 못내고 스카프와 천 정도를 사서 나오는데 내딴엔 그만큼 조심을 했건만 자기를 재촉했다고 집사람이 뾰로통해진다.

난 숨도 안쉬고 지켜보기만 하다가 집사람이 고르면 멋있다고, 색상이 좋다고 말한게 전부인데... 그것이 다른 것을 고르지 못하도록 시간상 제약을 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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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아까 그때 얘기 하던가 다른 것을 고르지.... 아무말 안하고 값을 치를때는 언제고 꼭 다끝나고 나면 이런다니까...

( 그래서 우리 부부는 국내에서 쇼핑을 할 때는 서로 헤어진후 2시간후에 어느 호프집에서 만나자고 약속한후 나는 서점등에서 책이나 고르다가 나중에 약속한 장소에서 만나곤 한다) 그러나 외국에서는 같이 붙어 다녀야하니 이런 다툼이 생기는 것이다)

7 Comments
castle 2007.09.20 19:53  
  태국인 들이 목 잘린 불상을 보수 하지 않는 이유는
역사의 아픔을 잊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동남아 국가중 유일하게 식민지 역사가 없어
자긍심이 대단한 태국이지만 미야만에 대한
역사적 적대감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baikall 2007.09.20 20:46  
  그렇지요? 역시 그럴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역사 바로세우기"를 대찬성하는 저이지만 김영삼 대통령이 중앙청 건물을 부수는걸 저는 반대했지요.  조선총독부 건물은 미군의 군정청 건물로.. 이어 대한민국의 중앙청으로 쓰였지요.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大日本' 의 "日"  자에 해당하는 것이 중앙청건물입니다. 그러나 "삼전도비"를 보존해야 하듯이 중앙청(조선총독부) 건물도 보존하여 그런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도록 교훈으로 삼아야지요.
baikall 2007.09.20 20:52  
  아시아 40여개국 중에서 식민지를 면한 나라가 터키, 중국, 일본과 태국 네나라입니다. 터키는 식민지를 경영할 나라이고 중국은 반식민지였으니 결국은 일본과 태국 2나라이네요.  율부린너와 주윤발의 "왕과나" 영화에...
 영국과 프랑스는 미국, 캐나다, 남아프리카, 인도, 아프리카중부등에서 식민지 쟁탈전쟁을 워낙 벌이다보니.. 서쪽 인도 버마, 말레이를 차지한 영국과 동쪽 베트남, ㄹ오스, 캄보디아를 차지한 프랑스가 다시 태국을 놓고 식민지 쟁탈 전쟁을 벌여야 하는데... 그만 전쟁의 지출이 크니 중립지대로 두기로하고 휴전했지요...
baikall 2007.09.20 20:57  
  그래도 영국은 태국이 탐이 났습니다. 하여 핑계를 만들어야 하는데...  영국상인과 태국상인이 교역을 하는 자리에 태국 산적을 돈으로 매수하여 습격을 하지요. 영화에서는 이때 영국인으로 태국왕실 여자 가정교사가 장면을 목격하는데.. 방콕의 영국인 사교모임에 참석해 이 비열한 짓이 과연 정의로운 일인지 항변하자 영국 귀부인이 했던 말이 떠오릅니다.  "정의라구? 네가 정의를 아느냐?  세계정의란 곧 영국의 이익이 세계 정의이니라..."
 그러니까 힘이 곧 세계정의이고... 그러고보면 오늘날의 세계 정의는 곧 미국의 국익입니다!!!!  미국의 국익에 보탬이 되지 않는다면 곧 "불의입니다"
걸산(杰山) 2007.09.22 12:35  
  아시아에서 식민지를 면한 나라가 단정적으로
4 나라라고 하시는 근거가 궁금하네요.

모든 게 정확하게 일치하는 건 아니지만

아프카니스탄 및 파키스탄 지역도 살펴 보시지요.
baikall 2007.09.22 19:25  
  자주 뵙네요...
제가 뭐 역사학자도 아니고... 이 글이 논문도 아니니 오류가 많이 있을 것입니다. 단지 책을 좋아하다보니 언젠가부터 제 머리에 그런 생각이 들었었네요..
  파키스탄은...  아프카니스탄쪽에서 회교로 개종한 몽골족의 후예들이 들어와 정복국가인 무굴제국을 세웠는데 파키스탄과 인도북부를 지배했지요. 그 결과 회교가 급속히 번지게 되지요....  그런데 결국 1750년대 플래시전투에서 프랑스를 격파하고 인도를 차지하는 영국동인도회사 지배에 이어 1850년대 세포이반란후 영국정부가 파키스탄을 포함한 인도전역을 직접 지배하게되고.. 1940년대 초반에 파키스탄의 진나이가 간디의 호소를 물리치고 전쟁후 영국에서 인도가 독립하면 회교도지역은 인도에서 분리하자고 주장하여 동, 서 파키스탄이라 이름했지요 . 동파키스탄은 나중에 방글라데시로 재 독립하지만...
baikall 2007.09.22 19:42  
  아프카니스탄은....
1800년대 중반에 인도를 차지한 영국은 남쪽에서 그리고 동진을 추진한 러시아는 북쪽에서 아프카니스탄을 침략합니다.
  이어 영국은 괴뢰정부를 세우고 아프카니스탄을 사실상 통치하지요.  그래도 아프카니스탄인의 항쟁은 끊이지 않아 1873년에  러시아가 개입을 하자 결국 1878년에 철수하지요.  그런데 아프칸이 러시아에 일방적으로 기울어지자 다시 영국-인도군이 침략을 개시하여 전투가 끊이지 않는데...
  최종적으로 1919년에야 영국이 아프칸의 독립을 승인합니다.  하여 영국은 이란에서 러시아와 충돌하기도 하고 협력한 경험으로 영국령 인도(파키스탄)와 러시아국이 국경을 접하지 않기 위해 아프카니스탄 국경선을 오른쪽으로 나뭇잎처럼 돌출시킵니다.  국경을 접하면 우발적 충돌이 있을수 있으니..  결국 영국은 동남아에서 프랑스와의 국경지대에 태국을 완충국으로 둔 것처럼 러시아와의 사이에 아프카니스탄을 완충국으로 정하고 100여년을 점령(물론 일부지역이고 간접적이며  간헐적이기도 하지만...) 하다가 철수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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