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혼자 백조 기념여행기 4. 깐차나부리, 콰이강의 다리.
따라라 따라라라, 따라라 따라라라 달린다 달린다아~
(윤종신의 팥빙수 노래 가사를 무시하고 부르는 노래 ㅋ)
자전거를 굉장히 좋아한다....
대학때는 자전거로 학교를 통학하기도 했는데,
나의 빛과 같은 빠른 속도에 지나가는 초딩들이 날 보고 '폭주족이다!'
라고 말한 적도 있고...
술 먹고 자전거 타다가 역시 술먹고 비틀거리는 아저씨의 발등을 치고
도망.. -_- 간 적도 있고..
두 손 놓고 타는 건 기본,
특히 내리막길에선 하늘로 날아갈것 같은 스피드감에
두 손을 놓고 내리막길 바로전까지 열심히 구르다가 딱 페달을 떼고
두 팔 사이로 바람을 가르며 희열을 느끼기도 하며..
제주도 자전거 일주때 정확히 3일 14시간만에 완주!
다른 자전거 여행자들이 나더러
' 사이클 선수세요?' 라고 물었을 정도로.... 설마 다리 굵기를 보고? -_-;;;
암튼 자전거를 좋아한다.
깐차나부리에서도 다른 태국 마을처럼 여행자들이 오토바이를 많이
타고 다닌다..
하지만 난 오토바이보다 자전거가 좋기 때문에, 깐차나부리를
자전거를 타고 돌아보기로 하다.
어젯밤은 호러 -_-; 였지만 오늘 아침은 기분이 좋다.
언제 비가 왔냐는 듯 해가 쨍쨍, 정원에서 새는 짹짹.
아침먹으러 졸리프록에 슬렁 슬렁 걸어가는데,
어제 맡겨둔 내 빨래감이 빨랫줄에 걸려있다 ㅋㅋ
우리집 같애..ㅎㅎ
강한 햇볕 아래에서 바짝 마를 옷들을 생각하니 기분도 뽀송뽀송해진다.
지도를 보니까 콰이강의 다리가 별로 멀지 않다.
뭐 투어도 있다고 하는데, 투어는 사실 별로 관심이 없다....가 아니라
투어 시간까지 기다렸다가 여행사에 갔는데,
그날 투어 하는 사람이 나밖에 없댄다 -_-
호랑이사원에 가고 싶었는데, 나 혼자 가면 호랑이가 미쳐날뛰어도
먹을게 나 밖에 없으니까... 그런 100%의 확률을 뒤집어쓰고
가고싶진 않다... 난 살아남아야 한다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띄고
이 땅에 태어났다...!
편한 카고 반바지에 주머니에 카메라, 돈을 넣고 빈 손으로 가볍게
자전거를 빌리고 가벼운 맘으로 출발한다. 날씨가 그리 덥지도 않고,
시골길을 자전거로 달린다는 기대감에 한껏 부풀어 있다..
열심히 페달을 밟는다. 반대쪽에는 콰이강의 다리를 보고 오는 듯한
여행자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달린다.
쳐다본다. 웃는다. 나도 웃어준다.
다만 쟤가 갑자기 유턴해서 차선을 바꿔 나한테 와서 오~ 너 나 좋냐?
울 한번 같이 놀아볼까? 라고 하지 않을 정도의 은은한 미소만 보낸다...
왠지 사람이 두렵다 -_-;
시골길..
우리나라에 태어났더라면 웰빙 유기농닭이라는 이름을 가지고있었을
시골 토종닭들이 힘차게 발톱으로 땅을 헤치고 부리로 쪼아 먹을 것을 찾고 있다.
어미닭의 힘찬 발짓으로 땅이 헤집어지면, 병아리들이 뺙뺙 거리면서
우~ 달려들어 헤집어진 땅에서 뭔갈 열심히 주워먹고
다 먹었다 싶음 어미닭이 열심히 또 다른곳으로 뛰어가서 헤집어주고
병아리들은 정신없이 먹고..
한국에서라면, 서울에 있었더라면 보지 못했을 광경,
보았더라도 이렇게 자전거를 멈추고 서서 한참 지켜보고 있지 않았을 여유
난 그걸 지금 여기에서 누리고 있다.
마음이 여유로워서인지, 젤 좋아하는 닭인데도 뭐 먹고 싶다거나 ㅋ
그런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쟤네들은 내 여행을 풍요롭게 하는 자연의 일부야~ 라는
호방한 호연지기 마인드만 내 마음이 뭉실뭉실 피어오른다...
좀 달리다 보니, 가는 중간에 사원 비스무리한게 나온다.
무슨 탑인데, 아마 세계대전 희생자들을 위한 위령탑이 아니었을까
추측을 해본다... 사실 영어로 된걸 읽었는데 읽고 돌아서면 까먹는다. -_-
사원에는 커다란 꽃나무들이 화려한 색깔의 꽃을 자랑하며 서 있고..
때마침 불어오는 살랑이는 바람에 꽃잎이 한잎.. 한잎.. 지고 있다.
자전거를 타고 느릿한 삶을 사는 깐차나부리의 여행자로서
나는 그 광경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자전거를 끌고 들어가 아무도 없는 탑 공원에 앉아서
바람이 불고 꽃이 지는 광경을 본다.
나..... 참선하나봐 -_- ;;
사진 한번 찍고 가면 되는걸 그저 바라보고만 있는 거야..
꽃이 꽃잎이 지는게 아니라 꽃 채로 진다.
동백꽃같이 섬찟할만큼 동강 떨어지는것은 아니지만,
- 동백꽃 떨어진 선운사뒷산에서.. 동백꽃으로 뒤통수를 맞아본 경험이
없는 사람은 동백꽃의 슬픔과 아픔을 논할 수 없다 - 빨갱이꽃- ㅋ
사뿐 내려앉는 연분홍빛의 꽃은 꽃 전체로 떨어지는게,
왠지 전쟁으로 얼룩진 태국의 지난 역사를 애도하는 것 같아
약간 슬퍼지기도 했다.
앉아서 꽃 지는 걸 보며 쉬다가 다시 출발..!
콰이강의 다리에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이 더 많아진다.
단체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보이기 시작하고,
왠지 북적북적한다.
그리고 드디어 나타났다. 콰이강의 다리!
콰이강의 다리라는... 소설이 있다.
일본청년대신에 태국에 끌려가서 군속으로 일하는 조선청년들의 이야기,
그안에 역시 끌려온 조선처녀 위안부들.. 그리고 전쟁후 재판,
그 이후의 역사까지 그 때의 상황을 생생하게 그려놓은 소설.
그 콰이강의 다리가 내 눈앞에 있는 거다..
다리는 철교이고, 이 다리 위로 무슨 야인시대에 나오는 기차같은
낡은 기차가 하루에 네번 지나간다고 한다...
다리에 관광객이 우글거리다가 기차가 지나가면 얼른 기차길옆으로
피하기도 하고..
워낙 기차가 느려서 ㅋㅋㅋ 기차가 저 멀리서 보여도
별로 위험하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을 정도로 꼭 장난감 같기도 하다.
다리 위를 건너는데, 철근으로 만들어진 다리 아래로 강물이 보인다.
강위에 서 있다고 생각하니 왠지 다리가 후들후들...
다리 위에 좀 넓은 철근과 좁은 철근이 있는데,
당연히 사람들은 다들 넓은 철근으로 지나가기를 원하는 거다..
그러다가 앞에서 오던 사람과 앞으로 가던 사람이 딱 만나면!
외나무다리에서 원수 만난격 ?
서양여행자들, 특히 남자들은 살짝 웃어주며 비켜나는데...
절대 안 비키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은 중국단체여행객들.
다리 어느정도 끝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데..
멀리서 파란모자 노란 모자를 쓴 동양인들이 하나둘 씩 눈에 띄더니
갑자기 우글거리기 시작한다.
그 우글거림의 증가추세는 3단계 완벽 업글된 20 해처리에서 뛰쳐나오는
무한 저글링 개떼를 방불케 하는 모습으로..!
이러다가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 같아서 발걸음을 열심히 옮기는데,
한번 맞닥뜨린 중국인여행객들은 절대 비켜주지 않고 내가 비켜야 하며..
비키려고 해도 뭐 이건 비킬 공간도 없고,
좀 비켜달라고 제스춰를 써보면 쨍쟁거리는 중국말로 네가 비키란 듯한
뉘앙스를 풍기며 말을 하며, 뒤에선 왜 안 가냐고 역시 쨍쨍거리는 중국말로
나와 맞닥뜨린 중국인여행객한테 뭐라 하는 소리에...
gg 칠 수 밖에... -_-;;
무사히 인해전술의 중국인을 뚫고 다리를 빠져나왔다.
-_- 살아남았다....
배고픔과 목마름이 밀려온다...
노점상을 기웃거리다가 코코넛을 파는 곳 발견,
후딱 하나를 쥐고 시원한 나무그늘에 앉아
이제는 편안한 마음으로 무한저글링개떼 중국인들과 몇몇의 마린 서양인 여행객들의 한판을 지켜본다... ! Go,Go,Go!
오래가지 않아 서양인 여행객들도 gg를 선언하고 돌아나오니,
맵에 온통 노랗고 파란 모자들이 우글거리는 것이 게임 끝.... -_-
혼자 오니 이게 좋다.
내가 앉아있는 나무그늘은 작아서 한 사람 앉으면 끝이다.
두 사람 이상 앉으면 나무 뒤에 있는 상점 아저씨가
안 그래도 간판 가린다고 눈치주는데 왠지 쫓아낼 것 같다..
1인용 나무그늘에 혼자 앉아서 쉴 수 있는게 좋다.. -_-
물론 안 좋은 점도 있다.
역사적인 콰이강의 다리에서 나도 그 다리에 내 두발로 갔다 온걸
남기고 싶어 사진을 몇 장 찍었으나...
결과는 참담했다.
다음까페 오불여행자 회원이라면 한번 보셨을 그런 사진...
다시 공개한다.
혼자 여행의 유일한 단점.....! 혼자 놀기 기념사진의 결정판!
카메라를 레일바닥에 올려놓고 한번은 너무 낮게 잡아서 다리만..
한번은 너무 높게 잡아서 내 머리끝만...
잘 잡았는데, 오토샷 맞춰놓고 도망가 포즈잡으려는 시간이 넘 짧아서
도망가는 모습만... -_-
그런 날 보고 있던 어떤 미국인 커플의 도움으로 무사히 한 장 남기긴 했다만.. 얼짱각도를 모르는 얘네들의 사진은 뭐... 날 기형적으로 만들어놓기 충분했다.. 이건 비공개. 무덤까지 갖고 가야 한다아아아..ㅠ
잠시 파킹했던 자전거를 가지고 마을 반대방향으로 슬슬 몰고 나간다.
콰이강의 다리 반대쪽으로 죽 늘어선 노점상들의
꼬치 지글거리는 냄새에, 기름 냄새에 배가 고파져 다시 자전거를 세우고
맛있어 보이는 걸로다가 몇개 골라서 옆 보도블럭에 앉아서
열심히 먹었다.
목이 말라서 콜라도 한잔,, 아니 한 봉다리 ㅋ 십오밧짜리.
꼬치노점상은 젤 맛있는 데로 골라서 사먹고,
맛과 상관이 없는 음료수 노점상은 이빨 다 빠진 할머니와 순박하게 생긴
며누리로 보이는 가장 허름한 곳에서 사먹는다..
왠지 나 같애서 -_-;;;
배를 채우고 다시 자전거를 출발.
철길을 건너고 뒷마을까지 쭉쭉 간다.
차가 없다. 자전거를 타기엔 아주 좋은 날씨.
그리고 마치 일요일의 오후와 같은 권태감마저 느껴지는 조용한 거리..
그냥 쉬고 싶은곳에서 쉬고.
가고 싶은 곳은 간다.
그렇게 시골길을 자전거를 구르며 다시 배가 꺼질 때쯤
(배 꺼치려고 자전거 탄거 절대 절대 절대 아님.... 절대 아님...절대.. ㅠ)
다시 자전거를 돌려 노점상이 늘어선 곳에 가고,
역시 젤 맛있게 생긴걸로 다가 몇개 골라서 또 먹고..
오는길에 마실 음료수도 한 봉지 사고 ㅎㅎ
이제 숙소가 있는 여행자 거리로 방향을 바꾼다.
오후가 되고, 이제는 난 콰이강을 보고 돌아나오는 여행자가 되어,
콰이강을 보러 가는 여행자들에게 미소를 보낸다.
의외로 걸어가는 사람도 꽤 있다.
걸어가면... 한 삼사십분 정도 걸릴것 같다.
자전거 타면 십오분이나 걸릴까?
나처럼 유유자적 해찰하고 다니면 역시 삼사십분 걸린다 -_-
신기한건 콰이강의 다리에서 여행자 거리로 오는 큰길을
가로지르는 작은 골목길들이 있는데,
그 골목길들의 이름이 국가들인거다...
코레아 거리도 있고... 뭐 영국 거리도 있고... 그렇다 ㅋ
신기~
깐차나부리 오기전에는 코레아 거리가 있길래 오~ 한인타운인갑다 했는데
개뿔이다 ㅋ
여행자 거리에 다시 도착..
오후인데, 쉬기는 아직 체력이 쌩쌩하다..
게다가 배도 아직 덜 꺼져서 또 먹을 수도 없다..
뭐 먹기 위해 여행하는 거냐고 비아냥 거린다면
참나...
그렇다-_-;; 어떻게 아셨수? ㅋㅋㅋㅋㅋ
길거리 음식 잘 먹으려고 오기전에 A형 간염 예방접종까지
하고 온 사람이라우...
깔깔깔..
어쨌거나...
이제는 여행자 거리를 그대로 지나쳐 깐차나부리 시내쪽으로 나간다.
여행자 거리의 다른 반대쪽이 콰이강의 다리고,
그 여행자 거리를 지나쳐서 쭉 가면 연합군 묘지가 나오고,
연합군 묘지를 지나치면 깐차나 부리 시내가 나온다.
따라라 따라라라 따라라 따라라라 달린다~ 달린다~
또 노래를 맘대로 부르며.....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