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다녀왔습니다] 5. 므앙삼판 Meuang Samp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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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 다녀왔습니다] 5. 므앙삼판 Meuang Samphan

vixay 2 3004

(BGM) U2 - So Cruel 음악끄려면 ESC

간밤의 미친 듯한 폭주에도 불구하고, 또 새벽에 눈이 떠 진다. 긴장하고 있는 거냐...

여덟 시가 좀 넘어서 S군이 회사의 산악용 오토바이를 빌려 타고 어제의 그 T군의 제자-미안하다. 니 이름은 정녕 기억에 없고나...-와 함께 나를 데리러 왔다. 원래는 여덟 시에 출발한다는 핫사행 버스를 탈 예정이었는데, 이 친구들이 데려다 주겠대서 출발시간을 조금 늦춘 것이다.
퉁퉁하게 생긴 T군의 제자는 왠지 얼굴만 봐도 실실 웃음이 나는 인상이다. 이 친구는 보통의 오토바이를 타고 왔는데, 자기가 내 배낭을 싣고 가겠단다. 연 이틀을 붙어 다니느라 이제는 익숙해져버린 S군의 찌든 냄새를 맡으며 핫사로 출발~

퐁살리는 1,400미터 고지에 자리잡은 동네라 물이 참 귀하다. 제일 고급 숙소라는 푸f파호텔에서도 물사정은 좋지 않았으니, 씻지 않는 S군을 이해할만도 하다. 핫사는 퐁살리에서 버스로 한 시간 정도 내려간 우강변의 나루터로, 북쪽으로는 뇻우, 남쪽으로는 므앙삼판을 거쳐 므앙쿠아까지 가는 배를 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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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살리에는 프랑스에서 많은 원조를 하고 있다. 핫사의 이 나루터 주차장과 시장도 프랑스의 원조로 만들어졌고-뒤의 입간판에 프랑스 국기가 보인다-, 마침 이 날은 프랑스 대사가 우강에 건설하는 다리를 시찰하러 왔다고 한다. 주차되어 있는 랜드크루저가 프랑스 대사의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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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터에서 올려다본 핫사 마을. 왼쪽에 나무로 버티고 있는 건 골재용 모래다. 강바닥에서 호스로 빨아올린 다음 물을 빼는 중이다.

40분쯤 걸려 핫사에 도착하고 보니 배낭을 실은 뚱땡이가 아직 안 보인다. 중간에 S군의 산악용 오토바이가 광란의 질주를 한 구간이 있었는데, 그 때 못 따라잡았나보다. 한 5분쯤 기다렸나?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 쓴 뚱땡이가 저 멀리서 손을 흔들며 오고 있다. 다리까지 절뚝거리는 게, 오다가 사고가 났나보다. 산모롱이를 돌다 갑자기 맞은편에서 버스가 나타나는 바람에 그걸 피하다 자빠졌다는 거다. 다행히 속도를 줄였을 때라 발목을 약간 접지른 거 말고는 별로 다친 데가 없다는데, 어디 사막이라도 지나온 듯, 옷이며 오토바이며 내 가방이며 할 것 없이 온통 흙투성이다. 으이그... 미안하면서도, 꼴이 좀 우습다. 연신 괜찮다는 녀석에게 가서 파스나 사 붙이라고 잔돈푼을 좀 찔러넣어 주었다.

버스보다 늦게 핫사에 도착하는 바람에,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이 먼저 므앙쿠아까지 가는 배를 타고 가 버렸다. 남아 있는 배는 중간의 므앙삼판까지 가는 것밖에 없다. 그것도 사람이 모자라 가네 마네 한참 실랑이를 하다가, 배삯을 조금씩 더 얹어주기로 하고서야 겨우 출발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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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요금협상이 타결돼서 배를 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반바지 입은 사람이 사공이다. 웃으면서 튕기지만 말고 빨리 좀 깎아줘요.

다행히 므앙삼판에 S군의 자형이 산대서, 오늘 안에 므앙쿠아까지 못 가면 거기서 하루 신세를 지기로 했다. S군은 혹시라도 내가 헤맬까봐, 배에 같이 탄 므앙삼판 사람에게 어디 사는 자기 자형한테 나를 꼭 데려다주라는 신신당부를 하고서야 돌아섰다. 이틀이나 회사를 빼먹고 나랑 놀아주느라 고생했다. 내 다음에 꼭 다시 찾아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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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출발! 안녕, 퐁살리...

세 시간 정도 걸려 므앙삼판에 도착하고 보니 생각보다 훨씬 작은 동네다. 작은 학교가 하나 있고, 학교 운동장 주위로는 쓰러져가는 나무 오두막들이 늘어서 있는 게 마을의 전부다. 이 마을은 학생들이 주로 사는 기숙사촌이라고 한다. 그 쓰러져가는 집들 중에서도 제일 작은 축에 드는 곳이 S군의 자형, 또 S 아저씨의 오두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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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운동장을 둘러싸고 있는 집들이 학생들의 기숙사이다. 말 그대로 '다 쓰러져간다.' ㅜ_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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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cle S's Cavin. 기둥은 튼실해보이지만, 바닥이 너무 얇다. 잘못 디디면 쑥 빠져버릴 것 같았다.

웬만하면 바로 게스트하우스가 있는 므앙쿠아로 가고 싶었지만, 벌써 오후가 돼서 오늘은 더이상 므앙쿠아로 내려가는 배가 없고, 차가 다니는 육로도 없다는 이야기에 그냥 포기하고 눌러앉기로 했다. 하지만, 팍 눌러앉기에 S 아저씨의 오두막은 너무 허술해 보였다. 조심스럽게 사다리에 가까운 계단을 오르는데도 집 전체가 흔들흔들... 조금만 뛰면 집 하나 무너뜨리는 건 전혀 어려울 것 같지 않았다. 손님접대 준비로 분주한 S 아저씨 옆에 갓 시집온 새색시마냥 조신하게 앉아 있다가, 해지기 전에 동네 구경이나 할 요량으로 다시 조심조심 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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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강변을 따라 늘어선 집들. 왼쪽에 보이는 길을 따라 쭉 가면 읍내가 나온다.

2km쯤 떨어진 곳에 므앙삼판 읍내가 있었는데, 새로 짓고 있는 병원을 제외하곤 이렇다할 변변한 건물도 하나 없는 완전 오지마을이었다. 게스트하우스 하나 없고, 육로도 없이 오로지 배로만 갈 수 있는 곳. S 아저씨가 사는 동네는 이 작은 읍내에서도 떨어진 학사촌인데다, 거기서도 학생들이 얼기설기 만든 기숙사를 제외하고는 제일 작은 집이니... 아까 집나오기 전에 아저씨가 늦은 점심밥에 반찬으로 해 주신 계란부침조차 호사였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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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나루터 근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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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내 쪽에서 본 아저씨의 마을 앞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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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 아웃

조그만 구멍가게가 하나 있어 S 아저씨의 두 딸에게 선물할 머리핀을 사고 집으로 돌아왔다. 마침 산에서 내려오는 물에다 연결한 수도가 잠깐 작동하는 중이었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한 시간 정도씩 발전기를 돌려 물을 끌어오는 거라는데, 그 아까운 물을 쓰기가 미안해서 그냥 강으로 내려가 대충 씻었다. 이 동네에 외국인이 머무른 건 거의 처음이라는데, 목욕하는 걸 구경하려는 애들이 몰려들어서 완전 동물원 원숭이가 된 기분이다. 얘들아, 목욕할 때만은 관심 좀 꺼주면 안되겠니... 내가 다 씻고 놀아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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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중인 아이들. 잘 씻기보다는 장난치기 바쁘다.

씻고 집으로 올라오자마자 이내 어두워진다. 다행히 전기가 들어오기는 하는데, 강에다 조그만 수력발전기를 설치해서 몇 집이 나눠 쓰는 거라 전력량도 얼마 안되고 전압도 오락가락하는 것 같다. 아랫집에서 동네에 유일하다는 TV를 켜자, 이 집의 전구가 나가버린다. 저녁내 꺼졌다 켜졌다를 반복하던 두 개의 전구 중 하나는 아홉 시쯤에 드디어 터져버리고 말았다. 이를 어째... 저건 아까 아저씨가 손님 왔다고 새 전구 사 와서 갈아 끼운 건데...

아저씨는 초 한 자루에 의지해 저녁상을 차려주셨다. 메뉴는 새로 지은 찰밥과 삶은 닭. 닭은 아까 집 앞에서 놀던 놈을 아저씨가 직접 잡은 거다. 아저씨는 연신 대가리와 발을 먹으라고 내 쪽으로 밀어주신다. 퐁살리에서 소문을 들은 바에 의하면, 손님에게 대가리와 발을 대접하는 게 이 동네의 예의라고 한다. 닭발만 겨우 한 개 뜯는둥 마는둥 하다가 대가리는 끝까지 사양하고 안 먹었는데, 혹시라도 큰 실례를 한 건 아닌지. 아저씨, 죄송합니다. 닭대가리는 마음으로 다 먹었어요.
아저씨는 닭대가리를 유심히 살피시더니, 내가 좋은 인연이라 꼭 다시 만나게 될 거란다. 손님접대용으로 닭을 삶았을 때, 부리가 비틀어지지 않고 잘 아무려지고, 볏이 깨끗하고, 발이 가지런히 잘 오그라들었으면 인연이 좋은 거라는 설명이다.

셋째 아기를 가졌을 때 임신중독에 걸린 부인은 돌팔이 의사의 진단만 믿고 만삭이 되도록 별 조치 없이 앓기만 하다, 결국 출산 무렵 아기와 함께 저세상으로 가셨다고 한다. 아저씨는 2000년에 그 일을 겪은 후, 혹시 새엄마를 얻으면 애들한테 문제가 생길까봐 여태 재가도 안 하고 혼자서 애들을 키우고 계신 거라고... 지금은 므앙삼판 초-중학교의 관리업무를 맡아 하면서, 공부하는 애들 보는 게 유일한 낙이라는 아저씨. 큰 도시에서 나름 좋은 교육을 받고서, 다른 괜찮은 곳에 취직할 기회가 있었는데도, 이 두메로 들어와 교육사업에 힘을 쏟고 계신 S 아저씨를 보면서, 수도에 돌아가는 대로 나도 뭔가 이 아저씨와 아이들을 도울 방도를 연구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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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아저씨의 두 딸과 친구(하늘색 옷). 한복입은 꼬마들의 놀이가 그려진 엽서를 선물로 줬는데, 셋이서 한참을 들여다 보더니 '잘 봤어요' 하면서 돌려준다. 그거, 너희들 가지라고 준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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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앞집에 둘이서 사는 형제, 그리고 아저씨 딸 친구와 그 언니. 넷 다 난생 처음 사진을 찍어 본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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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근처. 건기의 막바지인데도 새잎이 돋아나 연두색이 꽤 보였다.
2 Comments
파랑까마귀 2006.11.15 18:15  
  여행을 하다보면 '닭대가리'가 당황스럽게도 또 훈훈하게도 만들더군요.^^
vixay 2006.11.16 09:25  
  파랑까마귀님도 닭대가리 추억이 있으신가봐요? 반갑습니다, 동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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