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여행일기-한밤중의 만찬
한국에서 승용차나 버스로 여행을 하다보면
고속도로나 국도의 휴게소가
그리 반가울 수가 없다.
물론 급한 용변을 해결하기 위함이 먼저이지만,
우동이나 김밥이라도 한 줄 먹지 않으면
응가하고 밑을 안 닦은 것처럼 왠지 허전하다.
예전에 기차 여행을 해본 분들은
잠깐 서는 간이역에서
가락국수 한 그릇을 후다닥 해치우고
막 출발하려는 열차에
가까스로 올라탄 기억을
한번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KTX가 생기고 난 뒤부터는
간이역에서 주전부리를 하는
낭만과 여유가 사라지고 말았다.
아무튼 여행자에게 휴게소는
오아시스가 아닐 수 없다.
태국에서도 장거리 버스를 타면
휴게소에 한번쯤은 들른다.
특히 밤 버스를 타면
자정 무렵에 휴게소에 정차하여
밤참을 먹게 되는데
이것이 태국 여행의 또 다른 묘미이다.
사방이 어두컴컴한 와중에
안내양의 외침과 함께 실내등이 일시에 켜지면
누에고치처럼 담요를 둘둘 말고 있던
승객들은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나
좀비처럼 흐느적흐느적
모기들의 소굴인 화장실로 가서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하며 물을 버린 후
생전 처음 보는 이들과 원탁에 둘러앉아
정체불명의 태국 음식을 허겁지겁 먹는다.
이것이 지상에서의 마지막 식사인지
천상에서의 첫 번째 식사인지
분간을 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누구 하나 가르쳐주는 이 없고
세월의 바퀴처럼 떠도는 여행자의 종착지는
얼마나 남았는지 아득하기만 하다.
사진은 2007년 12월 27일 밤
방콕에서 쿠라부리(무 꼬 쑤린으로 가는 항구 도시)행
뻐능(1등석) 밤 버스를 타고 가다 먹은 밤참이다.
지금까지 나는 태국에서 밤 버스를 수도 없이 탔고
그때마다 밤참으로 죽과 몇 가지 반찬을 제공받았는데
이날은 처음으로 죽 대신 밥을 먹었다.
암튼 이날의 차림은
그때까지 내가 먹어본 밤참 중 최고였다.
참고로 VIP(24석)와 뻐능(32석)은
밤참이 버스 요금에 포함되어 있고
뻐썽(2등석)부터는 개인적으로 사먹어야 한다.
그리고 밤참 먹는 장소도
VIP는 에어컨이 나오는 실내에서 따로 먹는다.