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갱이꽃님의 루트를 따라서 - 끄라비로 가자~
[1] 떠나자~~
평범한 회사원들이란 다 그런 것이 아닐까?
연말이 다가오면 인사고과다 조직개편이다 하면서 일이 바쁜 가운데서도 업무 외적인 것들로스트레스 받는 일
많아지고, 왠지 뒤숭숭해지는 한편 올 한해도 또 이렇게 가는구나 하는 허탈함이 드는 건...
12월초에 달력을 넘기다가 우연히 발견한 사실 하나.
19일 대선 이후로 이런 저런 일들이 겹쳐서 하루 일하고 하루 쉬는 징검다리 연휴가 1월 1일까지 계속 된다는
것.
한참 고민하다가 그냥 태국으로의 여행을 결정해 버렸다.
22일경부터는 항공권 가격이 너무 비싸져서 20일부터 연차를 내고 19일 오전 11시 30분 항공편을 예매했다.
(며칠 차이로 가격 차가 무려 20만원 가까이 난다는 사실..)
그리고 또 정신없이 지내다가 떠나기 이틀 전에야 깨달았다.
여행 스케쥴과 숙소 예약을 하나도 안 해 놓았다는 걸.. TT
그냥 책 한 두권 들고 어디 섬에 들어가 버릴까.. 아냐, 지난 번에 하루 코스로 갔다 온 깐짜나부리나 다시 가 보
는 건 어떨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태사랑에서 빨갱이 꽃님의 글을 읽고 자극을 받아서 결정해 버렸다.
그래, 나도 끄라비 - 피피 - 푸껫을 하루씩 돌아보는 거야..
바야흐로 계절은 유럽애들이 떼거지로 몰려다니는 크리스마스 시즌.
태국의 계절은 건기. 낮에는 더워도 밤에는 시원해지고, 비는 별로 안 오는 최적의 여행시기.
휴양지로서의 분위기는 지금쯤이 최고조일테니 이럴 때 한번 쓱 하고 훑어보고 오는 것도 괜찮을 듯 싶었다.
2002년에 사서 계속 유용하고 써 먹고 있는 헬로 태국 책을 펴 들고는 일정부터 짜기 시작했다. 그리고, 숙소
(음.. 나이가 30대 중반을 넘어가기 시작하니, 숙소만은 비싸더라고 편하고 좋은 곳을 찾게 된다. 하루를 걸어
다녀도 밤에는 푹 쉴 수 있고, 수영장까지 딸려 있어 책 읽을 수 있는 곳이면 더 좋다는..)를 찍어서 아는 곳에 예
약을 부탁했다.
그런데, 예약이 안 된단다.. 유럽애들은 보통 3일에서 일주일씩 머무르기 때문에 하루 씩은 방을 예약 안 해 준
다는.. TT. 직접 가서 현지에서 알아봐야 한단다.. 처음부터 왠지 꼬이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또 한가지 불안한 건, 피피섬에서 찍은 숙소 두 곳은 모두 현재 문을 닫았단다. 쓰나미로 쓸려 나가서 아
직 복구가 안되었다는..
왠지 다른 정보들도 오래되어 맞지 않을 것 같은 불안감에 '가이드북을 새로 사야 하나' 생각이 들었지만, 태국
한 두번 가는 것도 아니고, 뭐, 바껴야 얼마나 바꼈겠어 하는 괜한 자만심에 그냥 있던 책 들고 가기로 했다. (태
사랑에서 업데이트 받을 시간도 없었다는..)
19일 아침, 서둘러서 일착으로 투표를 마치고,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오후에 도착해서 맛사지 받고 다음날까지 스쿰빗 인근을 책 한권 들고 어슬렁거리다가 대부분의 짐을 호텔 로비
에 맡겨두고 조그만 백팩 하나만 멘 채 끄라비로의 여행을 시작했다.
(24일에 방콕으로 다시 돌아 올 예정이었기 때문에 숙소에 짐을 맡겨 두는 것이 편했다는..)
[2] 휠람퐁 역
끄라비까지는 버스로 내려가고 푸켓에서 올 때는 비행기로 올 계획이다. 빨갱이꽃님과 같은 방식..ㅎㅎ (항공편
은 인터넷에서 Air Asia를 예약해 두었다. 가격은 한화로 환산해서 대략 5만원 조금 넘는 정도. One To Go는 지
난번 사고 때문에 도저히 탈 엄두가 안 난더라는.. 목숨 건 스릴을 즐기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 저가 항공사
는 그나마 타이항공 계열인 녹에어와 국제적인 저가 항공인 Air Asia가 괜찮아 보인다)
헬로 태국을 보니 끄라비로 가는 버스는 남부 터미널 (콘 쏭 싸이 따이)에서 출발한다고 한다.
스쿰빗 지역에서 이동하려면 MRT로 휠람퐁 역까지 가서 그곳에서 택시를 타는 게 가장 빠르고 편해 보인다.
휠람퐁 역에 도착하니, 어라.. 바로 옆에 기차역이 있다.
음.. 기차로 내려가는 것도 좋지 않을까? 태국에서 기차는 아직 한번도 안 타봤는데..
야간에 편하게 침대에 누워서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가는 것도 버스 이층 맨 앞자리에 앉아 가는 것 만큼 멋있지
않을까? (빨갱이꽃님의 '이층버스 맨 앞자리에서 바라보는 밤 하늘'은 버스 여행을 결정한 가장 중요한 모티브
였다)
구경도 할 겸해서 겸사겸사 들어가보니 왠 걸.. 티켓부스에 안내가 전부 태국어로도 되어 있다. 쓰읍.. 끄라비로
가는 기차가 있는지를 확인해야 하는디..
두리번 거리다 인포메이션을 발견하고는 물어보니.. 음.. 역시 말이 안 통한다.
저도 답답한 지 그냥 노선도 한장을 건네 준다.
노선도를 보니 끄라비로 가는 건 없다. 갑자기 가이드북의 태국전도가 생각나서 꺼내보니 끄라비로 연결되는 기
차노선은 안 보인다. 쯥.. 없나보다.. 그냥 버스 타야지..
여긴 휠람퐁 역 내부..
태국인들은 죄다 자리에 앉아서 멍하니 TV보면서 시간을 때우고 있는데, 역시 서양애들은 다른다. 가족끼리 온 것 같은데, 그냥 바닥에 죽치고 앉아서 카드 게임을 하고 있다.
역시 더운 지방이라 그런 건가.. 화장실과 함께 '샤워실'도 같이 있다.
[3] 남부 터미널 (콘 쏭 싸이남)
남부 터미널이 최근에 이전했다고 한다. 가이드북에는 삔까오쪽으로 되어 있어서 원래는 삔까오 다리 건너에 내려 맛사지 좀 받고 (이 지역은 맛사지 가격이 아주 싸다. 2002년 무렵에는 두시간에 180밧이었다는.. 지금은 좀 올랐겠지만..) 천천히 걸어갈 계획이었는데, 좀더 먼 곳으로 이전했다는 말에 그냥 택시로 바로 이동하기로 했다.
새로 이전한 터미널은 휠람퐁 역에서 길 안막히고 100밧 정도의 요금이 나오는 거리다.
건물은 깨끗한게, 에까마이의 동부 터미널과는 천양지차다.
자..그럼 이제 2층 버스 맨 앞자리를 확보할 차례..
그런데, 도무지 감이 안 잡힌다. 가이드북을 보니 VIP버스와 에어컨 1등버스, 에어컨 2등 버스가 있다는데, 이 중에서 어떤 게 빨갱이꽃님이 탔다던 2층 버스인지 헷갈린다.
420밧인가를 내고 VIP 버스를 타셨던 것 같은데, 티켓부스에 물어보니 VIP 버스는 920밧이란다.. 허걱.. 이게 아닌 거 같은디.. 게다가 좌석도 24석짜리.. 24석이면 아무리봐도 2층 버스는 아니다..
주변을 둘러봐도 태국인들 뿐이라 마땅히 물어볼 곳도 없고, 그나마 영어 한 두마디 하는 티켓부스 직원은 줄서서 기다리는 사람들 때문인지 불친절하다. 다행히도 인포메이션 부스를 발견.. 물어보니 역시 영어가 짧은 관계로 친절하게 글로 쓰면서 설명해 준다.
VIP 버스 : 920밧. 24석. 좌석 간격이 넒고 뒤로 완전히 제쳐서 편히 잘 수 있음. 화장실 O.
우리나라 공항 리무진 같은 버스
에어컨 1등 : 592밧. 40석. 2층 버스. 화장실 O
에어컨 2등 : 48석. 화장실 X.
드뎌 찾았다. 에이컨 1등 버스. 바로 이 넘이었다.
근데, 592밧이라니.. 왜 이렇게 비싼 거지??
이것도 여행사에서 예약을 해야 싸지는 건가? 설마, 항공편도 아니고 버스인데.. @@
여하튼, 우여곡절 끝에 에이컨 1등 버스 좌석을 끝었다. 이제 남은 건, 빨갱이꽃님의 비법대로 서양애들이 짐 싣느라 지체하고 있을 때 재빨리 올라가서 2층 맨 앞 좌석을 확보하는 것 뿐.... 조그만 백팩 하나가 가진 짐의 전부라 이건 자신이 있다는..ㅎㅎ
어라.. 근데.. 이건 또 뭐지.. 티켓에 떡하니 쓰여 있는 이건 '좌석 번호'???
허걱.. 좌석이 지정되어 있잖어.. 이런..덴장..
아무리 봐도 뭔가 이상하다.. 빨갱이꽃님이 몇년전에 갔다온 것도 아닌데, 이렇게 다를 수가..
좌석 위치를 확인해보니 2층 중간쯤이다. 맨 앞자리가 아닐 바에는 차라리 편하게 라도 가야지하는 생각에 6시 30분(7시 30분이었나.. 며칠지났다고 벌써 기억이.. 쯥..)에 출발하는 VIP버스로 표를 바꿨다..
좌석이 얼마 남지 않아 좋은 자리는 못 구했지만, 그래도 다행히 화장실 바로 앞은 아니다.
화장실로부터 그래도 좌석 1개는 건너서라는.. (그게 그건가.. 여행 중에 누군가 큰 일 보러 안가기만을 기도할 수 밖에.. TT)
[4] VIP 버스
처음가는 장거리 버스 여행이라, 그래도 예전에 읽은 여행기들을 떠올리면 나름 이것저것 준비를 했다.
에어컨 버스는 너무 추우니 담요나 긴팔이 필수라 했지.. 그래서.. 준비했다. 담요..
태국으로 들어오는 타이항공에서 블랭킷을 하나 슬쩍 했다는..
아..쯥.. 아직까지도 맘에 좀 걸린다.. 꼭 필요하기는 한데, 살려고 해도 살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그래.. 그 동안 내가 타이항공에 올려 준 매상이 얼만데, 이거 하나쯤 나한테 사은품으로 줬다고 생각해줘.. (쯥.. 이런 궁색한 변명하고는.. TT)
12시간 짜리 여행이니 마실 물과 빵 하나, 그리고 간식거리도 준비했다.
저녁도 배불리 먹고.. (터미널 내에 푸드코트가 있다. 맛사지 삽도 있고..)
드디어 버스에 탑승. 버스는 생각보다 괜찮다. 좌석도 편안해 보이고.. 그래.. 좌석...
끄아악.. 이게 뭐야.. 좌석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이건... '담요' 잖어..
그랬다.. 역시 VIP 버스였다. 기본적으로 담요를 제공한다는..
아.. 덴장.. 그렇게 마음 졸여가며 담요를 슬쩍 해왔건만.. 기본으로 제공이 되는 거였다니..
이 글을 빌어 타이항공 관계자분들에게 다시 한번 사과를.. 끄흐흐.. 필요도 없는 걸 괜히 가져와서는 돌아다니는 내내 짐만 되었다는..
그래, 그래도, 물과 빵과 간식거리 사온 건 잘한 거겠지.. 였으면 그나마 나았을텐데..
역시 VIP 버스다.. 출발하자마자 물, 케익, 과자를 나누어 준다. 쓰읍..
그냥 몸만 타면 되는 거였는디..
VIP 버스 좌석은 뒤로 많이 제쳐지고 다리 받침도 있어서 그래도 편히 잘 수 있었다.
커다란 창 밖으로 '2층 버스 맨 앞자리' 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밤하늘과 주변 경치를 보며 갈 수 도 있었고..
잠이 들었다가 깨니 휴게소에 들른다.. 빨갱이꽃님의 글에서 읽었던 그대로다.
12시쯤 된 것 같다. 화장실에 들렀다가 나오는 길에 보니 쌀죽(카우 똠)을 팔고 있다.
자다 깬 관계로 다른 건 먹기가 좀 부담스러운데, 죽이라니 딱이다.
타올라이 캅? (얼마?)라고 물어보니 티켓이 있냐고 물어본다. 티켓? 버스 티켓 말하는 건가?
버스 티켓을 보여주니 옆에 있는 VIP라고 쓰여진 식당으로 가란다.
알고보니 VIP 버스 티켓에서는 무료 식사 티켓이 뒤에 따로 붙어 있더라는..
휴.. 그냥 지나쳣으면 아까운 티켓 그냥 날릴 뻔했네..
빨갱이꽃님은 돈 내고 먹어야 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이것도 좀 다르네..
좀 비싸기는 하지만 VIP 버스를 이용한 장거리 여행은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점을 빼면 꽤 할만한 것 같다. 많이 피곤하지도 않고, 이것저것 알아서 챙겨주니..
[5] 끄라비 타운에 도착
다시 잠이 들었다가 동이 터 올 무렵에 끄라비에 도착.
나도 역시 모또(오토바이 택시. 태국사람들은 모터사이클을 모또싸이 라고 발음한다는..)를 잡아타고 끄라비 타운으로 이동했다.
숙소는 짜오파 선착장 옆에 있는 타이호텔. 끄라비타운에서 '호텔'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몇 안되는 곳 중 하나이다. 직접 보니 호텔이라 하기에는 좀 그렇지만..
로컬 여행사를 통하면 그래도 좀 싸게 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시간이 이른 관계로 문 연 곳이 없다. 워크인 가격을 물어보니 말이 호텔이지 시설답게 그렇게 비싸지는 않다. 또한, 왠 일인지 오후 2시까지 안기다리고 바로 체크인 시켜준다. 사실 아침 일찍 도착하기 때문에 오후까지는 배낭을 메고 돌아다녀야 할 줄 알았는데.. 손님이 별로 없어서 그런건가??
성수기라 해도 대부분의 손님은 아오낭 해변이나 라일레이 해변 쪽으로 가니, 끄라비타운에는 사람이 많지 않다. 끄라비 타운은 해변도 없고, 별로 볼 것도 없는 그냥 한적한 시골 읍 같은 분위기인지라.. 딴 곳으로 안가고 이곳에서 하루 묵기로 한 건 순전히 피피섬으로 가는 선착장이 바로 옆이라는 점, 그리고, ㅎㅎ.. 빨갱이꽃님이 말했던 그 야시장...
P.S.
나중에 돌아와 확인해 보니 빨갱이꽃님은 남부터미널이 아니라 카오산 여행사에서 운영하는 VIP 버스를 이용하셨던 것이었다. 그러니, 모든 것이 다를 수 밖에.. 에혀.. 늙으면 죽어야지.. 이런 한심한 기억력하고는.. 읽은지 며칠됐다고.. 쓰읍.. TT
P.S. 태사랑에 처음으로 여행일기를 올리는 건데.. 고생했다.
IE를 안 쓰고, Firefox를 쓰는데, Firefox로는 게시물이 제대로 안 올라간다는...TT
그것도 모르고 몇번을 시도했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